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5)
095. 최종 라인업.
사무실로 돌아가는 윤주옥 담당자의 차 안.
뮤타와의 미팅은 만족스러웠고, 성공적이었다.
그들을 공연에 올려봐도 괜찮겠다는 그런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윤주옥 담당자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것은 남도웅이란 이름 세 글자였다.
“남도웅···. 남도웅이라.”
보여지는면이 강한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음악적으로 그리고 있는 궤적들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직업정신이,
윤주옥 담당자 안에 내재된 레이더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남도웅한테 분명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어.”
윤 담당자는 자신의 검정 세단을 성격처럼 깔끔하게 주차해 넣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뮤타랑 미팅 어떠셨어요?”
“신곡이라고 들려준 게 느낌이 좋더라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캐스팅 확정해 버렸어.”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옆자리의 직원이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얘기했다.
윤주옥 담당자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최종 라인업은 그럼 이제 다 된 건가? 참, 더블도너츠한테는 연락 왔어?”
“아뇨, 아직 연락 안 왔어요.”
“이거 왠지 느낌이 쎄한데.”
더블도너츠는 요즘 뜨고 있는 남성 이 인조 싱어송라이터였다.
최종 라인업에 끼워 넣을 팀 중 인지도 면에서 가장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확정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이었다.
“아, 네···. 아···. 알겠습니다. 네, 어쩔 수 없죠. 네.”
옆의 후임이 통화하며 주고받는 소리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통화를 마친 부사수가 먹구름 낀 얼굴로 얘기했다.
“딱 공연 날짜에 맞춰서 일본으로 출국하게 됐대요.”
“꼭 할 것처럼 얘기해놓고 이제 와서. 스케줄 있으면 진작에 좀 얘기해주지 왜 그렇게 뜸을 들였대?”
“조정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나 봐요.”
윤주옥 담당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블도너츠와 급을 견줄만한 인물을 빨리 물색해야 했다.
“지금 한창 공연 시즌이라서 스케줄이 되는 사람이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그렇다고 아예 신인을 대신 넣을 수도 없고.”
부사수가 정리해놓은 섭외 후보군 리스트를 뒤적이며 말했다.
“일단 한번 비슷한 급으로 연락 돌려볼게요.”
“그래, 부탁해.”
그렇게 자리에 앉은 윤주옥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이름이 스쳤다.
그녀는 곧바로 후보군에 없던 도웅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거의 음악 관련 프로그램들이네···.”
분명 여타 기회들이 많았을 텐데, 특히 초반에는 극도로 선별한 프로그램에만 출연한 흔적이 있었다.
그맘때 기사만 찾아봐도 그랬다.
그러다 저번 앨범의 더블타이틀 곡, ‘안녕, 봄’의 작곡에 남도웅이란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도웅···.”
“누구요?”
윤주옥의 혼잣말을 들은 부사수가 물었다.
“남도웅은 어떨까?”
“더블 도너츠 대신에요?”
부사수가 의외의 이름을 듣고 놀라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무 대중가요 쪽 아닌가요? 저번 앨범 타이틀도 댄스곡이었고….”
“저번 앨범이 더블 타이틀이었는데, 나머지 한 곡이 상당히 인디스러워.”
“그래요?”
“그 곡 작곡에도 이름이 올라가있고, 거기다 독자적으로 여기저기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
윤주옥이 갑자기 왜 남도웅에게 꽂혔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사수는 이 시장에서 조금 보증된 인물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요.”
“어떤 이미지?”
“남도웅 씨는 조금 큰 규모의 기획사에 소속된 가수라서···. 차라리 언더하이픈은 어떠세요?”
이들에게는 판타스타도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인디 뮤지션들은 소속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기획사 규모가 아니라 자기 음악을 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따져야지.”
윤주옥이 봤을 때, 도웅의 숨은 음악성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
급하게 다른 가수들을 끼워 넣는 것 보다는 더 효과가 좋을성 싶었다.
윤 담당자의 말을 듣고 도웅에 대한 자료를 뒤적이던 부사수가 말했다.
“전 솔직히 ‘안녕, 봄’도 다른 작곡가한테 이름만 태운 거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온전히 자기가 작곡한 곡은 하나도 없는 거잖아요.”
“아니야, 그것 말고도 내가 들은 게 있어서 그래.”
윤주옥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그럼 언더하이픈이랑 남도웅 둘 다 연락 넣어줘.”
“알겠어요. 저희가 골머리 앓아봤자 저쪽에서 안 된다면 끝이니까요.”
“하긴.”
“그런데 둘 다 오케이 하면요?”
“그럼 둘 다 만나보고 결정해야지. 음악성이 좀 더 끌리는 쪽으로.”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
“네? 락 페스티벌이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심정남이 의아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제작팀 직원들과 미팅 후 같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심정남의 선배가 물었다.
“무슨 전환데 그런 표정이야?”
“그린 민트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도웅 씨를 만나보고 싶다는데···.”
도웅의 이름이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이나래 대리가 끼어들었다.
“어, 저 그거 알아요. 잔디밭에 돗자리 깔아놓고 이 무대, 저 무대 옮겨가면서 종일 노래 들을 수 있는 음악 축제잖아요.”
“거기는 도웅 씨한테 너무 생뚱맞은 거 아냐? 거기 조금 비주류 인디 뮤지션들 서는 무대잖아.”
“아니에요, 인지도 있는 가수들도 많이 나와요. 조영준이나 배현 씨 같은 사람들.”
“그래요?”
매니저 선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약간 자기 곡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들 아닌가요?”
“맞아요. 근데 그 사람들이 왜 도웅 씨한테 연락했을까요?”
도웅이 락 페스티벌에 나간다는 것은 도웅의 팬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지만,
취지에 맞지 않는 공연에 섰다가는 자칫 도웅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심정남이 의아함이 가시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일단 도웅 씨한테 얘기해 봐야죠.”
지금까지 출연을 선택한 프로그램들만 봐도 도웅의 행보는 조금 독특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엔 물음표가 떠올랐다가도,
결국엔 느낌표로 바뀌는 것이 도웅의 선택이었으니.
심정남은 독특한 섭외가 들어오면 곧장 도웅의 의견을 구하는 편이었다.
‘그린 민트 측에서 나한테? 뮤타가 나가기로 했다는 그 락 페스티벌 아냐?’
심정남의 연락을 받은 도웅 역시 의아함을 느꼈다.
도웅은 아직까지 드러내놓고 독립적인 음악 활동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네, 형. 그 담당자랑 미팅 잡아주세요.”
도웅은 심정남에게 스케줄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비방용 무대.
그 곳에 무수히 모일 음악 팬들.
부담스럽지 않게 자신의 자작곡을 불러보면서,
음악팬들의 반응도 살펴볼 좋은 기회였으니까.
회사 근처의 카페.
윤주옥 담당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도웅 씨. 캐스팅 담당 윤주옥입니다.”
윤 담당자는 도웅이 이곳에 나온 것 자체로 긍정적인 기운을 느꼈다.
큰 무대에 설 다른 기회가 많을 텐데도 락 페스티벌에 관심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분명 뭔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거야.’
윤주옥은 도웅에대한 서치를 통해 나름 리스트업을 해온 상태였다.
“락 페스티벌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니까 조금 생소하셨죠?”
“하하, 네. 조금요.”
“저번 더블 타이틀 곡 ‘안녕, 봄’이 상당히 분위기가 독특하더라고요. 그 곡의 작곡에 이름도 같이 올라가 있으시고. ‘킹 오브 마스크’ 결승에서 불렀던 편곡한 록 장르의 곡도 저희 행사에 올리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슬며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운을 띄웠다.
“그리고···. 도웅 씨가 다방면으로 음악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전해 들었거든요.”
도웅은 그제야 윤 담당자가 자신에게 연락한 루트를 짐작했다.
‘뮤타 쪽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들었구나.’
그래서 빙 둘러 말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락 페스티벌에 올릴 곡이라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곡보다는 자작곡이 좋겠죠.”
“네, 맞아요.”
“제가 요즘 작업하고 있는 곡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윤주옥은 옳다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도웅의 자작곡이 예상대로 괜찮다고 한다면,
대중성에 가려져 있던 아티스트 하나를 자신이 발굴하는 것이 되었으니까.
주최 측 입장에서 새로운 아티스트 하나를 네임드로 끌어올리는 것 보다,
이미 인지도가 있는 도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게 홍보 효과 측면에서도 이득이었다.
도웅은 자작곡이 들어 있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렸다.
긴장이 담긴 도웅의 손가락.
그리고 휴대폰에서 도웅이 만든 노래가 흘러나왔다.
**
그린 민트 주최 측의 사무실.
언더하이픈과 남도웅을 만나고 온 윤주옥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부사수에게 물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전부 짐 나를 것 있다고 지하로 불려갔어요.”
“너는 왜 안 가고.”
“아이, 저는 지난달에 디스크 터졌잖아요.”
부사수가 목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아 참, 팀장님이 지금 최종 라인업 가지고 오라고 하셨는데.”
“내가 갈게. 리스트에 남도웅 이름만 올려서 줘.”
“그런데 그게···.”
부사수가 팀장의 방이 있는 쪽을 흘끗 보면서 말했다.
“팀장님이 언더하이픈을 넣으라고 하셨어요. 갑자기 무슨 남도웅이냐면서.”
“뭐? 메인 라인업 제외하고는 원래 별 관심 없으시잖아.”
“그게···. 아까 통화 내용을 우연히 들었는데, 언더하이픈에 연결고리가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윤주옥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더욱이 안 될 일이지. 내 말대로 언더하이픈 이름 빼고 남도웅 이름 넣어서 지금 출력 눌러줘.”
“괜찮으시겠어요···?”
“응, 이러면 우리가 발로 뛰어다닌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윤주옥이 냉정한 눈을 하고는 프린터기 앞으로 직행했다.
지-익.
방금 따끈하게 출력된 종이를 들고, 윤주옥이 팀장의 방으로 향했다.
팀장이 윤주옥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아, 윤 과장. 안 그래도 최종 라인업 보고가 안 올라와서 내가 부르려고 했는데.”
“여기 최종 라인업입니다.”
윤주옥이 입가를 당겨 억지웃음을 띄우며 종이를 내밀었다.
“음···. 그래.”
그는 깍지를 끼고 라인업을 훑어보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남도웅이 또 여기 왜 들어가 있어? 언더 하이픈을 넣으라니까.”
“제가 그러라고 시켰습니다.”
“뭐? 윤 과장이?”
팀장이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남도웅은 우리 행사 취지랑 안 맞잖아.”
“아뇨, 제가 만나고 온 남도웅 씨는 누구보다도 저희 행사 취지랑 잘 맞아요.”
특히 도웅의 자작곡을 들었을 때, 윤주옥은 확신했다.
이 곡은 꼭 우리 페스티벌에서 들려줘야 하는 노래라고.
“그리고 언더 하이픈은 딱 한 곡이 유명한데 그게 표절 의혹이 있잖아요. 만나보니까 그 질문에 대한 태도도 미적지근해요.”
“그건 그 보컬이 요즘 슬럼프라서 그렇대. 알잖아, 음악 하다 보면···.”
윤주옥이 일부러 더욱 생긋 웃으면서 물었다.
“언더 하이픈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아시네요? 만나고 온 거는 전데.”
“흠, 흠.”
사실 라인업 자체를 거의 윤 과장이 다 짰기 때문에 팀장은 편하게 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메인도 아닌 이정도 급의 캐스팅에 그가 끼어드는 것부터가 수상한 일.
“사돈에 팔촌까지 라인업에 다 끼워 넣으실 거 아니잖아요. 저희 행사가 가족 오락관도 아니고.”
“뭐?”
“호호, 농담이에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팀장은 찔리는 게 있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는 갑자기 태세를 바꿔 존댓말로 그녀에게 물었다.
“남도웅 썼다가 우리가 욕먹으면, 윤주옥 씨가 책임 질 거예요?”
“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럴 일 없으니까요.”
결국 결제를 받아낸 윤주옥이 서류를 부사수에게 내밀었다.
“지금 당장 홍보자료에 남도웅 이름도 같이 박아서 뿌려버려.”
팀장의 말이 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
쾌청한 날씨에 푸르른 하늘.
락 페스티벌의 개최 날 아침이 밝았다.
잔디밭에서 공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날씨.
도웅은 피크닉을 가는 그런 마음으로 차에 몸을 실었다.
‘락 페스티벌은 나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축제.
당연히 도웅이 너무나 끌릴 수밖에 없는 그런 행사였다.
하지만 회귀 전의 도웅은 삶의 무게가 무거워 그런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었다.
그래서 이번에 뮤타의 공연도 볼 겸 관객으로 참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공연을 하게 될 줄이야.’
비공식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자작곡을 선보이는 무대.
도웅은 한강 공원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