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21)
#121
소리 없는 전쟁 (3)
현 불사왕 휘하의 간부진 중 가장 바쁜 이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누구나가 첫손에 꼽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밴시 퀸 올리비아가 그 주인공이었다.
한스의 첫 명령이었던 역천의 서약을 파헤치는 임무는, 놈들의 세력이 넓게 분포되어있던 만큼 꾸준히 계속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미 파악한 놈들을 흡수하는 작업도 그녀가 없으면 안 되는 건 마찬가지.
그런 상황이었는데, 이번에 한스로부터 또 새로운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타라크의 한 상인에게 뱀파이어의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그 자세한 내막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하아··· 소녀, 이러다 과로사하겠사옵니다···.]주변에 유령들을 휘감은 채 동굴의 어둠 속에서 부유하던 올리비아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언데드만 할 수 있는 회심의 농담이었으나, 아쉽게도 그녀의 말을 받아줄 수 있는 이는 이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피부도 거칠어진 것 같단 말이지요···. 피부의 적인 햇빛도 최대한 피하고 있사온데···.]반투명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마찬가지로 반투명하고 매끈한 뺨을 쓸어내렸다.
주변의 싸늘한 반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재차 시도한 유머였지만, ···물론 아무도 반응해 주지 않았다.
[후우··· 이 멍청한 것들에게 센스를 기대한 제가 바보지요···.]불사왕 앞에서야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 홀로 외롭게 지내온 만큼 혼잣말과 말장난은 이미 습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통하는 이가 없어서야 부질없는 일일 뿐이었으니···.
결국 올리비아는 포기하고 눈을 감은 채 유령들이 가져온 정보의 분석에 들어갔다.
욕망과 집착을 비롯한 사념이 거세된 유령들은 존재감이 극도로 줄어드는 대신 그 자아 또한 흐릿해지기에, 원하는 대로 다루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정리되지 않은, 그저 무분별하게 수집된 정보의 나열에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해 조합하는 건 평범한 이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이상하군요···. 타라크의 상인, 휴버트 암살 미수 사건···. 이상한 점투성이옵니다···.]우선, 그 피해 당사자인 휴버트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피해자부터 타고 올라가는 게 상식인지라, 그의 위치부터 파악할 셈이었는데.
‘···상당히 신경 쓴 결계에 숨었나 보군요. 그래도 이 제가 그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건 자존심 상하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원래의 목표는 그가 아니었던 만큼, 결국 그녀는 휴버트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용의자들부터 샅샅이 훑었다.
이후, 다른 일들과 병행하면서도 고작 이틀.
타라크를 중심으로 한 경쟁 상단의 인물들부터 휴버트 상회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귀족, 이권이 얽힌 어둠 속의 조직들까지.
잠도 자지 않고 이어진 강행군 끝에 그녀는 마침내 그들 전부를 탈탈 털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나같이 결백했지만 말이지요···. 심지어 그가 변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던 이들이 부지기수였으니···.]결국 최종적으로 나온 결론은, 휴버트나 그의 상회와 관련된 직접적인 원한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며칠의 고생이 헛수고가 된 상황에···.
[으흐흐흑— 귀신이 곡할 노릇이옵나이다···.]고오오오—!
올리비아의 흐느끼기 시작하자, 대기가 진동하고 주변으로 죽음의 파동이 퍼져나갔다.
영적 방비가 되지 않은 이들은 그저 듣는 것만으로 즉사에 이를 수 있는 끔찍한 힘.
[끄이이익—!] [으흐으으—]동굴을 가득 메운 유령들이 그 기운에 몸부림치고 발광하며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태를 야기한 올리비아는 주변 상황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차분히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
휴버트가 직접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면, 그 원인은 외부에 있을 터.
그녀의 다음 타깃은 흉수인 뱀파이어에 대해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자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어찌나 철저히 몸을 숨겼는지, 유령들의 뒤늦은 조사만으로는 도저히 놈의 종적을 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사왕께서 맡겨 주신 임무를 이대로 실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녀는 아예 일대의 모든 뱀파이어를 조사할 작정으로 유령들을 풀어 정보를 끌어모았다.
그리고 역천의 서약과 관련된 일도 잠시 뒤로 미뤄둔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뤄진 며칠간의 강박적인 전수 조사 끝에—.
[우후훗··· 아무래도, 이 아이들인 것 같사옵니다만···?]그녀는 마침내, 탈리아 왕국 라펠라 시에 집결하는 뱀파이어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곳을 지배하는 브로코슬락 클랜과는 전혀 다른 뱀파이어 무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중이었다.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 것 같사온데···. 일단 불사왕께 보고를 먼저 드려야겠···.]-올리비아 님? 저 드웰입니다만. 언제까지 기다려야겠습니까?
그때, 함께 역천의 서약을 털던 드웰 맥케인으로부터 통신이 전해졌다.
뱀파이어들의 뒤를 파기 위해 잠시 기다리라 했더니, 어떻게 딱 일이 끝난 타이밍에 맞춰 연락해 온 것이다.
[···하아. 정말, 이러다 과로사하겠사옵니다···.]그렇게 밴시 퀸 올리비아는 오늘도 평소와 같은 바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
‘다른 뱀파이어 클랜의 침입?’
올리비아에게 일을 맡긴 지 며칠,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철저하게 조사해서 휴버트 암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왔다.
휴버트 상회에서의 마찰이 원인이 아니라, 협력 관계였던 브로코슬락과 관련한 문제라는 것을 파악한 것은 물론이고···.
그 작전을 실행한 것으로 파악되는 클랜이 지금 탈리아 왕국의 라펠라 시로 집결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것이다.
‘탈라리아를 치기 전, 시선을 외부로 돌릴 셈이었나? 추가로 조사 인원까지 빠져나갔으면 금상첨화였겠군.’
자기들만의 영역에 틀어박힌 채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브로코슬락이 간만에 시도한 세력 확장이었다.
당연히 외부에서 보기엔 여러모로 공을 들이고 신경 쓴 계획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수고를 많이 들인 계획이 갑자기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원인을 파악하고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일 터였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본거지를 친다···. 대충 그런 생각인가.’
추가로 놈들이 상당히 서두르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는 올리비아의 첨언이 있었다.
결계 등의 준비 상태를 보면 철저하게 은밀성을 유지하려 했던 것 같은데, 정작 그 준비를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급히 움직이다 그녀에게 덜미를 잡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이제 곧 습격이 머지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브로코슬락 쪽에서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문제로군. 하필 마물의 숲 건과 외부 세력 확장 건이 맞물려 보안이 허술해진 틈에···.’
안 그래도 수가 적은 뱀파이어들이 이리저리 인원이 빠지면서 내부 감시망에 구멍이 뚫린 상황.
거기다 아직 전송진의 쿨타임이 이틀가량 남은 상태라, 하인즈 2세가 곧바로 탈라리아로 향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한스가 개입하기는 좀···. 제대로 힘을 쓰면 위치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일이 너무 커져. 단순히 뱀파이어들 간의 분쟁이 아니게 된다.’
아직 불사왕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는 시기상조였다.
불사의 군대가 좀 더 악의 세력을 끌어모으고, 대륙 측에선 정상 회의를 끝마쳐 의견을 합치했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거늘.
‘이번에 침입해 온 놈들, 유페르쉬 클랜으로 추정된다고 했지?’
하긴, 이런 일을 벌일만한 능력이 되는 이들은 그들밖에 없긴 했다.
뱀파이어 클랜의 3강 중 하나인 ‘브로코슬락’이 서부의 작은 왕국 하나를 손에 넣었다면, 동부 지역의 공화국에는 ‘오바이포’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3강 중 하나이자 그들 중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클랜이 바로, 중앙의 아제리온 제국에 근거지를 두고 대륙적으로 활동하는 ‘유페르쉬’였다.
또 그들의 수장은— 아우테리카 뱀파이어들의 정점인 ‘성혈’이기도 했으니.
‘이런 식으로 성혈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성혈은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현재 이쪽에서 파악한 성혈은 두 명.
오랜 동면에 들어 언제 깨어날지 기약이 없는 브로코슬락을 제외하면, 사실상 그가 뱀파이어 중 최강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만한 일이니 그 비스크 유페르쉬도 직접 나설 테지. 이거 골치 아픈데.’
유페르쉬와 브로코슬락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과거 탈리아 왕국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전 대륙적으로 활동하던 그들과 약간의 분쟁이 있었다던가.
왕국 내에 있던 유페르쉬의 뱀파이어들을 몰아내고 영역을 확고히 하면서 마찰이 생겼지만, 이후 브로코슬락이 대륙 구석에 처박혀 저들끼리 뭉치자 부딪칠 일도 없어졌다고 했건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대대적으로 쳐들어왔단 말이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이쪽의 세력 확장이 거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지금은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했다.
‘쯧, 어쩔 수 없군. 감히 휴버트를 건드리고, 기껏 손에 넣은 브로코슬락까지 망치려고 드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이쪽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몬스터를 학살하기 위해 북부 강철의 성채에 머무르던 할리가 몸을 움직이고.
그 인근을 훑으며 캐스팅을 이어가던 한스도 은밀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까, 일단 보험은 있어야겠지.’
만약 불사왕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외부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겠지만, 변명거리야 어떻게든 만들 수 있었다.
뱀파이어의 시체가 필요하다든가, 그들을 휘하로 들이고자 한다든가 하면서 입을 좀 털어주면 될 터.
그래도 어지간하면 그가 직접 나설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간을 넘어 탈라리아로 도착한 한스는, 뜻밖의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그리 나쁘진 않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존재가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으니까.
***
“그래, 나도 상황은 다 알고 왔으니까. 괜히 헛짓거리하다 걸리면 알지?”
“예, 예··· 물론입니다, 할리 님!”
“믿는다? 나 화나면 무서운 사람이야? 카하하핫—!”
“···그럼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리의 말에 연신 굽실거리며 대답하는 이의 표정이 어색하게 경직되었다.
‘화내지 않아도 무섭다’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아마 착각일 것이다.
“내가 지금은 바쁜 일이 좀 있으니까, 당분간은 하워드 말 잘 듣고. 괜히 자기 목숨 몇 개인지 확인하려는 놈들이 나오지 않게 밑에 직원들 관리 잘하라고! 나중에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
“예! 하워드 님을 상회주님의 분신으로 여기고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타라크와 강철의 성채는 겨우 하루거리에 있는 만큼, 이미 할리의 활약은 이곳까지 전해진 상황이었다.
당연히 휴버트와 공동 대표나 다름없는 그에 대한 소식을 상회 인물들이 모를 리가 없었으니.
그 압도적인 능력은 물론, 교단의 비호와 아오니아 백작의 러브콜까지 받는 그의 뜻을 거스르는 짓은··· 정말 어지간한 용기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터였다.
‘이쪽은 어느 정도 일단락됐고, 그럼 다음은···.’
그렇게 휴버트 상회를 재차 단속한 할리는 곧바로 타라크의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쁘게 움직여야겠군. 며칠의 유예를 얻기는 했지만,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성채로 돌아가야 하니.’
물론 아오니아 백작을 비롯한 성채 측에서 그를 붙잡긴 했다.
그간 할리가 보인 활약상이 워낙 컸던지라, 그의 공백에 대한 걱정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간 쉬지 않고 방어에 나섰는데, 이 정도 시간 정도야 뭐.’
덕분에 이번 일의 수습과 휴식까지 겸해 잠깐 시간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아오니아 백작은 휴버트 피습에 관련한 일로 할리가 자리를 비운다고 하자, 직접 타라크 치안대에 명령해 특별히 신경 쓰도록 하겠다는 제안까지 할 정도.
휴버트의 부재에 괜한 수작을 부릴 놈들이 있을 수 있으니, 일단 그 제안은 고맙게 받기로 했다.
“엇? 할리 님 아니십니까? 강철의 성채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어쩐 일로?”
“으하하—! 그게 말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타라크의 신전에 도착한 할리는.
그곳의 게이트를 통해 탈리아 왕국의 탈라리아 신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들 간의 분쟁이 예고된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