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28)
#128
성혈 (3)
성혈에 오르는 순간, 하인즈 2세의 감각이 끝을 모르고 확장했다.
공감각에 이르렀던 초월적인 지각 능력이 한계를 넘어서고, 공간은 물론 시간까지 손에 잡힐 듯 다가왔으며—.
격의 상승으로 한껏 고양된 정신이··· 세상에 가득 찬 인과(因果)의 흐름 일부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군··· 이게 그동안 성혈들이 싸웠던 방식인가.’
하인즈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의념을 쏟아붓는다면 그 흐름의 일부 자락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정신력의 소모가 큰 데다 하인즈의 힘이 닿는 주변 범위에 국한되지만···. 이러면 격하의 존재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겠군.’
상대가 어떤 수단을 쓰기도 전에 이미 ‘회피’라는 결과가 나온 상태고, 이쪽의 공격은 마음먹는 순간 ‘적중’이 결정된다.
이런 상대를 대체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브리키가 없었으면 할리와 하인즈 둘이 소모전으로 가도 힘들었겠는데···.’
그 둘이 비스크 유페르쉬와 평범한 격돌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녀의 견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결국 비스크보다 격상의 존재인 한스가 나설 수밖에 없었겠지.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운은 아직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스킬「은폐」와 「투명화」가 합쳐져 특수스킬「존재부정」으로 진화합니다.》
성혈로 격이 상승하면서, 타 차원의 흡혈귀들을 포식하고 「혼혈진화」를 통해 강탈했던 능력 둘이 합쳐져 진화했다.
그것도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스킬로.
‘···이것도 성혈의 능력에 영향을 받았구나. 인과를 비틀어 감지당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은신 계열 스킬. 이전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해졌다고 보면 되겠군.’
이왕이면 다른 스킬들도 진화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까지 바라는 건 욕심일 터.
하인즈는 몸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수습하며 개체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개체명 : 하인즈 2세
-종족 : 뱀파이어 (성혈)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명경지수」
-개체 특성 : 「피의 일족 (성혈聖血)」, 「혼혈진화」, 「피의 신비」, 「정제혈정」, 「존재부정」, 「가속」, 「초재생」, 「간파」
-특이 사항 : 「혼혈진화」를 이용해 강제로 성혈을 계승하고 진화를 이뤘다. ‘유페르쉬’ 혈맥에 약간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모든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인과(因果)의 자락 일부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유페르쉬의 피를 이은 뱀파이어에 대한 지배력.
아무래도 성혈을 포식하면서 그에 대한 영향력도 함께 딸려온 모양이었다.
정상적인 계승이 아니라 그 권한이 상당히 깎여나갔는지 ‘약간의’란 수식어가 붙긴 했으나···.
‘어차피 「정제혈정」을 이용할 생각이었으니 상관없겠지. 그래도 덕분에 일이 더 편해지겠는데.’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날을 세우는 이보다는, 약간이나마 통제할 수 있는 이가 다루기 편한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마침 브로코슬락과 다르게 유페르쉬는 전 대륙에 퍼져있으니, 그들을 어떻게 흡수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은 참이었건만.
“후.”
그렇게 하인즈가 내심 만족의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줄곧 이쪽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브리키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흐흥— 역시 대단하구나? 새로운 성혈이 탄생하는 걸 직접 본 건 처음이야. 그것도 동족 포식을 통해서라니.”
그가 비스크 유페르쉬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는 순간에도, 동족 포식을 통해 기어코 성혈에 오를 때도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그녀였다.
하인즈가 성혈이 된다면, 상태가 정상이 아닌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대적할 수 없게 되리란 것도 알고 있었을 터인데.
‘물론 만약을 대비해 할리가 경계하고 있긴 했지만, 방해하려 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냥 지켜만 봤단 말이지.’
이쯤 되면 확실히 적대 의사는 없다고 여겨도 되리라.
어차피 성혈이 된 이상 이제 그녀는 하인즈를 어떻게 할 수 없을 테니.
“그게 내 능력이지. 하지만 브리키, 네 덕이 컸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 빚은 반드시 갚도록 하지.”
“으음— 어차피 이쪽도 엮인 상황이었으니 그냥 잠깐 시간만 내주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많거든.”
전투 때의 날카로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절인 배추처럼 축축 늘어지는 태도로 느긋하게 답했다.
어차피 그녀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알아야 했으니, 자리를 만들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다만 지금은···.
“으하하! 이거 참, 진귀한 구경을 했구만. 그런데 복수도 끝냈으니 난 이만 돌아가 볼까 하는데! 하던 일도 팽개치고 왔거든!”
가만히 지켜만 보던 할리가 자연스레 나서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리와 하인즈의 연계 작전도 성황리에 종료되었으니 이제 파티를 해산할 때였다.
“그래, 할리.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군.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지.”
“아, 별거 아니야! 놈들이 먼저 내 친구를 건드렸으니까 말이지. 거기다 그쪽은 우리 휴버트 상회와 한배를 탄 사이가 아닌가! 와하핫!”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휴버트 상회 쪽은 이쪽에서도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다.”
“그래주면 고맙고! 그럼 난 이만!”
그렇게 주변에 보여주기 위한 대화가 끝난 직후, 할리는 당당하게 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싸움이 끝나며 뮬로의 결계도 해제되었고, 로드이자 성혈이 된 하인즈가 허락한 마당이었으니 그를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흐음, 이대로 그냥 보내도 괜찮겠니? 첫 등장부터 여러모로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아이던데···.”
이젠 거의 감은 것 같은 눈의 브리키가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렸지만.
“괜찮다. 이미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으니.”
하인즈는 가볍게 그녀의 걱정을 일축했다.
그리고 하인즈는 이젠 선 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그녀를 먼저 숙소로 돌려보내고, 전후 뒷정리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당분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군.’
전투 직후의 클랜 현황 파악부터 유페르쉬의 잔당 관리, 그리고 이후의 대응까지.
아직 일은 산더미처럼 많이 남아 있었다.
***
한 손에 들린 기다란 양손검과 전신을 감싼 두꺼운 검은 갑주.
그 존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를 인간이라 여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눈가에서 발광하는 붉은 안광과 타오르듯 이글거리는 흑마력은 둘째 치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압되는 짙은 죽음의 기운은 인간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그 존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魔)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그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
“···데스나이트 로드, 카람.”
“불사의 군대를 이끄는 군단장이잖아···. 그런 괴물이 어떻게 여기에···!”
갑작스러운 결계의 발동으로 외부와 단절되고, 곧바로 습격이 가해졌다.
입구부터 빼곡하게 깔린 방어 설비는 모조리 파괴되었으며, 경비로 배치한 키메라와 마개조된 암흑기사들은 잠시도 그의 발길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그가 아지트의 중심부까지 순식간에 도달해 버렸으니, 역천의 서약 툴크 왕국 지부의 흑마법사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지부가 늘어 교단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여기고 있었거늘. 설마 불사의 군대에서 벌인 짓이었나.”
이곳 지부를 책임지는 지부장이자, 역천의 서약의 장로 중 하나인 올드만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불사의 군대가 직접 움직였다는 말인즉, 재림한 불사왕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건 대륙과 불사왕 사이에서 이득만 취할 예정이었던 그들의 계획을 폐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이 소식을 전하는 게 최우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걸로 보아 상당히 철저하게 준비한 것 같긴 한데···.’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자신만만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열을 갖추고 전방에 늘어선 암흑기사들과 이미 주문을 준비 중인 흑마법사들.
그 수만 물경 수백이었다.
이곳은 툴크 왕국의 모든 지부를 총괄하는 중앙 본부로, 그간 연락이 끊긴 다른 곳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입구가 돌파당하긴 했으나, 애초에 그곳에 있는 놈들은 시간 벌이용으로 배치한 화살받이에 불과했다.
진짜는 그 시간 동안 철저한 준비를 마친 중앙 본대였으니.
‘아무리 카람이 대단하다 해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지. 설령 하위 언데드를 소환하더라도 거기엔 한계가 있을 터.’
심지어 이곳은 그들의 본거지였으며, 당연히 거점 수비에 도움이 될 만한 마법들이 겹겹이 설치된 장소였다.
아군의 강화와 적군의 약화, 그 외에 온갖 자잘한 흑마법들까지.
[호오— 이건, 생각 이상이군.]그들과 마주한 카람이 나직이 읊조렸다.
정신에 작용하는 마법의 영향으로 공포심이 제거되고, 집중력이 한계까지 올라간 이들의 기세가 칼날처럼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정예 부대의 모습에 올드만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어째서 불사왕이 우리를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신으로 여기까지 쳐들어오다니. 우리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군, 카람! 그대는 그 오만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외친 그가 서서히 흑마력을 끌어올려 파괴 마법을 준비했다.
아무리 이쪽의 준비가 철저하다 해도 상대는 역사서에도 나오는 괴물이었으니,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미처 마법을 엮어내기도 전에···.
[그것 보시어요, 카람···. 소녀가 괜히 당신께 지원을 요청한 게 아니랍니다···?] [흐음, 과연. 왕께서 내린 명을 완수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로군.]카람의 뒤에서, 또 다른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릿한 형체임에도 확실히 분간되는 검은 베일과 드레스를 갖춰 입은 여성.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며 삶의 의지를 뒤흔드는 그녀의 정체는···.
“밴시 퀸, 올리비아···!”
올드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카람 하나만이라면 모를까, 거기에 불사의 군단 간부 하나가 더 더해지다니?
심지어 그녀는 혼자 온 게 아닌 듯 하나둘 유령체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곳에 온 간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으으—
삽시간에 주변 바닥이 검게 물들며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그 어둠 속에서.
푸화악—!
달그락— 덜그럭!
끼기기긱!
목 없는 듀라한부터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 나이트 등, 수많은 언데드가 끝도 없이 기어 나와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웠다.
[푸흣— 제법 준비하긴 했다만, 네놈들에겐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어둠 속에서 등장한 드웰이 흑마법사들을 깔아보았다.
놈들의 철저한 생포를 위해 이 자리에 간부만 무려 셋이나 참가한 것이다.
그 압도적인 전력 차에 올드만이 암담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데스나이트 로드 카람과 밴시 퀸 올리비아, 거기에 더해···.
“···아크리치까지 더해지다니.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참고로 드웰은 언데드 군세를 다루고 전략을 입안하는 데에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앞으로 나서지 않는 특성상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
[···이 몸은 불사왕 님의 충실한 종복, 드웰 맥케인이다! 앞으로 똑똑히 기억해 두도록 해라!]상대의 반응에 발끈한 그가 당당하게 외쳤지만, 이번 일로 그의 이름이 널리 퍼질 일은 없을 테니 무의미한 짓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잠시 후.
그렇게 이면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작은 전쟁이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일 없이 조용히 끝났다.
하지만 싸움 직후의 뒷정리를 하던 올리비아는 일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급히 이동해야만 했으니···.
[소녀, 올리비아···. 왕의 부르심을 받고 왔나이다···.]불사왕 한스가 직접 그녀를 호출했기 때문이었다.
[올리비아, 내가 이번에 재밌는 놈들을 주웠는데 말이다.]한스의 시선이 검은 사슬에 묶인 채 허공에 매달린 이들에게 향했다.
[이번에 탈라리아로 침투하려 했던 역천의 서약 놈들이다. 대충 살펴보니 간부급도 하나 껴 있는 것 같더군.]역천의 서약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유페르쉬 클랜의 움직임 뒤에 놈들의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아무리 점조직인 그들이라 해도 이만한 수준의 부대를 소모품처럼 사용할 수는 없을 터.
‘여러 다리를 건너 명령이 전해졌다 해도, 올리비아라면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녀의 역추적과 유페르쉬 클랜의 심문 결과가 합쳐진다면, 이번 일을 획책한 놈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놈들을 조사해서 그 배후의 위치를 캐내라.] [왕의 명에 따르겠나이다···.]그렇게 자타공인 불사의 군단에서 가장 바쁜 이에게 또 하나의 일거리가 전해졌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얼굴로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올리비아.
역시 너무 유능한 것도 생각해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