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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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대륙 정상 회의 (1)
“그럼 저는 이만 신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지침은 숙지했겠지?”
“물론입니다.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가봐.”
“예.”
뮬로의 대답에 중년의 사내가 공손히 인사하며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조용히 집무실을 나섰다.
상대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철저히 자신을 낮춰 행동하는 그의 정체는, 탈리아 왕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알려진 브라이트 공작이었다.
이번 대륙 정상 회의에 탈리아 왕국의 대표로 참석하게 된 그가 마지막 보고를 위해 찾아왔던 것.
그리고 그가 자리를 떠나자, 내내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던 하인즈가 옆에 시립하고 선 뮬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저자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는 않겠지?”
대륙 정상 회의는 주신교단을 비롯해 각국의 최고위층이 모이는 자리이다 보니, 그곳에서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간 일이 귀찮아질 수 있었다.
“로드, 그 녀석은 젖먹이 때부터 제가 준비한 패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뮬로는 하인즈의 말에도 그저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외부에 노출될 경우를 대비해 티가 나는 정신계 마법 등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종속시키는 것에는 아주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뮬로는 그런 방법에 통달해 있었고, 그렇게 쌓인 경험으로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베테랑이었다.
“흐음— 그래. 지금 상황이라면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이쪽에 신경 쓸 여유는 없겠지. 대륙 상황이 워낙 개판이다 보니.”
탈리아 왕국은 브로코슬락 클랜까지 동원한 철저한 마물의 숲 통제로 광기 사태에 대한 피해가 크지 않았다.
물론 몬스터가 그곳에만 있지는 않은 만큼 희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수준.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탈리아 왕국처럼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했고, 여러 이권과 협잡 등이 얽히고 얽혀 피해를 더욱 가중시켰다.
‘거기다 서부 외의 지역은 언데드들의 준동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까.’
또 여러 곳에서 쇄도하는 지원 요청에 주신교단도 정신없는 상황인지라, 설령 브라이트 공작이 함부로 입을 놀린다 해도 이쪽에 손을 쓸 여유는 없을 터였다.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을 계기로 클랜이 전면으로 나서는 것도 괜찮겠어.’
이미 유페르쉬 클랜의 하위 뱀파이어들도 혈문(血門)을 통해 하나둘 탈리아 왕국으로 모여드는 중이었다.
뱀파이어 클랜 3강 중 둘이 힘을 합치게 된 상황이었으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국가 하나 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탈리아 왕국을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다.
‘진혈만 여섯에 성혈이 둘. 그 아래 순혈은 백에 달하니···. 하,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전력이군.’
진혈이 보유한 혈마력을 지구 기준으로 환산하면 7~8레벨에 달한다.
하인즈에게 종속되기 전의 프리지아가 7레벨이었다면 뮬로는 8레벨.
‘하지만 직접 싸워봤을 때는 프리지아가 지구의 베타들보다 훨씬 강했어. 수치로 표현하자면 7.5레벨 수준은 되겠지.’
그것은 온갖 성장 보정과 고유스킬로 급성장한 각성자와 오랜 세월 스스로를 갈고 닦은 이세계인의 차이였다.
역량이 비슷하다면 기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베타들이 고유스킬을 더 많이 강화했었다면 경우가 달랐겠으나, 일단 그가 직접 겪은 바로는 그랬다.
‘거기다 그건 프리지아가 「정제혈정」으로 강화되기 전의 이야기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8레벨 수준은 될 거야.’
그런데 그만한 수준의 진혈이 무려 여섯인 것이다.
아니, 각 클랜의 리더 격인 뮬로와 테오도르는 좀 더 윗줄로 쳐줘야 하니 8.5레벨 수준은 될 터.
‘성혈은 일단 9레벨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지구에선 존재조차 들어본 적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어쨌든 이 정도면 탈리아 왕국 같은 작은 약소국이 아니라, 제법 강성한 왕국의 수도를 점거할 수도 있는 전력이었다.
소수정예인 만큼 이후 벌어질 인간 측의 전면적 대응을 생각하면 일시적이긴 하겠지만.
물론 이미 나라 하나를 차지한 이상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성혈이란 말이지···.’
하인즈가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를 제외한 또 다른 성혈, 브리키.
그의 머릿속에는 유페르쉬 클랜과의 전투가 끝난 직후에 그녀와 했던 이야기가 다시 되새겨지고 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과 최종 지향점에 대해.
“후, 일단 좀 더 두고 볼까?”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그녀의 운명은 이미 그의 손에 쥐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잡아먹든, 휘하로 거두든.
모든 것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질 테니.
***
화르륵—
어둠 속에서 보랏빛 불꽃이 타올랐다.
그 불꽃은 밀폐된 지하실 한가운데에서 음산함을 흩뿌리며,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는 인영들의 그림자를 사방의 벽면에 투사했다.
보라색 빛의 흔들림에 따라 정신없이 일렁거리는 다섯 개의 기괴한 그림자들.
그리고 어둠에서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정체불명의 남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올드만은 참석하지 못한 것 같군?”
그렇게 부재자의 근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역천의 서약 비밀 정기회의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그와··· 연락이 닿는 이가 없는 건가···?] [크히힛~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에게 신경 썼다고? 사실 이유야 뻔하잖아? 그냥 어디서 뒤져버린 거겠지!]활동 지역의 거리나 관계성에 따라 아예 그 동향도 파악하지 못한 이가 있는 반면.
[흠, 마지막으로 주고받았던 연락은 서부 일대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내용이었지. 소규모 지부들이 누군가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던가.] [아아— 교단이 움직인 게 아니냐는 말도 들었던 것 같군! 설마 이단심문관이 움직인 건가?]약간이나마 교류가 있어 이상을 감지한 이들도 있었다.
점조직으로 구성된 그들은 보안을 유지하는 데에는 유리하지만, 원활한 정보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었다.
지금처럼 그 지부를 총괄하는 지부장에게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흐음~ 저기, 그 건에 관해서 제가 좀 알아낸 정보가 있는데요?]그때, 끈적한 여성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며 모두의 주의가 그쪽으로 향했다.
기괴하게 뒤틀린 그림자임에도 기이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즐기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풀어놓은 정보에 순간적으로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으니까.
[···어째서···?] [그거야 저도 모르죠~?]그녀의 밑에 정보를 알아내는 데 특화된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덕을 제법 보기도 했으니 이제 와서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으흠, 어떻게 지금까지 예상한 불사왕의 움직임 중에 맞는 게 하나도 없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예상을 벗어나고 있으니.]애초에 심연의 ‘죽음’에 잠식되어 대륙을 죽음으로 물들이는 데만 전념해야 할 불사왕이 이렇게 오래 모습을 감추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처음 불사왕의 부활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개.
오히려 지하 조직을 습격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세웠던 계획 대부분을 폐기해야 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그럼 올드만도 불사왕에게 당했다고 봐야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면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할 이는 아니었으니까요.]불사왕이 그들을 대륙 정복의 방해물로 여기고 제거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이 경우엔 오히려 그들을 유용하다 판단하고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벌인 일일 테지.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건 곤란한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 얼간이 같은 놈들 때문에 되는 일이 없군! 마르코스와 누라베에 이어 이번엔 올드만인가?]그렇게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덩치 큰 그림자가 답답하다는 듯이 불평을 토해냈다.
[십 년 이상을 준비해 놓고 그 준비를 제대로 써먹기도 전에 일을 개판으로 만드는구나! 너희도 마찬가지다! 내가 심연을 열어 광기를 꺼낸 후로 이루어진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푸훕! 크히히힛~ 그것도 맞는 말이네. 푸크큭···!] [넌 닥쳐라! 혀를 뽑아버리기 전에!] [아, 죄송죄송! 푸히—!]덩치가 노발대발하기 시작했지만, 경박한 이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져 가던 순간.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군. 최근은 불사왕의 덕을 보려고 눈치만 보느라 너무 몸을 사린 감이 있으니.”
갑자기 그들의 언쟁을 끊고 들어온 목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였다.
불사왕이란 말이 나온 이후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다시 나서자, 내내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도 조용히 입을 닫고는 그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모두 이번에 개최될 대륙 정상 회의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 그만큼 떠들썩한데 모를 리가.]“마침 이쪽이 준비하던 일도 끝난 상황이다. 바로 준비하면, 시기상으로도 딱··· 회의가 개최되는 도중이겠군.”
[음? 분명 그쪽은··· 아아— 그런가.]각자의 영역이 다른 만큼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계획을 세우면서 대략적인 정보는 공유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확한 시기를 조율하고 규모와 장소를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달려 있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들끼리도 알지 못했었는데···.
[크힛! 아— 대책을 논의하겠답시고 모인 놈들의 표정이 궁금한데! 그걸 직접 보지 못한다니 아쉽구만! 크후훗!] [이쪽이 뭔가 도울 일은 없나요?]“없다. 이미 오랜 시간 공들여 온 작업이니까.”
그는 기괴한 그림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천천히 둘러보곤,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하듯 덧붙였다.
“그리고 그때가, 현 지배 체계가 무너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모든 회의가 끝나고.
어둠을 밝히던 보랏빛 불꽃이 사그라지자 공간엔 짙은 어둠만이 남았다.
스으윽—
한동안 어둠 속에 가만히 서 있던 남성이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지하실 계단을 올랐다.
주변 공간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서서히 밝아지는 실내에도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으며.
촤르륵—
마침내 창가에 도착한 그가 밖을 가리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한순간에 쏟아지는 밝은 햇살과 분주한 도시의 정경.
“···이제 이 모습도 마지막이군.”
불사왕이 그들을 노린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이제 이렇게 여유를 부릴 틈도 없었다.
그간 준비한 것들을 한 번에 쏟아붓고 나면 한동안은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해야 할 터.
‘다행히 올드만이 이쪽에 대해 가진 정보는 많지 않다. 녀석에게 걸린 금제가 있긴 하지만, 불사왕이라면 무슨 수를 낼지도 모르니 만약을 대비해 두는 게 좋겠지. ···이후로는 다른 녀석들도 경계해야겠어.’
그리고 그는 이후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바깥 풍경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점조직인 역천의 서약 고위 간부들은 겉으론 모두 대등한 관계였으나, 그중에서도 실질적인 리더는 있기 마련.
그리고 사내는 누가 뭐래도 조직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존재였다.
몇몇 간부들에게 금제까지 가해둘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그가 지금 있는 장소는, 제국의 북쪽에 붙어 삼면이 북부 산맥으로 둘러싸인 탓에 매일같이 몬스터들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
로한 공국이었다.
***
로셀리아 대신전에 각 세력의 사절단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각 소속 국가의 전권을 위임받고 온 고위직들부터, 마탑 연맹과 용병 길드를 비롯한 단체의 대표들까지.
그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한 사전 조율이 힘들었을 뿐이지, 그것이 해결되자 정작 이동하는 것 자체는 신전의 게이트를 통해 쉽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론 그 안엔 에나멜 대륙에서 온 이종족들도 포함되었는데, 그들은 교단과 합의된 대로 하이 엘프 라포리의 ‘숲의 길’을 통해 빠르게 바다를 건너와 합류할 수 있었다.
다행히 엘븐 킹덤 측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한 데다, 이전 세실리 건으로 더 친밀해진 덕에 쉽게 그들의 협조를 얻은 것이다.
그렇게 이 세계 아우테리카를 주도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바로 이곳, 대륙의 중심인 성지에.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세계적으로 큰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그만큼 각 세력에서 영향력이 큰 권력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이곳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카르마가 폭증한다는 소리지!’
이곳이 노다지나 마찬가지란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