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00)
#200
2차 대륙 정상 회의 (1)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그런데 이렇게 직접 환영까지 해주시다니, 굉장히 영광인데요?”
“후후훗, 뭘요. 그간 밖에서 고생하다 오신 여러분의 노고에 비하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멋쩍은 듯한 웃음을 짓는 하인리히의 말에 마찬가지로 미소로 응대한 리에스타 성녀는, 이내 다른 일행들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간의 활약은 매번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만, 다들 무탈하신 모습을 보니 새삼 안심이 되는군요. 특히 얼마 전에 큰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지오스의 고향에서 있었던 백색 거인과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었다.
놈이 심연의 상흔에서 나오는 순간이 포착된 만큼, 교단에서도 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으니.
“확실히 그땐 상당히 고생했습니다. 지금까지완 달리 심연을 직접 넘어온 괴물이라서인지 저도 미리 전조를 파악할 수 없더군요. 이것도 전부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 탓이겠죠.”
“인간의 몸으로 주신의 뜻을 전부 헤아리기엔 무리가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때마침 성자님께서 그때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주신의 인도하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거인 중 하나는 제국군에 막대한 피해를 준 끝에 사살되었고, 다른 하나는 로한 공국에 나타났다가 주신교단의 정예와 마주해 북부 산맥으로 쫓겨났다.
그런데 그만한 괴물을 제국보다 훨씬 국력이 약한 레스크 왕국의 남작령에서 막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만약 그 자리에 용사 파티가 없었다면, 무수한 죽음과 절망을 집어삼킨 놈이 어떤 괴물이 되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게 마주한 것이 정말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무언가에 이끌려 나타난 것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간 체하이에게 도움도 많이 받은 데다 아이들과도 정이 들어서인지 여러모로 신경 쓰인단 말이지. 거인과 가까이에 있던 보육원도 완전히 박살 나 버렸고.’
마침내 거인을 쓰러뜨린 직후.
용사 파티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놈이 마을에 난입했을 때 위험 범위에 남아있던 이들은 이세아가 최대한 수습해 피난시켰으나, 그녀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희생된 이들의 수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지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주민들과 피난 도중 입은 상처로 끙끙 앓는 부상자들, 거기다 파괴된 터전에 망연자실 주저앉은 이들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핵이 제거된 거인의 사체는 급속도로 부스러지기 시작하더니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사라져, 마을 한복판을 점거한 수백 톤짜리 폐기물을 치워야 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남은 것은 그저 압도적인 파괴의 흔적뿐.
그렇게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여러 후속 조치를 취하던 그들이 마음 편히 마을을 떠난 것은, 지오스가 적극적으로 나서 마을 재건을 지원하고 그 땅의 주인인 레가스 남작에게도 압력을 넣은 이후였다.
남작 입장에서야 어차피 신경 써야 하는 자기 영지에 백작씩이나 되는 고위 귀족이 복구를 돕겠다는데, 각별히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고.
“아! 제가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다들 피곤하실 텐데. 이만 쉬실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님.”
그렇게 성녀와 대화를 나누던 것도 잠시, 이제 슬슬 저녁 식사 시간도 끝나가고 있었기에 그들은 내일 다시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다.
“성자님, 성녀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죠, 헤론. 황녀님께 인사를 드리러.”
“옙! 알겠습니다, 스승님. 모두 좋은 밤 되십시오!”
이제 회의의 시작 날까지 고작 이틀이었다.
지금이 저녁이었으니, 밤이 지나고 나면 고작 하루가 남은 시점.
당연히 참가국들은 모두 로셀리아 대신전에 도착한 상태였고, 그건 라일리 황녀가 대표로 있는 아제리온 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 저도 이만···.”
지오스도 레스크 왕국의 사절단이 만나길 청했다는 이야길 전해 듣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실 그는 이제 왕국이고 귀족이고 아무런 미련이 없긴 했으나, 일단 작위를 가지고 있으면 편한 건 사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왕국의 귀족으로서 건재해야 한창 환란을 겪은 체하이와 그 가족들의 뒷배가 되어주지 않겠는가.
“으하핫! 이거 오랜만에 대신전의 고기 맛을 볼 수 있겠구만! 그럼 식당 문 닫기 전에 나도 이만 가 보겠소!”
그리고 할리마저 신나는 발걸음으로 안내인을 따라 사라지자, 이제 이 자리에는 멀찍이 떨어진 수행 인원들을 제외하면 하인리히와 리에스타 둘만이 남게 되었다.
“그럼, 하인리히 님? 잠깐 제 집무실에서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마침 좋은 차가 하나 들어왔는데, 향이 아주 좋답니다.”
“음, 그럼 그럴까요. 그런데 리에스타 님은 쉬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사실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지금 굉장히 피곤해 보이십니다.”
“···후후후, 회의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쉴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다른 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이상이 없는지 몇 번이고 재차 점검해도 부족한데.”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어째선지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라? 그럼 지금 그냥 차를 마시자는 게 아니라···.’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그가 저도 모르게 슬쩍 뒤로 한 발을 뺐을 때.
꽈악—
다시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돌아온 리에스타가 그의 팔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단 준비를 끝마치긴 했는데, 이번엔 저 혼자 처리할 게 많아서인지 영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하인리히 님이 와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안광이 번뜩이는 성녀의 금빛 눈동자.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손아귀가 강하게 팔목을 조여 왔다.
“이제 여유 시간도 없는 만큼,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확실히 1차 회의 때는 하인리히와 성녀가 일을 분담하고, 바로 결정하기 힘든 부분은 서로 논의를 통해 처리했었다.
물론 그때도 추기경들을 비롯한 실무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지금도 그들이 어련히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줬겠냐마는···.
“도와··· 주실 거죠?”
이 과하게 책임감 넘치는 소녀는 그런 것만으론 영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보안 관련해서는 제가 한 번 더 확인할 생각이었으니까요. 원래 제가 하던 일이기도 했고.”
그 비 맞은 고양이처럼 올려다보는 금빛 눈동자를 어찌 그냥 외면할 수 있을까.
전부터 자신과 비슷한 위치의 하인리히에게 은근히 의지하는 경향이 있던 그녀였으니, 이제 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1차 회의 때 한번 해봤던 일이기도 하니, 다시 확인하는 것 정도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겠지.’
그러자 그의 승낙에 얼굴이 활짝 편 그녀가 한층 밝아진 기색으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감사합니다! 역시 하인리히 님은 그렇게 말씀해 주실 줄 알았어요! 자, 가죠! 마지막으로 점검할 게 많아요! 특히 이번엔 탈리아 왕국의 일도 있는 만큼,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마치 연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팔을 양손으로 단단히 틀어쥐고 자신의 집무실로 이끄는 리에스타 성녀.
‘···정말 금방 끝나는 거 맞겠지?’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차가 아니라 커피를 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
정상 회의의 개최까지 앞으로 하루.
아직 본격적인 회의가 열리지도 않았건만, 주최 측인 교단은 물론이고 참가 세력들도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위기 상황 때문에 모였다고는 하나, 이렇게 대륙의 주요 세력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았으니까.
그에 각계의 고위층들은 서로 간에 교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건 물론, 앞으로의 방침을 점검하고 노선을 수정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쓰읍— 쩝.”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런 것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태평한 하루를 보내는 이도 있었으니.
“요즘은 아무리 먹어도 금방 배가 꺼진단 말이야. 역시 그것 때문인가?”
한 마리의 포식자처럼 어슬렁거리며 대신전의 복도를 거니는 커다란 덩치의 야만 전사, 할리였다.
전날 저녁 오랜만에 방문한 기념으로 제3 중앙 식당의 요리사들과 육즙 튀는 한판 승부를 벌인 후, 그는 마치 도장 깨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침부터 대신전 내의 여러 식당을 돌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고 있었다.
규모가 큰 만큼 식당도 많았던지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제1 중앙 식당에서 만족스럽게 점심을 즐긴 후 식후 운동을 위해 훈련장에 가는 길이었다.
‘그만큼 에너지 저장량이 늘었다는 거겠지. 하긴 「거대화」를 위해선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테니.’
백색 거인의 핵을 먹어 치운 후에 습득한 「거대화」.
막대한 ‘광기’와 함께 할리의 몸속에 자리 잡은 그 스킬은 이름대로 몸을 커다랗게 만드는 직관적인 능력이었다.
「육체변이」로 억지로 몸집을 부풀리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발동하긴 하나, 그래봐야 사용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만은 어느 쪽이든 매한가지였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아직은 숙련도가 부족해 7미터 정도가 한계지만.’
그것이 스킬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밤중에 몰래 산에 들어가서 사용해본 결과였다.
또 얼마 있지 않아 급속도로 치밀어 오른 허기에 서둘러 스킬을 해제하고 꾸역꾸역 야식을 집어삼켜야 했다는 것도.
물론 7미터만 되어도 산의 폭군인 오우거조차 깔아볼 정도긴 했으나, 얼마 전 백색 거인을 마주한 입장에서는 영 성에 차지 않는 크기이기도 했다.
‘뭐, 앞으로 숙련도가 올라가면 여기서 더 키울 수 있겠지. 그보다 거기서 패트릭을 딱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식당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용병 길드의 사무총장 패트릭.
그는 불사왕의 습격에서 사망한 전대 용병왕 칸블과 같은 파벌이었는데, 실각할 위기에 처하자 할리에게 접근해 먼저 제안한 바 있었다.
자신과 손을 잡고 용병왕의 자리를 노려보지 않겠느냐고.
이후 그가 요구한 것은 한 가지.
나머진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용병 길드의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명성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진 그것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지.’
무려 그 이름 높은 초대 용병왕과 같은— 용사의 동료로서 활약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도중에 그가 죽어버린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용병이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과였다.
그 때문인지 방금 마주한 패트릭의 표정도 굉장히 밝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듯이.
‘그런데.’
또 내심 신이 났는지, 그는 할리에게 먼저 악수를 청해 정중하게 인사하고서야 물러갔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할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육체의 근육량과 실제 가진 근력 사이의 괴리.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
혹시 이쪽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능력이나 마도구 때문일 수도 있으니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사실 이쯤 되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했다.
‘생각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이 많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군.’
사실 처음부터 주어지는 특별한 능력과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해 주는 추가 보정을 생각하면 그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정도 이상으로 크기 전에 낙오하거나 성장을 포기하고 안전만 추구하게 된다는 거겠지.
‘어떤 고유스킬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한데. 행정 쪽으로 방향을 튼 걸 보니 전투계는 아닌가? 앤드류처럼 쓸 만한 보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할리가 음흉한 생각을 하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끄끅끅— 자네가 그 할리인가? 저번에도 본 적이 있긴 하네만,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군.”
갑작스러운 낯선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응? 노인장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주름이 가득한 얼굴 곳곳을 뒤덮은 화려한 문신.
이런저런 장식품이 매달린 나무 지팡이를 든 살짝 굽은 허리의 노파.
“끅끅, 그간 이쪽의 사정이 여의찮아서 말이지. 그래도 이번엔 이렇게 직접 대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구만.”
「칼코스식 전투 각인」의 원산지인 남부 칼코스 부족 연맹의 대표, 대주술사 모르나였다.
“그래 자네, 잠깐만 이 노인네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무슨 용건이오, 노인장? 난 지금 좀 바쁜데!”
그는 겉으론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속으론 빠르게 상대를 분석했다.
그러고 보니 할리를 결사대에 추천했던 인물은 용병 길드의 사무총장인 패트릭뿐만이 아니었다.
부족 연맹의 대표인 저 노파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겉으로만 남부 전사를 표방하고 있을 뿐, 그곳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어떤 일면식도 없는 그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남부 쪽에 접근할 생각이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나를 찾아왔단 말이지?’
남부에서 발발했다는 쿠데타와 지금 태연하게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칼코스의 대표.
혹시 이 접근에 무언가 함정이 있는 게 아닐까···.
“자네 혹시 ‘투왕의 각인’에는 관심 없는가?”
···싶었지만, 역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정돈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잠깐 대화한다고 손해 보는 것도 없고, 설령 상대가 뭔가를 꾸미고 있더라도 그를 통해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는군.’
마침 조금 전에 만났던 패트릭도 처음엔 이렇게 접근하지 않았던가.
용병왕에 이어 투왕의 각인까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이들이 연달아 달콤한 제안을 내밀며 그를 홀리고 있었다.
“오! 그거 들어본 적 있지! 효과가 아주 끝내준다고 하던데?”
하지만 상남자 할리는 그런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냉큼 미끼를 물었다.
심약한 이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이빨을 활짝 드러내는 환한 미소로.
‘그게 각인 테크트리의 종결점이라고 했었지?’
요즘 용인이란 핑계로 워낙 인외(人外)의 힘을 남발하느라 그간 각인이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거기다 막 습득한 「거대화」조차 온전히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원래 쓸 수 있는 능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이게 쉽게 찾아오는 기회도 아닐 테고.’
원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었다.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