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5)
아잔투 (3)
지하에는 철문이 여러 개 달려있었고 앞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벽면의 못에는 열쇠들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지키는 놈이 없네. 자식들이 빠져서는.’
철문에 난 눈구멍으로 안쪽을 살피자 대부분 비어있었다.
하나만 제외하고는.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린 작은 소년.
인기척이 들렸을 텐데 미동도 하지 않는다.
철컹, 끼익—!
열쇠로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몸이 움찔거리는 게 느껴진다.
“흠흠··· 저기, 네 누나가 보내서 왔는데. 네가 아론 맞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부드럽게 말을 걸자 파르르 몸을 떨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 자국이 남은 그 얼굴은 디아나와 마찬가지로 제 나이보다 더 앳되어 보였다.
“누나가요? 진짜요···?”
“그래, 디아나가 널 얼마나 걱정하던지. 빨리 나가서 집에 가자.”
“흐으— 흑, 으어엉···.”
아론은 디아나의 이름을 듣자, 순간 안심이 되었는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자, 착하지? 진정하고. 그만 울고 이제 누나 보러 가야지.”
“크흡, 훌쩍··· 네. 아저씨.”
나는 아론을 다독여서 진정시키고 안아 들며 문을 나섰다.
“이제 밖으로 나갈 건데. 문 뒤에 무서운 것들이 있으니 눈 꼭 감자?”
“네···.”
미관상 어린이 교육에 좋지 않으니 눈을 가리고 문을 나섰다.
혹시 모르니 아론의 머리를 내 품 안으로 끌어안아 밖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술 냄새···.”
아론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피 냄새가 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바르콜락의 본거지 문을 나서자,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디아나가 달려왔다.
“아론!”
“누나아—!”
이윽고 두 남매가 서로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차마 끼어들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얘들아? 미안한데 우는 건 나중에 하지 않을래?”
“훌쩍··· 죄송해요, 아저씨. 아론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아저씬 괜찮으세요? 많이 다치진 않으셨나요?”
어느 정도 진정했는지 디아나가 아론을 끌어안으며 감사 인사를 해 왔다.
“그래. 내가 말했잖아?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옷에 피가···.”
“괜찮아, 괜찮아. 이거 내 피 아냐.”
거짓말이지만.
하지만 진짜로 괜찮은 건 사실이었으니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보다 나는 아직 할 일이 있거든? 디아나 너는 아론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있어.”
“네? 같이 안 가세요?”
“일 마치고 찾아갈게. 그리고 내가 따로 말하기 전까진 되도록 평소처럼 행동해야 해. 알았지? 아! 그리고 이것들은 가지고 있어. 필요하면 써도 돼.”
지금 가진 금전들을 비롯해 몇몇 소지품들을 디아나에게 넘겨주자, 디아나는 잠시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꼭 다시 오셔야 해요? 약속이에요.”
“그래, 늦어도 3일 안에는 반드시 갈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갈 때도 사람들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거 잊지 말고.”
씩 웃어준 나는 남매를 다독여 보내고 다시 아지트 안으로 들어섰다.
진짜 일은 지금부터다.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어.’
놈들이 아론을 납치한 이유.
‘어떤 흡혈귀가 아론을 콕 집어 지명했다.’
조직원을 죽이기 전에 심문하며 얻은 정보였다.
물론 놈은 흡혈귀라는 것은 모르고 어떤 높으신 분의 명령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지만.
‘그리고 오늘 밤에 찾아온다고 했다.’
놈이 살아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정면으로 싸우면 절대로 승산이 없었지만, 다행히 어떤 수단을 시도해 볼 재료는 갖춰졌다.
“후우··· 손님맞이를 준비해 볼까.”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
야심한 밤.
나는 난장판이 된 아지트 한가운데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사실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천재 지략가도 아니고 고작 몇 시간 만에 급조한 작전이 풀려봐야 얼마나 잘 풀리겠는가.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했어. 어쩔 수 없는 마지막 한 조각은 운에 맡긴다.’
여러 가지를 따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생각대로 안 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그때는 좀 더 힘들어지겠지만 플랜 B로 진행해 봐야겠지.’
그렇게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순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에 그쪽을 쳐다본 나는, 기다리던 행운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이제 모든 건 나에게 달렸다.’
피투성이가 된 난장판을 태연하게 둘러보며 걸어오는 누군가.
“흐음, 좋은 향기로군. 나를 환영하기 위해 일부러 준비한 건가? 확실히 마음에 드는구나.”
실실 웃으며 다가오던 그, 흡혈귀는 이내 멈춰 서더니 표정을 굳히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놈들은 아무리 봐도 내가 부리던 종놈들인 거 같은데. 너,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고 있는 거겠지?”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는 내게 호기심이 들었는지 바로 공격할 의도는 없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흡혈귀와 마주 보았다.
“내가 얼마 전에 이 도시에 들어왔는데 말이지. 이놈들이 글쎄 내게서 삥을 뜯으려고 하지 뭐야? 생각해 보니 열 받아서 말이야.”
“호오, 그래서 일부러 찾아와서 다 죽였다? 그런데 도망가지도 않고 남아있는 건 무슨 의도지?”
“기르는 개의 잘못은 주인 탓이잖아? 그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기다렸지.”
믿든 말든 대충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사실 놈도 전후 관계 따윈 관심 없어 보였다.
“그래, 그런데 내가 이놈들에게 시킨 일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지. 이거 곤란하게 됐군.”
“저런, 내가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나 보네.”
“슬슬 식사 시간이었는데 말이야. 그걸 방해받아서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군.”
나를 이미 죽은 사람 보듯이 쳐다보며 태연히 말을 늘어놓았다.
날 무시하는 것도 있지만 말 자체가 많은 놈이었다.
“그래서 너. 그 아이를 어디로 빼돌렸지?”
젠장, 들켰나.
“여기 놈들을 전부 족치고 보니 갇힌 애가 하나 있어서 대충 풀어주긴 했지. 그런데 그 애는 왜 찾는 거지?”
발뺌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확신하고 있으니 의미는 없어 보였다.
대신 어떻게 아론을 특정했는지 슬쩍 떠보았다.
떠벌리는 것을 좋아하는 놈인 것 같았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흐흠, 별다른 이유는 없어. 내가 어린아이의 피를 좋아하는데, 때마침 약방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아이를 발견해서 데려오라고 시켰을 뿐이니까.”
그곳이 원인이었나.
디아나가 위험한 곳을 잘 피해 다녔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약방은 아론이 아픈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하아··· 어쨌든 내일 다른 놈들을 시켜서 잡아 와야겠군. 지금은 일단 아쉬운 대로 너로 참아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놈의 손끝에서 시작된 핏줄기가 팔다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흡?!”
나는 대화 내내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서 간신히 반응해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무기를 뽑아 들고 흡혈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휘두른 검이 붉게 자라난 손톱에 막혔다.
그리고 놈이 곧바로 휘두른 반대편 손톱에 복부가 베이며, 이전 전투로 너덜너덜했던 방검복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이런, 실수로 토막 내 버릴 뻔했군. 그래도 생각보다 몸이 질긴데?”
“큭, 민감한 상품이니까 취급에 주의해 달라고!”
쇄도해 오는 날카로운 손톱을 피해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 코앞으로 다가온 붉은 기운에 휩싸인 손아귀.
쿠당탕—
곧바로 바닥을 굴러 공격을 피했지만, 순간적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쯧, 제법 잽싸구나.”
다행히 산 채로 피를 빨아먹을 속셈인지 바로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나에게 승산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챙—!
이를 악물고 휘둘렀지만 간단하게 막힌 검.
동시에 놈의 손톱에서 튀어 오른 핏줄기가 내 전신을 베고 지나갔다.
움직이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던 듯한데, 나는 이정도로는 쓰러지지 않는다.
재차 휘두른 검이 다시 막히더라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회복력도 굉장히 좋고. 이건 또 새로운 별미일 것 같군. 기대되는구나.”
강화된 내 육체로도 범접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의 격차, 칼날같이 솟아오른 붉은 손톱과 그곳에서 사출되는 핏줄기.
나를 생포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미 진작에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회복이 너무 빠르니 반항이 심하구나. 손실이 좀 있더라도 일단 먹기 좋게 손질할 필요가 있겠어.”
놈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더욱 빠르고 날카롭게 휘둘러지는 붉은 손톱.
“큭!”
최대한 검을 움직여 저항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놈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기엔 무리였다.
그리고 결국.
스각!
「튼튼함」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 검을 든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또 오른쪽 팔이 잘렸네. 그래도 이제 끝났으니 상관없겠지.’
태연하게 감상을 내뱉으며 놈에게 최후의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콰직—
그리고 흡혈귀의 팔이 내 가슴을 관통했다.
“이건 뭐지? 먹기 편하게 배달까지 해 주는 건가? 서비스가 좋군.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야겠어.”
살아 있다면 말이지만.
흡혈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난생처음 느끼는 피가 빨려 나가는 감각을 무시하며 나는 넉살 좋게 웃었다.
“손님, 성미가 급하시네요. 첫 고객 혜택으로 화끈한 서비스를 준비해 두었으니 마음껏 즐겨주시길.”
말이 끝난 직후, 입 안에 숨겨두었던 반지형 마도구를 이 사이에 물며 그대로 발동시켰다.
화르륵!
불똥이 튀고 내 몸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붙어있는 상태였던 흡혈귀에게도 불이 옮겨붙었다.
“크윽?! 이런 미친놈이!”
놈이 대경해서 내 몸을 떨쳐내려 했지만, 나는 남은 팔 한쪽과 양다리를 이용해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내 몸에 박힌 놈의 팔이 내장은 물론 심장까지 박살 내는 것이 느껴졌다.
놈의 다른 손은 내 왼팔마저 뜯어내고도 내가 떨어지지 않자, 다리마저 잘라내기 위해 손을 뻗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지.’
내 몸에서 튀어 오른 불꽃은 주변에 옮겨붙어 사방을 삽시간에 불구덩이로 만들었다.
단순히 불을 지른 것이 아니었다.
“이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애초에 같이 죽을 작정이었어!”
나는 흡혈귀와 함께 죽기 위해, 놈이 오기 전에 무대를 세팅해 뒀다.
주방과 창고에서 찾아낸 기름을 난장판이 된 내부 곳곳에 배치했다.
아무리 피 냄새가 진동한다지만 대놓고 뿌려두면 흡혈귀가 눈치챌 테니, 싸움을 유도하여 기름통을 부쉈다.
싸움 중에 기름 냄새가 느껴졌겠지만, 당장 코앞에서 온몸이 썰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죽자고 달려드는 미친놈이 있는데 신경이 얼마나 쏠리겠는가?
그리고 피 냄새에 묻힐 정도로 소량의 기름을 이용해, 서로 떨어진 거리에 있는 기름통들 사이를 도화선처럼 연결해 두었다.
화르르륵! 콰앙!
중심부에서 퍼져나간 불줄기가 기름통에 닿아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건물 전체가 캠프파이어 하는 장작더미처럼 타올랐다.
‘이야~ 장관이네.’
사지가 전부 뜯겨나가 이제는 이빨로 흡혈귀의 어깨를 깨물어 매달리며 태평하게 감상을 흘렸다.
놈에게 달려드는 내 품 안에는 다수의 기름병이 들어있었고, 가슴이 꿰뚫리는 동시에 기름이 몸을 적셔서 살아있는 장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발화 마도구로 점화하면 끝.’
마도구를 장착한 팔이 잘려 나갈까 봐 일부러 입 안에 넣어두었다.
“크아아아—!”
온몸에 불이 붙은 채로 발광하는 놈에게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타오르는 불길에 안구가 손상됐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콰아앙!
곳곳에서 불길이 만들어내는 폭음이 이어졌다.
내 질긴 생명력은 이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내 숨통을 붙들고 있었다.
‘그래도 생각대로 돼서 다행이야.’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직접 싸워본 결과 놈은 확실히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우월한 신체 능력과 혈액을 무기로 사용할 뿐, 기상천외한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흡혈귀 중에서는 급이 낮은 놈이었겠지.
‘그리고 그 정도로는 이 불구덩이에서 살아날 수 없어.’
하물며 불은 흡혈귀의 약점 중 하나가 아닌가.
‘이 세계에선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정도 화력이면 그것도 의미는 없지.’
풀썩—
회복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고막이 흡혈귀가 쓰러지는 소리를 끝으로 기능을 다했다.
이제 나에겐 이 세상의 열기와 진동만이 느껴졌다.
아론을 납치해오라 지시한 흡혈귀도 잡았고, 실행한 놈들도 몰살시켰다.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만 떼고 있으면 만사 해결.’
사실 가장 걱정하던 문제는 흡혈귀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거였다.
피 냄새에 민감한 흡혈귀다 보니 건물 내부에서 변고가 일어난 것을 알아채고 돌아가거나, 외부에서 다른 놈들을 불러오면 계획은 시작도 못 해보고 파투 났을 것이다.
‘그 부분은 전적으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지만, 마침 녀석이 자신만만하고 거들먹거리는 놈이어서 다행이었지.’
자고로 방심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가장 큰 적이 아니던가.
나도 「아바타」라는 능력에 심취해 방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참에 아바타가 진짜로 사망하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 보는 셈 치지 뭐. 한스 때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슬슬 한계일지도.’
사실 심장까지 박살 난 상태로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했다.
「튼튼함」과 더불어 「초회복」이 마지막 생명력까지 불태워 가며 회복시킨 것일 터.
나는 마지막으로 몸 위로 무너지는 잔해의 충격을 느끼며 생의 끝을 예감했다.
‘그래도 나름 재밌었다. ···성공···.’
화르륵— 쿠구궁!
그렇게 하인즈는 흡혈귀와 함께 이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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