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6)
096. 그건 진짜 선 넘는 거지.
한강 난지공원에 만들어진 임시구역.
그곳에 자유와 음악을 추구하는 영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개성이 느껴지는 스타일리시한 복장들.
복장만 봐도 그곳을 향해가는 것임을 알 수 있을 만큼 관객들의 행색이 일반 공연장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나래 대리 역시 오늘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쇼핑해 둔 아이템들을 개시했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하늘하늘한 흰색의 상의.
“날씨 너~무 좋다.”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이나래 대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에서 몇몇 도레미 회원들과 정모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저···. 혹시 날 님?”
“아, 네! 맞아요. 혹시 도도 님?”
“흐흐, 네.”
티켓팅에 성공한 인원 몇몇이 입구에 모여서,
수줍게 인사를 주고받고서는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팬클럽 회원들과 직접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보니,
이나래 대리는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남도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보니 어색함이 가시는 것은 금방이었다.
“어머, 그 열쇠고리는 어디서 사셨어요?”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도웅이 사진 편집해가지고.”
“너무 귀엽다~, 이거 회사에서 공식 굿즈로 팔았으면 좋겠네요.”
“돗자리는 여기에 펼칠까요?”
“네, 딱 좋네요. 그늘 아래라서.”
소풍 온 어린아이 같은 표정의 도레미 회원들이 푸르른 잔디에 돗자리를 깔았다.
하지만 그들의 가방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아주 어른의 향기가 나는 것들이었다.
착착착.
남들에게 방해되지 않을만한 낮은 삼각대와 고가의 카메라, 그리고 간이의자 같은 것들.
도웅을 예쁘게 담기 위한 저마다의 장비가 정갈하게 잔디밭 위에 세팅되었다.
“다들 대단하시네요.”
이나래 대리가 감탄했다.
“저는 먹을 것밖에 안 싸 왔는데.”
곧장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음식들이 눈 앞에 펼쳐지자,
도레미 회원들이 눈을 반짝거렸다.
“우와, 우리 이거 다 먹을 수 있겠죠?”
“그럼요. 도웅이 응원하려면 많이 먹어 놔야죠.”
맛있는 음식과 평화로운 풍경.
그 모든 것들을 즐기고 있자니 도웅 생각이 난 회원 하나가 말했다.
“그런데 혹시···.”
“네?”
“여기서 도웅이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없는 거겠죠?”
“에이, 여기서 도웅이를 어떻게 만나요. 무대에만 잠깐 올라갔다 가겠죠.”
하지만 단 한 사람.
도웅이 이곳에 와있다는 것을 아는 이나래 대리는 슬쩍 미소지었다.
**
탁.
도웅이 벤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윤주옥 담당자가 가볍게 목례했다.
그녀는 들고 온 종이백을 뒤적거렸다.
“공연 전에 축제도 조금 즐기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럼 팔 내밀어보세요.”
심정남과 도웅의 팔에 착 하고 감기는 종이 팔찌.
“이거는 왔다 갔다 할 때 필요한 티켓이고요, 이거는 올해 굿즈로 나온 모자.”
거기에 행사 로고가 박힌 기다란 타올을 목에 두르고 나니,
윤주옥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변장에 도움이 될까 해서 준비한 건데 잘 어울리네요. 저희 행사 홍보대사 같아요.”
“감사합니다.”
“음···. 그런데 도웅 씨 혹시 선글라스 가지고 있는 건 없어요? 그것만 있으면 완전히 못 알아볼 것 같은데.”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윤주옥의 말을 들은 심정남이 운전석 쪽으로 달려가더니,
글로브박스를 뒤적여서 선글라스 두 쌍을 꺼내왔다.
“도웅 씨 여기요.”
“선글라스 알이 되게 크네요.”
“하하, 그게 제 머리 사이즈에 맞춘 거다 보니.”
심정남과 도웅이 나란히 알이 커다란 선글라스를 썼다.
그 모습을 본 담당자가 슬쩍 미소지었다.
“이제 정말 못 알아보겠네요. 그런데 여기 오는 관객들은 아마 도웅 씨를 알아보더라도 그렇게 몰려들지는 않을 거예요. 다들 자유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라.”
“그럼 다행이네요.”
“아무튼 마음껏 즐기시다가 시간 되면 무대 쪽으로 와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심정남이 트렁크에서 미리 챙겨온 물품들을 한 아름 꺼냈다.
그러자 윤주옥이 커다란 덩치의 심정남과 짐가방을 번갈아 보다 말했다.
“저···. 거기에 사람 들어 있는 거 아니죠?”
“제가 생긴 건 이래도 절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심정남이 커다란 가방 지퍼를 쭉 열어 그 안을 보여주자 윤주옥이 안심했다.
두 남자는 꾸벅 인사하고 나서 행사장 안으로 향했다.
푸르른 풀밭,
그 위에 가득 펼쳐져 있는 돗자리.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여유를 만끽하는가 하면,
음식을 파는 부스에 줄을 서서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인가?’
평화로운 축제의 비주얼과 쉴새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자유롭게 그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도웅은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웅은 금방 페스티벌의 들뜬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조금 있다가 이 사람들이 내 음악도 이렇게 즐겨줬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심정남이 짐 가방에서 이것저것을 꺼내놓았다.
깨끗한 돗자리와 간이 테이블, 그리고 햇빛을 가려줄 우산까지.
“형, 이런 데 많이 와보셨나 봐요. 준비성이 엄청 철저하신데요?”
“하하, 사실 인터넷도 뒤져보고, 이나래 대리님한테도 물어봐서 챙겨온 것들입니다.”
“이나래 대리님이요?”
“네, 락 페스티벌에 대해서 저보다는 잘 아시더라고요.”
도웅은 자신을 위해 이만큼 물품을 챙겨온 심정남의 배려에 살짝 감동했다.
그렇게 심정남은 한참동안 물건을 꺼내놓았다.
“이거는 잠이 올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베게, 이건 간단한 세면도구···.”
“정남이 형.”
“예?”
“혹시 그 안에 손톱깎이도 있나요?”
“예! 마지막에 챙겨 넣길 잘했네요.”
‘그냥 한번 말해본 건데 진짜 있네.’
거의 여기서 1박 2일 묵어도 될 것 같은 그런 짐의 양이었다.
도웅은 주머니에서 뭐든 꺼내주는 도라이몽이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잠시 후 짐 정리를 끝낸 심정남이 말했다.
“도웅 씨, 먹을 것 좀 사 오려는데 뭐 드시겠습니까?”
“저도 같이 가요. 구경하고 싶어요.”
“네, 그러시죠.”
무대 반대편에 흰색 천막의 간이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식욕을 당기는 비주얼들과 고기를 굽는 고소한 냄새.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도웅은 맥주 부스 앞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
“저분들 그때 같이 공연했던 뮤타 아닙니까?”
심정남도 그들을 발견했다.
뮤타의 멤버들은 아직 무명이어서 그런지,
얼굴을 훤히 드러내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복장은 상당히 신경 쓴 상태였지만.
“아, 형. 제발.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뭐라는 거야, 이 철없는 자식이.”
“새로 나온 맥주 한 잔이 공짜라잖아. 응? 나 딱 한 잔만.”
오늘 공연을 위해 금주하고 있던 드러머 박충현이 장세호에게 애걸복걸하는 와중이었다.
‘저 덩치에 형들 이겨 먹으려면 벌써 백번은 이겨 먹었을 텐데.’
평소에는 형들 말은 곧잘 듣는 박충현이었지만,
음악에 취할 법한 분위기와 공짜 맥주 앞에서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장세호가 그를 어르는 듯한 투로 말했다.
“공연만 끝나면 맥주로 샤워를 해도 안 말릴 테니까 조금만 참아.”
“딱 목만 축이면···.”
“너 자꾸 이러면 지금이라도 도웅 씨한테 전화한다!”
장세호가 말이 통하지 않자 마지막 카드를 꺼내 협박했다.
도웅은 딱 좋은 타이밍에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세호 형, 부르셨어요?”
“누구···. 어? 도···!”
도웅을 알아본 장세호가 곧장 입을 틀어막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고,
박충현은 당황한 채로 버벅거렸다.
“세, 세호 형, 나 맥주 안 마셔도 될 것 같아!”
**
뮤타 멤버들까지 우르르 도웅의 돗자리가 있는 곳으로 놀러 왔다.
그들은 함께 먹음직스럽게 익은 닭 다리와 나초칩 따위의 것들로 배를 채우고,
돗자리에 널브러저 하늘을 보면서 음악을 감상했다.
“이번엔 저쪽 무대로 가볼래?”
“좋아요.”
뮤타와 도웅은 마련된 두 개의 무대를 왔다 갔다 하며,
락 페스티벌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동안 종종 마주친 인디 뮤지션들이 뮤타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중에게는 무명이어도 이 바닥에 아는 얼굴들은 많았으니까.
방금 무대를 하고 내려온 어느 인디 밴드도,
뮤타를 발견하고는 아는 체를 했다.
“어, 뮤타.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네.”
“안녕하세요, 에쉬드 형님들.”
가죽 재킷에 스모키한 화장.
약간의 가오가 느껴지는 그들은 돗자리도 없이 근처의 잔디밭에 철퍼덕 자리를 잡았다.
반면 장세호는 엉덩이를 털면서 일어났다.
“형님, 공연 잘 봤습니다.”
“그래, 이제 곧 너희 차례지?”
“하하, 네.”
“응원한다, 잘하고 와라.”
에쉬드가 뮤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뮤타는 무대 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공연 잘해요, 형들!”
도웅도 그들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잠시 에쉬드의 시선이 도웅에게 와 닿았지만,
그들은 이내 알지 못하는 인물에게서 관심을 거뒀다.
잠시 후 뮤타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이 무대에 올라온 게 너무 기분이 좋네요. 여러분도 같이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빵빵한 기타 사운드와 흥분이 느껴지는 박충현의 드럼 비트.
뮤타는 자신들이 작곡한 곡으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그들이 초면이라 돗자리에서 적당히 즐기던 관객들도,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하나둘 무대 앞으로 뛰어나갔다.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솔직한 반응.
이것이 바로 락 페스티벌만의 매력이었다.
“이야, 여기서 들으니까 노래가 더 신나네요.”
“그렇죠?”
심정남과 도웅은 시원한 콜라를 쪽쪽 빨아먹으며,
뮤타의 음악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마침 그때 옆에 있던 에쉬드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충현이 쟤가 원래 저렇게 드럼을 잘 쳤나?”
“오늘따라 드럼 비트가 신들린 것 같은데?”
경쾌하게 박자를 쪼개는 스네어,
심장을 쿵쿵 울리는 찰진 베이스 킥까지.
실제로 다른 때보다 훨씬 꽉찬 비트 소리가 노래를 흥겹게 이끌고 있었다.
이 공연이 끝나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박충현이 미친 듯이 혼을 불태우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충현이 형 공연 때마다 계속 금주해야겠는데.’
그 차이를 느낀 도웅이 피식 웃음 지었다.
그렇게 비트에 맞춰 몸을 까딱거리던 에쉬드 멤버 중 누군가 말했다.
“이야, 아무튼 쟤들도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이제야 빛을 보네.”
“나는 전부터 쟤네 노래 괜찮았어.”
“락페에 이런 애들이 더 많이 나와야 되는데.”
그들은 원래 뮤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더불어 인디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 같았고.
그때 타임 테이블을 훑어보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남도웅은 뭐야?”
“남도웅? 걔 티비에 나와서 춤추는 딴따라 아니야?”
도웅의 이름이 나오자 심정남의 고개가 획 돌아갔지만,
도웅이 잠자코 있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인디 뮤지션들이 도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음악 하는 애가 회사에서 시키는 거나 하지, 왜 이런데 까지 욕심을 내는 거야. 뮤타같은 저런 애들이 올라가서 빛을 봐야되는데.”
“인디 음악 시장이 잘 되는 것 같으니까 숟가락 올리려는 거지. 스스로 한 거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예상했던 대로네.’
표현이 과격하긴 했지만, 이들이 흥분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이제야 인디음악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간 대중음악에 외면당하며 쌓인 울분이 가슴속에 있었을 테니까.
그때 멤버 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어디서 들은 건데, 언더하이픈 제치고 남도웅이 올라온 거라는 소문도 있어.”
“뭐? 그건 진짜 선 넘는 거지.”
인디 음악과 대중음악의 선.
어차피 이런 구분들은 가까운 미래에 전부 무의미해질 것들이었다.
인디 음악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음악 자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올 테니까.
곧 노래만 좋으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었다.
그때 에쉬드의 멤버 하나가 말했다.
“걔가 음악이 뭔지는 알까?”
도웅과 같이 어린 나이에 데뷔한 스타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쯤으로 여기던 그런 때,
그래서 도웅은 그런 편견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스스로 이 선을 넘고 싶었다.
도웅은 슬쩍 가까이 있던 멤버 하나에게 물었다.
“형들, 음악이 뭔데요?”
누군가 대화에 갑자기 끼었으니 당황할 법도 했지만,
에쉬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주었다.
이곳은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그만큼 마음이 관대해졌기 때문이리라.
“자신에 대한 표현,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목소리나 악기로 나타내는 게 음악이다.”
“그렇게 말하면 어렵잖아. 그냥 우리처럼 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악기 연주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돼.”
옆에 있던 멤버 하나가 단순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음, 그렇구나.”
그때 빵빵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행사장의 스피커에서,
뮤타의 마지막 노래가 흘러나왔다.
도웅이 작곡한 바로 그 곡이었다.
도웅은 손에 든 콜라를 한 번에 쭉 들이켜고는 말했다.
“그럼 저한테도 이 무대에 설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요?”
도웅의 음악이 뮤타의 입을 통해 넓은 잔디밭에 울려퍼졌다.
이들이 가진 고정관념의 선.
도웅의 음악이 그 선을 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