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02)
#102
북부 산맥 (3)
심장이 과하게 뛰고 감각이 한없이 날카로워진다.
뇌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신경을 긁어대며, 이유 없는 짜증이 치솟아 오른다.
-짜증 나, 찝찝해, 부숴 버리고 싶어, 없애 버릴까? 그래, 죽이자!
머릿속에선 환청과도 같은 울림이 퍼지며 행동을 강제하려 들었다.
그것도 폭력적인 방향으로.
그 갑작스러운 광증은, 지금 할리의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누가 겪더라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음, 불사왕의 심장을 받아들였을 때랑은 비교할 수도 없이 약하네. 이 정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당연히 「마인드 허브」가 있는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할리가 살짝 맛이 간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고.
그는 정신에 가해지는 이상을 무시하고 찬찬히 신체의 변화를 살폈다.
단순히 심장이 거칠게 뛰며 혈류가 빨라진 게 다가 아니었다.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광기’의 기운이 몸속을 휘돌며, 근육과 감각을 포함한 모든 육체 능력을 더욱 활성화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마치···.
‘지금 이 오크들처럼 말이지.’
한층 질겨진 피부와 부풀어 오른 근육, 예민해진 반사 신경.
단점이라면 이성을 잃고 본능대로 무작정 달려든다는 점일까.
‘물론 나한텐 그렇게 효과가 크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의 괴물 같은 육체를 더 강화하기에는 지금 체내에 들어온 광기의 양이 너무 적었다.
유의미한 강화 효과를 체감하기 위해선 이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은 광기를 받아들여야 하리라.
‘그런데 마석으로 한 번에 받아들여서 그런가. 그 전엔 잘 체감하지 못했는데, 이젠 사방에 퍼진 광기가 선명하게 느껴지는군.’
천지사방에 퍼진 그것은 호흡할 때마다 조금씩 그의 체내에 쌓이며, 이미 몸에 들어선 광기의 크기를 서서히 부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던 할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오크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몬스터들한테는 호흡을 통해 들어가는 광기의 양이 또 다르잖아?’
그의 활약 덕에 오크와의 싸움도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던지라, 그는 몸에 힘을 빼고 그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몬스터가 흡수율이 가장 높고, 다음은 나, 마지막이 인간인가.’
아마 이 차이가 몬스터 광화(狂化) 사태의 원인이며, 할리가 그동안 이상을 느꼈던 이유일 것이었다.
‘몬스터와 광기의 궁합이 잘 맞는 건가? 야성과 본능 같은 것을 노리고 파고드는 걸 수도 있겠군.’
하긴, 이성이 강한 이보다는 그쪽이 광기를 발현하기 더 쉬울 터였다.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많은 광기를 축적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나한테는 문제 될 게 없지.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해 볼까?’
실험체 출신의 야만 전사 할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끄륵···.”
털썩—
“···끝났군요. 원래 오크들이 투쟁심이 강하긴 했어도 절대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는데.”
마지막 오크가 쓰러지고 전투가 전부 끝나자, 차폐의 장막을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 파비엘라가 짧은 한탄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싸움에는 도가 튼 놈들이라 상대하기 까다로운데, 이젠 어지간한 타격에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 솔직히 할리가 없었으면 난 진즉에 포기하고 내려갔을 거야.”
마법사와 궁사들을 지키기 위해 후방에서 싸우던 길잡이 마커스가 그 말을 받으며 서둘러 뒷정리를 시작했다.
지급받은 세척 마도구로 몸과 장비에 튄 혈흔을 지우고, 냄새를 묻기 위한 즙을 덧바른다.
당장은 마법사가 유지 중인 차폐의 장막 덕에 소음과 혈향이 새어나가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거둬지는 순간 다시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할 테니까.
“오호? 천하의 마커스가 겨우 이 정도 오크들에게 겁을 먹으셨나?”
“후우··· 미켈.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재사용할 수 있는 볼트를 회수해 혈흔을 닦아내던 미켈의 도발에, 마커스는 그녀를 타이르듯 조용히 말을 이었다.
“여긴 몬스터의 고향이라고도 불리는 북부 산맥이고, 우리는 이곳에 들어선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으며, 목적지는 며칠은 더 가야 할 정도로 깊은 곳이다.”
거기다 깊은 곳으로 갈수록 몬스터들의 밀도가 높아지고, 더 강한 놈들이 나온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기척을 죽이는 마도구에도 한계가 있으니, 앞으로 일이 더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그것엔 미켈도 할 말이 없는지 그저 입만 삐죽일 뿐이었다.
다들 베테랑이었던 만큼 뒷정리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웃차.”
할리는 일행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파둔 매장용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며 조립식 삽으로 어깨를 두들겼다.
원래는 피 냄새가 멀리까지 퍼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자리를 이탈하는 식으로 이동하려던 일행이었다.
일일이 몬스터의 시체를 매장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었으니.
하지만 할리가 그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고작 몇 분 만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는 것을 직접 보여주자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그 방법도 방금 그들을 쫓아온 오크들의 경우처럼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없었으면 훨씬 많은 몬스터와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검사 플로라가 구덩이에 던져 넣은 오크 사체를 마지막으로, 할리는 다시 엄청난 괴력으로 순식간에 그 위를 흙무더기로 덮어 버렸다.
“···언제 봐도 대단하다니까. 어떻게 저 짓을 매번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지치지도 않나?”
‘마침 좋은 타이밍이군.’
일행의 감탄 어린 시선을 받으며 한순간에 일을 해치운 할리는 다시 삽을 분해해서 챙기며, 넉살스럽게 일행에게 생각해뒀던 말을 꺼냈다.
“아, 그래서 말인데. 슬슬 기운이 딸려서 말이지! 내 몫의 마석은 먼저 받아도 될까?”
“음? 그거랑 마석이랑 무슨 상관인가?”
“하하핫—! 우리 부족 비전의 주술이지. 마석을 먹어서 거기에 담긴 에너지를 흡수하는 건데, 내 몸을 보면 알겠지만 어지간한 식사로는 감당이 안 돼서 말이야!”
“아아···.”
되는대로 주워섬긴 할리의 말에 일행이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연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 마석을 먹는다고? 야만인들이 그런··· 아야!”
퍽!
미켈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다가 옆에 있던 플로라에게 옆구리를 찔리고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플로라가 오히려 당당하게 그녀를 마주 보며 인상을 찡그리자, 미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하려던 말을 웅얼거렸다.
“···남부인들이 마석을 먹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야만인이라고 해도 난 별로 신경 안 쓰는데 말이지.’
하지만 그건 자신이 진짜 남부인이 아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 테니, 그들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할리의 비중이 파티에서 커질수록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받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기도 했고.
“그런 거라면 상관없지. 또 돌아가게 되면 어느 정도는 필요 경비 지출로 보상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
“오오— 역시 기사 나리는 통이 크구만!”
그렇게 모두의 동의를 받은 후, 시간이 흘러 심혈을 기울인 야영지가 설치되었을 때.
‘어라?’
그간 수습했던 마석을 바라보는 할리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당연히 몬스터의 마석에 광기가 잔뜩 깃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곳에 담긴 양이 뭔가 이상했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닌데···.
“···내 몫은 최근에 잡은 것들 위주로 줄 수 있을까?”
“음? 뭐, 상관없겠지. 그런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아! 당연히 싱싱한 게 맛도 좋고, 효과도 더 뛰어나서 말이지! 하하핫!”
처음 그가 느꼈던 오크 마석에 담겼던 것보다 전체적으로 광기의 양이 많이 줄어 있었다.
심지어 어떤 마석에는 거의 남지 않았을 정도로.
‘···숙주가 사망해 효용 가치가 사라지면 다시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건가.’
그리고 그것은 이후 다른 몬스터의 몸에 들어가 새로운 광기를 낳는 씨앗이 되겠지.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군.”
그렇게 분배가 모두 끝나자마자, 그는 망설일 것 없이 마석을 한 움큼 쥐고는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까드득, 까득—!
“어··· 저, 저···!”
모두의 황당한 시선을 무시하고 부지런히 「괴식」을 사용해 마석을 씹는 할리.
그에 줄어들었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하고···.
두근—!
그의 몸에 깃든 광기의 새싹이 비 맞은 잡초처럼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다.
***
영혼조차 얼려버릴 듯 오싹한 공간에 어린 음산한 귀기(鬼氣).
공동묘지도 아닌 평범한 야산임에도, 마치 마경으로 느껴질 정도의 분위기가 있는 그곳에서.
[···소녀, 왕께··· 충성을··· 바치겠나이다···.]여인의 흐느끼는 듯한 귀곡성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요동치며, 수천에 달하는 유령들이 일제히 엎드려 경배를 올렸다.
우우우—
팬텀, 레이스, 스펙터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집결한 그 반투명한 존재들은 하나같이 음산한 기운을 흘리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온을 영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건 또 장관이군.’
그 초현실적인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한스는 태연하게 주변을 감상하며 그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유령들을 대표해 가장 앞에 나선 이는, 곱게 틀어 올린 머리에 검은 베일이 달린 모자와 상복과도 같은 드레스를 갖춰 입은 밴시 퀸(Banshee Queen)으로···.
그녀 또한 불사의 군대 최고위 간부 출신이었다.
[수고했다, 올리비아.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모았구나.] [왕의 명대로··· 인간들과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아이들을 한데 집결시키는 데에 주력했나이다···.]유령체들은 그 특성상 실체가 없기에 은밀히 이동하는 데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마력이나 신성력 등의 기운에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싸움을 피하고 한 곳에 뭉치는 데에는 이만한 장점도 없었다.
한스는 그의 앞에 공손히 시립한 밴시 퀸 올리비아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검은 상복을 입은 창백한 피부의 그 귀부인은 아름다운 용모와는 대비되는 흉악한 능력으로 이름 높은 존재였다.
엔트라시오나 카람과 마찬가지로 역사서에도 나올 정도로.
‘대량 학살에 특화된 능력이지. 아무런 영적 방비가 갖춰지지 않은 일반인은 그 저주어린 비명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수 있으니까.’
그녀의 악명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도 실제로 그런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안일한 대처로 그녀의 내부 침입을 막아내지 못한 도시 하나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은, 역대 불사왕과의 전후 기록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그런 전투 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올리비아. 네가 해줄 일이 있다.] [왕이시여···. 무엇이든 하명하소서···.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나이다.]한스는 슬쩍 고개를 돌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침만 흘리고 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역천의 서약에 소속된 이들.
불사의 군대를 수습하는 게 먼저라 잠시 제쳐뒀을 뿐, 한스가 본격적으로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찾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어지간한 수준의 결계로는 그의 압도적인 흑마력과 「심연의 눈」이 연계한 추적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지금 여기 있는 놈들도 언데드들을 수습하는 와중에 눈에 띄어 겸사겸사 잡아 온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손이 많이 가는데다가, 아직도 여유가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가장 급한 대륙 서부 지역만 대충 정리했을 뿐, 아직 다른 지역의 언데드들은 온전히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륙이 혼란스러워지는 것과 비례해 ‘자신의 것’인 언데드들 역시 계속해서 소모될 터.
일반 개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최상위에 속하는 간부들은 그렇게 잃기엔 너무 아까운 전력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올리비아를 얻었단 말이지.’
유령은 물리적인 제약에 얽매이지 않으며, 특별한 방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개체를 통솔하는 올리비아는—.
대륙과의 전쟁에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책임지는, 불사왕 휘하의 정보 총책임자였다.
[여기 이놈들이 속한 곳.]한스는 흑마법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심연의 눈」을 통한 심문으로 살짝 맛이 가긴 했지만, 일부러 적당히 조절한지라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이놈들에 대해 캘 수 있는 만큼 전부 캐내도록 해라.]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최종 목표를 설정해 주소서···. 그것을 이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크흐흐흣— 당연히···.]한스가 음산하게 웃으며 두 팔을 펼쳤다.
주변의 공기가 요동치고 심연 같은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 퍼져나갔다.
[절대복종이다.]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명령대로 충실히 움직일 말이었다.
순순히 응하는 놈들은 잠시간의 유예를 얻을 수 있겠지만, 끝까지 따르지 않는 놈들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
놈들에게는 어떠한 선처도 필요 없었다.
[왕의 뜻대로···.]불사왕의 선언에 담긴 위압감에 밴시 퀸 올리비아가 다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여전히 멍한 채로 주저앉아 있는 흑마법사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수천의 유령들이— 은밀하게 세상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