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89)
#189
제국의 황궁 (3)
용사 파티와 헤스페론이 라일리 5황녀를 황궁에 데려다준 후.
하인리히의 요청으로 번거로운 절차 등은 생략했다지만, 그렇다고 그게 제국 측의 예우가 부족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파티의 리더가 성자라는 점을 떠나서 제국의 황족을 구해준 은인들을 대접하는 것은 황실의 위신과 직결된 문제였다.
하물며 그 황녀가 최유력 황위 계승 후보인 데다 현 황제의 암묵적 지지까지 받게 된 상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주어진 대우도 호화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 거대한 귀빈 숙소에는 아무 물건 하나만 팔아도 서민들의 년 단위 생활비는 나올 것 같은 비싼 물건이 즐비해 있었고.
식당 주방에는 언제 어떤 요리를 요청해도 응할 수 있는 황실 요리사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또 곳곳에는 베테랑 시녀들이 배치되어 그 어떤 불편 사항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꼼꼼하게 사방을 체크하고 다녔다.
그것도 있는 듯 없는 듯 발소리와 기척을 한계까지 줄인 유령 같은 걸음걸이로.
‘대단하군. 황실 시녀들은 은신술도 따로 배우는 건가? 제법 경지도 높아 보이는데, 유사시 호위 인원으로도 사용할 수 있겠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호화로운 숙소에서 오래 숙박하며 쉴 형편이 되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용사 파티에게는 그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으니까.
“으하하핫! 역시 제국이라서인지 통이 아주 크구만!”
“오오— 금화가 번쩍번쩍하네요.”
물론 황실 측에서도 단순히 대우만으로 퉁 치려 한 건 아니었다.
좀 더 직접적이면서 물질적인 대가도 추가로 제시했던 것.
최고급 명품 장비들을 모든 인원에게 맞춤으로 수선해서 선물했고, 활동비 명목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들도 주신교단의 후원을 받는 만큼 돈이 부족한 적은 없었으나, 원래 재화란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지 않나!
“이것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군. 어떠냐, 헤론?”
“크~ 한층 더 위엄 있어 보이십니다, 형님!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듯한 야성이 느껴지는 것이 아주 오싹하네요!”
거기다 센스 있게도 할리에게는 일반적인 장비가 아닌, 장식용으로 벽에나 걸어뒀을 법한 최상급 마수 ‘샤벨 라이온’의 가죽을 가공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마수 머리 투구 망토’를 만들어 주었는데···.
과연 황실 소속 장인의 손길이 닿았는지 그 또한 평범한 장비가 아니었다.
‘설마 이 짧은 시간 만에 이걸 마도구로 만들어서 선물해줄 줄이야.’
단순히 튼튼한 물건이 아닌 특별한 이능을 담고 있는 마도구.
물리, 마법 방어력 강화는 물론이고 주변의 상대에게 ‘위압’을 가하는 효과까지 있는 훌륭한 장비였다.
‘정상급 가죽 장인과 인챈트 마법사의 협력으로 만든 물건인가 보군.’
할리가 슬쩍 기운을 일으켜 투구의 내부를 살피고는 혀를 내둘렀다.
가죽으로 마감된 안쪽에 빼곡하게 박힌 마석들과 치밀하게 구성된 마력 회로가 느껴졌다.
‘로한 공국에서 라일리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부터 제작에 들어갔더라도 여유 시간이 고작 사나흘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고. ···이게 제국 황실의 저력인가.’
확실히 급하게 만들긴 했는지 회로 자체가 단조로워 복잡한 기능은 넣지 못한 것 같았지만, 어차피 할리의 전투 방식에는 복잡하고 섬세한 기능보다는 단순하더라도 안정성을 우선한 지금이 훨씬 더 적합했다.
아무리 봐도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음, 역시.’
잠시 투구에 신경이 팔렸던 할리의 시선이 앞에서 멀뚱히 서 있는 맹한 표정의 헤스페론에게로 향했다.
‘좋아, 이쪽 길도 병행하도록 하자.’
소환 마법사에서부터 시작한 헤스페론의 진로가 정통 마법사, 전투 마법사를 거쳐 부여 마법사까지 뻗어나가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세계수의 가지를 태워가며 한창 드워프의 비기를 배우고 있는 하워드도 이능을 담은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될 테지만, 거기에다 인챈트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효과는 훨씬 더 배가되지 않겠는가?
‘그건 아무리 한스라도 할 수 없는 거니까 말이야.’
물론 마도구 자체는 한스도 만들 수 있긴 했다.
문제는 그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물건이 아닌, 흑마력으로 가동되는 음습하고 사악한 저주 아이템이라는 것이었지만.
‘···그건 태생상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굳이 한 사람이 모두 다 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사람마다 가진 재능은 각기 다른 법.
이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그들이 서로 협력하면 되는 문제였다!
‘해리스가 가져다준 세계수의 가지를 이용해 하워드가 물건을 만들고, 한스의 자문을 받아 헤스페론이 인챈트를 새기고.’
거기다 기타 물자 공급은 휴버트가, 몬스터 부산물은 할리가 구해오면 된다.
‘제작 과정 내내 하인리히의 신성한 불길을 더하면 유사 성검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한스의 심연을 이용하면 최악의 마검이 탄생할지도.’
또 하인즈 2세의 피로 담금질한다면 혈마력을 이용한 무구도 만들 수 있겠지.
여럿이서 힘을 합한다면 이렇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역시 함께하는 삶, 협력은 아름다운 거야.’
그렇게 용사 파티가 황궁을 떠나기 직전.
할리가 씨익 흉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것과 동시에.
헤스페론의 얼굴에 헤픈 웃음이, 하인리히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우연히도···.
아주 먼 곳에 있는 몇몇의 입가에도 비슷한 웃음이 머무르고 있었다.
***
역천의 서약이란 조직은 ‘인간의 신’의 사도인 혁명가가 주도해 만든 것이긴 했지만, 그게 소속원들이 전부 그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가 모종의 방법을 통해서 은밀하게 수뇌부들을 끌어들이고, 타인의 욕망을 자극해 음지에서 세력을 규합하긴 했어도 결국 그 본질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 모인 연합체에 가까웠던 것이다.
덕분에 점조직으로서의 보안은 물론,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자율권을 가지고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으나···.
당연히 거기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르륵—
어두운 공간 속에서 타오르는 보랏빛 불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당장 튀어나와라! 혁명가 이놈! 이 찢어 죽일 놈이!]사방을 울리듯 분노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시끄럽구나···.] [키힛!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애타게 부르다니, 돈이라도 떼 먹혔나 본데? 키키킥!] [쯧, ···그러고 보니 그가 보이지 않는군. 리리스야 불사왕에게 당했다고 짐작하긴 했다만.]그 소란에 막 모습을 드러내던 검은 형체들이 하나둘 불평을 토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뭐라 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은 덩치 큰 그림자는 노발대발하며 연신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그래봤자 보이는 거라곤 화로에서 일렁거리는 보랏빛 불꽃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림자들밖에 없었지만.
그리고 그 덩치··· 역천의 서약 이온 대륙 남부 방면 책임자이자, 칼코스 부족 연맹의 대전사 발테온은 결국 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다 다른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크으— 거기 네놈들, 그 자식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다면 당장 털어놓아라! 감히 내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다니, 반드시 그놈을 찢어 죽이고 말 것이다!]그 말에 다른 세 그림자가 슬쩍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혁명가가 저 멍청한 야만인에게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잠적한 듯싶었다.
당연히 그들 또한 별달리 아는 바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으나,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둘과는 달리 나머지 한 명은 기다렸다는 듯 경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푸힛! 그 딱딱한 인간이 그랬단 말이지? 이거 이거, 내가 먼저 괴롭혀주고 싶었는데 선수를 빼앗겨 버렸네!] [뭐라?!] [카칵칵— 이것 봐, 이렇게 반응이 좋은데 어떻게 참아? 어라? 화났나?] [···일단 네놈의 혓바닥부터 먼저 뽑아 주마!] [힛, 에나멜 대륙까지 올 수 있으면 어디 그래 보시던가? 지금 그쪽 사정에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언쟁을 벌이기 시작한 두 사람에 의해 다시 한바탕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회의장.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마찰을 중재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던 이가 사라진 탓인지, 그 소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점차 격화되었다.
그것이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그를 지켜보기만 하던 한 그림자가 마지못해 점잖은 목소리로 그들을 타이르고 나섰다.
[후우— 우리끼리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그만하고 각자 용건만 꺼내고 빨리 끝내도록 하지. 그나저나 남은 건 이게 전부인가. 하나둘 줄어드는가 싶더니 결국 이 지경까지 와 버렸군.]말을 마친 이가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는 감정적이고 거친 언행의 야만인, 다른 하나는 남의 속을 긁지 못해 안달인 미친 광대, 마지막으로 시끄럽다는 첫마디 이후로 한마디도 없이 그저 구경만 하는 목석까지.
이제 정상인은 자기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확 실감 나는 라인업이었다.
‘이제 역천의 서약도 끝이군. 아쉽게 됐어. 가만, 그래서 혁명가가 잠적한 건가?’
그래도 이곳에서 한창 활발히 활동할 때는 서로 상부상조하며 나름대로 쏠솔한 이득도 거뒀었거늘.
여러모로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래서 뒤통수라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그들은 한결 진정한 발테온에게 전말을 전해 듣고서 그가 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남부에 방문한 혁명가가 일을 도와주겠다고 접근했다가 그가 방심한 사이에 애지중지하던 ‘광기의 씨앗’을 탈취해 사라져 버렸다는 것.
물론 그것을 심연에서 꺼내는 데엔 조직 차원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던 만큼 그게 온전히 발테온만의 것이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완성하고 성공한 것은 엄연히 그의 총괄하에서였고, 따라서 당장의 우선권 또한 그에게 있는 걸로 합의가 끝난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놈이 그걸 무시하고 광기를 가져가는 바람에 계획이 전부 흐트러진 상황이란 말이다! 원래라면 2차 대륙 회의가 열리기 전에 모든 작업이 끝났을진대!]지금은 도저히 기한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흐음— 이미 합의된 계획을 무시하면서까지 일을 벌였다는 거군. 그렇다는 건 역시···.] [푸히힛, 이제 그런 건 의미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하긴, 최근에 어그러진 작전이 어디 한두 개여야 말이지?] [···이미 뭔가를 눈치채고 독자 노선으로 돌아선 건가···.]그들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경직되었다.
이미 이탈자까지 나온 마당이었으니 이 모임도 이제 끝이라는 것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존재가 조직을 만든 자이자 실질적인 리더나 다름없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다만, 일단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킥, 그래서? 이대로 그간의 준비고 뭐고 다 버리고 다시 숨어들 생각인 건 아니겠지~?] [어림없는 소리! 이미 시작한 일,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다!] [몇 차례의 실패가 있었다곤 하나···, 전 대륙이 혼란스러운 지금이 최고의 기회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객관적으로 바로 이때가 일을 벌이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럼 별수 없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렇게라도 해야겠지.]하위 조직들은 물론 간부들마저 하나둘 사라져 이제 세력은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거기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나머지도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상황.
[키키킥~ 좋아, 좋아! 때마침 대륙 연합군이다 뭐다 하며 에나멜의 전력에 공백이 생긴 상황인데, 이참에 놈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주지!] [남부야 말할 것도 없다! 조금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정보 통제는 완벽하니 시간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다.] [동부는··· 좀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하나,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준비해 왔던 것들이 있으니···.]사실 딱히 작전이랄 것도 없었다.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최고의 효율을 추구하고, 덤으로 연계 효과까지 계산했던 전과는 다르게.
그저 그들이 꾸준히 준비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풀어놓을 뿐이었으니까.
‘변수를 예상하고 시행한 작전들이 하나같이 처참하게 박살 난 것이 문제지. 괜히 이쪽이 입는 손실을 최소화하겠다고 효율 따지다가 오히려 판이 통째로 엎어져 버리지 않았나. 차라리 진즉에 이렇게 했어야 했다.’
앞선 세 사람의 대답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점잖은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중부 지역··· 제국은 다시 돌아온 5황녀만 처리하면 구심점을 잃고 알아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다만 이쪽은 미리 안배된 게 없다는 게 문제인데···.]애초에 황태자와 황녀가 불사왕에게 납치당한 건 물론이고, 그러고도 황녀 혼자 탈출해 귀환에 성공한 일은 정말 상상치도 못한 전개였다.
당연히 따로 준비된 수단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래도 2차 대륙 정상 회의가 끝난 직후를 목표로 최대한 서둘러 보도록 하지. ···아쉽군, 리리스가 남아있었다면 더 편했을 것을.]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불사왕이 대부분의 혐의를 대신 뒤집어쓴 탓인지, 그간 벌인 사건·사고에 비해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역천의 서약.
그들의 마지막 발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