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20)
#120
소리 없는 전쟁 (2)
“크헉···!”
흐릿해져 가던 의식이 급격히 깨어났다.
으깨졌던 폐가 재생하며 숨통이 터져 나오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혈액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치명적인 부상이 「초회복」으로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몸에 힘이 돌아왔다.
‘···정말 죽다 살았네···!’
한스가 ‘불사왕’ 업적을 달성하며 얻었던 특전, 「즉사 면역」이 없었으면 진짜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워낙 심각한 상태였던지라 완전히 회복되기까진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완전히 곤죽이 되었던 장기가 시간을 되감듯 형체를 갖춘 건 좋지만, 그 상태가 그리 멀쩡하진 않았던 것이다.
“상회주님! 여기 포션입니다!”
“바로 신전으로 모시겠습니다! 조금만 버티십쇼!”
그를 둘러싸고 정신없이 입 안에 비상용 포션을 쑤셔 넣는 용병들을 보며, 휴버트는 사고를 가속하며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흉수는 뱀파이어, 하지만 내가 처음 보는 이였다.’
거기다 모두의 이목을 숨기고 그에게 암습을 가할 정도로 그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용병들의 호위는 물론이고, 브로코슬락의 감시망도 무시하고 들어왔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휴버트의 감지력이 그리 좋지 않아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순 없었지만, 이게 가능하려면 최소로 잡아도 순혈이어야 하겠지.’
그중에서도 최상위권인 데다, 암살에 특화된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급 인력이 고작 평범한 상인 나부랭이인 휴버트를 노렸다고?’
팽팽 돌아가는 뇌리에서 이 일을 사주했을 만한 후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최근 사세를 확장하며 마찰을 빚은 경쟁 상단부터, 호시탐탐 상회를 노리던 귀족, 그에게 짓눌려 이만 갈던 뒷골목의 조직들까지.
···너무 많아서 딱히 누구를 특정할 수 없었다.
최대한 떳떳하게 사업을 키웠다 자부하고 있지만, 이득이 걸린 일의 특성상 적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뱀파이어지? 그냥 우연인가? ···젠장,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일단 정체를 알 수 없는 뱀파이어란 점부터 파고들어야 할 것 같은데.’
설마 브로코슬락 측에서 뒤통수를 쳤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제혈정」으로 하인즈 2세에게 종속된 그들이, 휴버트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란 명령을 어길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하인즈를 통해서 클랜을 움직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데, 하필 이때 자리를 비워서···. 거기다 이미 하워드를 보내면서 전송진도 쿨타임에 들어간 상태고.’
아쉽게도 일을 쉽게 해결하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
“쿨럭! 잠깐···.”
휴버트는 자신에게 포션을 먹이고 급히 신전으로 이송하려는 호위들을 제지하고, 일방적으로 용건을 전달했다.
당분간은 안전한 곳에 숨어 몸을 회복시키고 돌아오겠노라고.
‘놈이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끝장내려 들 거야.’
당장은 그를 처리했다 확신하고 자리를 떠났지만, 언제 그자가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이젠 「즉사 면역」을 기대할 수도 없는 만큼 최대한 빨리 이곳을 피하는 게 상책.
“···하워드랑은 개인적으로 연락할 방도가 있으니까, 그동안은 그를 통해···. 후우, 업무 사항을 전달하겠다. 상회에도 그렇게 전파하도록···.”
“예, 예? 아니, 어떻게 몸을 숨기시겠다는···.”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대충 상황 전달을 마쳤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휴버트는 곧바로 ‘소환 해제’로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물론 그 용병들을 믿을 수 있겠냐는 문제가 있기는 했으나, 당장 그런 부분까지 걱정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부 전사 삼인방에게 추천받은 인재들이니까,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을 거야. 물론 사람 속은 모르는 거지만···.’
그때는 할리와 브로코슬락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면 될 일이었다.
“하아, 그나저나 이게 갑자기 웬 날벼락이야.”
우우웅—
방안을 밝히는 환한 빛무리가 바닥에 드러누운 이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나는 지금 「개체 투영」으로 하인리히가 되어, 지구에 다시 소환한 휴버트에게 신성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즉사 면역」 덕분에 목숨을 건지긴 했는데···.’
그것도 간신히 숨만 붙여둘 정도해 불과했던지라 금방 나아지긴 힘들어 보였다.
아무리 하인리히가 성자로 인정받았다지만, 그 능력은 오직 전투 쪽에 치중되어 있을 뿐.
그에겐 치유와 회복에 관련된 축복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신성력을 무식하게 때려 박으니 「아우테리카 성법」만으로도 제법 효과가 있긴 하군.’
거기다 공통 스킬인 「초회복」도 있는 만큼, 며칠 푹 정양하면 운신이 가능할 정도로는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일이 귀찮게 됐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상회가 관련된 건지, 뱀파이어가 관련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할리가 관련된 건지 정보가 없어 판단할 수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정보 조직을 키우려 했던 것인데, 하인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후우— 뭐, 이미 일이 일어난 건 어쩔 수 없고. 중요한 건 이후 대처지.”
다행히도 이쪽엔 또 다른 정보 조직이 있었다.
이런 일에 사용하기엔 조금 성격이 맞지 않긴 하지만···.
‘에이, 애초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성향이 살짝 다르긴 한데, 대략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만 해줘도 충분하니까.’
인간 사이의 암투나 정치적 수작을 파악하는 데는 살짝 취약하긴 하나, 어떤 면에선 그 이상으로 뛰어난 면모가 있는 정보원들이었다.
‘바로 착수할 수 있도록 명령해 두자.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렇게 불사왕 한스 휘하, 불사의 군단 정보부장 올리비아와 수많은 유령이.
일개 상인 암살 사건의 배후를 캐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비릿한 피비린내가 나는 공간 속.
백발 백안의 뱀파이어, 비스크 유페르쉬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소집에 따라 전투원들이 모이고 있고, 탈리아 왕국까지의 경로에 다수의 혈문(血門)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의 물음에 어둠 속의 그림자가 조용히 응답했다.
혈문은 유페르쉬 클랜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간이 공간이동 게이트로, 그들이 전 대륙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고유 혈마법이었다.
그 이동 거리가 멀지 않고 설치하는 데 다량의 혈액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사용할 때의 편의성에 비하면 그 정도 제약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탈라리아로 직행하면 간파될 우려가 있어, 우선 며칠 거리의 라펠라 시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물론, 저희라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수도에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좋군.”
비스크가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툴크 왕국의 타라크에서도 일을 마쳤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음? 거기에 뭐가 있었나?”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탈리아 왕국의 브로코슬락을 도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고 했건만, 왜 갑자기 그쪽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브로코슬락이 그쪽으로 발을 뻗을 생각인지, 타라크의 상단 하나와 연계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놈들의 주의를 밖으로 돌리고자, 그 상단의 책임자를 암살하겠다는 보고를 드린 바 있습니다만···.”
“아아— 그랬지. 별것도 아닌 거라서 잊고 있었군.”
비스크가 그제야 수긍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에게 인간 하나의 생사는 딱히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사소한 문제였던 만큼, 그 태도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마침 근방에 있던 클라인이 그 상단주와 함께 브로코슬락의 뱀파이어 몇을 함께 처리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직접 나선 만큼, 흔적이 남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클라인, 기억나는군. 확실히 순혈치고는 제법 쓸 만한 녀석이었지. 조용하고 확실히 처리하는 데는 그 아이만 한 인재가 없다지?”
“그렇습니다. 현 순혈 중 진혈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재입니다.”
“그래, 그럼 뭐 알아서 잘했겠지. 사실 그쪽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으니까.”
이미 클랜의 무력만으로도 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비스크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었다.
사실 이번 일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는 아랫것들을 보고 별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혼자서도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 자신하고 있었다.
그저 최종 목표가 상대를 없애는 게 끝이 아니기에 계획대로 기다리고 있을 뿐.
“그래서, 준비는 언제 끝날 것 같나?”
“최대한 은밀히 작업을 마치기 위해, 앞으로 일주일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
“길어. 더 줄여.”
“···소집은 좀 더 독촉해 충분히 기간을 줄일 수 있지만, 혈문을 설치하는 작업은 자칫 서둘렀다간 발각될 우려가···.”
“일주일이면— 이틀 정도는 줄일 수 있겠지. 5일 내로 끝내.”
“···예, 로드. 명을 따르겠습니다.”
부하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비스크가 단호하게 잘라 말하자, 그림자는 더 이상 항변하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성혈의 명이 떨어진 이상, 그저 그대로 행할 뿐이었다.
“놈과 마주할 때가 기대되는군. 대체 어떻게 했기에 클랜의 지배권이 넘어갈 수 있었을까? 같은 혈통이긴 할 텐데···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군.”
이제 며칠 후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비스크 유페르쉬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그래~ 어휴, 어린 아가씨가 똑 부러지기도 하지. 우리 아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네. 오호호~”
웃으며 식료품점을 떠나는 아주머니를 배웅하며, 디아나가 숙였던 허리를 펴며 기지개를 켰다.
날도 저물어 이제 슬슬 장사를 마감해야 할 때였다.
“오늘도 수고했다, 디아나. 굳이 돕지 않아도 되는데, 공부하느라 바쁘지 않니?”
“아니에요, 작은아버지. 이렇게 직접 일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걸요. 선생님도 책으로만 배우는 건 죽은 지식이라고 말씀하셨고요!”
하인즈와 인연을 맺고 아잔투에서 라펠라까지 함께 왔던 소녀, 디아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교습소에서 글자와 셈법을 완전히 마스터하고, 그곳에서 연을 맺은 강사에게 개인적으로 회계와 상법(商法)을 배우는 중이었다.
물론 교육비용이 제법 많이 들기는 했지만, 하인즈가 따로 챙겨준 돈이 워낙 두둑했던지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전부 아저씨 덕분이니까, 뭐라도 아저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지만 하인즈에게 디아나가 도움이 될 만한 분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신체 조건도 열악하고 별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 기껏해야 머리를 쓰는 일이 전부였는데, 다행히 그녀는 그쪽에 훌륭한 재능이 있었다.
교육을 맡은 강사도 그녀의 뛰어난 오성에 몇 번이나 진심 어린 감탄을 내뱉었을 정도였으니까.
‘돈을 관리하는 사람 중 유능한 이는 많지만, 유능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은 법!’
그녀는 하인즈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어떤 분야든 재무 담당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그에게 꼭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겠지.
그렇게 디아나가 씩씩한 포부를 되새기며 매장을 정리하던 순간이었다.
킁킁—
어디에선가, 그녀의 코를 찌르는 냄새가 흘러들었다.
‘또···.’
오늘만 벌써 몇 번째 맡아보는 피 냄새.
전에도 제법 자주 느끼긴 했지만, 요즈음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
‘거기다, 요즘 맡아지는 냄새는 뭔가 다른 것 같아.’
그간 익숙해진 흡혈귀가 아닌, 생소한 흡혈귀 냄새가 점점 늘고 있었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디아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서둘러 정리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동생 아론과 라피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소리 없는 전쟁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