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193)
#193
정착자 (4)
아우테리카는 마법을 비롯해 온갖 환상적인 요소가 가득한 판타지 세계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서양의 중세 시대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마법이나 오러 등의 신비는 나름대로 고급 지식에 속했기에 평범한 백성들이 접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운 좋게 뛰어난 재능이 발견되어 누군가의 제자로 들어가거나, 아예 목숨 걸고 칼밥을 먹지 않는 한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환경이었으니 당연히 치안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거기다 맹수조차 피하는 몬스터들이 산야를 활보하기까지 하니 그 위험성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물며 대륙에 ‘광기’까지 퍼진 지금이라면?
이 세상에서 예상치 못한 변을 당해 목숨을 잃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또 그렇게 발생한 죽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비극이 있었으니.
바로, 보호자를 잃고 방치된 아이들이 앞으론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안타깝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대륙 곳곳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일일 터.
하지만 그런 사정도 여기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야! 그거 내 꺼야! 이리 줘!”
“에베베베~ 나 잡아 봐라~!”
“얘들아, 조심해야지! 그러다 다쳐!”
시끌벅적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체하이의 보육원.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으나, 이곳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안뜰의 테라스 한편에서.
“언니, 언니는 도시에서 왔다면서요?”
“와! 도시는 얼마나 커요? 사람들도 많아요? 얼마 전에 우리 마을에서 축제가 있었는데요,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그것보다 많아요?”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어린 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이세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방문한 외지인 중엔 그녀가 가장 어려 보였던지라 아이들에게도 더 편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도 있었는데···.
“오오!”
“와아아—!”
“후우, 후우— 나 했다? 진짜 했다고! 자, 다음은 누구 차례야?”
안뜰에 옹기종기 모인 남자아이들의 환호성 사이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의기양양한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빌리 아냐? 분명 그랬던 것 같은···.”
“무슨 소리야? 네 차례잖아, 한스! 설마 겁먹은 거야?”
“우우~ 한스는 겁쟁이래요!”
“아, 아니야! 그냥 깜빡한 것뿐이라고! 가면 될 거 아냐?”
한스라 불린 열 살 남짓한 소년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 손에 육포 조각을 쥔 채 정원수가 울창하게 자라난 구석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치 위험 지역을 탐사하기라도 하듯 조심스러운 걸음걸이가 이어진 끝에···.
“으와아악—!”
겨우 목표를 완수한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친구들을 향해 내달렸다.
괴물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사색이 된 채로.
그렇게 소년이 다녀간 정원 구석의 그늘진 곳.
“흐음! 훌륭한 전사의 자질이 보이는 아이들이로군.”
우물우물—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던 할리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입 안에 들어온 육포를 씹었다.
방금 한스라는 소년이 넣어주고 간 육포를.
지금 소년들이 하고 있는 건 일종의 담력 놀이였다.
아무리 그가 최대한 기세를 죽인 상태였다지만, 세포 깊숙이 스며들어 은연중에 새어 나오는 광포함은 여전히 어린아이들이 마주하긴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구석에 숨어있던 참이었는데, 그걸 또 굳이 찾아와서 놀잇거리로 삼아버리다니···.
“크하하핫! 자신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지름길이지! 스스로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배웠으니, 너흰 앞으로 좋은 전사가 될 수 있을 거다! 하핫핫!”
그 대견함에 할리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건 그의 입장에서였고, 밖에 있는 아이들에겐 음침한 나무 그늘 사이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일 뿐이었다.
그에 다음 순번이었던 아이가 울상을 지었지만··· 그 또한 강해지기 위한 시련이라 봐야겠지.
또 이렇게 보육원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건 그들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미 아이들과 안면이 있던 지오스는 이제 제법 성장해 바깥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아이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하인리히는 마치 토템처럼 영유아들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스페론은···.
“자, 이거부터 들고 하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일대일로 체하이에게 강의를 받던 그는 간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다가온 부인을 향해 인사하며 냉큼 그것을 받았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부드러운 눈매를 한 중년 여성.
그녀가 바로 체하이의 아내이며 이 보육원의 안주인이자 이곳 모든 아이의 어머니인 사람이었다.
‘이분도 대단한 분이란 말이지.’
사실 돈이야 체하이가 용병 일을 하며 모아둔 것과 지오스가 지원해 준 게 많다고 하니 큰 문제는 아닐 터이나, 이 많은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20년간 싫은 소리는커녕 오히려 매일 같이 솔선해서 아이들을 챙겨왔다고 하니···.
과연 체하이가 결혼 하나는 잘했다고 생각될 정도의 성품이었다.
“크흠, 그럼 잠시 쉬었다 하도록 하지. 난 잠시 애들 좀 보러 갔다 올 테니 편히 쉬고 있으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여유가 나자, 체하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를 내버려 두고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헤스페론을 교육하는 동안엔 그가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만큼, 다른 일행들이 그 역할을 대신 맡아주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계속해오던 일을 남에게만 맡겨두기엔 조금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흐음, 고유스킬이라.”
방 안에 혼자 남은 헤스페론이 음료를 홀짝이며 조금 전에 떠올랐던 시스템 문구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카르마 없이 「아바타」 스킬이 성장한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군. 확실히 최근엔 그냥 주어진 걸 사용하기만 했을 뿐 별다른 고민이 없긴 했지.’
고유스킬을 강화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깊은 고찰과 꾸준한 숙련을 통한 점진적인 성장, 그리고 카르마 상점을 이용해 단번에 진화시키는 것.
지금까지 그는 압도적인 카르마 수급을 바탕으로 후자의 방법에만 집중해 왔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고유스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강화의 조건을 달성한 듯싶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시스템 문구가 떠오를 정도로 스킬이 성장했던 게, 할리의 신체 개조가 끝난 직후가 마지막이었던가?’
그 후로도 자잘하게 효율이 상승하거나 아바타 간 정신력 배분이 자유로워지는 등의 개선은 있었으나, 이렇게 시스템이 공언해 줄 정도의 강화가 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휴버트를 만들고 상인으로 키우기 시작했으니, 상당히 오래전이네.’
다른 각성자라면 포인트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자연스럽게 스킬에 대해 파고들고 성장하기를 반복했을 텐데, 카르마가 풍족했던 그는 그저 그 편리함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스킬에 대한 고찰 없이 그저 상점을 통한 강화에 의지했을 뿐.
‘그렇다고 쓸 수 있는 패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겠지만. 뭐, 앞으로 좀 더 신경 쓰면 되겠지. 노력하는 부르주아가 되도록 하자.’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고,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된 것 아니겠는가?
체하이가 알려준 노하우는 기발하다고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혼자였다면 생각해내지 못했을 부분을 세밀하게 짚고 넘어갔다.
마법이나 신성력 등을 사용할 때의 감각이 아닌, 내면에 깃들어 스킬을 발동하도록 돕는 특별한 무언가.
그것을 좀 더 확실하게 자각하고, 능력 발동의 메커니즘을 파악해 더욱 효율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그 가르침의 골자였다.
애초에 서로 가진 능력 자체가 다른 만큼 특정한 기교보다는 조언에 가까운 수준이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도 그의 생각을 크게 바꿔놓기엔 충분했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이득이지. 고유스킬의 다음 강화 포인트가 무려 120만이었으니.’
물론 그게 카르마를 투자해 강화했을 때의 효과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아바타의 개체수가 늘었다는 것 자체만 해도 큰 소득이었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많은 감이 있었으나···.
‘다다익선이라— 있으면 다 어디든 쓸 일이 있겠지.’
턱을 쓰다듬던 그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체하이의 가르침은 고유스킬에 대한 조언에서 그치지 않았다.
헤스페론의 「아바타 클라우드」를 보고 자신과 비슷한 공간 계통 고유스킬이라 생각했는지, 그의 「위상굴절」을 이용해 만들었던 비전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던 것.
이왕 시작한 거 아예 완전히 다 퍼주기로 마음먹었는지, 그야말로 아낌없이 베푸는 스승 그 자체였다.
물론 그 기술은 그가 직접 오러를 사용하는 기술로 재구성했던지라, 마법사인 헤스페론이 직접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원리만큼은 충분히 다른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니.
‘이렇게 높은 수준의 이론을 혼자서···.’
과연 시스템이 사라진 이후 그가 얼마나 고유스킬에 매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걸 억지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제약이 생기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범용성과 자유로움이 완전히 ‘기술’이라는 틀에 얽매여 버리긴 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
‘혹시 이거 할리의 「생체 오러」로는 사용할 수 없을까?’
몬스터들이 가진 생체력을 가공해 만든 「생체 오러」는 일반적인 오러와 성질만 비슷할 뿐, 작용 기작은 전혀 다른 기운이었으나.
그래도 그와 가장 유사한 에너지인 만큼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다른 일행들이 사용하는 것도 허락받았으니, 지금 다 못 배우더라도 언제든 지오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이론을 정립한 건 체하이였지만, 그것을 전수받아 무수한 실전으로 기술을 더욱 가다듬었을 지오스의 숙련도도 그리 부족하진 않을 터였다.
그렇게 헤스페론이 지금까지 얻은 것과 앞으로 얻을 것 등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 있던 순간.
“수고했어요, 헤론.”
“아, 스승님.”
안뜰에 있던 이세아가 문을 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과연 그녀도 뭔가 소득이 있긴 했던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대마법사인 그녀의 감각과 사고능력은 범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안뜰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와중, 이 방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전부 듣고 머릿속에 정리하는 것 정돈 일도 아니라는 소리.
“과연 연륜은 무시할 수 없네요. 저도 라일리랑 머리를 맞대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녀의 자조 섞인 말에 헤스페론은 슬쩍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기는 깊은 고뇌는커녕 그저 탐스럽게 열린 결실을 탐닉하기에 바빴으니까.
“···그런데 스승님? 스승님은 언제 밝히실···.”
“크흠, 흠!”
헤스페론의 질문을 끊어내는 이세아의 헛기침.
그녀가 가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 방의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있을 터였다.
평소처럼 방음 결계를 치기 위해 남의 집에서 멋대로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참, 이제 슬슬 밝힐 법도 하지 않나.’
헤스페론은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슬쩍 외면하며 속으로 툴툴거렸다.
이제 파티에게만은 자기도 이세계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법도 한데, 그녀는 여전히 다른 이들에겐 그것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사실 그와 관련해서 한 번 넌지시 물어본 적도 있긴 했는데···.
그때 돌아온 대답이 참 어이가 없었다.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건 또 뭐야.’
헤스페론이 등장한 직후 바로 말을 꺼냈다면 모를까, 그로부터도 상당히 시간이 지난 지금 와선 뒤늦게 밝히기 민망하다는 것.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보니 지금까지 와 버렸다는데, 물론 그녀도 줄곧 감출 생각은 없으니 조만간 기회를 봐서 말을 꺼내겠다고만 할 뿐이었다.
‘···뭐, 진짜 이유가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그건 대충 둘러댄 걸 테고.’
애초에 이곳에 머문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라일리 황녀를 제외한 모두에게 줄곧 비밀로 감춰왔던 일이었으니.
이제 와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들에게 털어놓기엔 본능적인 저항감이 있는 게 당연하다.
‘쉽게 말해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헤스페론이야 라일리의 중재가 있었던 데다, 먼저 자신의 정체를 밝힌 입장이었으니 예외였고 말이다.
‘그래 봐야 이미 일행 중엔 지오스 빼곤 다 아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아니, 사실 단순히 아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이 가진 비밀에 비하면 그녀의 비밀은 귀여울 뿐.
실상 지오스를 제외한 모두가 이세계인이라는··· 그 충격적인 진실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혼자 전전긍긍하는 그녀가 귀엽긴 했지만, 헤스페론은 별다른 말 없이 웃기만 할 뿐 따로 뭐라 하지는 않았다.
이 작은 스승이 혼자 고민하고 고뇌하는 걸 보는 게 재밌었으니까.
그렇게 헤스페론과 용사 파티가 지오스의 고향 마을에 도착하고, 지구 출신의 정착자 체하이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성취를 얻었을 때는.
이미 2차 대륙 정상 회의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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