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09)
#109
광룡 사냥 (1)
스아아—
막대한 흑마력이 사위를 뒤엎으며 도주를 막기 위한 결계를 형성했다.
이 정도까지 판을 벌여놓고 이제 와서 놈을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검은 기운이 사방을 감싸자, 이제 이 결계 내부에는 오직 그들 넷만이 존재했다.
뿌드드득—!
“크하핫! 일단, 어디 되는대로 해 볼까?”
온몸에서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야수와 같이 몸을 부풀리는 할리.
“흠, 역시 놈의 피를 곧바로 조종하는 건 힘들 것 같군. 미쳤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거겠지.”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피를 뽑아 날카롭게 벼리는 하인즈 2세.
[호오? 다른 생명력을 흡수한 흔적이 있구나. 그게 광기의 원인인가? 그래도 드래곤의 정신 방화벽이라면 그 정돈 무시할 수 있었을 텐데···, 동면이라도 하고 있었나 보군.]음산한 기운을 뿌리며 실험체를 보는 눈으로 차분하게 분석하는 한스.
마지막으로···.
[크르르르—— 부, 불사왕···! 불사왕——!!]한스의 등장 직후, 미동도 없이 가만히 얼어있던 드래곤 헤라토스.
하지만 정지 화면처럼 굳어있던 그가 어느 순간 서서히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눈에서 이글거리던 붉은 광기의 불꽃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터질 듯이 팽창했다.
휘오오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사방의 공기가 빨려 들어가며, 주변에 광풍이 몰아쳤다.
갑작스러운 기류의 변화에 슬쩍 주변을 둘러본 할리는 곧바로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공기는 그저 여파에 휩쓸린 것뿐이야. ···이동하는 건, 대기에 흩뿌려져 있던 광기로군.’
일대에 퍼진 미세한 광기의 입자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 중심에 있던 드래곤에게 흡수되었다.
[키야아아아——!]재차 광기에 찬 포효를 터트리는 헤라토스.
그리고 그 앞에서 대치하던 셋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는 놈의 모습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오! 좋아, 좋아. 알아서 농축까지 시켜 주다니 횡재했네. 저건 할리도 못 하는 건데.’
평생을 주변의 마나를 흡수해 성장하는 드래곤의 특성 탓인지, 놈은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달리 자의적으로 인근의 광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알아서 보상의 수준을 높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방해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불사왕!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폭풍이 서서히 잦아들고, 마침내 모든 기운을 수습한 광룡 헤라토스가 한스를 노려보며 분노를 토했다.
놈의 몸을 뒤덮고 있던 붉은 비늘은 한층 짙은 핏빛이 되었고, 지금도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육체는 한껏 벌크업되어 내재한 폭력성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었다.
‘광기는 숙주의 이성을 잠식해 강제로 수명과 생명력을 깎아 막대한 힘을 부여한다. 그 주체가 수천 년을 사는 드래곤이라면 효과는 말할 것도 없겠지.’
거기다 좀 전의 과정을 통해 놈의 드래곤 하트에 응축된 광기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 여파로 인근 대기에 녹아있던 농도가 현저하게 감소했을 정도니···.
‘금방 회복되지 않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넓은 범위까지 영향을 미쳤나본데.’
범위가 좁았다면 다른 곳에서 흘러온 광기들이 금세 빈자리를 채웠을 터.
그야말로 광룡(狂龍)이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캬아아아——!]눈이 뒤집힌 헤라토스가 미사일처럼 한스에게 쇄도했다.
놈의 주변을 감싼 압도적인 마력이 그 움직임을 보조해,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은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흐음, 굉장히 흥분했군. 전대 불사왕에게 원한이 있는 녀석인가?]물론 그런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그를 잡을 수 있을 리 없었지만.
어느새 공격 궤도에서 벗어나 옆으로 이동한 한스는, 그 육중한 질량 병기의 여파로 흔들리는 대기를 느끼며 생각을 정리했다.
놈을 잡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아무렴 자신은 드래곤을 수도 없이 사냥한 불사왕의 후예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래, 역시 적당히 하는 게 낫겠군.]한스가 전력으로 나서면 놈의 육체도 오염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언데드 드래곤 하나뿐이다.
그것도 나쁜 건 아니다만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이 버젓이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러려면 일단 놈의 발을 묶을 필요가 있겠는데.’
마침 지금 상황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엔트라시오.]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흑마력이 가득 담긴 한 마디.
그와 동시에, 거대한 그림자의 늪이 빠르게 지면을 뒤덮었다.
그리고.
푸확—!
바닥에 깔린 꿀렁이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용의 뼈가 몸을 일으켰다.
[크워어어——!]죽음의 기운이 가득 담긴 포효가 공간을 진동시키자.
[키야아아——!]광기에 물든 울음이 그 뒤를 이었다.
한 자리에서 엔트라시오와 헤라토스, 타락한 두 드래곤의 시선이 부딪쳤다.
한때는 동족이었으나 이제는 적이 되어 서로를 마주하게 된 두 존재.
이후의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크오오오——!] [캬아아아——!]콰앙—!
곧 거대 괴수 두 마리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아마 생전에 제법 나이가 있는 녀석이었던 듯, 골격 자체는 엔트라시오가 헤라토스보다 3할가량 더 큰 편이었다.
하지만 뼈만 남은 몸으로 오히려 광기로 강화된 육체를 지닌 헤라토스를 근접전만으로 상대하기엔 무리인 게 사실.
거기다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의 기운도 봉인한 상태였으니, 엔트라시오는 그저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애초에 그걸 원해서 부른 것이었지만.
‘과하게 힘을 쓰면 고기나 피가 전부 상할 거 아냐.’
우리 아이들 먹일 영양식인데 유기농은 못 줄지언정, 농약은 최소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스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드래곤 두 마리를 바라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수많은 마법진이 주변 공간을 수놓으며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은 순식간에 갖가지 신비를 엮어냈다.
‘일단 저주류는 빼고 가 볼까.’
중력 사슬, 공간 고정, 충격 흡수 등.
하나같이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종류의 마법들이었다.
커다란 덩치로 끈질기게 매달려오는 언데드 소환수와, 뭘 하려 할 때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흑마법사.
잠깐 방심할 때마다 인지에서 벗어나 날카로운 공격을 가하는 암살자와 미친놈처럼 달라붙는 야만 전사까지.
그렇게 다종족 파티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광룡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
콰드득!
광룡의 거대한 아가리가 본 드래곤의 목을 물어뜯었다.
생명력을 대가로 강화된 턱 근육과 날카로운 이빨은 드래곤 하트에서 공급되는 강대한 마력을 담고 있었고···.
콰지직— 콰직!
그 파괴력은 본 드래곤에게 각인된 방어 결계를 꿰뚫고 직접 목뼈에 도달하기에 충분했다.
[쿠오오——!]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엔트라시오의 목뼈.
끊임없이 공급되는 흑마력이 뼈를 강화하며 손상 부위를 실시간으로 수복하고 있었으나, 계속 내버려 두면 목이 완전히 부러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봐야 다시 붙이면 되니 상관없기는 하지만.’
그 불사성이야말로 언데드의 가장 큰 장점이었으니.
온갖 제약을 붙여 놓는 바람에 광룡에게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엔트라시오는 그리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까다롭네.’
그렇지 않아도 항마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드래곤인데, 저 광룡은 거기서 더 강화돼 한스의 흑마법으로도 오래 붙잡고 있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냥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그런데 그 방법을 쓸 수가 없으니···. 딜레마로군.’
역대 불사왕이 드래곤을 쉽게 사냥했던 것도 그들이 다뤘던 죽음의 기운 덕분이었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치명적인 그 맹독은 광룡에게도 충분히 유효할 테지만, 엔트라시오에게는 제약을 걸었으면서 정작 자신이 쓸 수는 없는 노릇.
[흐음,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볼까.]유유자적 싸움을 내려다보던 한스가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웅—
막대한 마력으로 한순간에 만들어진 수많은 마법진에서 재차 마법이 쏟아져 나왔다.
수십 개의 검은 섬광이 광룡의 몸 곳곳을 꿰뚫고,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그 몸을 감전시켰다.
거대한 폭발이 놈의 머리를 뒤흔들고, 단단한 만년빙이 관절 부위를 얼려 버렸다.
그렇게 광룡의 무지막지한 항마력조차 우습게 뚫고 들어오는 마법의 폭풍에 잠시 놈의 주의가 돌아간 순간.
촤악—!
어느새 유령처럼 나타난 하인즈가 길게 뽑아낸 피의 칼날로 놈의 턱 근육을 베어버리고.
“으하하핫!”
순식간에 몸을 기어오른 할리가 그 턱에 자신의 몸뚱이를 미사일처럼 꽂아 넣었다.
[크악——?]그 틈을 타 광룡의 입에서 목을 빼낸 엔트라시오가 이번엔 자신이 먼저 놈의 목에 이빨을 틀어박았다.
잔뜩 금이 가 있던 목뼈는 이미 수복된 상태.
하지만 그건 턱 근육이 베였던 광룡도 마찬가지였으며, 목을 물린 것 또한 놈에게는 치명상이 아니었다.
‘지적 능력이 퇴화해서인지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드래곤이란 종은 원래 의지만으로 마력을 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효율이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한껏 강화된 놈의 능력을 생각하면 그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퍼어엉—!
엔트라시오가 물고 늘어진 목 부근에서 고도로 응집된 마력이 터져 나왔다.
광룡은 그 여파로 자신의 몸이 상하든 말든 연신 충격파를 터트리며 몸을 비틀었다.
찌지직, 쫘아악—!
이빨에 걸린 살점이 사정없이 찢어발겨지며 사방으로 혈액이 비산했다.
덕분에 놈은 목을 물린 상황에선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일반적인 생명체였다면 곧바로 사망에 이르렀을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아하니 별 의미는 없는 것 같았지만.
‘대신 마력을 원초적으로 쓰는 쪽이 더 발달했군.’
안 그래도 광기로 강해진 신체 능력에 마력까지 퍼부어져 근력, 순발력, 재생력 등이 폭증한 건 기본.
갑옷처럼 몸에 둘러진 마력 방벽, 이빨과 발톱에 어린 공격력 강화, 한 곳에 응집시켜 폭탄처럼 터트리는 충격파까지.
거기다···.
[흐우우웁——]폭발적인 순발력으로 거리를 벌린 광룡이 한순간에 주변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와 동시에 막대한 마력이 놈의 목구멍으로 밀집했다.
‘브레스···! 빨라!’
순식간에 모여드는 그 파괴적인 마력의 유동은 예상했던 속도를 크게 웃돌았다.
거기다 그 위력은 두말할 것도 없을 지경.
뒤늦게나마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엔트라시오도 급하게 브레스를 준비했다.
양쪽에 급격하게 마력이 몰리기 시작하자, 주변 공기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콰아아앙!
붉은빛과 검은빛이 부딪쳐 만들어진 거대한 폭발이 사방을 휩쓸었고.
양측에서 쏘아진 용의 숨결이 중간에서 서로의 힘을 갉아 먹은 덕분에, 살짝 주변 지형이 바뀌는 수준에서 그칠 수 있었다.
‘···큰일 날 뻔했네.’
한스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다시 맞붙어 뒤엉키는 두 드래곤을 바라보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놈의 브레스가 완성되는 속도와 출력이 상정했던 것 이상이었으니까.
결국 한스가 엔트라시오에게 개입해, 힘을 강제로 끌어 올리고 나서야 온전히 상쇄할 수 있었다.
[그놈 참 팔팔하구나. 과할 정도로.]슬쩍 손을 내저어 광룡의 몸을 검은 사슬로 휘감으면서도 한스는 고민을 거듭했다.
정 방법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죽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의외로 그 해결책은 한스가 아닌 다른 파티원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
거칠게 요동치는 광룡의 몸뚱이 위를 아무런 기척 없이 거니는 한 인영이 있었다.
촤악—!
그가 휘두른 예리한 피의 손톱에 단단한 용의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벌어졌던 상처가 급속도로 수복되며 그 자리에 다시 비늘이 자라났다.
“퉤! 역시, 용혈 자체는 좋은데 거기 담긴 광기가 방해되는군.”
하인즈는 입에 넣었던 용의 피를 다시 뱉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피에 깃든 원주인의 염(念)이 이미 광기에 완전히 짓눌린 상태라 흡혈 의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놈의 비늘이 워낙 단단한 탓에 전력을 다해야 상처를 입힐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피를 봐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었으니 영 수지가 맞지 않았다.
그야말로 뱀파이어와의 상성이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정반대로 이것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이도 있었으니···.
콰지직! 콰득!
“크하핫!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구나! 무한으로 재생하는 고기라니!”
광룡의 가슴팍에 기어올라 비늘을 뜯어내고 그 살점을 물어뜯고 있는 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