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16)
#116
전조 (1)
“아니, 자세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니까! 대체 지도만 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그동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니 내가 아주 만만하게 보였나 본데, 이거 언제 한번 확실히···.”
똑똑—
연신 불평을 토하던 금발의 남자, 앤드류 위버가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흠흠, 들어와.”
그의 허락과 함께 조용히 열리는 문.
발소리 하나 없이 안으로 들어온 메이드 한 명이 테이블 위에 차와 다과를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마친 그녀가 문밖으로 나서기 전, 앤드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시아나 아가씨가 지금 저택에 계시나?”
“아뇨. 아직 아가씨께선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음, 그렇군. 아무것도 아니다. 이만 물러가도록.”
“네.”
공손히 인사를 마치고 물러가는 메이드를 일별한 그는 다과를 입에 넣고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짜증이 한 차례 식고 나자, 이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한숨만 새어 나왔다.
‘쯧, 그래도 일단 해 봐야겠지.’
윗사람이 까라면 까야지 뭘 어쩌겠는가.
그에게 내려온 주문은 「궤적 관측」으로 얼마 전 서북부 산맥에서 일어난 강대한 마력의 충돌에 관해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내 능력은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그런 편리한 게 아니라고!’
인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자세한 정보도 없는 지역이라, 그에게 주어진 건 지도에 찍힌 위치 달랑 하나.
참고할 자료로 자연 식생이나 기후, 몬스터 서식지 등의 내용이 있긴 했으나, 그런 포괄적인 정보는 위치를 특정하는 데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상이나 장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차선은 서면으로라도 최대한 상세한 정보를 숙지하는 것이었는데···.
‘사진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현장 스케치라도 주고 일을 시키던가.’
거기다 일을 벌인 상대가 불사왕으로 추정된다면, 격의 차이로 그를 볼 수 없는 자신은 별 쓸모가 없었다.
‘물론 그것까지 감안하고 내게 일을 시킨 거겠지만.’
일단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능력 덕분에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니까.
앤드류는 안락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으며 자신의 고유스킬, 「궤적 관측」을 발동했다.
곧바로 사건 현장을 확인할 수는 없었던지라, 일단 자료가 많은 초입부를 훑고 서서히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와중.
‘어라? 이 난리 통에 산맥 안으로 들어가는 놈들이 있네?’
비슷한 시기에 의뢰를 받고 북쪽으로 향하는 할리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것도 잠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그것도 곧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 정보 없는 관측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수준이 더 높아진다면 모를까,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이후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마력 충돌의 현장 지역을 파악하는 것은 실패하고 말았다.
‘에이, 괜히 헛고생만 했네. 괜히 나한테 지랄하는 거 아니겠··· 응?’
그렇게 앤드류가 「궤적 관측」을 종료하려던 찰나.
그의 시야에 산맥 안으로 들어섰던 이들이 귀환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것까진 이상할 게 없었으나···.
‘뭐야? 뭔데 이렇게 흐릿해?’
갈 때와는 달리,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은 명확히 관측되지 않았다.
아예 볼 수 없는 불사왕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건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던 진혈의 뱀파이어보다 더한 수준.
일행 중 누구에게 시선을 집중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노이즈가 생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뭔가 변화가 생겼군.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그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앤드류는 그들이 영주의 의뢰를 받아, 산맥에 고립된 드워프를 구하는 의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드워프에게 뭔가가 있나? 아니면 그건 위장 의뢰고 숨겨진 다른 속셈이 있었다거나?’
어쨌든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당초의 목표였던 정보를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뭔가 미심쩍은 정황을 발견한 그는 희희낙락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뭔가 소득을 얻기는 했으니, 이제 위에도 할 말은 생겼다.
“좋았어! 이 정도면 오늘은 할 만큼 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계속하면 되겠지.”
이제 거리낄 게 없어진 그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저택을 나서 준비된 마차를 타고 유흥가로 향했다.
저택에서 노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집안에서만 생활한단 말인가?
‘일만 제대로 하면 딱히 터치하지도 않으니, 이만큼 좋은 직장이 또 없단 말이지.’
거기다 풍족한 자금 지원도 있으니, 근무 만족도는 최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건과 같이 무리한 일을 시키지만 않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앤드류 위버가 편한 마음으로 마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을 때.
스으으—
아무런 기척 없이,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형체 없는 무언가는 어떠한 집념도, 욕망도 없이 흐릿한 자아만 지닌 채로.
그저 가만히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
“···빠르군.”
헤테로시스의 사무실에 온 하인즈는 마우스의 휠을 내리며 혀를 내둘렀다.
일단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나온 일차분이긴 했지만,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준비했다고 하기엔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간만에 내려온 로드의 특명이었으니까요. 혈맹까지 닦달해서 저희 클랜의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감탄에 진소란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 일을 위해 취미로 계속하던 개인 방송까지 쉬면서 달려든 만큼, 그의 놀란 모습이 만족스럽기만 했다.
하인즈는 가볍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금속의 특성부터 시작한 이론 부분과 망치를 쥐는 법부터 시작하는 실전 부분까지.
사진과 동영상까지 첨부된 그 자료는 제대로 숙지만 한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대장장이 입문서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기초인데다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지만,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인이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스승 없이 이론만으로 독학해야 한다면 오죽하랴.
이 부분을 온전히 체득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테지만···.
드워프 하워드는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하인즈가 읽었을 때는 그저 정보의 나열일 뿐이었던 내용들이, 하워드의 뇌리를 통해 순식간에 분석되었다.
여러 금속의 성질, 불의 온도를 조절하는 법, 첨가하는 재료의 특성과 각 과정의 원리 등···.
이론이 본능에 새겨지고, 동영상 속의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빨리 직접 실험해보고 싶은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하워드의 손이 근질거렸다.
아무리 그가 대단해도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지라, 이해한 내용을 직접 시행해 몸에 맞춰 온전히 체득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은 전송진을 이미 사용했으니까, 쿨타임이 끝날 때까지 휴버트가 공방을 준비해 두면 되겠네.’
타라크에 제법 커다란 상회를 이끌게 된 휴버트에게 하워드 전용 공방을 준비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인즈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아, 그러고 보니 로드께 보고드릴 일이 하나 더 있었어요!”
그의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던 진소란이 뭔가를 떠올리고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꿨다.
“이전에 말씀하셨던 조직, 번천회를 계속해서 추적 중이었는데···. 몇몇 세력에서 놈들과 접촉한 정황을 파악했습니다.”
이세계와의 시차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지만, 놈들이 한국 활동을 중지한 지 고작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슬슬 간을 보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당장은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는지 가벼운 접촉 수준이라, 일단 상황을 주시하며 동태를 살피는 중입니다.”
“흠··· 그래, 잘했다. 앞으로도 직접 나서진 말고, 일단 계속 상황을 파악하는 데만 신경 쓰도록.”
“네, 알겠습니다!”
번천회.
당연히 놈들을 잊고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세력을 꾸리고 힘을 기르는 게 전부 놈들을 말살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사실 어지간한 놈들이면 한스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긴 한데.’
번천회의 세력은 이미 개인의 무력으로 어떻게 할 수준을 넘어선 데다, 워낙 철저하게 숨어있어 찾는 것도 까다로웠다.
또 한스는 그 기운의 특성상 함부로 나섰다가 엉뚱한 상대를 적으로 만들 우려도 있었으니···.
‘괜히 급하게 나설 필요는 없겠지. 확실하게 하자, 확실하게. 놈들에 대해 좀 더 파악한 후, 철저하게 숨통을 끊는다.’
시간의 우위는 이쪽에 있었다.
자신이 힘을 기르고 있던 약 10개월 동안···.
지구는 이제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이었으니까.
***
“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탈리아 왕국의 수도, 탈라리아.
왕국의 제일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트 공작가의 정문에서는 한창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검은 머리의 여인이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려다 경비병에게 제지당한 것이 원인이었다.
“뮬로를 찾아왔단다.”
“여기는 브라이트 공작님의 저택입니다.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니신지···?”
저택의 정문을 지키던 경비병이 쩔쩔매며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평소였다면 거친 말과 함께 가차 없이 쫓아냈겠지만, 그녀에게 감도는 왠지 모를 분위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된 것이다.
“···그, 혹시 약속은 하셨습니까?”
“음··· 아니? 그냥 왔는데.”
경비병이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고자 땀을 뻘뻘 흘리며 대응했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인은 그저 맹하니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거 곤란하네—. 괜히 소란을 피우면 미안하고.”
뜻을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면서.
“···일단 안쪽에 말씀은 전해보겠습니다. 누구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나? ‘브리키’라고 하면 알 거란다.”
결국 그는 안쪽에 판단을 떠넘기기로 했다.
만약 정말 별거 아닌 사람이었다면 집사에게 한 소리 듣고 그의 평가도 깎이겠지만, 대단한 사람인데 홀대했다면 물리적으로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그리고 그건 매우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녀의 말이 안쪽에 전해지자, 집사 한 명이 직접 문 앞으로 나와 상대를 확인한 것이다.
“흐음, 이 아이도 마찬가지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저택에서 나온 창백한 안색의 집사를 마주하자마자 그녀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일단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공손히 그녀를 안쪽으로 안내하는 집사.
물론 그렇게 그들이 향한 곳은 일반적인 손님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온갖 결계와 보안 장치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 복도를 걸으며 ‘브리키’는 자신을 안내하는 이, 순혈의 뱀파이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이미 몇 번이고 마주했던 변질된 피가 그에게서도 느껴졌다.
‘특이하단 말이야. 근본이 바뀐 건 아닌데,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너무 많아.’
이미 도중에 잔혈 하나를 잡아다 피 냄새도 맡아 보고, 살짝 맛을 보기도 하며 여러 가지로 확인해 봤지만···.
도무지 그 변화의 연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 당사자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하는 것 같았고.’
자신조차 파악할 수 없는 요소로 인한, 여러 가지 방향으로 원본보다 훨씬 진보한 ‘진화’.
그래서 그녀가 친히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로드라면 이 원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똑똑—
“뮬로 님, 모셔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저택의 심처에서 마침내 그들은 서로 마주할 수 있었다.
클랜의 전(前) 로드, 뮬로 브로코슬락과.
“오랜만이구나, 뮬로.”
“어서 오십시오, 브로코슬락 님.”
클랜의 시조, 성혈(聖血) ‘브로코슬락’이.
그녀가 드디어 이곳에 직접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