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31)
#131
막간 (3)
정오 예배가 끝난 직후.
하인리히는 성녀가 뒷정리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업무가 끝났다고 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서로 의견을 나눌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와 합류해 함께 집무실로 향하는 길에서···.
그녀가 겸연쩍은 듯한 웃음과 함께 그에게 감사를 표해왔다.
“아— 하인리히 님, 아까는 감사했어요! 오늘은 미리 가서 준비할 게 있어서 좀 일찍 나왔는데, 화단 앞을 지나다 저도 모르게··· 아핫.”
시간이 지체될 것까지 감안하고 아침부터 나왔지만, 결국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화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성녀님은 그동안 한 번도 늦으신 적이 없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어떻게든 제시간에 도착하셨을 겁니다.”
아마 자신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정말 촉박한 시간이 되었다면 그녀 스스로 알아차렸든, 다른 사제가 찾아오든 해서 예배에 늦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최근 화단에 죽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이 대신전 내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으음··· 네에···.”
하지만 그의 위로에도 그녀는 갑자기 뭔가가 불만스러워진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만 삐죽거릴 뿐이었다.
그에 자신이 뭔가 말실수를 했나 그가 고민하고 있는데.
“···저번에 제가 공적인 자리가 아닐 때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었는데.”
그녀가 먼저 소심한 말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공기의 작은 진동마저 감지할 수 있게 된 하인리히가 이 지근거리에서 그 목소리를 놓칠 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그런 말을 했었지. 성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나.’
하지만 워낙 가볍게 지나가듯이 했던 말이기도 했고, 그동안 바쁜 일상에 치이며 자연스럽게 잊혔던 사실이었다.
최근 둘 다 업무에 매진하게 되면서 관련한 모든 만남이 공적인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이제 자기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성녀는 주신교단의 최고위 지도층인 만큼, 당연히 그녀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그저 ‘성녀님’이라고 부를 뿐.
이 세상에서 단 한 명인 그녀는 그 호칭만으로도 오롯이 존재했으니,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소개하는 ‘리에스타 세인트 하티아누스’라는 이름은 그저 외부에 소개할 때 잠깐 쓰이는 정도에 불과해진 것이다.
그래도 전에는 성녀와 유일하게 대등한 위치에 있던 교황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었으나···.
‘그가 병상에 누우면서 이젠 그것도 힘들어졌지.’
그런 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새로운 성자, ‘하인리히 세인트 랜드가드’였다.
“하하핫— 그동안 성녀님이란 호칭이 입에 붙어서인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리에스타 님.”
물론 이름을 부른다고 곧바로 존칭까지 생략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동시에 항상 자체 발광하는 후광에 어우러진 그 미소는, 그녀의 반짝이는 외모와 어우러져 주변에 화사함을 풍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마치 혼자만 조명을 받는 것 같단 말이야. 나는 저런 후광이 없는데.’
하인리히는 그렇게 속으로 감탄과 불평을 토했지만, 사실 남들이 보기엔 그의 모습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엇? 예를 갖춰! 저기 성녀님과 성자님이 가신다.”
“으음, 성자님은 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군. 직접 발산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존재감이라니. 거기다 저 아우라는···.”
대신전의 경비를 맡은 광휘수호의 성기사들이 멀리서 지나가는 그들에게 예를 표하며 작게 속삭였다.
물결치듯 반짝이는 은빛 머리칼과 태양처럼 빛나는 금안을 가진 두 남녀.
그 외모 또한 감탄이 나올 정도인 그들은 딱히 누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물론 둘이 받은 ‘대축복’이 다르기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발산하는 후광에 차이가 있긴 했다.
머리 쪽에 전구를 밝힌 것처럼 빛나는 리에스타와는 달리, 하인리히는 전신에서 투명한 불꽃 같은 아우라를 피워 올리고 있었으니.
투명한 그것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했지만, 따로 신성력을 운용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뿜어지는 그 아우라는 사방에 그의 존재감을 선명히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나 경로를 비춰주는 등대와도 같아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공간에서조차 퇴색되는 일 없이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을 터였다.
그 어떤 짙은 심연도 그의 존재를 묻어버리지는 못 하리라.
그것이 ‘용사’였으니까.
“그래서 정상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해야 할···.”
“아, 그건 이단심문관 쪽에 이미 부탁한···.”
성녀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집무실로 향하는 하인리히.
그렇게 모두의 희망을 짊어진 용사 겸 성자는 오늘도 대륙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
그리고 용사가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모두의 원망을 짊어진 마왕겸 불사왕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불사왕이시여!] [제 영혼을 왕께 바치겠나이다—.]심연이 열리며 경계가 약해진 여파로 수많은 언데드가 대륙 전역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꼭 불사의 군대 지휘관 출신이 아니더라도,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하위 언데드를 통솔하던 중간 간부들이 다수 있었다.
죽음의 기사 데스나이트, 불멸의 마법사 리치, 목 없는 처형자 듀라한 나이트 등···.
하나같이 그가 처음으로 만든 자아를 가진 언데드, ‘데스 위저드 말콤’과 비슷한 수준의 인재들이었다.
대부분 경계에서 빠져나온 직후, 자의적 판단으로 안전을 도모하며 상황을 살피던 이들.
그들이 하나둘 한스의 휘하로 들어오게 되며 군대의 규모가 점차 커져 나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만족스럽군. 역시 이 몸께서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닌 보람이 있어.’
아무래도 최고의 탐지력과 기동력을 가진 게 불사왕 본인이다 보니,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모양이 빠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그렇게 분주히 움직인 끝에, 마침내 대륙 서부에 등장했던 언데드들을 모조리 수습하고 이제 중앙 쪽으로 발을 뻗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서둘렀는데도 아쉽게 회수하지 못한 녀석들이 제법 된단 말이야. 가장 먼저 손을 쓴 서부 지역도 이런데 다른 지역은 얼마나 남아 있을지.’
당연하지만, 이 세계에 자리한 여러 세력은 언데드들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언데드 측의 습격, 인간 측의 토벌, 예상치 못한 불시의 조우 등 서로 간에 온갖 충돌이 이어졌고···.
결국 불사의 군대에 합류하지 못하고 희생된 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지휘관 출신을 더 건질 수 있었던 건 꽤 쏠쏠한 수확이다.’
불사의 군대 고위 간부는 지난 전쟁에서 그 수가 크게 줄어 남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
‘며칠 전에 받아들였던 녀석 이름이 파고스였지.’
얼마 전에 전 서열 20위권이었던 유령체 언데드, 드레드 팬텀(Dread Phantom) 파고스를 새로 휘하에 거둘 수 있었다.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밴시 퀸 올리비아와 달리 그는 마치 검은 안개가 뭉친 것 같은 외형을 하고 있었는데, 뚜렷한 형체를 갖춘 것은 상체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가 3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불사왕께 영광을— 이 세상에 공포를 퍼뜨리는 데에— 제가 앞장서겠나이다—.]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머리에서 한 쌍의 붉은 안광을 빛내는 파고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악령 그 자체.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마력이 가득 깃들어있었지만, 사실 그건 모든 고위 언데드가 마찬가지였으니 이제와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찾은 녀석이 구울 로드(Ghoul Lord)인···.’
[피오나—.]한스가 나직이 그 이름을 부르자, 막 종속되어 그의 앞에 부복했던 평범한 인상의 여인이 재차 고개를 조아렸다.
이전 불사의 군대 서열은 약 30위권.
움직이는 시체라는 점만 동일할 뿐, 모든 면에서 좀비의 상위 호환인 구울은 시체를 파먹고 강해지는 특성이 있었는데.
끝없이 사냥감을 먹어 치워 결국 그 구울의 정점에 오른 존재가 바로 그녀였다.
‘겉보기엔 인간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군.’
그리고 시체를 포식해 육체를 재생할 수 있는 구울의 특성상, 그녀는 언데드임에도 부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얼핏 봐선 그냥 평범한 인간 여성처럼 보일 정도로.
물론 몸에서 나는 악취라던가 풀린 동공과 메마른 점막 등 자세히 보면 극심한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다른 언데드들에 비해선 상당히 양호한 상태였다.
‘그 입 안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지.’
귀밑까지 찢어지는 입꼬리와 악어처럼 크게 벌어지는 턱, 그 안 가득 들어찬 톱니 같은 이빨들.
포식하는 언데드의 대명사답게 그녀는 할리에게도 뒤지지 않는 흉악한 구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충성을···.]하지만 피오나는 자기 입 안을 내보이기 꺼려지는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과묵한 태도를 보였다.
마력을 공명시켜 말하는 언데드의 특성상 직접 입을 열 필요는 없는데도.
‘아마 인간 시절의 기억이 습관처럼 굳어져서겠지.’
그런 예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것이 자상한 상사의 덕목.
사회생활 한 번 해본 적 없지만, 자신을 이상적인 리더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한스는 그녀를 포함한 부하들의 태도를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시킨 일만 제대로 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까.
‘그렇다고 감히 불사왕 앞에서 방종하게 구는 녀석은 본 적이 없지만.’
여하튼 그렇게 여러 인재가 충원된 덕에 불사의 군대는 여러 방면으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 만큼, 은밀히 움직이는 것도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어지간한 세력에서는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태겠지.
‘다행히 아직까진 큰 충돌이 벌어지지 않고 있긴 한데.’
그들 입장에서는 괜히 선공을 했다가, 비교적 얌전한 행보를 보이는 불사의 군대를 쓸데없이 자극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을 것이고···.
먼저 단독으로 움직였다가 그로 인해 자신들만 입을 피해를 저어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겠지.’
불사왕과 불사의 군대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대륙 정상 회의’.
그것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
그곳에서 앞으로의 대응 방안이 정해지고 나면, 아마 어떻게든 결판이 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방극장’ 작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리라.
***
사전 조율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던 만큼, 일단 일정이 확정되자 ‘대륙 정상 회의’의 준비는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어차피 회의장을 비롯한 어지간한 준비는 이번 일의 주최자인 주신교단 측에서 한다지만, 물 흐르듯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이렇게 쉽게 성사될 일이 그간 왜 그렇게 지지부진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마 다른 이들도 느낀 거겠지.’
하인리히는 회의가 벌어질 장소를 가볍게 둘러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간 위기감도 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던 자들.
그들도 자기가 지금처럼 계속 이기적으로 굴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만큼 현 대륙의 상황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광기 사태는 진정되기는커녕 점차 격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곳곳에서 일어나는 민란과 테러는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을 지경이었다.
특히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북부 산맥 대부분과 맞닿은 아제리온 제국은 물론, 제국의 북쪽에 자리해 아예 삼면이 북부 산맥으로 감싸인 로한 공국은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일 정도였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대륙 정상 회의든 뭐든 빨리 진행해서 지원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제국 측에서도 이 일을 성사하는 데 주변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했을 테고.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회의가 드디어 열리는군.’
로셀리아 대신전에서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만 잡히면 바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덕분에 회의 날짜를 최대한 빨리 앞당길 수 있었고, 신전의 게이트가 있는 이상 이동 거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로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개최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을 때.
대신전의 게이트를 통해 각 세력의 사절단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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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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