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30)
#130
막간 (2)
“오··· 상당히 아슬아슬했군.”
나는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앞에 떠오른 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르마 상점』
『고유스킬 강화 (1,100,000)』
『스테이터스 강화 –상세 보기』
『보유 카르마 – 1,120,122』
하워드가 탄생한 게 고작 며칠 전이건만, 기어코 그사이에 50만이 넘는 카르마를 수급해 강화 조건을 달성했다.
지구의 각성자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속도였으나,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소수 종족이라 해도, 그 정점에 군림하는 성혈을 먹어 치운 데다 권좌까지 찬탈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짜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였지만, 이번 일에 대한 카르마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 벌어들인 수치는 당장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선금일 뿐.
이후 유페르쉬 클랜을 접수하고 세력을 확장시키며 성혈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거기엔 또 별개의 카르마가 지급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젠 한 번 강화하는 데 110만이나 필요하네. 부디 그 값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전송된 각성자가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가 100만이었다.
그들이 그것을 모으는데 평균적으로 10년가량이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단 한 번의 스킬 강화에 사용하기엔 어이없을 정도로 막대한 수치였다.
‘그래도 지금의 나에게 이 정도는 뭐.’
아바타들이 성장해 큰물에서 놀게 되다 보니 이젠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십만 단위로 카르마가 쏟아진다.
이후 본격적인 ‘안방극장’이 시작되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진 않을 터.
‘어차피 지금 전부 써도 금방 다시 모일 텐데, 굳이 아낄 필요도 없지.’
그야말로 부르주아의 사고방식이었다.
온갖 목숨의 위기를 넘기며 근근이 카르마를 수급하는 이들이 알게 되면 아마 뒷목을 잡지 않을까.
혹시나 싶어 ‘정신력 강화’ 항목도 다시 확인해 봤지만, 그곳에 적힌 필요 카르마 포인트는 무려 64만.
‘고유스킬 강화’와는 다르게 스테이터스는 요구량이 두 배씩 증가하다 보니, 그간 틈틈이 한 강화가 고작 여섯 번이었는데도 벌써 저 모양이었다.
‘역시 고유스킬을 강화하면서 정신력을 증가시키는 쪽이 훨씬 가성비가 좋아. 큰맘 먹고 32만짜리 정신력 강화를 했을 때도 생각만큼 효율이 안 나와서 후회했었으니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나는 가볍게 심호흡하며, 곧바로 ‘고유스킬 강화’를 선택했다.
지끈—
그리고 이제는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 두통이 지나간 후.
눈앞에 시스템 알림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아바타의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성장이 한층 가속화됩니다.》
《고유스킬이 성장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아바타 생성 시, 세 개의 무작위 스킬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려 110만 포인트를 투자한 결과.
다행히 기대했던 ‘아바타 개체수 증가’와 ‘정신력 대폭 증가’는 자연스럽게 딸려왔다.
그 외에 추가로 주어진 것은, 이제는 단골 멘트가 된 ‘아바타의 잠재력 상승’과 그간 무작위로 주어졌던 스킬에 대한 제한적 선택권이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후우— 쓸 만한 스킬이 하나라도 나왔으면 했는데.”
필요 포인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대신 점점 더 강한 보정을 부여하는 ‘스테이터스 강화’와는 달리, ‘고유스킬 강화’는 한 번 강화하는 데 필요한 수치가 늘어난다고 효과도 그만큼 증가하진 않았다.
50만을 쓰나 100만을 쓰나 똑같은 한 단계 강화일 뿐.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더라도 막상 마주하게 되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스킬 선택권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그동안 운이 좋았던 거고. ···그래도 다음번엔 정신력 강화를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이젠 120만으로 증가한 다음 필요 포인트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고유스킬을 이만큼 강화한 이는 자신뿐일 테니 이것도 배부른 투정일 것이다.
나는 아쉬움을 떨쳐버리듯 곧바로 아바타 생성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외모 변경과 능력치 조절을 위해 눈앞에 「커스터마이징」 창이 떠올랐다.
그런데 평소라면 새로운 아바타의 스킬이 명시되어 있어야 할 칸에 새로운 문장이 추가되어있었다.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건가.’
초기 스킬은 진로를 정하는 데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아바타의 잠재력이 증가한 지금은 관련 스킬이 없어도 제법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겠으나, 굳이 있는 걸 이용하지 않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래도 주는 대로 받기만 했던 전과는 달리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었으니 나쁠 건 없었다.
무작위란 말마따나 제시된 스킬에 일관성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투시」와 「빙결 내성」은 이름만 봐도 알겠는데, 「결속의 끈」은 뭐지?’
다행히 융통성은 있는지 선택 단계에서도 해당 스킬의 간략한 정보는 제공되고 있었다.
「결속의 끈」의 기본 효과는 ‘계약 시 추가 보정’을 주는 것.
그리고 그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이 스킬의 정체성을 알 수 있었다.
‘정령사인 해리스한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스킬이네.’
계약 대상과의 친화력과 유대감 등을 강화해주는 ‘소환’계열이 사용할 법한 능력이었다.
자신에겐 이미 해리스가 있으니 중복되는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소환사라··· 재밌겠는데?’
이 세상엔 소환체가 정령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할리도 북부 산맥에서 역천의 서약의 소환 마법사들과 충돌한 전력이 있지 않았나.
유니콘이나 불사조 같은 환상종부터 악마나 외계 생명체까지, 소환 계통에서도 갈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했다.
‘아무리 봐도 「투시」나 「빙결 내성」보다는 이쪽이 더 좋은 것 같네. 사실 새 아바타로는 정통 마법사 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방향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군.’
필요하다면 나중에 소환수는 호위용으로 두고 마법사로 전향할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그럼··· 이걸로 결정이다.”
스테이터스 조정까지 전부 끝마친 후, 마침내 새로운 아바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러운 인상과 살짝 처진 눈매, 이지적으로 빛나는 눈빛을 가진 전형적인 모범생 상이었다.
‘좋아, 이걸로 한시름 덜었군.’
나는 그 소환 마법사 지망생, ‘헤스페론’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헤스페론이 가장 먼저 하게 될 일은.
휴버트의 뒤를 이어 하워드에게 전달할 지식을 입력하는 일이었다.
아우테리카에서 그가 성장하기 적합한 자리가 준비되기 전까지 계속.
***
로셀리아 대신전의 깊은 곳에 있는 한 개인 수련장.
우우웅—
그 한복판에 선 하인리히의 손에서 성검이 부드럽게 진동했다.
그와 동시에 검에 담긴 날카로운 기운이 서서히 증폭되다가 끝내 넘쳐흐르며 그것을 쥔 이의 몸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건 언제 겪어도 대단하단 말이야.’
「축복 : 성검」을 얻으며 다룰 수 있게 된 성검의 기운, 일명 ‘성검기’는 신성력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한층 공격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무기에 적용하면 절삭력과 파괴력 등을 극한으로 증가시키고, 몸에 두르면 신체 능력과 육체 강도를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마를 멸하고 악을 처단해 힘으로 세상을 지키기 위해 벼려진 성검다운 능력이었으나, 그 뛰어난 성능과는 별개로 기운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한 가지 까다로운 과정이 필수였는데—.
바로 성검과의 교감이었다.
우우웅—
검이 재차 진동하며 그 감정이 하인리히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뚜렷한 의사 표현이라기보다는 원초적인 감정이 기반 된 의지였지만, 그것은 분명 자아를 내포하고 있었다.
‘성검의 시련을 주관했을 때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때는 의사소통까지 가능한 에고 소드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어쩌면 주인을 선정하기 위한 시련에 한정한다는 조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성검을 뽑고 주인으로 인정받고 나니 지능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똑똑한 강아지 같은 느낌이랄까?
부우우웅—!
그때, 성검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교감하기 위해 열어뒀던 통로를 통해 살짝 생각이 새어 나간 것 같았다.
-‘아냐, 아냐. 그만큼 친근하고 믿음직하다는 뜻이지! 정말 강아지처럼 여긴다는 뜻이 아니야, 로지아.’
하인리히는 급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성검을 타일렀다.
‘로지아’는 초대 사용자가 붙인 성검의 애칭이었는데, 하인리히도 선배를 존중하는 의미로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로지아 성투법」이란 스킬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그 이상 가는 이름이 없기도 했고.
-‘그래, 착하지? 역시 우리 로지아는 언제나 믿음직스럽다니까? 아유 귀여워.’
우웅—
서서히 잠잠해지는 성검의 진동.
잘 생각해 보니 역시 강아지보단 대여섯 살 어린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해 왔을 텐데도 이만큼 순수한 의지라니, 이것도 성검이라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그렇게 마음으로 교감하는 와중에도 하인리히가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당연히 자신의 비밀이 성검에게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나름 수를 써 두긴 했는데, 그래도 최대한 위화감이 없게 하려면 매사 조심하는 게 좋겠지.’
숙련도가 절정에 오른 「마인드 허브」와 「페르소나」를 연계해, 아예 ‘내’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이 ‘하인리히’에게 역류하지 않도록 설정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좀 더 완벽하게 ‘하인리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렇게 사고 공정을 여러 단계로 분할하면 정신력의 소모도 커지지만, 이번에 고유스킬을 강화하며 상당한 여유분이 생겨 한결 편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주신님도 이미 용인하고 있는 마당에 성검이 알아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아니다, 역시 그냥 이대로 가는 게 좋겠어.’
교감을 통해 성검의 순수함을 느끼다 보니 이제는 차마 이 마음을 배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탄생 의의부터가 사악한 존재와 싸우기 위함이고, 그간 수많은 마(魔)와 맞서 싸워왔을 텐데.
하필 이번에 주인으로 인정한 용사가 마왕과 한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순수한 아이는 지켜줘야 하는 법. 예로부터 모르는 게 약이라는 성현들의 가르침이 있었지.’
굳이 불확정 요소를 끼어들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철저히 통제된 ‘하인리히의 사고(思考)’와 성검이 교감을 마치고 눈을 뜨자.
체내에 흐르는 신성력과 날카로운 기세의 성검기가 조화를 이루며 그의 몸에서 노도와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계속해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패도적인 기운.
그 성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력적인 존재감에 기어코 신성 결계로 보호되는 개인 수련장이 흔들릴 지경에 이르러서야···.
“후우—.”
그는 천천히 기세를 가라앉히고 심호흡과 함께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래도 이제 제법 능숙해진 것 같군.’
성검의 시련을 통과하며 짧은 시간에 워낙 급격하게 강해진지라, 그걸 온전히 수습하기 위해선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물며 그 직후에 내려진 「대축복 : 빛의 기사」는 그의 격 자체를 억지로 끌어올릴 정도였지 않은가.
다행히 초기 스킬이었던 「무골」 덕분에 육체를 사용하는 방면은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었지만, 아직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가벼운 오전 수련을 마친 하인리히는 가볍게 몸을 씻고 중앙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녀가 주관하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음, 안녕하십니까? 성녀님.”
···그 성녀가 이곳에 있었다.
언제나처럼 화단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앗! 안녕하세요, 하인리히 님? 좋은 아침이네요!”
슬슬 정오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이건만.
그녀가 언제부터 화단에 나와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침부터 나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에 있었겠지.
“성녀님. 혹시 몰라 말씀드립니다만, 곧 정오 예배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정말요?”
“예, 다행히 아직 늦진 않았···.”
하지만 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성녀가 급히 중앙 신전의 예배당으로 전력 질주해 사라졌다.
‘한동안 일에 치여 살았던 부작용인가. 요즘 유독 허술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 같은데.’
최근 성녀는 정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그 넘치는 신성력을 작은 벌레들에게 쏟아붓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게 그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인 듯해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 작은 벌레들이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날뛰던 광경은··· 역시 떠올리고 싶지 않네.’
하인리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 천천히 예배당으로 향했다.
지금 성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녀는 마침내 모든 업무에서 해방되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되찾은 상태였다.
남은 것은 촉박한 일정에 맞춰 실무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뿐.
그렇게 불사왕에게 맞설 ‘대륙 정상 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