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
아바타 (1)
현시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었으며.
지금 사회가 혼란스러워진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전남의 한 상가 건물에서 큰불이 나서 소방 당국이 현재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방화범은 현장에서 도주 후 잠적하였으며, 이능관리국은 각성자의 이계전송 전 묻지마 범죄인 것으로···.
“요즘 따라 유난히 극성이네.”
나는 TV에서 떠들어대는 오늘의 뉴스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생환율이 낮은 이계 전송 전의 자포자기식 범죄. 그리고 돌아온 이들에 의한 혼란까지···.’
서기 2000년에 멸망한다는 종말론을 무시하듯, 그때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멀쩡하다.
‘아니, 멀쩡하다고 하기엔 너무 개판이지.’
세상이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인류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과도기의 피해자였다.
“······”
각성자의 테러로 가족들을 잃고 외톨이가 되어 방구석에 틀어박힌 지 벌써 2년이 다 되었다.
띵동—
갑자기 들려온 벨 소리.
나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불편해진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인터폰으로 향했다.
‘벌써 그날인가···.’
안면 있는 사람이 사무적인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능관리국 전송조사과에서 나왔습니다. 한성현 씨 되십니까?”
문을 열어 마주하자마자 들려온 사무적인 목소리.
몇 번 마주했지만, 저 양반은 볼 때마다 항상 저 소리다.
“예··· 뭐, 보시는 대로”
뚱한 대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조사관은, 전자 패드와 내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고는 곧바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예, 확인 되셨구요. 혹시 각성하시면 이능관리국에 신고 부탁드립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철컥—
반년 만에 있는 외부인과의 교류는 그렇게 1분도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각성과 전송이 무작위로 일어나다 보니, 누가 언제 각성해서 사라졌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법적으로야 각성 후 신고가 원칙이지만, 어디 세상일이 원칙대로만 굴러갑디까? 좀 더 제도적으로다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요!
나는 TV에서 패널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뒤로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아, 그러고 보니 먹을 게 다 떨어졌던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찬장을 열어봤지만 역시나 휑한 공간만이 나를 반겼다.
혀를 차며 식자재를 주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집었다가 이내 그냥 내려놨다.
‘···됐다. 나중에 배달이나 시켜 먹지 뭐.’
사고는 내게 가족과 다리뿐 아니라 용기까지 앗아갔다.
그날 이후 나는 바깥에 대한 트라우마로 집안에 틀어박혀, 하나 남은 친구와 인터넷으로만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뭐, 그 때문에 한 달마다 확인 전화가 오고 반년마다 방문 확인을 받고 있지만. 감수해야겠지.
-그러니까, 전송 조사랍시고 하는 일은 실효성이 없다는 겁니다! 탁상행정의 결과물일 뿐···.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을 수는···.
다시 거실로 돌아온 나는 TV 소리를 라디오 삼아 2년간 이어온 일과를 시작했다.
“후욱, 훅!”
거실의 한쪽에 자리한 온갖 종류의 운동 기구.
다리의 재활훈련을 위해 마련한 이후, 그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용한 물건들이었다.
‘···아무리 해도 효과는 없었지만.’
몸이야 건강해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애초 목적이었던 다리의 회복에는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놓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면, 트라우마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것마저 포기하면 나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후우우···.”
갑자기 드는 자괴감에 아령을 내려놓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나는 이겨내지 못했을까?
왜 나는 밖에 한 발짝만 내디뎌도 온몸이 떨리고 공포에 잠기는가?
내게 용기가 더 있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내가··· 이 방구석에서 벗어나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면···.
그렇게 자학의 늪에 빠져들 때였다.
《차원의 변곡점 감지. 아카샤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문구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유스킬을 각성합니다.》
“어? 갑자기? 내가?”
그리고 곧 패닉에 빠졌다.
이능 각성은 곧 이계 전송과도 같은 말이다.
그런데 문 바깥에도 나가지 못하는 내가 이능이 생긴다고 이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내 사정은 상관없다는 듯이 눈앞에는 계속해서 글자가 떠올랐다.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고유스킬 「아바타」를 각성하였습니다. 》
《전송까지 24시간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구를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
“큭··· 머리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켜 주방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 다리가 나았어?’
천천히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단 훨씬 편해졌다.
‘각성 후 육체 강화? 이거 계속 성장하면 완치도 가능한 거 아냐?’
나는 행복회로를 멈추고 이내 현실을 마주했다.
안 그래도 밖에 나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는 판국에, 불편한 다리까지 이끌고 이계에서 살아남고 성장하여 귀환할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확률은 무슨. 얼마 지나지도 않아 어딘가에서 객사하겠지.’
운동선수나 특수부대원 중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판에,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그냥 앉아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바타」라···.”
이능에 대해 생각하자 각성 시 머리에 각인된 정보가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불친절하잖아···.”
아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 각성에는 게임처럼 직관적이고 친절한 상태창이나, 상세한 스킬 설명 같은 것이 없었다.
신체 능력과 상태에 대해서는 몸을 직접 움직여 가며 파악해야 했고, 스킬에 대해서도 머리에 각인된 최소한의 정보가 전부.
이후의 성장 방향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었다.
“일단 한번 써 볼까. 분신으로 뭘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히네.”
이능을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눈을 감고 머리에 각인된 대로 사용한 직후.
나는 고유스킬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내가 있었다.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에 부스스한 머리, 관찰하듯이 게슴츠레하게 뜬 눈.
어디 이상한 곳이 없는지 요모조모 살펴봤다.
어딜 어떻게 봐도 나다.
심지어 관찰한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마저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서로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환영이 아닌 실체를 지니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그러다 문득 시야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동안 거울을 보듯 서로에게 집중한 상태라 잘 느끼지 못했는데, 시야가 겹쳐있었다.
등을 마주 대고 서자 더욱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앞과 뒤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별개의 육체를 인지하고 나니 몸을 움직이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두 개의 육체를 따로 움직이다 보니 팔다리가 꼬이고 늘어난 시야도 어지럽다.
뇌만 공유하는 별개의 신체 부위가 생겨난 것처럼 느껴져 굉장히 이질적이다.
‘뇌도 두 개로 늘었는데 어째서!’
하지만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이것만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꼬르륵—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것도 못 먹고 기절하듯 잠들었구나.
일단 치킨부터 뜯으며 생각하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
몇 시간 후.
“아, 이거 안 되겠네.”
역시 무리였다.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이제 소환과 해제는 능숙하게 할 수 있었고, 몸 하나가 정지된 상태라면 다른 몸은 평소처럼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두 몸 모두 동시에 움직이려 하자 중간중간 멈칫거리고, 그나마도 천천히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 전에 밖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나 있을까···.’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이능 사용에 더 익숙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전송 준비해야지···.”
집에 있던 물품들과 연습 전에 주문해 뒀던 것들을 꺼내서 정리했다.
커다란 가방에 파이어 스틸, 멀티툴 같은 생존용품들과 휴대용 식칼 그리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보존식품들과 물병 등을 챙겨 넣었다.
본격적인 무기는 챙길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무기류는 이계전송에 제한을 받았으니까.
외국에선 화기류를 가져가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실패하였고, 그나마 냉병기 중에서도 나이프 정도가 마지노선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시야를 가리지 않을 오픈 페이스형 오토바이 헬멧, 정강이 보호대와 완갑, 그리고 방검조끼 등의 안전 장비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준비해 두신 물건들을 꺼내서 하나씩 착용했다.
누가 언제 전송될지 모르니 미리 구해서 창고 방에 넣어놨던 것들이다.
‘설마 진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유일한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당분간 일이 있어서 연락이 안 될 거라 했었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그동안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이세계에 대해 정리해 둔 사이트에서 정보를 살피며 마음을 다스렸다.
전송되는 이세계는 무작위이며 현재까지 밝혀진 곳만 수백이 넘어서 정확히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숙련되지 않아 부족함이 많은 이능에 대한 불안감.
단순히 바깥도 아닌 다른 차원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겠다는 발악과도 같은 마음이 심신을 어지럽힌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심호흡하던 순간.
내 발밑에 푸른빛을 내는 전송진이 생겨나 있었다.
《전송까지 10분 남았습니다.》
발밑에 있는 이계전송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 위에 서 있다가 10분이 지나면 이세계로 전송되고, 어딘지 모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될 것이다.
‘이세계에 가 있는 동안 신체의 노화는 지구의 시간을 따른다고 했던가? 살아남기만 한다면 확실히 이득이겠네.’
시간의 흐름은 전송된 세계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10 정도라고 한다.
‘···귀환하는 데는 보통 1년, 이세계에서 약 10여 년을 살아남아야 한댔지. 하···, 10년이라니.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뒷걸음질 치다 나도 모르게 전송진 위에서 벗어났다.
그러자 푸른빛을 띠던 전송진이 서서히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붉은빛의 전송진은 경고나 다름없다.
저 상태로 시간이 되면 각성자를 강제로 이세계로 보내 버릴 것이다.
지금 바리바리 챙긴 짐들은 내버려 두고 맨몸으로.
막상 상황이 눈앞에 닥쳐오자 다시 마음이 심란해진다.
문득 정신이 없어서 이능관리국에 각성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금 상황에서 알게 뭔가.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아··· 누가 나 대신 저기 올라가 줬으면···.’
물론 의미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각성과 이계전송이 시작된 지 이십여 년,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시도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이 올라가 봤자 전송진은 붉은색 그대로일 것이고, 위에 올라간 사람을 무시하고 각성자 본인을 강제로 보내버리리라.
이계전송진은 오직 각성자 본인만을 인식하고 작동한다.
그러다 문득, 어느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아니, 그럴 리가. 그래도 어쩌면?’
곧바로 「아바타」를 사용했다.
소환된 아바타는 온갖 물품들로 중무장한 나와는 다르게 처음의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였다.
그동안 연습했던 감각을 떠올리며 움직이자, 분신은 엉거주춤 전송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 전송진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된다! 됐···어?”
전송진의 빛은 푸른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중간에 멈췄다.
나는 보라색으로 빛나는 전송진을 보며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지.’
저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했지만, 직접 실험해 볼 생각은 없었다.
잘못되면 안 그래도 바닥인 생존확률이 제로에 수렴하게 될 테니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시도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많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허탈함에 다리에 힘이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시계를 보니,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진짜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제 마음 단단히 먹고 올라가야 한다.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시야’에.
눈을 감고 주저앉아있는, 중무장한 내가 보였다.
한쪽의 시야가 제한되니 자연스럽게 다른 쪽의 시야에 신경이 쏠리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아바타 쪽으로 정신의 대부분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전송진이 푸른빛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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