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24)
#124
유페르쉬 클랜 (3)
하인즈의 명으로 휴버트 상회와 연계하는 일도 전부 그의 손을 거쳐 간 만큼, 뮬로는 갑자기 난입한 할리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이번에 처음 안 사실도 있었는데···.
‘저 팔, 용의 비늘인 것 같은데. 설마 용인(龍人)이었나? 그래서 내 결계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뚫고 들어올 수 있었나 보군.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다 상황을 보니 정확히 유페르쉬 클랜을 노리고 찾아온 모양이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갑작스러운 강자의 지원은 반겨야 할 일.
그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은 접어두고, 일단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뮬로 외에도 할리의 말을 이해하고 미간을 찌푸린 이들이 또 있었으니.
바로 암살을 지시한 테오도르 유페르쉬와, 일을 직접 실행한 순혈의 뱀파이어 클라인이었다.
“···클라인.”
“헛— 테, 테오도르 님! 전 정말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고 왔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지금 눈앞에 너를 쫓아 온 자가 있는데 발뺌할 셈이냐?”
“그, 그것이···.”
정말 평소처럼 철저히 움직였던 클라인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테오도르는 그저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모로 작전이 엇나가 신경에 거슬리던 참이었는데, 임무의 뒤처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부하 때문에 일이 더 꼬이게 생기지 않았나.
더 수월한 작전을 위해 벌인 뒷공작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으니, 이후 비스크에게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벌써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설령 클라인이 발각됐다 해도, 이곳까지 온 건 혈문을 통해서였는데. 대체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낸 거지?’
그것도 하필 이 타이밍에 이곳으로 바로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브로코슬락 측에서 뭔가 눈치채고 미리 수를 써 두지 않은 이상은···.
‘설마 휴버트를 건드린 건 자충수였나? 그것 때문에 우리 작전이 미리 간파당했다고?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놈들의 대비가 그리 철저하지 않아. 지금도 아직 우리가 우세할 정도니까. 그럼 대체···.’
자연스레 모든 계획을 주도한 테오도르의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할리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뿌드득! 끼기익—!
극한으로 압축된 근육에서 금속성이 새어 나오고, 전신에서 「생체 오러」와 ‘광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발광하는 각인 위를 검붉은 용의 비늘이 빼곡히 뒤덮기 시작했으며, 파충류처럼 날카롭게 갈라진 두 눈에선 적광과 녹광이 이글거렸다.
“하아—.”
쉬이익—!
날숨에 섞인 새하얀 김이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이미 전투 모드에 들어간 그의 전신 세포도 극한으로 활성화되어, 쉬지 않고 에너지를 소비하며 아지랑이와 함께 수증기를 뿜어냈다.
“크힛··· 크흐하하핫—!”
광기가 육체를 잠식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
쩌렁쩌렁하게 공간을 울리는 그의 광소에 뱀파이어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의 감정에 반응한 주변 마나가 격렬히 요동치며, 대기에 흩뿌려진 광기가 그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실행한 놈과 명령한 놈··· 아니, 그냥 한 패거리인 너희 전부! 우리 휴버트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야만 광전사 할리가 사납게 웃고는, 그대로 유페르쉬 클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잠시 멈추었던 뱀파이어들의 전쟁이.
한 용인이 끼어든 채로 재개되었다.
***
성혈은 아우테리카 뱀파이어의 정점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의 능력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성혈은 각 혈맥의 시조였으며, 이제 현시대에 남은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맥이 일찍 끊긴 클랜은 약소 세력으로 전락했고 그들이 오래 남아있던 클랜은 현 뱀파이어계의 3강이 되었다.
유페르쉬와 브로코슬락, 그리고 오바이포.
그 중 유페르쉬는 성공적으로 성혈의 세대교체를 끝마친 케이스로, 만약 다른 두 혈맥에서 성혈을 계승시키지 못한다면···.
이후 세대부터는 계속해서 그들의 독주 체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파지짓—!
물론, 그건 두 성혈이 정면으로 맞붙게 된 지금 와서는 아무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이곳에서 패배한 이는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테니까.
그들의 싸움은 한없이 정적(靜的)이며, 또한 동적(動的)이었다.
-비스크가 손을 뻗어 브리키의 목을 쥐어뜯었다.
-그녀는 그가 처음부터 손을 뻗지 못하도록 어깨를 베어 버렸다.
-그는 어깨가 베이지 않게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이며, 따라붙은 브리키의 다리를 잘라냈다.
-그녀는 진입 타이밍을 한 박자 늦추고, 비스크의 심장에 피의 창을 꽂아 넣었다.
파지짓—!
서로의 의념 속에서 시간 축과 인과(因果)가 뒤엉키고, 기세와 혈마력이 충돌해 인식의 경계에서 쉴 새 없이 스파크가 튀었다.
“어머나, 이를 어째. 저 늠름한 청년에게 부하들이 쥐어터지고 있는데, 한 번 가 봐야 하지 않겠니?”
“흥, 그래봤자 그쪽의 졸개들이 너무 부실해서 당장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내 수하들은 유능하니까.”
“갑자기 쳐들어온 걸로 우세를 점한 주제에 잘난 척은.”
“자신의 빈틈은 감추고, 상대의 허를 찌른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안일하게 대응한 쪽이 잘못이다.”
겉으로는 그저 마주 보고 서서 말싸움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으나, 그들은 이미 마주한 직후부터 보이지 않는 공방을 치열하게 이어가는 중이었다.
만약 다른 이가 멋모르고 그 영역에 들어선다면, 자신이 어떻게 죽는 줄도 모르고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버리리라.
-비스크의 공격을 회피한 브리키가 반격해 그의 머리를 부쉈다.
-그는 오히려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어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는 비스크가 들어오는 순간에 맞춰 손을 뻗어 혈마력으로 그를 속박했다.
-그는 들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브리키의 뻗은 손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지끈—
“읏···?”
갑작스러운 두통에 의념을 전개하던 그녀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 순간은 아주 찰나였지만, 그들의 싸움에서 그건 아주 치명적이었고···.
파지짓— 촤아악—!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흩뿌려지는 피와 잘려 나가 공중에 떠오른 브리키의 오른팔.
하지만 그런 광경도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되감기듯 허공에 비산한 핏물이 단면으로 빨려 들어오고 잘렸던 팔도 자연스럽게 날아와 감쪽같이 접합되었다.
“칫···.”
그녀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오른팔을 주물렀다.
당연하지만 겉보기로만 멀쩡할 뿐, 성혈끼리의 싸움에 밀려놓고 아무런 손해가 없을 리 만무했다.
방금 공격을 허용함으로써 그녀는 상당량의 흡혈인자는 물론, 정신력과 생명력을 비롯한 근원에도 제법 큰 타격을 입었다.
아마 그 여파는 앞으로의 싸움에도 제법 많은 영향을 끼치겠지.
“흐··· 브로코슬락, 설마 했더니 역시. 지금 상당히 무리하고 있군?”
그리고 드디어 우세를 점한 비스크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한창때였다면 이 정돈 별것도 아니었을 텐데···.’
약점을 간파당한 브리키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최대한 오래 버티기 위해 동면을 선택했지만, 이미 수명은 한계에 가까워진 상태.
또 그 동면 또한 비정상적으로 깨어나는 바람에 지금 그녀의 컨디션은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여러 악재가 겹쳐 전성기에 비해 역량 자체가 처참할 정도로 깎여나간 상황이었으니···.
장시간 이어진 의념의 싸움에 저도 모르게 빈틈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래도 아직 너 같은 풋내기를 상대하기엔 충분하단다?”
“크흐흐, 죽을 때가 되니 허세만 늘었군. 그런 블러핑이 나에게 통할 것 같나?”
그의 말대로, 부족한 역량을 완숙한 기량으로 메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뮬로의 결계는 성혈인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어 오로지 본인의 능력만으로 싸워야 했는데, 방금의 실수로 저울추가 크게 기울어 버렸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장담할 수 없겠는데···.’
겉으론 태연한 신색을 유지한 브리키가 내심 식은땀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일 순 없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진 최대한 해보겠다고 다짐하며.
그리고 성혈들의 싸움이 그렇게 겉으로는 지극히 정적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
그 어느 전장보다 격렬하기 그지없는 전장이 있었으니—.
바로 미쳐 날뛰는 할리가 있는 곳이었다.
“크하하핫! 과연 질기구나! 찢는 맛이 있어!”
“크흑,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무리하지 마! 놈이 사용하는 이상한 기운이 재생력을 악화시킨다!”
그를 상대하는 진혈만 무려 셋.
테오도르를 제외한 전부가 그 하나를 막기 위해 달려든 상태였다.
멋모르고 그에게 덤볐던 순혈 몇몇이 속절없이 찢겨나간 후로, 하나둘 붙기 시작한 진혈이 셋이 되어서야 겨우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으하핫! 자꾸 어딜 빼는 거냐! 이리 오너라!”
“···젠장!”
되도록 정면으로 맞붙지 않고 할리를 견제하려던 그들이었으나, 빠른 속도를 가진 그를 상대로 피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가장 내구성과 회복력이 좋다는 이유로 전위를 맡게 된 진혈이 이를 갈며 다시 혈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은 이미 충격을 흡수하는 핏물에 뒤덮인 상태였지만, 이미 몇 번이고 부딪친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으지직—!
“크흡!”
이 모든 방비가 저 무자비한 손아귀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을.
단단하게 경화되어 외부의 충격을 막아주던 피의 갑옷이 깨져나가고, 그 안에 있던 육체도 으스러져 핏물이 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제 그만··· 얌전히 있어라, 이 괴물아!”
그의 몸에서 튀어 오른 핏물이 순식간에 여러 줄기의 넝쿨이 되어, 할리의 몸을 휘감고 주변 공간과 단단히 고정되었다.
‘놈의 힘을 생각하면 이것도 오래 가지 못할 테지만···!’
그것이 불과 몇 초일지라도, 그의 동료들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뒤져라!”
“······!”
크고 붉은 악마의 손이 그 날카로운 손끝으로 할리의 등을 노리고, 소리 없이 가해진 암수가 예리하게 그의 목을 베었다.
콰지직! 푸확—!
깨져나가는 단단한 용의 비늘과 비산하는 혈액.
진혈들의 전력을 다한 공격은 그의 몸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등에는 뼈가 드러날 정도의 커다란 상처가 생겼고, 목도 절반가량 잘려 나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일반적인 상대라면··· 아니, 설사 용인이 상대라도 이 정도면 전투력에 상당한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었건만.
꾸드드득—
「초재생」을 가진 할리의 몸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수복될 뿐이었다.
“···용인이 원래 저렇게 재생력이 빨랐나?”
“본 적이 있어야 알지. ···젠장.”
그 모습에 유페르쉬의 진혈들이 숨을 고르며 이를 악물었다.
저 정도 수준의 재생력이면 진혈의 뱀파이어인 그들 이상이었다.
용인이라는 종족이 워낙 희소하기에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았으나, 그래도 저만큼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용인의 피. 한 번 확인해 볼··· 크흡! 퉷! 우욱.”
자기 손에 흥건하게 묻은 할리의 피를 핥은 진혈이 인상을 찡그리며 헛구역질했다.
“뭐야, 이게? 용인의 피는 원래 이런가? 이건 몬스터의 피보다 더 더럽잖아!”
쉽게 맛볼 수 없는 용혈이라 기대했건만, 온갖 게 뒤섞이고 변질된 그의 피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건 차라리 몬스터 피가 더 나은 수준이 아닌가?
“더럽다니! 거 말이 심하구만!”
그 박한 평가에 어느새 회복을 모두 마친 할리가 불만스레 툴툴거렸다.
자신처럼 건강하고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물론 에너지 소모가 큰 육체의 특성상 오직 육식만 하긴 하지만···.
‘그나저나, 역시 아직 진혈 셋은 좀 까다롭군. 아무리 효율이 올랐다고는 해도 광룡의 심장을 백 프로 소화한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나.’
거기다 유페르쉬의 진혈들은 평균 전투력도 브로코슬락 쪽보다 높은 편이었다.
만약 「정제혈정」으로 강화되지 않았다면 상대도 되지 않았을 정도로.
‘강화된 지금은··· 근소하게 우위를 점할 순 있겠군. 그래도 이 정도까지 수준 차이가 날 줄이야. 왜 브로코슬락이 같은 3강이면서 변방에 틀어박혔는지 알겠어.’
그나마도 오랜 작업을 통해 소왕국 하나를 집어삼켜 겨우 체면치레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할리는 가볍게 몸을 풀며 다시 찬찬히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에 긴장하며 전투를 준비하는 진혈 셋을 넘어, 다른 전장들까지 확인했다.
그가 다수의 진혈을 붙잡아 준 덕에 나머지 전장은 한결 수월하게 풀리고 있었다.
일대일로 테오도르 유페르쉬와 마주하게 된 프리지아는 이전이었다면 싸움도 되지 않았을 그를 상대로 제법 선방하고 있었고.
뮬로는 휘하의 클랜원들을 이끌고 마흔이 넘는 순혈을 순조롭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들 틈에 그의 첫 목표였던 암살자가 끼어있는 게 보였지만, 일단 복수는 나중으로 미뤄야겠지.
그런데.
‘어, 그런데··· 저긴 괜찮은가?’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성혈들의 싸움에.
이 전장의 향방을 가를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