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7)
097. 편견을 걷어차 버리기 위해.
에쉬드와 도웅 사이에 뮤타의 노랫소리만이 쨍쨍하게 울려 퍼졌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에쉬드 멤버가 선글라스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댁이 누구··· 신데?”
도웅이 입을 떼려는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여자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에쉬드 앞에 우뚝 서더니, 울분을 토했다.
“제가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요.”
“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도웅과 에쉬드는 동시에 당황했다.
“우리 도웅이가 딴따라라고요?”
그때 팔짱 낀 그녀의 손에서 무언가 짤랑이는 것이 보였다.
‘···나잖아?’
도웅의 얼굴이 들어간 조그마한 열쇠고리가 휴대폰에 붙어 달랑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팬클럽인 도레미 회원일 것이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다행히 그녀는 ‘딴따라’라는 단어에 흥분해서,
그 이후에 도웅과 에쉬드가 나눈 대화는 듣지 못한 듯했다.
그러니 옆에 있는 도웅의 존재에는 관심 밖이었다.
그때 뒤에서 한 여성이 흰색 상의를 나풀거리며 뛰어왔다.
단발에 동그란 안경을 쓴 이나래 대리였다.
“도도 님, 진정하세요. 이러지 말고 저기 가서···.”
회원을 말리던 이나래 대리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녀만큼은 심정남과 도웅을 알아본 것이었다.
순간 도웅은 입술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사인을 준 것이었다.
도웅이 살짝 목소리를 변조해서 얘기했다.
“그러게요. 딴따라는 조금 심했네요.”
일이 커지기 전에 에쉬드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렸다.
“지금 뮤타가 부르고 있는 이 곡도 남도웅 씨가 작곡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자 에쉬드의 리더가 허리에 손을 올렸다.
“아~, 알겠다. 당신들 둘 다 남도웅 팬이구나?”
“그래요! 맞아요!”
“휴···. 양쪽에서 아주 그냥 피곤하게.”
“뭐라고요?”
도웅의 팬이 순간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에쉬드의 리더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
“여기서 내 생각도 얘기 못 합니까?”
“그렇게 크게 얘기하지나 말던가요!”
“그리고 뭘 잘못 알고 있는가 본데, 남도웅이 갑자기 뮤타랑 무슨 상관입니까? 남도웅이 뮤타 곡을 작곡?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이번엔 에쉬드의 리더가 도웅 쪽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때였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박충현의 신들린 듯한 연주 소리.
그리고.
쾅!
이제 금주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박충현의 개운한 감정이,
크러쉬 심벌의 청량한 충격음에 실려 나왔다.
마침내 뮤타의 공연이 끝난 것이었다.
보컬 장세호는 무사히 공연을 마친 김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비로소 폭탄선언을 할 마음을 먹었다.
도웅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해 놓았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방금 곡은 조금 특별한 분이 작곡했는데요.”
장세호가 약간 뜸을 들인 뒤, 주먹을 불끈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남도웅, 알럽 쏘 머취, 땡큐! 조금 있다 남도웅 공연도 많이 봐주세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후!”
기타리스트가 마이크에 대고 이어서 소리쳤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뮤타 멤버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무대 아래에서는 관객들이 살짝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도웅?”
“방금 남도웅이라고 그랬지?”
“우와, 신기하다. 그런데 남도웅 순서가 몇 시였지?”
뮤타가 도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덕에,
사람들이 타임 테이블을 뒤적거렸다.
‘진짜 도웅이가 작곡한 곡이 맞네?’
에쉬드의 앞에 있던 여성 팬 역시 방금 장세호가 했던 얘기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들었죠? 저 곡 도웅이가 작곡한 거라잖아요! 댁이 아는 딴따라는 작곡도 하고 그러나 보죠?”
“말도 안 돼.”
당황한 에쉬드의 리더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인디들의 무대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도웅이,
오히려 그들을 돕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쉽사리 믿어지지는 않는 얘기였지만,
리더는 일단은 돌아가는 상황이 그러하니 두 사람에게 사과를 건넸다.
“일단은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도레미 회원들이 이쪽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웅도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시간 되시면 있다가 남도웅 씨 공연 꼭 보러 오세요.”
“···.”
“남도웅이 무대에 설 자격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하셔야죠.”
도웅이 마지막 말을 남기자 심정남이 커다란 덩치로 도웅을 슬쩍 감췄다.
“당신 꼭 보러 오십쇼.”
그리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현장을 벗어났다.
방금의 마찰로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에쉬드 멤버들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도레미 회원들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성 팬과 이나래 대리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아주 웃기는 사람들이야, 정말. 딴따라라니.”
“TV 안 나오고 음악 하는 사람들만 고귀한가?”
“도웅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 줄 알면 저런 소리 못하죠.”
그들을 혀를 끌끌 차면서 속이 풀릴 때까지 에쉬드 멤버들을 씹었다.
그러다 문득 사라진 두 남자를 떠올렸다.
“···그나저나 도웅이 남자 팬은 처음 봐요.”
“저도요. 그것도 둘씩이나.”
다행히 이들은 도웅과 심정남을 도웅의 팬이라고 인식한 것 같았다.
조금 체형과 목소리가 비슷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바로 옆에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화가 나서 달려갔다 저도 아차 싶었는데, 그분이 편들어줘서 십 년 감수했어요.”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남성 팬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황이 스무스하게 넘어가자 이나래 대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그런데 도웅 씨 내가 도레미인 거 눈치챘을까?’
그녀는 곧장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야, 그냥 같이 락페에 온 친구 무리로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때,
도레미 회원 중 누군가 우려하던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남자 팬은 이 노래 도웅이가 작곡한 노래인 거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들은 거 있어요?”
“아니요, 저도 완전 처음 듣는 얘기인데···.”
분위기가 다시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 남성 팬이 도웅임을 지금 알아채 버린다면,
이들이 도웅을 찾아 나서려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팬심은 이성을 흐리기에 딱 좋았다.
‘도웅 씨의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되지.’
그리고 팬클럽이 이런 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상황은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나래 대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아, 저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그래요?”
그 얘기를 들은 팬들이 이내 의심을 거두었다.
이나래 대리는 팬클럽 내에서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역시 날 님. 날 님은 도웅이에 관해 모르는 게 없어.”
“저희도 더 열심히 활동할게요!”
다행히 도레미 회원들이 활동 의지를 더욱 불태우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됐다.
**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온 뮤타 멤버들.
그들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잔디밭을 가로지르자,
무대 아래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흘끗흘끗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남성이 그들에게 돌진했다.
“형님들! 저,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예스, 물론이죠. 두 장 찍어드립니다.”
뮤타 멤버들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몇몇 관객들과 사진을 찍어주었다.
“와, 뮤타 형들! 고맙습니다!
“형들 노래 완전 제 취향이에요. 앞으로 노래 찾아 들을게요!”
뮤타 멤버들은 길가에 구르던 돌멩이 같았던 자신들을 사람들이 알아봐 주니,
조금 쓸만해 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오오오오오! 이제 아무도 날 말릴 수 없어!”
아까부터 시동을 걸고 있던 드러머 박충현은,
도움닫기를 하더니 곧장 맥주 부스 쪽으로 달려나갔다.
검정 티셔츠를 입은 덕분에, 며칠 굶어 성난 흑곰처럼 보였다.
“그래, 잘 참았다 박충현.”
멤버들이 피식 웃었다.
손에 시원한 맥주를 하나씩 받아든 뮤타 멤버들.
그들이 도웅이 자리를 옮겼다는 연락을 받고 그곳을 향해 걸었다.
“아까 거기 괜찮았는데 왜 자리 옮겼어요?”
“아, 여기서 형들이 더 잘 보여서요.”
“역시.”
장세호는 코끝이 찡한 듯, 감동 어린 표정을 해 보였다.
실은 도웅의 팬이 그쪽에 있어서 옮긴 것이었지만.
그때 장세호가 도웅에게 물었다.
“도웅 씨, 그런데 무대에 세션들도 같이 올라가요?”
“네, 그럼요.”
락 페스티벌의 무대.
당연히 더 살아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기 위해 도웅은 세션을 섭외한 상태였다.
“누가 서주기로 했어요?”
약간 질투가 나는 듯한 장세호의 물음에 도웅은 그저 씨익 웃음 지었다.
‘아직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은 보장된 그런 그룹한테요.’
도웅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속으로 생각했다.
미래에 누가 뜰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뮤타는 이제 뜰 일만 남은 그룹이라, 자신의 뒤에 세우고 싶지는 않아서 한 선택이었다.
마침 심정남이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럼 마중 나가죠.”
도웅과 심정남이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
은색의 승합차 트렁크에서 사람들이 악기를 내리고 있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유독 눈에 튀는 한 사람.
“유지필 선배!”
도웅이 소리치자 얼굴을 덮는 긴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한 남자가 뒤돌았다.
축제를 앞두고 오디션을 봤었던 한재 고등학교의 동아리 데이콘.
그곳의 기타리스트였던 유지필이었다.
전과 다른 게 있다면 머리를 탈색했다는 것 정도.
갓 스무 살인 그는,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음악의 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삼 년 후면 메이저에 들어갈 그의 밴드에게 알음알음 연락한 것이었다.
자신은 세션 도움을 받아 좋고, 유지필의 밴드인 콜리플라워는 큰 무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그런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유지필이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는 무슨. 이제 형이라고 불러주는 게 어때.”
“네, 좋아요.”
데이필의 조한성은 불한당 같은 녀석이었지만,
유지필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도웅이 데이필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스페셜k스타 본선에 들어가기 직전 기타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
‘게다가 믿을만한 실력이 보장된 사람이기도 하고.’
그는 도웅의 기타 재능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유지필은 도웅이 처음 자신에게 연락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도웅은 이미 스타반열에 올라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세션으로 서달라는 도웅의 제안을 들었을 때는,
팀 내에서 분위기가 갈렸었다.
‘우리한테는 큰 무대에 서 볼 수 있는 기회야.’
‘난 다르게 생각해. 락페스티벌은 인디 밴드들이 서야 하는 무대인데, 그런 곳에서 대중가수의 들러리로 서고 싶지 않아.’
‘하지만 조금이라도 우리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텐데.’
‘난 우리가 음악으로 알려지기를 원해. 남도웅의 들러리가 아니라.’
그렇게 팽팽한 의견이 오가던 때,
유지필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지 말고 도웅이 노래를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어때. 이 곡을 연주하고 싶은지, 아닌지.’
평화주의자 유지필이 꺼내든 현답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웅이 작곡한 곡을 다 듣고 난 멤버들은···.
“그거 일루 줘!”
“아냐, 내가 들면 돼!”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악기를 옮기는 중이었다.
유지필이 도웅에게 물었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엄청 좋아요. 형은요?”
“우리 팀 애들도 다 좋아. 네 곡 연주하는 게 기대되나 봐.”
“다행이네요.”
“큰 무대에 선다는 거에 약간 흥분 상태이기도 하고.”
유지필의 밴드 콜리플라워.
이들과 도웅은 이미 합주실에서 연습을 충분히 해둔 상태였다.
다행히 합은 꽤 잘 맞았고, 서로에게 오늘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형, 그거는 제가 들게요.”
“아니야. 가수 몸 상하면 안 되지.”
“그럼 저한테 주십시오.”
턱.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물건을 받아,
심정남이 어깨 위에 가볍게 얹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편안하게 무대 뒤쪽의 간이 대기실로 향할 수 있었다.
대기실에서는 앞 순서의 밴드가 연주하는 소리가 온몸을 관통하며 쾅쾅 울려댔다.
동시에 도웅의 심장 박동도 비트에 동화되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무대 위로 올라가면 끝없는 잔디밭에 펼쳐질 관객들의 모습과,
실시간으로 도웅에게 꽂힐 일부 편견의 시선들.
도웅은 본격적으로 그 편견을 걷어차 버리기 위해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맸다.
“자, 올라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