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4)
094. 그 사람 대체 뭐지.
“이 곡을 우리한테 주겠다고?”
“네, 만약 원한다고 하시면요.”
어두침침하던 뮤타 멤버들의 표정이,
일시에 스위치라도 켠 듯 밝아졌다.
‘꼭 직렬로 연결해 놓은 알전구들 같네.’
오래 함께한 밴드여서 그런지 한순간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도웅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원해요. 저희가 부를래요, 이 곡.”
뮤타는 지금까지 자작곡으로만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도웅의 곡은 후렴이 정말 매력적인 동시에, 뮤타만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그런 곡이었다.
게다가 아직 가사나 구조가 미완성이라 여기에 자신들의 색을 덧칠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것이 뮤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때 보컬 장세호가 도웅을 향해 말했다.
“도웅이 형, 정말 고마워요.”
“도웅 씨가 왜 형이야! 징그럽게 왜 저래.”
옆에서 박충현이 질색을 했다.
“음악 잘하면 다 형이야, 이 자식아.”
장세호가 손날로 박충현을 때리는 시늉을 했고,
그 거구의 남자는 쫄아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참 재미있는 형들이야.’
도웅은 오히려 제가 만든 곡을 이토록 좋아해 주는 뮤타 멤버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 곡이 어떻게 뮤타만의 방식으로 재탄생할지도 궁금했다.
“세호 형, 노래 완성하면 저한테 제일 먼저 들려주시는 거예요.”
“당연하죠! 원한다면 도웅 씨 교실 찾아가서 라이브로 들려줄 수도 있어요.”
“형, 그건 좀···.”
도웅은 곧장 난색을 표했다.
솟아날 구멍이 생긴 뮤타는 전의 활기를 되찾았고,
“도웅 씨, 그 곡 다시 한 번만 틀어줘 봐요. 아예 여기서 같이 의견 나누게.”
“이 부분에서는 베이스를 따당, 따당, 이렇게 넣고.”
“내 생각에 이런 효과음을 넣어보는 건 어때?”
도웅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너도나도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음, 저기에 저런 효과를 넣을 수도 있는 거구나.’
도웅도 그 자리에서 멤버들이 곡을 구성해 나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도웅과 뮤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작업실을 정리하고 나왔다.
“이거 맘에 안 들어 하면 그 캐스팅 담당자 듣는 귀에 문제 있는 거다.”
“그치. 솔직히 우리 곡 중에 제일 좋은 거 같애.”
“인정.”
장세호까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락 페스티벌에서 공연할 상상에 멤버들은 벌써 들떠있었다.
그렇게 1층 로비로 내려온 때였다.
“아 맞다. 여자 연예인.”
이제야 그럴 정신이 있는지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뮤타.
‘나처럼 회사에 상주하는 연예인은 여명 선배 말고는 잘 없을 텐데.’
도웅은 멤버들이 실망할까 차마 얘기는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르르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남도웅 선배님!”
지하층에서 올라오고 있던 백설과 김이삭이었다.
백설이 먼저 도웅을 아는 체하고 쪼르르 올라왔고 김이삭도 수줍게 그 뒤를 따랐다.
‘그새 둘이 많이 친해진 모양이네.’
도웅이 자신 때문에 판타스타에 모이게 된 그 둘을 묘하게 보던 때,
백설이 뮤타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백설 씨.”
뮤타가 헤벌쭉한 표정을 하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백설은 아직 연습생 신분이었지만, 스페셜k스타 때부터 종종 TV에는 얼굴을 비쳤던 터라 준 연예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선배님, 저녁 드셨어요?”
“아니, 이제 먹으러 가. 너희는?”
“저희는 간단하게 샐러드 같은 걸로 먹으려고요. 체중 관리 중이라서.”
뮤타가 백설과 도웅의 대화를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주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입도 벙끗하지 않는 뮤타.
두 연습생이 밝게 인사하고는 시야에서 사라지자,
뮤타 멤버들의 고개가 일시에 도웅에게 돌아갔다.
부러움이 한껏 담긴 그런 눈빛이었다.
“도웅 씨, 혹시 여기 입사하려면 뭐부터 공부해야 돼요? 사무직도 괜찮고 잡일도 괜찮아요.”
“너 지금 백설 씨 때문에 우리를 버리겠다는 거냐?”
“···매일 볼 수 있으면 솔직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금세 리더의 권위를 땅에 내려놓은 장세호였다.
**
“형들 도움으로 반주는 괜찮게 뽑혔네.”
도웅은 첫 번째로 만들었던 곡을 혼자서 듣고 있었다.
혼자 했다면 지금 수준에서는 뽑아내기 힘든 퀄리티의 반주.
도웅은 첫 번째 결과물을 이 정도 만든 것만으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어떻게 한담?”
곡을 발매하기 전에는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았다.
어떤 형태로 내놓을 것인지,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것인지.
그런 면들을 고려해봤을 때 당장 발매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곡이었다.
“자작곡으로 앨범을 내는 건 같이 일할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수준이 됐을 때야.”
도웅은 계속해서 습작을 만들어나가고 경험을 쌓고 싶었다.
당연히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사장시키는 것도 아까운데.”
일단은 엉성하게나마 가사를 붙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거의 허밍 수준으로 가녹음을 해놓은 상태.
그렇게 도웅은 가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작사가 가능할 리 만무했지만, 어차피 습작이기 때문에 차라리 맘 편히 끄적여볼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도웅의 첫 번째 노래가 점점 어떤 형태를 갖춰가는 동안,
뮤타 역시 곡을 완성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음악적인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살을 붙이는 과정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럼 한번 해 볼까?”
드디어 박충현이 깁스를 풀었다.
그는 훨훨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드럼 스틱을 잡았다.
멤버들은 마치 처음 밴드를 결성했을 때의 그 마음으로 노래를 녹음하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모든 녹음이 끝나고.
멤버들이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야, 곡 기깔 난다.”
“이 곡 우리가 만든 곡이라고 해도 믿겠어.”
“맞아. 그 정도로 우리한테 잘 맞기는 한데, 우리가 만들었으면 이런 세련된 후렴이 안 나왔지.”
“인정.”
그때 악기를 정리하고 있는 멤버들 사이에서 장세호가 살짝 유세를 부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도웅 씨 안 데려왔으면 이런 곡이 나왔을까?”
“흐흐, 따지고 보면 내가 공연 때 펑크내서 도웅 씨가 올 수 있었던 거잖아.”
드러머 박충현이 거기에 한마디 보태며 해맑게 웃었다.
그러자 베이시스트가 정색하며 말했다.
“충현아, 양심이 있으면 이 밥상에 네 숟가락은 올리지 마라.”
“그래, 개념 바닥에 떨어졌다. 다시 주워라.”
형들의 면박에 박충현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그들은 음원 파일을 완성한 후에, 곧장 도웅에게로 전송했다.
그리고 도웅에게서 엄지손가락 모양의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몇 시간 후 홍대 인근의 카페.
좀 전에 자신만만하던 것과는 달리 멤버들은 한껏 긴장한 채였다.
“진짜 괜찮겠지?”
“야, 너무 쫄지마. 안 돼도 또 솟아날 구멍이 있을 거야. 일단 노래가 좋으니까.”
장세호는 리더로서 태연한 듯 행동했지만,
그도 손에는 땀을 쥐고 있었다.
길고 긴 무명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를 기회였으니까.
또각또각.
그때 짧은 커트 머리에 세미 정장을 입은 여성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윤주옥 담당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여성이 손을 내밀자 뮤타 멤버들이 다 같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그때 공연장에서 마지막 노래가 인상 깊어서 이렇게 연락 드렸어요. 현장 반응도 너무 좋았고요.”
여자가 생긋 웃더니 멤버들을 둘러봤다.
“이분은 보컬 장세호 씨고, 나머지 분들은···.”
장세호가 나서서 멤버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그러자 윤주옥이 박충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공연장에서 본 그 드러머 분이 아닌 것 같네요?”
드러머는 스모그에 거의 가려져 있었지만,
실루엣만 봐도 박충현과 도웅의 덩치에는 꽤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알아챈 것이었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그분은···.”
장세호는 머리를 굴려 대충 둘러대려고 했다.
도웅은 공인이라 언급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때 눈치 없는 드러머 박충현이 해맑게 끼어들었다.
“남도웅 씨가 하루 제 대타를 뛰어주셨어요. 제가 그때 손을 다쳐서.”
“아아-, 그러셨구나.”
윤주옥이 기계적으로 맞장구를 쳤고,
멤버들은 일시에 작은 한숨을 흘렸다.
‘우리 충현이가 또···.’
그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윤주옥이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남도웅 씨요?”
“헤헤, 네.”
“제가 아는 그 남도웅 씨 얘기하는 거 맞죠?”
“네, 맞아요.”
박충현은 넙죽 자랑스럽게 대답했고,
윤주옥은 흥미가 돋는 듯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상당히 놀랍네요. 무슨 인연으로···.”
“하하, 제가 생각보다 발이 넓습니다.”
이렇게 된 김에 장세호도 슬쩍 끼어들었다.
윤주옥이 생각했을 때 공연 당시에 드럼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심장을 울리는 비트에 흐름을 이끄는 내공.
그래서 당연히 몇 년간 이 바닥에서 활동한 밴드 멤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분 기타도 꽤 수준급으로 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드럼까지··· 그렇게 잘 치시는 줄은 몰랐네요.”
“네, 맞아요. 저희도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 하하.”
‘이러면 내가 현장까지 가서 확인한 보람이 없어지는데.’
윤주옥은 현장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이들에게 컨택을 한 것이었는데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의 실력이나 노래 자체가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기에 감안하고 다른 것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최종라인업 확정을 하고 한 달 정도 후에 공연하거든요. 총 세 곡 정도가 필요한데.”
그녀가 턱을 괴고는 말했다.
“혹시 그때 말씀드렸듯이 다른 노래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윤주옥이 어느 때보다 냉정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 한 곡으로 냉정히 평가해, 당락을 좌우하겠다는 그런 의지가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뮤타의 멤버들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이 노래에 모든 것이 걸려있었다.
한눈에 봐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이는 윤주옥 담당자의 시선이,
장세호의 휴대폰 위로 떨어졌다.
이윽고 휴대폰에서 활기찬 드럼 박자와 일렉기타 사운드가 쨍하게 흘러나왔다.
“···.”
윤주옥 담당자는 미동도 없이 노래에 집중했고,
뮤타 멤버들은 그런 그녀의 포커페이스에 더욱 긴장했다.
마침내 마지막을 알리는 기타 사운드가 스피커를 울리고.
장세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떠셨어요?”
윤주옥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제가 듣기에는 이 곡이 가장 좋은데요?”
담당자의 호의적인 반응에 멤버들은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윤주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왜 이 곡은 지난 공연에 안 올리셨어요?”
“공연 후에 새로 만들었거든요.”
윤주옥은 이들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연락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 곡을 만들어냈다는 소리였으니까.
“이 곡까지 해서 세 곡을 무대에 올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우왁! 감사합니다!!”
그녀는 원석을 찾았다는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
조금 여유를 되찾은 윤주옥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물었다.
“작곡은 전부 멤버분들이 하시는 거죠?”
“네, 거의 그렇기는 한데 방금 이 곡은···.”
“남도웅 씨가 작곡한 거에요. 거기에 저희가 살을 붙였고요.”
박충현이 끼어들어 다시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남도웅 씨가요?”
오늘따라 남도웅이라는 이름이 참 자주 등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신인으로서,
성공적인 가요계 신고식을 치른 십 대의 남자 솔로 가수.
이것이 윤주옥이 도웅에 관해 아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 사람 대체 뭐지?’
윤주옥은 알면 알수록 남도웅이라는 가수에게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음악적이고 아티스트 적인 향기가 그 이름에서 풍겨나오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