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7)
뱀파이어 (1)
“흠, 그래? 진짜 ‘역천의 서약’ 놈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그렇습니다, 위라크님. 저는 동쪽의 틸라크 시부터 여행하다가 이곳 아잔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며칠간 활동이 없던 것은 어떻게 된 거지?”
“그동안 고생했는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숙소 안에 박혀있었습니다. 계속 안에 있었는데 워낙 쥐 죽은 듯이 있다 보니, 숙소 주인이 뭔가 오해를 한 듯싶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뱀파이어의 종속은 통하지 않았다.
뱀파이어가 된 순간 나를 감염시킨 눈앞의 상위 뱀파이어, 위라크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본능이 새겨졌지만 충분히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은 따라주자. 놈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기회다.’
처음에는 이제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오히려 이 도시를 지배하는 뱀파이어들의 틈에 낄 좋은 기회였다.
“쯧, 뭐 좋아. 넌 일단 따라와라.”
위라크는 소득이 없자 혀를 한번 차더니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아 나갔다.
-개체명 : 하인즈 2세
-종족 : 뱀파이어 (잔혈)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명경지수」
-개체 특성 : 「피의 일족 (잔혈孱血)」, 「가속」, 「재생」
-특이 사항 : ‘브로코슬락’의 혈통을 계승해 육체가 뱀파이어로 변이되었다. 태양 빛을 받지 않을 때, 육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마인드 허브」의 영향으로 정신이 피에 종속되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향상됐다. 이 정도면 바르콜락에서 죽였던 놈 이상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존에 강화된 상태가 뱀파이어가 되며 상승한 능력치에 포함된 것 같았다.
나는 위라크의 뒤를 따르며 손톱 끝에 핏줄기를 뽑아내 날카롭게 만들어 보았다.
‘오오, 역시.’
뱀파이어가 되면서 얻은 스킬인 「피의 일족 (잔혈孱血)」은 딱 바르콜락의 뱀파이어가 사용했던 능력들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신체 능력 강화, 혈액 무기화, 흡혈 등을 포함한 가장 낮은 계급의 뱀파이어.
‘저놈은 계급이 어떻게 되는 거지? 브로코슬락은 또 뭐고?’
앞서가는 위라크를 보고 있자니 놈이 이쪽을 한번 쳐다보더니 나름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피를 계승했는데 벌써 그 정도로 다룰 줄 알다니. 제법 재능이 있는 것 같군.”
아까는 기분이 나빠 보이더니, 내가 쓸 만해 보이자 좀 풀린 모양이었다.
“잘 따라오는 것을 보니 신체 능력도 평균 이상이고. 아주 꽝을 뽑은 건 아닌 모양이야. 적어도 이번에 죽은 폴린 놈보다는 낫군.”
바르콜락에서 죽인 뱀파이어의 이름이 폴린이었나 보다.
쓸데없는 정보를 대충 무시하며 자연스럽게 위라크에게 말을 걸었다.
“감사합니다, 위라크님.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따라와 보면 안다.”
아무래도 시시콜콜 설명하기는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시내의 건물 위를 달려 도시 중심부의 고급저택이 늘어서 있는 부촌으로 들어섰다.
“이쪽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위라크는 개중 가장 크고 화려해 보이는 저택의 앞에 멈춰 섰다.
끼익—
그리고 곧 작은 소음을 내며 정문의 철문이 열렸다.
“오셨습니까. 위라크님.”
문 안쪽에는 집사복을 입은 창백한 안색의 중년이 기다리고 있다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그래. 나는 식사를 좀 해야겠군. 항상 먹던 걸로 준비해라.”
“이쪽 분은···?”
“아— 이번에 새로 만든 잔혈이다. 대충 애들 붙여서 안내해줘.”
집사가 나를 보며 묻자 위라크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답하고는 건물 안으로 발을 옮겼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아, 예.”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저는 서번트에 불과하니까요.”
아무래도 서번트는 잔혈인 나보다 낮은 계급인 것 같았다.
중년 집사를 따라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안쪽에 서 있던 집사 중 하나가 다가왔다.
“여기서부턴 이 친구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헤이든, 이번에 피를 계승하신 분이니 불편하신 것 없도록 도와드리게.”
“알겠습니다. 집사장님.”
중년의 집사장은 다시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헤이든의 안내를 받아 화려한 내부를 이동하며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곳은 ‘브로코슬락 클랜’의 아잔투 지부입니다. 위라크님은 이 도시에서 세 분뿐인 순혈이시지요.”
그 셋 중에서도 위라크는 이 도시의 뱀파이어들을 모두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생각나는 대로 질문과 답변을 적당히 주고받다 보니 방문 앞에 도착했다.
“오늘부터 이쪽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안쪽의 종을 흔들어 주십시오.”
헤이든은 꾸벅 인사하더니 발걸음 소리도 없이 물러갔다.
철컥—
“와우···.”
방문을 열자 화려한 방의 내부가 눈을 어지럽혔다.
테이블과 소파, 침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사치의 끝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벽에 위치한 아름다운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창백한 인상의 날카롭게 생긴 차가운 미남.
평소에도 나름 훈남은 된다고 자부했지만, 뱀파이어가 되면서 명실상부한 꽃미남이 되었다.
‘이건 나쁘지 않을지도···. 그보다 이곳의 뱀파이어는 거울에 모습이 비치는구나.’
풀썩—
나는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웠다.
자다가 중간에 깬 데다가 아직 동이 트려면 한참 남았지만, 뱀파이어가 된 영향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으며 새로 얻은 정보들을 정리했다.
뱀파이어로서의 교육은 조만간 선배인 잔혈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라 하며, 헤이든은 일단 기본적인 것들 위주로 알려주었다.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밤에 행동하며 해가 있을 때 잠을 자는 야행성이었다.
그도 그럴 게 서번트 이하의 저급 흡혈귀는 영화에서처럼 햇빛에 불타버리고, 고위 뱀파이어라 해도 힘에 제약이 생기는지라 태양이 있을 때는 잘 나가지 않는다고.
“아··· 내가 말도 없이 사라지면 애들이 걱정할 텐데.”
교육이 끝나면 마음대로 나갈 수 있다고 하니, 며칠 동안은 어쩔 수 없었다.
똑똑—
“헤이든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헤이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헤이든의 한 손에는 쟁반이 들려있었고 그 위엔 빨간 액체가 가득 담긴 와인잔이 놓여 있었다.
‘저건 역시··· 진짜 와인은 아니겠지?’
“피를 계승하신 지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슬슬 배가 고프실 것 같아서 준비해 왔습니다.”
“아니, 아직 그렇게 고프진 않은···데?”
방금까진 정말 괜찮았는데, 헤이든이 가져온 피 냄새를 맡는 순간 갑작스레 급격한 갈증이 찾아왔다.
당황하고 있자니 헤이든이 내 앞에 와인잔을 들이밀었다.
“방금 짜낸 신선한 혈액입니다. 어서 드시지요.”
피가 가까이 다가오자 몸이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송곳니가 삐져나오고 시선은 와인잔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온몸이 떨려온다.
‘···이게 금단증상인가? 이 정도면 뱀파이어는 진짜로 흡혈 충동을 못 참겠는데?’
물론 나는 예외였다.
육체의 반사적인 반응은 어쩔 수 없지만 「마인드 허브」로 충동을 제어할 수 있으니, 나의 통제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흡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일단 마셔야겠지?’
마시지 않으면 괜한 의심을 살 테고,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향긋한 피 냄새가 느껴진다.
‘역시 그냥 마시는 건 위험하겠지.’
피를 맛있다고 여기게 되면 안 되니까.
잔을 입술에 대며 하인즈와 통하는 후각과 미각을 차단했다.
꿀꺽꿀꺽···
맛이 느껴지지 않는 피를 들이켤수록 몸이 진정되어 간다.
각성제를 마신 것 마냥 정신이 또렷해지고 힘도 더 수월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잔혈이신 로실리카님께서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교육은 내일부터지만 간단하게 인사나 나누자고 하시더군요.”
다 마신 와인잔을 받아드는 헤이든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야 할 일, 빨리 끝내는 것이 더 좋았으니까.
그렇게 잠시 기다린 나는 곧 다른 뱀파이어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안녕? 반가워 신입~. 나는 로실리카라고 부르면 돼. 너는 이름이 뭐야?”
“반갑습니다. 저는 하인즈라고 합니다.”
“딱딱하게 굴지 말고 편하게 말해도 돼~. 같은 잔혈이잖아. 우리는 같은 계급끼리는 서로 평등하니까.”
로실리카의 첫인상은 활기찬 미인이었다.
화사한 외모에 발랄한 미소, 사교적인 모습.
처음 인사할 때까지만 해도 호감이 생길 정도였지만, 그 감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잘생긴 남자의 피거든? 근육은 많을수록 좋아. 그러고 보니 너 딱 내 취향이다? 네가 아직 인간이었으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 빨아먹어 버렸을 텐데. 꺄하하핫~.”
이건 그냥 광년이었다.
“저기, 로실리카. 너의 혈액 취향은 됐으니까 그 계급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을래? 내가 막 뱀파이어가 돼서 아는 게 없거든.”
“에이~ 그래. 그러고 보니 넌 아직 마신 피도 별로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취향이 생기면 서로 추천하는 걸로 시음회 한번 하자.”
절대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계급은 네 번째. 성혈, 진혈, 순혈 다음이지. 밑에는 서번트와 슬레이브밖에 없으니 사실상 말단이야. 걔네는 뱀파이어 취급도 안 해주거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번트는 이 저택의 사용인들 같은 시종들을, 슬레이브는 이지가 없는 흡혈 괴물들을 통칭한다고 한다.
‘잔혈이 된 것도 운이 좋았던 거구나.’
때마침 하나가 죽은 마당에 내가 쓸 만해 보여서였으리라.
“굳이 비교하자면~ 잔혈은 기사 계급이지. 순혈은 귀족이라 할 수 있고. 진혈은 왕족, 클랜의 수뇌부지. 성혈은··· 그냥 신앙의 대상이야.”
“신앙?”
“우리의 시조이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대상. 태초의 지고한 존재.”
경외하듯 읊조리던 로실리카는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 봤자 우리 같은 말단은 평생 한 번도 볼일은 없겠지만.”
로실리카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밖에 동이 터 오는 것이 느껴졌다.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교육을 계속하자. 나는 이제 자야 할 시간이거든. 미인은 잠꾸러기라잖아~?”
찡긋 윙크한 로실리카는 이내 방을 나섰다.
‘늦은 시간이라고···.’
나는 잠깐 느껴지는 괴리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날이 밝아지자 살짝 피곤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해져야겠지.’
***
이후 며칠간 로실리카와 대화를 나누고 직접 몸을 움직여 가면서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틀째 되는 날에는 숙소에 두고 온 짐이 있다는 핑계로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사실 슬쩍 꺼내 본 말인데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이야.’
교육을 담당하던 로실리카에게 그에 대한 말을 꺼내자 반응은 굉장히 담백했다.
“그냥 지금 갔다 와.”
“응? 교육이 끝나기 전에는 못 나가는 거 아니야?”
“아니 뭐~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는데. 여기선 신경 안 써도 괜찮아.”
들어보니 그 규칙은 이제 막 뱀파이어가 된 신입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아잔투는 이미 그들이 지배하는 곳이니 딱히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상위 계급에 절대복종하는 뱀파이어의 특성상, 반역은 꿈도 못 꾸는 것이었으니 따질 필요도 없었고.
덕분에 저녁에 슬쩍 밖에 나와 짐을 챙기고 남매에게 인사하러 갈 수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어디 갔다가 이제 오신 거예요! 숙소에 찾아가도 방에 없고. 걱정했잖아요!”
내가 찾아가자 남매는 곧바로 품에 안겨 왔다.
그러던 것도 잠시, 디아나는 코를 킁킁대다 몸을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에 나는 쓴웃음을 짓고 남매와 몸을 떨어뜨렸다.
“뭐, 그렇게 됐다. 그래도 너희한텐 피해가 안 가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꾸욱—
몸을 떨어뜨리려 했는데 디아나는 오히려 나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 안 해요. 저기, 아저씨? 피가 필요하면 제 피 마셔도 괜찮아요. 너, 너무 많이는 말구요. 그··· 쪼금만이라면?”
힐끔힐끔 아론의 눈치를 보며 작게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꿀밤을 먹여주었다.
“아얏! 으··· 무슨 짓이에요!”
“너야말로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됐으니까 일단 이 돈 가지고 생활해. 내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내가 도시의 수뇌부가 되었지만 역시 이 아이들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같은 잔혈에게라면 모를까, 순혈인 위라크가 이 남매를 잡아먹고자 한다면 하위 계급인 나는 지킬 수 없었으니까.
‘일단 한스를 부를 수만 있다면 선택지가 늘어날 거야.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얌전히 지내자.’
그렇게 남매와 인사를 나눈 후로 저택에 돌아와 로실리카와 교육을 이어갔다.
뱀파이어들이 쓰는 기운, ‘혈마력’을 다루는 법.
“뭐야? 너 처음 맞아? 왜 이렇게 잘해!”
정신력이 높은 덕인지 흑마력을 다뤄본 한스의 경험 탓인지, 기운을 사용하는 것은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뱀파이어로서 조심해야 할 것.
“마늘? 상관없는데~ 그게 왜? 물? 나 온천 좋아해. 저택 지하에도 하나 있는데.”
이 세계의 뱀파이어는 약점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태양 빛에 약해지고 은제 무기에는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정도?
그나마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어. 우리가 진짜 조심해야 할 것은 신성력뿐이야. 아무래도 상극이니까.”
그렇게 나는 뱀파이어로서의 교양을 하나씩 쌓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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