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enius's Playlist RAW novel - Chapter (99)
099. 진로에 관해서.
이나래 대리는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올린 영상이 조회 수 50만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타 가수들의 영상 조회 수가 15만 언저리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조회 수였다.
‘휴, 일단 진정하고.’
그날 락 페스티벌에 갔던 다른 회원들이 훨씬 비싼 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회 수가 미친 듯이 오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올린 직찍.
이나래 대리는 한 번 심호흡하고 영상 아래의 댓글들을 확인했다.
-노래가 마음에 쏙 드는군. 역시 알고리즘이 나를 가장 잘 알아.
-완죠니 락 페스티벌 체험 영상이넹 ㅜ. 나도 저기 가서 뛰어놀고 싶엉.
-사람들 북적거리는 잡음이랑 흔들리는 화면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임.
-다른 영상 보러 갔다가도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돼요. 이게 무슨 일이죠?
이게 무슨 일인지는 이나래 대리가 묻고 싶은 것이었다.
‘그날 행복했던 내 감정이 이 영상에 담겼기 때문일까?’
그녀는 그렇게 추측하며 떠오르는 미소를 꾹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업무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나래 대리는 계속해서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오늘도 들으러 왔습니다.
-왠지 자꾸 듣고 싶은 노래. 근데 음원에 없는 곡이라 여기로 올 수밖에 없었따.
-약간 엉성한 듯 독특한 그런 느낌이 좋다. 딱 열아홉의 순수와 열정이 합쳐진 그런 느낌.
-자기 노래를 해서 그런지 더 행복해 보이네.
-ㅈㄴ 부럽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는데 잘하는 저런 삶.
-ㅇㅇ 대리 만족하는 게 절반. 노래 부르는 사람도, 저기 있는 관객들도 다들 너무 행복해 보임.
-이거 음원으로 내주시면 안될까여??????
‘그러게. 이 노래가 음원으로 나왔으면 좋겠네.’
이나래 대리는 댓글 하나하나를 보며 뿌듯함을 곱씹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최 과장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 대리. 우리 점심 뭐 먹을까?”
“어머, 깜짝이야!”
“뭐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놀래?”
최 과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이나래 대리의 모니터 쪽으로 돌아갔다.
“모니터링이요, 모니터링.”
“헤엑. 근데 조회 수가 왜 이렇게 높아? 이거 도웅 씨 락 페스티벌에서 찍힌 영상 아니야?”
최 과장은 높은 조회 수에 놀라,
이나래 대리의 변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이건 위쪽에 알리는 게 좋겠는데?”
“그, 그렇죠?”
이대리는 다시 심장이 콩닥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찍은 영상으로 말미암아,
도웅의 노래가 음원으로 나올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생겨서.
**
판타스타의 사장실.
그곳에서 강태진과 작곡가 손규성이 잠시 티 타임을 갖고 있었다.
도웅의 곡을 작곡해줬던 것을 인연으로 주변에 왔던 김에 들른 것이었다.
강태진이 물었다.
“요즘은 무슨 작업하고 계세요?”
“저야 뭐 도웅이 앨범 작업 이후로는 쭉 OST죠.”
“다른 가수들 곡은 안 받으시고요?”
“의뢰야 많았지만 도웅이 만큼 제 감성을 울리는 가수가 없어서요. 맘에도 없는 곡 만들 바엔 차라리 OST 만드는 게 낫죠. 그건 스토리 담아 만드는 재미라도 있으니까.”
손규성은 여전히 자신만의 까다로운 기준을 고수하고 있었다.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음악.
어쩌면 그게 이 사람이 업계에서 인정받는 이유였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작품도 상당히 재미있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
똑똑.
그때 누군가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홍보팀의 과장이었다.
“아, 손님이 와계셨네요. 그럼 조금 있다 다시···.”
“뭐에 관련된 얘기입니까?”
“도웅 씨와 관련된 이슈입니다.”
“그럼 지금 말씀하셔도 됩니다.”
강태진은 도웅과 관련된 특이 동향은 따로 보고하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
홍보팀 과장은 들고 온 태블릿을 소파 테이블 앞에 내밀었다.
도웅의 이름이 오가니 손규성 작곡가도 관심을 보였다.
강태진이 말했다.
“이건···. 배경을 보니 이번에 나간다던 락 페스티벌 영상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강태진은 이 행사를 도웅의 나들이 정도로 가볍게 인식하고 있었다.
공중파 방송에 나가는 것도 아닐뿐더러 여러 뮤지션에 섞여 세 곡정도 부르고 오는 행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홍보팀 과장이 태블릿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게 도웅 씨가 작곡했다던 미공개 곡입니다.”
“오, 도웅 씨가 작곡을 했다고요?”
옆에 있던 손규성 작곡가가 흥미가 확 당기는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강태진도 무릎 위로 손을 모았다.
“마침 들어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그런데 처음 작곡해 본 곡을 시험 삼아 불러본다고 했던 거니 너무 기대는 마십시오, 하하.”
강태진 역시 처음으로 들어보는 도웅의 곡이었다.
하지만 혹시 손규성이 너무 큰 기대를 할까 봐 일부러 밑밥을 깔았다.
이윽고 태블릿 화면에 도웅의 직캠 영상이 재생됐다.
귀를 사로잡는 반주와 꽤 수준급인 세션들의 연주,
전반적으로 독특한 느낌을 풍기는 흐름,
아직 부족하지만, 뼈대만은 아주 훌륭한 그런 음악.
손규성이 듣기에 도웅은 이미 작곡에 있어서 핵심을 간파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
홍보팀 과장이 설명을 이었다.
“그런데 시험 삼아 부른 이 곡이 지금 인터넷상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그럴 만하네요. 자기감정이 곡에 아주 잘 드러나서 다시 듣고 싶은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강태진은 손규성의 칭찬에 광대가 움찔거렸다.
“회사에서 지원해 준 거 하나 없이 혼자 이슈를 만들어내니 원. 제가 할 일이 없네요. 하하하.”
“방금 이 곡이 회사 도움 없이 스스로 만든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저 취미로 작곡을 해보고 싶다기에 장비 정도 쓰라고 해둔 게 다입니다.”
“허허, 좋으시겠습니다. 대표님.”
아까는 괜히 도웅이 욕을 먹을까 밑밥을 깔았던 강태진은,
이제는 은근히 도웅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래서 도웅 씨가 저희 회사의 에이스 아니겠습니까.”
강태진은 미소가 만연한 채로 아래의 댓글들을 확인했다.
이 곡을 음원으로 듣고 싶다는 그런 아우성들.
그래서 그는 대표로서 한방에 결단을 내렸다.
“이 곡, 도웅 씨가 원한다면 음원으로 내보낼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홍보팀 과장이 나간 후,
손규성 작곡가가 말했다.
“작곡 관련해서는 회사 측에서도 계속 지원을 해주시는 게 좋겠네요. 만약 도웅 씨가 판타스타의 가수가 아니었다면, 제 수제자로 들이고 싶을 정도로 싹이 좋아요. 자신만의 느낌을 전달하는 싹이 있습니다.”
“하하하, 제가 먼저 도웅 씨를 붙잡아 두어 안타깝게 되었군요.”
강태진은 팔불출 같은 표정을 지었고,
손규성 작곡가는 살짝 식은 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켜면서 머릿속으로는 방금 들었던 도웅의 곡을 음미했다.
**
‘내가 듣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다들 좋아해 주니 다행이야.’
도웅은 디지털 싱글에 대한 제안을 받은 이후,
이슈가 됐다는 그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더불어 뮤타의 영상까지 관련 영상에 묶여 조회 수가 상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형들도 완전히 상승기세 탔네. 하긴, 노래가 좋으니까.’”
때마침 장세호의 이름이 휴대폰 화면 위에 떠 올랐다.
“양반은 못 되는구만.”
도웅이 통화 버튼을 누르니, 다소 흥분한 장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웅 씨, 뭐 먹고 싶어요? 말만 해요, 말만 해!
“갑자기 왜요?”
-우리 이러다 금방 부자 되겠어!! 다른 행사 섭외가 막 들어와요!
-이게 다 도웅 씨 덕분이에요!!
다른 멤버들이 끼어들어 소리 질렀다.
행복에 겨운 그런 비명이었다.
“혹시 술 드셨어요?”
-아, 우리 충현이가 이런 좋은 날은 한잔 해야 된다 그래서 다 같이 딱 한 잔만.
혀가 꼬부라진 덕에 술 냄새가 여기까지 끼쳐오는 것 같았다.
그때 박충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헤헤, 도웅 씨 알라뷰~.
-우웩, 이 자식이 미쳤나. 어디서 불경스럽게 애교를 부려.
-네가 우리한테나 막내지 도웅 씨한테는 그냥 등치 큰 흑곰이야!
-아 왜구래애~, 형도 저번에 무대에서 도웅 씨한테···
툭.
뮤타 멤버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틈에 전화가 끊겼다.
도웅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아무튼 재미있는 형들이라니까.’
도웅은 오늘따라 음악이 만들어준 인연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서로 시너지를 일으킨 덕에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때 음악이 맺어준 또 하나의 인연이 눈앞을 지나갔다.
“백설!”
“아, 선배님.”
배시시 웃는 백설은 어딘가 힘이 빠져 보였다.
‘한창 데뷔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하지만 평소와 다른 분위기.
도웅은 그것을 캐치하고 백설에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괜찮아, 얘기해 봐.”
백설은 우물쭈물하다가,
도웅 앞에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회사 안에 이런 얘기를 할 선배는 도웅뿐이었다.
“그게, 실은···. 최종 데뷔 조로 뽑혔던 한 친구가 갑자기 계약 전에 포기 선언을 하는 바람에···.”
“포기? 누가?”
이름을 들어보니 다행히 김이삭은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운 멤버 구할 때까지는 데뷔가 미뤄질 것 같아요.”
한 그룹의 데뷔를 위해서는 모든 조건이 잘 맞아줘야 했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얘기.
하지만 도웅은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데뷔하고 나서 도중에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이게 나아. 곧 더 괜찮은 멤버가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백설은 선배의 말이 약간 위로가 되는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도웅은 간만에 선생님의 호출을 받아 학교로 향했다.
나뭇잎이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의 운동장.
훌쩍 커버린 키와 이제 연예인 태가 나는 체격 때문인지,
등굣길에 느껴지는 시선들이 심히 따가웠다.
‘이제 등교할 일도 얼마 안 남았네.’
도웅은 이제 졸업을 앞둔 3학년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 학기였다.
한번 겪어본 것이기는 했지만,
도웅의 마음 한구석에 학창 시절이 지나가는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이때만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감성이 있으니까.’
교실로 들어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도웅을 반겼다.
“남도웅! 하이.”
“어, 왔냐.”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동급생들은 도웅을 연예인보다는 여전히 친구로 대해주었다.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우정.
이런 것은 시간이 갈수록 찾기 어려운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했다.
요즘은 각자 진로를 고민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 시기의 선택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나도 이때까지는 적당히 성적 맞춰 대학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 당시는 도웅이 음악에 빠지지 않았던 때.
정확히 목표로 하는 학교나 과 같은 것도 없이 성적 따라 남들 가는 흐름에 몸을 맡겼었다.
‘간절하지 않아서 결국 가지 못하게 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분명하게 원하는 길을 걷고 있는 도웅이었다.
아침 조회를 간단히 끝내고, 도웅은 교무실로 불려갔다.
어차피 이맘때의 수업은 거의 자율학습이었으니까.
살짝 모자란 머리숱의 담임이 따듯한 눈으로 도웅을 맞아주었다.
“이제 곧 수시 모집 기간이라 상담이 필요할 것 같아서 불렀다. 요즘 많이 바쁘니?”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는 너저분한 책상을 뒤적여 도웅에 대한 서류를 뽑아 들었다.
“그래. 방송 활동하는 와중에도 성적은 잘 유지해 놓은 게 기특하구나.”
도웅은 정말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해왔고,
수행평가나 시험에는 문제가 없도록 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따로 공부하기도 쉽지 않았으니까 할 때 제대로 해두자는 그런 생각이었다.
“이 정도 성적에 너 정도 활동 경력이면, 서울 상위권 대학의 관련 학과는 문제없을 것 같다. 혹시 소속사랑 진로에 관해서 얘기해 본 게 있니?”
평소 다른 학생들과 상담할 때는 근심 걱정이 많던 선생님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편안한 마음이었다.
성적도, 진로로 걱정할 것 없이 확실한 학생이었으니까.
오히려 도웅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기대됐다.
그때 도웅이 천천히 입을 뗐다.
“소속사에서는 제 생각을 존중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고민해 온 것을 망설임 없이 꺼내놓았다.
“저는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도웅의 대답에 담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원하는 것은 대학에 있지 않으니까요.”
남들 다 하는 대학 진학.
그 흐름을 거스르는 결단.
하지만 도웅의 얼굴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이미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