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990 Thousand Past Lives Help Me RAW novel - Chapter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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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장 99만의 의지(3)
칠흑의 창이 쇄도했다. 창은 이제는 빛을 잃은 오러 실드를 뚫고 현준의 왼팔을 날려 버렸다. 완전히 무너진 오러 실드를 넘어 날아온 검은 도끼가 가슴을 쪼갰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비명조차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을 뿐이었다.
“제기랄…….”
어찌 이토록 무력할 수 있는가? 운명의 광대가 뽑은 황금왕의 카드로 종말급 신격의 경지에 올랐지만 침략 사령관의 경지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벌써 포기인가?”
침략 사령관, 코펜하겐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짙은 살기가 묻어 나왔다. 고개를 젓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변칙적인 공격을 모두 막아내느라 마력이 바닥난 지 오래였다. 단치히의 가호가 없었다면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포기한 거로 보이나?”
현준은 씨익 웃어 보였다. 마력은 바닥났고 검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넘쳤다.
그게 거슬렸던 것일까? 아니면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것일까? 코펜하겐의 얼굴이 굳었다.
“스스로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내가 너의 세계에 종언을 선고하겠다.”
단호한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그리고 칠흑의 검과 창들이 쇄도해왔다.
“커, 커헉…….!”
최후는 순식간이었다. 고통의 연쇄에 정신없이 휘둘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의식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그게 첫 번째 죽음이었다.
* * *
무한의 회귀자가 손을 내밀었다고는 하지만 의식이 검게 물들고 감각이 단절된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의식을 잃는다는 것과는 달랐다. 생명이 끊어지는 게 분명히 느껴졌으니까.
“끝은 아니라는 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전생의 홀’이었다.
“무한의 회귀자…….”
수천 년? 아니 최소 수만 년의 세월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에 각인된 이명을 읽으며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칠흑과도 같은 어둠뿐이었다. 한 줌의 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깊이 들어와라, 후예여.”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렸기 때문에 현준은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둠이 옅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이었다면 지금은 희미한 빛이 섞여 있는 어둠이었다.
“만나서 반갑다, 후예여.”
어둠이 조금 더 밝아졌다.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희미한 어둠 속에 비스듬히 몸을 숨긴 무한의 회귀자가 있었다.
“강현준입니다.”
“알고 있다. 너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회귀자가 말했다.
“이름을 말해주고 싶지만, 무한에 가까운 회귀의 굴레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망각했으니, 이름조차 알려줄 수 없구나.”
회귀자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현준과 달리 회귀자의 시야에서는 어둠이 방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없으니, 하나만 묻겠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현준의 목숨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회귀자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영겁을 견딜 수 있겠는가?”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영겁이라면…….”
“말 그대로다. 내 가호를 받게 된다면 반드시 침략 사령관을 죽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신중하게 고민하는 게 좋을 거다. 한 번 가호를 받으면 되돌릴 수 없으며, 끝날 때까지 회귀는 계속될 것이다.”
“무한히 반복되는 겁니까?”
현준의 물음에 회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다. 네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조차…….”
“잃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잊는 거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침략 사령관, 코펜하겐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래서 이 증오의 연쇄를 끊을 수만 있다면 각오는 되어 있다.
진심은 전해졌고 회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나처럼 모든 것을 잊고 영겁의 회귀에 잡아 먹히는 일은 없길 바란다.”
간절한 바람이 닿았고, 회귀자는 마력을 일으켰다. 현준이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땐 이미 회귀를 끝낸 뒤였고 눈앞에는 침략 사령관, 코펜하겐이 있었다.
-첫 번째 회귀다.
회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투 직후인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주위를 살폈다. 쓰러져 있는 인베이더들의 모습이 보였고 마력의 잔량을 볼 때, 모선의 중앙 함교에 침투한 직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왔는가, 적격자여.”
코펜하겐의 싸늘한 시선이 닿았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칠흑의 무기들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와라!”
처음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쳤다. 같은 공격에 당하는 일이 두 번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호기롭게 외치며 검을 휘두르며 코펜하겐에게 달려들었다.
“커, 커헉…….”
자신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검은 창이 복부를 관통한 뒤였고 칠흑의 검이 두 다리를 잘라냈다. 무너지듯 쓰러진 현준의 목 뒤에 검은 창이 날아와 꽂혔다.
“끄르르르륵!”
“고작 이 정도더냐.”
코펜하겐이 도발하듯 말했다. 그는 여전히 강철 의자에 앉아 있는 채였다. 이번에도 현준을 상대하는 동안 손가락을 까딱하거나 팔을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니, 이걸로 끝이다.”
코펜하겐은 강하게 확신했지만, 현준은 달랐다. 칠흑의 도끼가 날아와 머리를 쪼갤 때까지 그의 입가에서 미소는 떠나지 않았다.
* * *
10번을 더 회귀했다.
코펜하겐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강철의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손가락만 움직이는 것으로 칠흑의 무기들을 조종하여 현준을 조각냈다.
100번째 회귀.
코펜하겐이 다루는 무기들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의식이 흐릿해졌다.
1,000번째 회귀.
마침내 마지막 순간에, 코펜하겐이 강철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단한 성과였지만 기쁘지 않았다. 신격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영혼은 ‘인간’이다. 천 번의 회귀를 거치는 동안 감정은 마모되었고 기억은 흐릿해졌다.
침략 사령관을 죽여야 한다는 단순한 목적만이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걸로 5,320번째다.
회귀자의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현준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땅을 박차고 코펜하겐을 향해 단숨에 파고들었다.
-창백한 광전사가 당신의 통각을 마비시킵니다. 광기의 마력이 신체를 활성화합니다.
-찬란한 검술가가 당신에게 광휘의 춤을 선사합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 빛났던 검무가 다시 시작될 것이니, 적들은 두려워하고 공포에 물러설 것입니다.
-거짓된 소문꾼이 당신의 적에게 허상을 보여줍니다. 혼란 속에서 당신은 소리 없이 숨었습니다.
전력을 다해 폭풍처럼 몰아붙였다. 수천 번의 회귀를 하는 동안 전생들도 함께였다. 그중에는 새로운 이들도 있었다.
회귀할수록 현준은 분명히 강해지고 있었다.
“이 정도였나!”
코펜하겐이 당황했다. 전투의 시작과 동시에 그는 강철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달리 칠흑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칠흑의 참격이 뻗어 나갔다.
거짓된 소문꾼이 보여준 허상들이 힘없이 찢겨 나갔지만, 현준은 멈추지 않고 코펜하겐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림자에서 솟구친 검은 창이 현준의 복부를 꿰뚫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고통의 저주가 깃든 창이었지만 창백한 광전사의 가호를 받고 있는 현준을 멈추게 만들지는 못했다.
“제기랄!”
코펜하겐이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현준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검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오러 실드가 생성된 왼팔을 휘둘러 코펜하겐의 흉부를 가격했다.
“커헉!”
방패 치기의 충격으로 코펜하겐이 뒤로 두 걸음을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보다는 예상치 못한 일격을 허용했다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 순간을 위해 수천 번을 회귀한 현준과 달리 코펜하겐은 지금 ‘처음’ 겪는 상황이었으니까.
‘보인다!’
가능성이 있다.
“적격자!”
코펜하겐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혀오며 검을 휘둘렀다.
전후좌우, 사방에서 칠흑의 무기가 날아들었고 정면에서는 코펜하겐이 신묘한 검술을 펼치며 압박했지만, 현준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수백 번은 봤던 패턴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움직임이다. 현준은 황금의 검을 휘둘러 코펜하겐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기어검!”
도살자 단검이 코펜하겐의 목을 노렸다. 어느샌가 생성된 검은 장막에 가로막혔지만, 잠깐의 마력 운용이 빈틈을 만들었다.
“크악!”
빈틈을 노리고 휘둘러진 지옥참마도가 코펜하겐의 복부를 깊숙이 베었다. 붉은 피가 튀었고 현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어떻게…….?”
코펜하겐의 당황한 표정조차 회귀를 반복하면서 수십 번은 봤던 것이기 때문에 감흥은 없었다. 대신 지옥참마도를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신격의 힘을 더욱 해방하여 코펜하겐을 짓눌렀다.
“크, 크학…….!”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수천 번의 전투를 반복하면서 코펜하겐이 다루는 마력의 구조는 파악했다.
현준이 퍼트린 마력은 코펜하겐의 주위에 독처럼 파고들어 그를 속박했다.
코펜하겐의 공격은 현준의 방어를 뚫지 못했지만, 현준이 내찌른 검은 허점을 뚫고 코펜하겐의 몸을 꿰뚫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코펜하겐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전신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으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끝이다.”
차갑게 끝을 고하며 검을 휘둘러 코펜하겐의 목을 쳤다. 수백 만개의 차원을 점령하고 유린한 침략사령부 수장의 최후치고는 허무했다.
“끝인가?”
현준 또한 허무한 심정이었다. 침략사령관을 죽이기 위해 수천 번의 회귀를 반복하는 동안 무한의 회귀자가 말한 대로 하나의 목적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하나씩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잊혀졌고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의 이름을 제외하면 그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남은 것은 그저 공허뿐이었다.
“대체…….”
밀려오는 공허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날, 침략사령부는 패전했지만, 현준 또한 잃은 것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