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53)
#153
제국의 난 (3)
콰아앙—!
“꺄아악!”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대륙의 최강국인 만큼 오랜 평화에 젖어 있던 제국의 수도, 제론이 갑작스러운 폭음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끼히히힛!] [으우우···.]수많은 유령이 연신 귀곡성을 흘리며 허공을 날아다니고.
챙—! 촤앙!
“막아!”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수도 전역에 배치된 수비군과 귀족가의 경비들이 습격해온 언데드를 비롯한 악의 추종자들과 격렬히 충돌했다.
하지만 그 모두를 통틀어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는 따로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황궁이 바로 그곳이었다.
[크워어어——!] [키야아아——!]듣는 이를 공포에 빠뜨리는 드래곤의 포효.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죽음을 형상화한 것과 같은 두 줄기의 시커먼 기운이 그대로 황궁에 내리꽂혔다.
쿠웅! 콰아아앙—!
다행히 황궁을 둘러싼 찬란한 은빛 결계가 그 끔찍한 기운을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안에 모여 있는 이들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공격 하나하나를 막아낼 때마다 결계가 눈에 띄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큭! 불사왕도 모자라 본 드래곤들까지···! 현재 피해는 어떤가?!”
“현재까지 낙오 인원은 4명뿐입니다! 하지만 이만한 공격이 계속된다면, 다른 이들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결계의 중추를 이루는 마법진 위에서 황궁 마탑의 탑주, 대마법사 로렌스 후작이 이를 갈며 눈앞에 떠오른 영상을 노려보았다.
브레스 직후 발동시킨 요격 마법으로 본 드래곤들은 뒤로 물러난 상태였지만, 불사왕 한스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커먼 죽음의 기운을 피워 올리며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젠장! 다음 공격이 온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
쿠우우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음이 터져 나오고, 황궁을 둘러싼 결계를 따라 거대한 마력 충격이 역류해 오기 시작했다.
“커헉!”
“으으··· 죄, 죄송합니다. 더 이상···.”
추가로 누적된 충격을 이기지 못한 마법사 두 명이 파랗게 질린 채 마법진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현재까지 낙오한 인원은 여섯 명.
결계의 효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보조만 하고 있을 뿐인데도, 그것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의 여파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가떨어진 건 한창 배우는 중인 어린놈들뿐이지만, 지금은 한 손이라도 시급한 상황이다. 이렇게 하나둘 빠지고 나면 나중엔 고위 마법사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될 터.’
로렌스 자신이 이 악물고 방어에만 매달린다면 몇 시간 정도는 버틸 수도 있겠으나, 반격 없이는 그저 샌드백 신세가 될 뿐이었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이상 지금 상황이 계속 이어져 봤자 좋을 건 없었다.
“큭, 프리스틴 자작은! 황궁이 이 난리인데 지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설마 이 상황에서조차 아직도 황녀님 옆에만 붙어 있는 건 아니겠지?!”
그간 황궁에 상주하던 대마법사는 총 세 명.
한 명은 황태자와 함께 정상 회의에 참여했고, 다른 한 명인 이세아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 텐데.
“그··· 그게, 제가 알아봤습니다만···. 프리스틴 자작은 오전에 황녀님과 함께 황궁을 나섰다고 합니다.”
“뭣? 하필 지금 밖에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황녀님과?”
로렌스 후작이 당황하던 순간에도 마력의 역류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들은 다시 두 명의 마법사가 더 낙오하고 나서야 다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황태자 전하도 오늘 성지에서 돌아오신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 사실 이미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 시기를 따져보면 아마 지금쯤 저 난장판 어딘가에···.”
“···맙소사. 타이밍 참 거지 같군.”
결국 그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 위급한 순간에 하필 두 명의 대마법사와 두 명의 황위 계승자가 모두 저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안전한 이곳이 아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저곳에.
콰아앙—!
하지만 그의 참담한 심정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그 와중에도 불사왕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
콰아앙—!
황궁이 있는 방면에서 다시 한번 거센 폭음이 터져 나왔다.
“황녀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가볍게 라일리 황녀를 끌어당긴 이세아가 한 손을 허공에 뻗자, 시퍼런 기운이 순식간에 응집하며 날아오던 돌조각 하나를 막아냈다.
“···고마워요, 프리스틴 자작.”
주변에 수행인들과 호위 병력도 함께하는 만큼 격식을 차린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나, 그들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심경을 나누며 다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하필 지금 일이 터지다니. ···경고를 해줄 거라면 좀 더 정확하게 해 달란 말이야.’
이세아는 내심 한숨을 내쉬며 애꿎은 교단을 원망했다.
황녀 일행이 황태자의 복귀 날에 황궁을 나섰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가 교단의 경고를 핑계로 자신의 호위를 위해 병력을 추가로 차출하면서, 군부 쪽에 따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낌새가 포착되었던 것이다.
정치 문제가 끼어들어 버리면 황녀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안 그래도 열세인 상황에서 대응조차 늦을 수는 없었고, 오히려 이걸 잘 이용해서 역공의 발판으로 만들 생각도 있었다.
‘지금 와서는 괜한 짓이 되어버렸지만.’
하지만 교단에서 전해진 경고라는 것도 ‘조만간 제론에서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정도여서, 무작정 기약 없이 황궁 안에 숨어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 그 추상적인 한 마디가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지도자를 도대체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수도의 방위 결계가 작동한 이상 아무리 대마법사인 나라도 함부로 순간이동을 할 수는 없어.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선 인가받은 마법진이 필요한데···. 아니, 황궁이 저렇게 공격받고 있는데 통로를 열어뒀을 리 없지.’
만약의 사태에 지휘부의 탈출을 위한 통로는 있겠지만, 적이 침투할 우려가 있으니 들어오는 입구는 전부 막아놨을 것이다.
결국 황궁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포기하고 이 바깥에서 알아서 생존을 꾀할 수밖에 없는 상황.
‘거리는 좀 멀지만 역시 대신전으로 가서 게이트를 이용하는 게 가장 안전할 것 같네. 여차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버리고 라일리만 챙겨서···.’
“아.”
그렇게 타개책을 떠올리며 일행을 선도하던 이세아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동하면서도 계속해서 은밀하게 마력을 흩뿌려 주변을 탐색하던 그녀의 감각에 굉장히 익숙한 기운이 감지된 것이다.
“프리스틴 자작? 무슨 일이죠?”
“그게···.”
라일리 황녀의 물음에 입을 열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찡그려진 채 펴질 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느껴진 이 마력은···.
“아무래도 황태자 전하가 근처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마력을 흩뿌려 주변을 탐색하는 이 기운은 분명 황태자와 함께 정상 회의에 참여했던 가필드 백작의 것이었다.
자신이 그를 감지한 만큼 분명 그도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겠지.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지만, 그간 황태자가 벌였던 짓들을 생각하면 그와 함께하는 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닐 터였다.
라일리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인상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이쪽으로 접근해 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지만 저쪽의 판단은 그녀들과 달랐던 모양이었다.
하긴, 더러운 짓을 해도 황태자 쪽이 했지 이쪽은 일정 선만은 꼭 지켰으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아직 제법 거리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들을 피하기도 곤란했다.
황태자가 무서워 도망친 5황녀, 위기 상황에 힘을 합치는 것을 거부한 이기주의자, 대의를 저버리고 개인의 감정을 우선한 소인배···.
이걸 이용해 저쪽에서 또 어떤 프레임을 씌우려 할지 몰랐으니까.
“후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죠. 모두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고, 절대 빈틈을 내보이지 않도록 하세요.”
결국, 결의를 다진 그들이 황태자 일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아?”
다시 한번 멈칫한 이세아가 한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황태자 일행이 있는 곳과 비슷한 방향, 하지만 좀 더 먼 곳에서···.
“이건···.”
마치 타오르는 태양처럼 뜨겁고, 정열적이며, 찬란한 기운이.
고오오오—
맹렬한 속도로 다가와.
후우웅—!
거센 후폭풍과 빛의 잔영만을 남기고, 그대로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꺄악!”
“빠, 빨라···!”
한순간 몰아치는 바람에 시녀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으며, 황녀의 호위를 맡은 기사들은 검을 반쯤 들어 올린 채 마른침을 삼켰다.
그저 지나친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새기고 떠난 이였지만, 사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아는 이세아는 곧바로 감각을 끌어올리며 그 기운이 향한 황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때를 맞춘 듯, 그곳에서.
쿠우우우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폭음과 함께 강렬한 여파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도 전체를 감싼 결계 덕에 한껏 억제된 상태였으나, 지금까지 터져 나온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충격파였다.
“···성자, 하인리히 세인트 랜드가드···.”
그 발원지에서 끓어오르듯 발산되는 기운에 이세아가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네? 설마, 방금 지나간 게 성자님이었나요?”
“예에? 주신교단의 성자님 말씀이십니까? 그 용사라는···!”
“서, 성자님이 방금 저희 곁을 지나치셨다고요? 오, 주신이시여!”
그녀의 혼잣말에 황녀는 물론 다른 이들도 한꺼번에 반응했다.
저도 모르게 신께 기도를 올리는 신도도 있을 지경.
하지만 성자란 본디 그런 존재였다.
굳이 그 격을 따지자면 황제와 동급··· 아니, 지금 같은 대륙의 위기 상황에서는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하리라.
‘따지고 보면 저 남자야말로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네.’
신이 선택한 이 세상의 구원자.
물론 그 무거운 이름값에 비례한 중압감이 항상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터였다.
희생과 헌신은 그에겐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겠지.
고작 한 사람을 챙기는 것만도 버거운 이세아 자신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위인이라 봐야 했다.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감이든, 어떤 숭고한 사명감이든··· 아마 그녀가 그를 이해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
“당황하지 말고 전열을 유지해! 아직 결계는 멀쩡하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너희는 자랑스러운 제국의 황실 수호대다! 황제 폐하께 실망을 안겨드릴 셈이냐!”
결계의 경계에서 일전을 준비하던 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하인리히가 가볍게 입술을 핥았다.
‘딱 타이밍을 잘 맞췄군.’
제론 대신전은 제국의 수도에서도 외곽에 있었다.
사실 성지를 제외하면 제론뿐만 아니라 신전 이상 규모의 시설이 위치한 곳은 어디나 사정이 비슷했다.
차지하는 부지가 넓은 것은 둘째 치고, 그곳에 상주하는 성기사단과 성전사대 같은 무력 집단을 그 땅의 지배자들이 그리 달갑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여기는 황제까지 기거하는 제국의 수도였으니 당연한 일.
사실 보통 주민들은 도시 내부 곳곳에 자리한 작은 기도소나 사원을 이용했으니, 특수 시설이나 다름없는 대신전의 접근성은 딱히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인 즉, 수도의 중심부에 있는 황궁과 대신전의 거리는 그만큼 멀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으며.
하인리히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지 않은 이상 단기간에 그 거리를 주파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아직도 어중간한 곳에서 얼쩡대던 황태자처럼 말이지. ···이세아와 5황녀까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끼기기긱! 콰앙!
그는 광검을 휘둘러 앞을 막아선 검은 낫을 쳐내고, 곧바로 다시 불사왕에게 달려들어 죽음의 기운을 베어 갈랐다.
[크하하핫! 역시! 네가 내 앞을 막아설 줄 알았다. 나의 유일한 대적자, 하인리히여!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사라면 응당 그 정도는 해야겠지. 크흐흣!]“세상 모든 만물은 주신의 뜻 아래에 있나니. 너 또한 그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역대 모든 불사왕들이 그랬듯 너도 곧 그들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한니발!”
찬란한 광채가 휘감긴 황궁을 배경으로 대치한 불사왕과 빛의 기사.
그 동화와도 같은 환상적인 무대에서,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음산한 목소리와 신념이 가득 담긴 굳건한 목소리가 맞물리며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쿠오오오——!] [캬아아아——!]그에 화음을 넣는 것처럼, 황궁에서 뻗어져 나오는 광선을 피해 하늘을 맴돌던 본 드래곤들이 하인리히를 내려다보며 일제히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불사왕은 그 이상의 개입을 차단하듯 가볍게 손을 내젓고 다시 그를 내려다보았다.
[재밌구나, 아주 재미있어. 빛의 기사, 하인리히 세인트 랜드가드. 너는 아는가? 나는 너와 마주할 때마다, 네가 나의 앞길을 막아설 때마다, 오히려 살아있음을 절실히 실감한다. 이미 죽은 몸임에도 말이지!]세상을 품에 안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는 양손을 활짝 벌린 채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우러렀다.
[자아—! 좀 더, 좀 더 내게 가르쳐다오. 삶을! 생의 의지를!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마력을 울려 만들어낸 목소리임에도 짙게 느껴지는 그것은···.
오로지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상서로운 빛에 휘감긴 하인리히가 천천히 성검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구나. 그날, 내게 그런 계시가 내려온 이유를.”
유려하게 움직인 검날의 빛이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고, 그 검끝은 마침내 정확히 불사왕을 겨누었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 또한 신의 인도하심이라.”
진짜로 연극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