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83)
#183
마왕성 탈출 작전 (5)
황녀와 헤스페론의 탈출 과정에서 올리비아가 개입한 건 원래 예정에 없던 내용이었다.
일부러 자리를 비우게 한 시아나의 관할 구역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설마 그녀가 곧바로 눈치채고 찾아올 줄은 몰랐으니까.
과연 불사성의 관리 총책임자에 어울리는 꼼꼼한 일 처리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사성 내에서 가장 바쁠 텐데,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알아서 챙기고 말이야. 유능해도 과하게 유능한 인재로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지금에서야 편하게 말하는 거지만, 사실 처음 그녀가 등장했을 때는 그도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 작전 개시일을 ‘한스’가 방문하는 날로 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판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뻔하지 않았는가?
‘다행히 그 상황을 이용한 덕에 처음 예상보다 좋은 흐름으로 이어갈 수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극적인 효과가 가미되며 비장함이 부각되고, 갑작스레 맞닥뜨린 위기에 라일리와의 유대감이 더 깊어진 게 컸다.
‘이후에 황녀 앞에서 사용한 능력을 다시 재현하는 건 어렵겠지만···. 뭐, 그때는 위기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거였다고 둘러대면 되려나.’
당연하게도, 도중에 올리비아의 방해를 차단하고 그 둘을 멀리 이동시킨 것은 불사왕 한스가 몰래 개입한 것이었다.
이 ‘영겁의 미궁’의 주인인 그는 의지만으로도 내부 공간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었기에, 그 정도는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헤스페론도 이제 빠르게 강해질 테니까. 나중엔 자력으로 비슷한 능력을 보일 수 있겠지.’
앞으로는 5황녀의 전폭적인 후원까지 받으며 안락한 환경에서 쑥쑥 성장해 나갈 수 있을 터.
덤으로 딸려 오는 카르마도 만만치 않을 테니,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전개라 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불사왕이시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지금, 한스는 불사성 내의 언데드 제작 공방에서 아크리치 드웰과 마주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살마’의 사전 공정이 드디어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래봤자 지구 시간으로는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뿐이지만.’
거기다 원래라면 온갖 희귀한 재료를 때려 박고도 약 일 년간의 숙성이 필요한 과정이었으나, 심연과 죽음의 기운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덕분인지 고작 두 달 남짓한 시간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크흐흣— 수고했다, 드웰. 상당히 번거로웠을 텐데 잘해 주었구나.] [과찬이십니다! 이 드웰 맥케인, 왕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다른 개체들의 공정도 확실하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가벼운 치하에 감격하며 바닥에 엎드리는 그를 뒤로하고, 한스는 심연이 가득 담긴 인큐베이터 안에 고요히 떠 있는 인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초월급 각성자의 사체인 살마.
아직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게선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구의 각성자인 데다가 무공을 익힌 현경의 고수를 심연까지 사용해 언데드로 만들다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되는데.’
그 바탕이 되는 존재가 특별한 만큼 그걸 이용하는 언데드화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간 세상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개체가 아니라, 아예 완전히 새로운 공정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불사의 심장」의 보조를 받은 「금단의 지식」을 통해 기틀을 잡고, 「사악한 지혜」와 「마도의 길」로 다시 한번 조율을 거쳤다.
이후 「심연의 눈」으로 심연이 지날 통로를 다듬고 「마력 지배」로 술식을 최적화하는 등, 그가 가진 모든 스킬을 총동원한 결과가 바로 저것.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불사왕 한스의 오리지널 언데드, 가칭 ‘어비스 레버넌트(Abyss Revenant)’였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남은 개체들도 이렇게만 하도록.] [네! 맡겨만 주십시오!]그렇게 한스는 마지막 공정만을 남겨둔 살마를 회수하고, 이곳에서의 일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한 뒤에 조용히 지구로 넘어갔다.
다시 ‘불사왕’이 아닌 ‘하회탈’이 되기 위해서.
***
불사성을 탈출한 직후.
라일리는 헤스페론을 등에 업고 연신 주변을 경계하며 남쪽으로 이동했다.
아직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으나, 치안이 확보된 곳은 아닌 듯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너무 많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후우— 후우—.”
“···라일리? 나 이제 괜찮다니까? 알아서 걸을 수 있···.”
“아, 시끄러워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괜찮아져? 괜히 무리하지 말고 얌전히 업혀있기나 하라고! 후아—.”
그렇게 이동한 지 몇 시간.
마법까지 사용했음에도 벌써 녹초가 되어버린 그녀는 겨우겨우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버틴 것만도 대단하다 봐야겠지.’
아무리 강화 마법을 사용했다 한들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으니.
이런 보조 마법은 기존의 신체 능력이 높을수록 효율도 증가하는 법이었는데, 평소 육체노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그녀는 그것과 그리 궁합이 좋지 못했다.
당연히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무리하게 마력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고, 안 그래도 경지가 그리 높지 않은 그녀는 그 최악의 효율로 줄줄 새어 나가는 마력 때문에 더욱 빠르게 지쳐갔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이동을 방해하는 요소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는데···.
“···라일리, 또 온다.”
“윽! 대체 이걸로 몇 번째인지. 설마 여기 아직 북부 산맥 내부인 건 아니겠죠?”
헥헥거리면서도 부지런히 발을 놀리던 라일리는 등 뒤에서 속삭이는 헤스페론의 말에 나직한 불평을 토하며 서둘러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고.
이어서 그곳을 중심으로 발동한 작은 결계가 공간을 격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륵— 크훅—!”
“크헤헥!”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듯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다행히 이동 중에도 발동하고 있던 기척 차단 마도구 덕분인지, 이쪽의 존재를 눈치채고 쫓아온 놈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갔나요?”
“음, 그냥 지나가던 놈들 같네.”
“후우— 고작 두어 시간 만에 마주한 무리가 벌써 스물에 가까운데, 아무리 봐도 여기가 북부 산맥 내부인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도시 바깥이 어디나 다 이러지는 않겠죠?”
“어? 나야 지금이 처음 밖으로 나온 건데 모르지···?”
“알아요,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그렇다면 역시 후보지는 한 곳밖에 없네. 아니, 사실 당연하다고 봐야 하려나.”
불사왕이 자리 잡은 곳의 남쪽에 있으면서, 북부 산맥과 인접한 곳.
그러면서 최근 방어선이 무너져 결국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 영토.
“로한 공국. 제국 북쪽의 작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네요. 제가 아는 건 잡혀 오기 전의 정보가 전부라.”
이왕 자리를 깔고 앉은 김에 잠시 쉬기도 할 겸, 그녀는 이곳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헤스페론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이런 환경 속에서 하급 마법사들··· 그것도 곱게 자란 황녀와 골골거리는 환자 둘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자, 받아. 여기 마실 것도.”
“고마워요, 헤론. 이건 또 처음 보는 메뉴네요?”
자칭 ‘고유스킬’인 「아바타 클라우드」의 물자 공급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음식과 음료, 옷가지와 침낭 등을 비롯한 야영 도구는 물론이고···.
“크허엉—!”
“컹컹!”
두두두—
“아, 또 지나가네. 여기가 놈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인가.”
“그런데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네요. 이만한 마도구는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공짜는 아니니까. 무한정 쓸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
“그렇겠죠? 하긴 무리한 것 때문에 한동안 공간 이동도 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기척 차단과 주변 감지, 격리 결계 등의 온갖 마도구들까지.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든 쉽게 공급할 수 있는 만큼, 큰 문제만 없다면 몸을 숨기며 움직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이동해 볼까?”
“그래요, 쉴 만큼 쉬기도 했고. 자! 어서 이리 업히세요, 헤론!”
“이제 걷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니까. 나중에 힘들면 말할 테니까 일단 출발하자.”
“어휴— 사람이 걱정해 줘도.”
“자자, 어서 가자고.”
그래, ‘큰 문제’만 없다면.
하지만 이곳은 이미 패망한 로한 공국의 영역.
광기에 잠식된 몬스터들에게 수도를 제외한 모든 땅을 빼앗겨, 지금도 주신교단과 제국군의 도움으로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인 마경이었다.
그런데 숫자만 많은 하급 몬스터들에게 국가 하나가 그렇게까지 거덜 날 리가 없지 않은가?
응당 이곳에도 혼자서 부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괴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후우웅— 후웅—!
최상위 몬스터들의 감각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했고.
“···아, 젠장.”
“헤론? 갑자기 왜 그러시···.”
그 움직임은 범인의 인지를 벗어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쐐애애액—!
결계를 해제하고 한창 이동을 시작하던 도중.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헤스페론의 귓가에 닿았을 땐, 이미 ‘그 존재’가 그들의 지척까지 다가온 뒤였다.
‘위험!’
치닫는 위기감에 사고가 가속하며 주위의 시간이 서서히 느려졌다.
한순간에 증폭된 그의 초인적인 정신력이 찰나 만에 사태를 분석했고.
이내 모든 상황을 파악한 그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체내를 휘돈 마력이 신체 능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그 몸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었으며···.
“읍?!”
이어서 옆에 있던 라일리를 끌어안고 뒤쪽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내던졌다.
한 손으로는 그들의 모습을 감출 결계 마도구를 발동시키면서.
그 직후.
콰아아앙—!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자욱한 흙먼지가 폭발적으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끼에에에엑—!”
후우웅—!
사방을 뒤흔드는 광포한 포효와 함께 거센 날갯짓이 한순간에 주변 흙먼지를 사방으로 흩어버렸다.
그로 인해 드러난 거대한 체구의 사자 몸통에 독수리 머리와 날개.
광기가 가득한 두 눈엔 새빨간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시선은 연신 주변을 살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부리에서는 침이 뚝뚝 흘러내리는 상태로.
“···그리폰.”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그 압도적인 위용을 바라보던 라일리가 억누르듯이 낮게 중얼거렸다.
‘분명 제대로 확인하고 결계를 해제했었는데!’
탐지 마도구로 주변의 위험 요소를 살펴보고, 기척 차단 마도구까지 확실히 챙긴 후에야 결계를 나섰거늘.
빠르게 반응해서 대응한 헤스페론이 아니었으면 첫 강습에 그냥 모든 게 끝날 뻔하지 않았는가?
‘아니, 사실 지금 상황도 그리 좋다고 볼 수는 없지.’
한순간에 발동한 결계로 일시적으로 그들을 놓친 것 같지만, 그리폰은 오우거와도 맞상대할 수 있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비행 몬스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까다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본격적으로 우릴 찾기 시작하면 이 결계도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그 전에 어떻게든 방책을 마련해야 해.’
즉, 지금도 언제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위기인 건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후우, 그래도 역시 헤론은 대단하네요. 이번에도 신세를 졌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 헤론? 잠깐, 당신 괜찮아요?”
긴장되는 마음에 최대한 조용히 말하던 라일리가 멈칫하곤, 자기를 끌어안은 채 미동도 없는 그의 등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철퍽—
“아?”
그 손에 닿는 미끌미끌하고 불쾌한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황급히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살피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강습 공격을 온전히 피하진 못한 듯, 길게 찢어진 그의 등에선 연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그 충격의 여파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기도 했고.
“···포션, 포션이 있었는데.”
라일리는 헤스페론이 비상용으로 준비해두었던 포션을 뜯어 서둘러 그의 등에 뿌렸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응급조치에 불과할 뿐,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더욱 전문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이제 어떻···?”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 일로를 걸을 뿐이었으니.
갑작스레 느껴진 불길한 기척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그녀는···.
“끼엑?”
“······!”
한 쌍의 붉은 눈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그리폰이 고개를 바짝 숙여 결계 내부의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짧은 정적이 흐르고.
“끼에에에엑—!”
“아, 젠장.”
광기에 찬 포효 소리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그녀의 한탄이 한데 뒤섞였다.
‘기껏 불사왕의 손에서 벗어났는데!’
그런 억울함을 뒤로 하고 라일리는 바닥에 쓰러진 헤스페론을 감싸 안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
하지만 그랬기에 그녀는 미처 볼 수 없었다.
그가 힘겹게 뜬 한쪽 눈으로 그리폰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그 직후.
파아앗—
“끼에엑?!”
새벽을 가르는 여명처럼 환한 빛무리가 터져 나온 것과 동시에.
그 안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거대한 빛의 검이 세상을 가를 듯이 휘둘러졌다.
“흐읍—!”
스카카칵—!
푸확—
그 중앙에 정확히 그리폰을 둔 채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듯,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밀집된 채 한계까지 날카롭게 벼려진 빛의 검.
아무리 광기로 강화된 최상위 몬스터라 할지라도 일개 마물에 불과한 존재가 그만한 기습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키헥, 끼— 끄헥!”
쿠웅!
비틀거리던 커다란 동체가 쓰러지며 무거운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압도적인 등장과는 대비되는 그리핀의 허무한 퇴장이었으나, 사실 그 상대를 생각한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리라.
“아··· 아? ···서, 설마. 성자님이신가요?”
“오랜만입니다, 황녀님. 혹시나 했는데 설마 정말 여기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과연 주신의 인도하심이로군요.”
전신에 빛의 아우라를 두른 채, 엉망이 된 라일리 황녀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웃는 사내.
그가 바로 주신교단의 성자이자 세상을 구원할 용사.
하인리히 세인트 랜드가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