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8)
098. 이제 생각 바뀌셨잖아요.
악기 세팅을 위해 콜리플라워 세션들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웅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꺄아, 남도웅!”
도웅의 인지도 때문인지 꽤 많은 관객이 무대 앞에 모여있었다.
하지만 아직 뒤쪽의 돗자리 존에는,
도웅의 노래 정도는 적당하게 앉아서 즐기겠다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을 사로잡으려면 그만큼 특별한 것이 필요했고,
그것은 지금부터 도웅의 몫이었다.
“그래도 음방 보다는 훨씬 거리가 가까워서 좋네요.”
“맞아요. 잘하면 아이컨텍도 가능하겠는데요?”
도웅의 팬들은 일찌감치 앞쪽으로 모여 붙었다.
그때 노란 원피스를 입은 팬 하나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응? 저건 아까 그 남자 팬이 입고 있던 티셔츠랑 똑같은데.’
도웅은 티셔츠에 남방을 하나 걸치고 있었는데,
그 남방 안으로 살짝 보이는 티셔츠의 무늬가 아까 그 남자 팬이 입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저건 흔한 무늬도 아닌데···. 설마.’
도도라는 닉네임을 가진 여성은 어쩌면 아까 그 남자 팬이 도웅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럼 아까 내 편을 들어준 게.’
그러고 보니 훤칠한 기럭지와 도웅과 비슷한 톤의 목소리.
도도의 가설은 머릿속에서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팬들 사이에 혼란을 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심장이 콩닥거리고 있던 때,
사이드 쪽에 아까 마찰을 빚었던 에쉬드의 멤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도웅이 무시하더니 여긴 왜 온 거야?’
도도는 저들에게 도웅이가 본때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쉬드의 멤버 중 하나가 궁시렁거렸다.
“아니, 형님. 여기를 굳이 왜 옵니까. 저쪽에 다른 애들 공연하는 거 보러 가면 되지.”
“한번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뭘요?”
“내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에쉬드의 리더는 좀 전에 도웅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다가 그들의 팬으로 보이는 이들과 마찰을 빚었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도웅이 뮤타의 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에 당황했을 뿐.
‘일단 뮤지션이라면 자기만의 음악을 보여줄 줄 알아야지.’
남의 곡을 작곡했다 한들 그게 저 무대에 오를 자격 조건이 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도웅의 나이는 어렸고, 외모가 출중했고, 꽤 인지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TV를 통해 만들어진 가수일 것이라는 게,
에쉬드의 리더가 도웅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었다.
뮤지션 이미지를 만드느라 자신들의 밥그릇까지 뺏으려는 그런 사람.
그것이 이 남자가 도웅을 보는 시선이었다.
‘그런데 궁금하단 말이지.’
TV에 지나가는 단편적인 모습들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
도웅의 노래를 찾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저 꼬마가 뮤타의 노래를 작곡했다니.’
아직도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가 묘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백 마디 말이 필요할까?
음악인이라면 음악으로 말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에쉬드의 리더는 도웅의 무대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때마침 도웅이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첫 번째 곡은 임지문 작곡가와의 인연에서 시작된 곡. ‘안녕, 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따라 불러주세요.”
도웅이 손이 곧장 통기타 위에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
임지문이 작곡한 곡은 차트의 꽤 상위권까지 들어갔던 노래.
그래서 도웅을 보기 위해 앞으로 나와 있던 관객들은 살짝씩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앞쪽의 분위기는 슬금슬금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뒤편에서 소소하게 음악을 즐기고 있던 대부분의 관객에게,
도웅의 노래는 익숙한 BGM일 뿐이었다.
다들 뭔가를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도웅의 음악을 들었다.
이어진 ‘킹 오브 마스크’에서 불렀던 록 장르의 곡.
까랑까랑한 일렉 기타의 피킹과 명불허전 도웅의 노래 실력이 튀어나오자,
돗자리에 앉아있던 관객들이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기 시작했다.
점점 흥이 달아오르고 있던 것이었다.
에쉬드 리더는 지금까지 도웅의 공연을 보고 한 가지는 확실히 인정했다.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 부르네.’
그때 방금 두 번째 노래를 마친 도웅이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마지막 곡은 제가 처음으로 작곡해 본 곡인데요.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그런 곡입니다.”
도웅은 뒤에 서 있는 콜리플라워의 세션들과 눈을 맞췄다.
가장 먼저 신디사이저의 영롱한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멜로디였다.
그 뒤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베이스의 리듬.
그리고 감각을 두드리는 듯한 드럼 비트가 순식간에 음악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겼다.
“우와, 노래 분위기 엄청 좋다.”
무대 앞에 있던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곧바로 리드미컬한 기타 사운드가 관객들의 흥을 돋웠다.
곡의 느낌을 150% 살리고 있는 유지필의 피킹.
그는 학생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저 기타리스트는 누구야?’
인디 씬에서도 뉴비에 해당하는 그를,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노래의 후반부에 치닫자,
명백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박자와 구성.
남도웅이 만든 음악의 색깔에 끌린 사람들이 궁둥이를 움찔거렸다.
그 가운데 에쉬드의 리더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정말 잘못 생각했어.’
그는 색안경을 끼고 도웅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신함과 대중성을 다 갖춘 그런 곡.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그런 곡을 도웅이 부르고 있었으니까.
잘한다, 괜찮네. 정도로 자신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중해야 할 그만의 온전한 음악 세계를 자신이 함부로 이야기했다는 사실에,
에쉬드의 리더는 자신이 뱉은 말을 지금이라도 주워 삼키고 싶었다.
그의 바보 같은 표정을 본 노란 원피스의 도도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어디 한 방 맞은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봤냐? 이게 바로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남도웅의 클래스야.’
그녀는 입가에 고소한 내음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때 도웅의 고음이 시원하게 하늘 끝까지 치고 올라갔다.
“···!”
그에 뒤편의 돗자리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즉각 반응했다.
“야, 우리도 저 앞으로 나갈까?”
“그러자. 못 버티겠다.”
동화 속 빨간 구두를 신은 것처럼, 많은 이들이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엉덩이가 무거운 누구라도 춤추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음악의 힘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음악과 함께 뛰노는 장관을 연출하던 와중,
마침내 드럼과 기타가 정확한 박자에 마지막 음을 연주했다.
“방금 노래의 제목은 ‘그날 밤’. 그리고 연주를 도와주신 콜리플라워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게 앞쪽에 수북이 모여있는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외쳤다.
“앵콜! 앵콜! 앵콜!”
**
-챠라라라랑.
푸른 잔디밭 위에 영롱한 별들이 솟아올랐다.
노을 지는 풍경 속 사방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이,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야외에서 이렇게 많은 별을 보는 건 또 오랜만이네.’
도웅은 학교 축제 때,
마은율과 무대에 올랐던 때가 잠시 기억 속에 스쳤다.
선선해진 바람과 함께 별 무리가 도웅에게로 날아와 박혔다.
앵콜 곡까지 마친 도웅은 두 팔을 벌리고 관객들에게 힘껏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노래를 진정으로 즐겨주는 관객들의 모습.
원래 있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넘어서,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만들었다.
도웅은 오늘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도웅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심정남이 말했다.
“언제 이렇게 작곡을 다 하셨습니까.”
“그냥 쉬면서 틈틈이요.”
사측에서는 도웅이 락 페스티벌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도 놀랐지만,
그가 자작곡을 그곳에서 불러보고 싶다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웅이 만든 곡.
특히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후렴 부분은 전혀 가벼이 여길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상부에 꼭 보고해야겠어.’
“축제 더 즐기시겠습니까?”
“아니요, 오늘 놀 만큼 놀았어요.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요.”
“집이 아니고요?”
“오늘 공연하고 나니까 노래를 더 만들고 싶어져서요.”
“하하, 도웅 씨를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심정남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음악에 대해서는 저런 집요한 면이 있었기에 지금의 도웅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도웅의 이름을 불렀다.
“저기, 남도웅 씨!”
에쉬드의 리더와 그 뒤를 따라오는 멤버들.
이번엔 심정남이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심정남과 도웅을 번갈아 보던 에쉬드의 리더가 확신하며 말했다.
“역시 아까 봤던 그 사람들이 맞네.”
“도웅 씨는 왜 찾으십니까.”
심정남이 강한 투로 얘기했지만, 에쉬드의 리더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우리의 음악은 들어보지도 않고 우리를 판단해 버리는 인간들입니다.”
그가 도웅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어느새 제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네요. 내가 미안하게 됐습니다.”
가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가 고개를 숙이자,
멤버들이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쉽게 마음이 풀리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도웅이,
금방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괜찮아요. 이제 생각 바뀌셨잖아요.”
도웅에게는 그가 자신을 함부로 얘기했던 것 보다,
결국 음악으로 이 남자의 편견을 부숴놓았다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나이는 어리지만 대인배로군.’
에쉬드의 리더는 그래서 더욱더 부끄러워졌다.
**
며칠 후.
그린 민트 주최 측의 사무실.
페스티벌을 무사히 마친 직후라 살짝 분위기가 한산해졌다.
캐스팅 담당자인 윤주옥은 마우스를 빠르게 딸깍이며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년을 대비해 행사 직후의 자료를 정리해 놓는 중.
“내년에는 이 친구들도 리스트 후보군에 올려둬야지.”
그녀가 자료를 정리해 넣고 있는 것은 콜리플라워라는 밴드였다.
도웅의 세션으로 선 그들의 연주실력이 눈여겨볼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그녀는 도웅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했다.
지금까지 쌓은 무대 경험으로 오버하거나 움츠러들지 않는 균형 잡힌 무대매너.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의 음악.
“도웅 씨 캐스팅했던 게 신의 한 수였어.”
윤주옥은 뜨거웠던 현장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슬쩍 팀장이 있는 방 쪽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저 인간 너무 잠잠한데.”
도웅을 무대에 세우는 일로 마찰을 빚었던 팀장이 어쩐지 조용했다.
반박할 거리가 없을 만큼 도웅의 무대가 훌륭했기 때문이리라.
“책임지라고 길길이 날뛰어놓고 입은 싹 닦으시겠다. 그럴 순 없지.”
하지만 윤주옥은 이대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린 민트를 동영상 사이트에 검색해 영상당 조회 수를 싹 정리해 팀장 앞에 내밀었다.
“이건 뭐야?”
“이번 행사 무대별 조회 수요. 어떤 무대가 반응이 좋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어요.”
팀장은 조용히 서류를 훑었다.
그중에 남도웅의 영상들에 형광펜이 쳐져 있었다.
“흠, 흠. 남도웅 곡들이 꽤 반응이 좋았네.”
“네, 워낙 인지도도 있고 저희 행사에 썩 잘 어울리는 가수다 보니까요.”
“역시 윤주옥 씨가 안목이 있어.”
팀장은 전에 웬 남도웅이냐며 어깃장을 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팀장님. 그럼 응당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결과가 잘 나왔는데 무슨 책임?”
“무대 반응이 안 좋았어도 제가 모든 책임을 졌을 테니, 잘 나온 데 대한 책임도 제가 져야지요.”
윤주옥이 인위적으로 입꼬리를 당겨 미소지었다.
능력에 비해 뛰어난 눈치로 이 자리에 붙어있던 팀장은, 윤주옥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 내 앞으로 윤주옥 씨가 담당하고 있는 캐스팅 건에 관해서는 믿고 맡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고 허리를 꾸벅 숙인 채 팀장실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거의 그녀가 맡아서 하던 일.
거기에 간혹 쓸데없이 간섭하던 것들이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윤주옥은 조금 속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로 돌아와 만족의 미소를 짓고 있는 윤주옥.
도르르르륵.
그때 옆자리에서 마우스 휠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리고 부사수가 뭔가 잘못 본 듯 두 눈을 껌뻑였다.
“왜 그래?”
“남도웅 씨 미공개 곡이요.”
“응. 그게 왜.”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모니터 위로 들어 올렸다.
“…조회 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있어요.”
“그럴 리가, 좀 전에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놀란 윤주옥이 조회 수를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모니터 가까이 가져다 댔다.
“···진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