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18)
#218
라이칸스로프 (3)
“어, 그래. 바쁘면 굳이 올 필요 없어. 그럼 다음에 보자. 수고.”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끊기는 친구의 안부 전화.
이내 스마트폰을 내린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방 한쪽에 놓인 침대를 바라보았다.
“하아.”
그리고 그 위에서 마치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자신과 똑 닮은 사내를 이리저리 살펴보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직 깨어나려면 멀었네. 하긴,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워낙 여러 가지 일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던지라 저도 모르게 초조해진 모양이었다.
휴고는 한성현의 본체가 잠들어있는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 손으로 미간을 주물렀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상황인데 한스에 이어 할리까지···.’
다행히 할리는 조금 제멋대로가 되었을 뿐, 목적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학살까지 벌이는 한스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광기의 폭군」이라는 스킬의 힘을 빌려 광기 자체는 제법 수월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완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다는 게 문제지!’
그것은 광기를 역이용하며 벽을 넘어선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작은 영향력은···.
할리의 야만스러울 정도로 원초적인 야성, 깊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단순함,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 하는 폭력성과 어우러져 아주 환장의 시너지를 이뤄 버렸다.
‘당장은 식도락으로 욕구를 채워주며 관심을 돌린 상태긴 한데.’
하지만 그 방법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터.
서둘러 다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자고로 폭탄을 처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터트려 버리는 거지. 피해가 오지 않을 만한 곳에서.’
그리고 그 폭탄이 터질 예정지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황이기도 했고.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곳은···.’
하인즈 2세는 공화국의 부통령 케일라 맥클레어와 접촉해 순조롭게 오바이포를 칠 계획을 진행 중이었으며, 그 외의 아바타들에겐 특별한 일이 없었으니 당장 신경 쓸 만한 곳은 하나였다.
‘···에나멜 대륙, 엘븐 킹덤.’
***
[남부 알타리카 숲에 거인 출몰. 알타리카 숲지기가 파수꾼들을 이끌고 교전 중이라 합니다. 인근에서 지원이 출발하긴 했으나,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어 금방 끝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걸로 벨라 협곡과 소라타 늪지에 이어 세 번째 거인인가요. 라이칸스로프들이 수작을 부린 직후에 이렇게 한꺼번에 일이 터지다니. 역시 그들이 심연··· 그리고 불사왕과 연관이 있는 게 확실해졌군요.] [쯧, 처지가 딱한 놈들이라 근방을 배회하는 게 보여도 굳이 건들지 않았건만. 설마 불사왕의 졸개였을 줄이야. 역시 그런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아니, 이쪽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북쪽에서 장군급 라이칸스로프를 처리한 직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추가로 네 차례의 전투를 벌인 해리스가 들리지 않을 대답을 속으로 삼켰다.
처음 장군급을 마주했던 게 특별한 경우였던 건지, 연달아 마주한 무리들을 이끄는 건 고작해야 기사급이었다.
덕분에 여력이 남아 네트워크 접속을 끊지 않은 채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대체 이 일에 얼마나 동원된 거지? 무엇보다 그만한 수가 일을 벌이기 직전까지 숨어있었다는 게 더 놀랍네.’
사방에서 이런저런 전투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거인은 물론 다수의 라이칸스로프와의 충돌까지.
그에 엘븐 킹덤은 전에 없던 비상사태에 돌입한 지 오래였다.
-해리스 : 그래서 놈들의 가슴에 있는 문장이 뭘까···? 그동안 세계수님의 눈을 가린 데다, 나를 비롯한 엘프들이 놈들을 인지할 수 없었던 원인이 이거 같은데.
-한니발 스트라우스 : 흐음, 역천의 서약 놈들에게 새겨져 있던 금제와 비슷한 느낌이구나. 이건 금제라기보단 어떤 상위 존재와 계약을 맺은 증표에 가까워 보인다만. 물론 정상적인 계약인 것 같진 않으니, 그 대가도 절대 만만치는 않겠지.
-하인즈 2세 : 그놈들은 안 끼는 데가 없군. 오바이포 자체가 동부 지부였다는 것도 확인된 상황인데 말이야.
‘족히 수백은 되는 인원이 몽땅 계약자라고? 무슨 마왕이라도 되는 건가?’
그 복잡한 상황에 해리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한 가지 확실해진 건, 놈들이 지금의 습격을 준비한 게 절대 짧은 기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큐버스 시아나를 휘하로 들였을 때 대충 어느 지역에 어떤 간부가 남아있다는 것 정돈 들어 둔 상태였으니까.
‘일명 광대. 역천의 서약에서 활동한 기간은 20년 이상. 주 활동 지역은 제국 동부와 공화국 전체··· 그리고 에나멜 대륙.’
놈이 그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지런히 싸돌아다니면서 대체 어떤 수작을 부려 놓았을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싫다 싫어. 여기서 더 난장판이 되는 건 사양인데. 보상도 생각했던 것보다 밍밍하고.’
처음이라 특별히 서비스 해줬던 건지 아니면 장군급 적을 해치운 프리미엄이 붙었던 건지는 몰라도, 이후에 제단을 부수고 받은 세계수의 보상은 처음 받았던 것만 못했다.
그나마도 없는 것보다 낫긴 했으나, 영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부순 제단은 보상도 못 받았고. ···뭐, 이미 의식이 끝난 후라 균열을 완전히 없애지도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설마 벌써 모든 의식이 다 끝난 건 아니겠지?’
그렇게 그가 혼자 한탄하고 있을 때.
‘···또 마주쳤군. 그런데 저쪽에서도 날 발견한 거 같네. 이번엔 장군급인가?’
정확히 그가 있는 방향으로 질주해 오는 흉포한 기세가 느껴졌다.
이만한 거리에서 자연과 동화된 해리스의 기척을 감지한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소환된 정령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할리 덕분에 놈들의 특성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단 말이지.’
가장 처음 마주한 놈은 한창 의식을 진행하던 와중이어서인지 그를 인지하는 게 조금 늦었던 것뿐.
장군급 라이칸스로프의 감각은 물리적인 현상뿐만이 아니라 마력의 잔재까지 감지하는지라 정령을 사용하는 거로는 행적을 감추기 쉽지 않았다.
아예 놈과 싸웠을 때처럼 대놓고 감각을 흔들며 잠깐 혼란을 주는 정도라면 모를까.
‘그때 그 녀석보단 강한 거 같긴 한데···.’
하지만 해리스 자신도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다.
이번엔 무려 최상급 정령이 와트와 파스칼 둘이나 있었으니!
‘선빵 필승!’
해리스는 자신의 활, 테미스를 꺼내 들곤 곧바로 기운을 한 점에 집중했다.
놈이 도착하기까지 불과 몇 초.
하지만 그 시간은.
일단 필살기 한 방 먹이고 시작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
에나멜 대륙에 출몰한 거인들이 모두 엘프들과만 맞붙은 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전에는 보안이 최우선이었던 만큼, 초기엔 세계수와 거리가 먼 지역부터 차근차근 균열을 열어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무리 라이칸스로프들이 혁명가를 통해 맺은 계약으로 세계수의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었다지만, 그게 백 퍼센트 완벽한 것은 아니었으니 최대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콰아앙—!
“사냥 대형으로! 무리하지 마! 지원이 올 때까지 시간만 끌어!”
에나멜 대륙 서북부, 와일드 랜드의 온갖 사나운 맹수 수인들로 이루어진 외곽 사냥 부대가 백색 거인과 충돌했다.
“카하하! 이렇게 큰 사냥감은 처음인데! 아주 오싹오싹하는구만!”
“치사하게 이온 대륙 놈들만 이런 거랑 놀고 있었단 말이지?”
“허세 부릴 거면 접힌 꼬리부터 펴라! 집중해! 이미 이놈에게 죽은 놈들만 수십이다!”
“···쳇!”
또 그들처럼 정면으로 맞붙지 않더라도 경계면에서 발생한 엘프와 거인의 싸움에 주변에서 지원 오는 경우도 있었다.
리자드맨 공동체 ‘중앙 늪지대’와의 동부 국경인 소라타 늪지처럼.
“츠으으— 가세하도록 하지. 숲지기.”
“···도움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케리취.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취이잇—? 숲지기가 그런 말을 할 정도라니. 일단 아랫것들은 물리고 추가 지원을 요청해야겠군. 시잇— 늪이 연결되어 있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애초에 이종족끼리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은 데다,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대륙 정상 회의에서 거인의 위험성까지 전파된 마당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일을 벌인 이에겐 아쉬운 일이겠지만, 처음부터 발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사건은 생각보다 빨리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오우! 이 정도면 생각 이상인데? 설마 그 말로만 듣던 거인을 이렇게 원하는 대로 불러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혁명가 그 양반, 다시 봐야겠어?”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라이칸스로프 킹, 바우칼라카스가 자신과 연결된 부하들을 헤아리며 낮게 킬킬거렸다.
혁명가가 종적을 감춘 후였음에도 사전 협의대로 균열을 연 것은 딱히 그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세계수의 영향력을 깎는 동시에 광기를 공급해 전력을 강화한다는, 정말 오랜 세월 준비했던 그 계획을 포기하기 아까워서일 뿐이었는데···.
‘그 양반, 처음부터 계속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나? 뭐, 선물은 고맙게 받겠지만! 덕분에 여기까지 오는 데 생긴 손실이 예상보다 더 적었고 말이야.’
비록 그 과정에서 장군 둘이 죽고 하나는 곧 죽을 것 같다지만, 이것조차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그리 큰 피해가 아니었다.
각 지역을 지키는 마스터급 엘프, 숲지기들이 거인에게 정신이 팔린 게 크게 작용했을 터.
“키키킥! 하긴, 그 악명 높은 거인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판국에 지들이 뭘 어쩌겠어?”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좋게 풀렸다 하더라도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건 없었다.
엘프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미 이상을 눈치채고 대비에 들어간 건 물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주변국에 지원까지 요청했을 테니까.
에나멜 대륙의 중심, 세계수가 있는 드라샤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바로 저곳에.
“키히히힛!”
파슥—
푸스스—
차마 억누르지 못한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주변 수풀에서 두 발로 선 맹수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샛노란 눈동자 중앙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광기 어린 핏빛 안광.
뿌드득!
우드드득—
그들의 몸이 한껏 부풀어 오르며, 체내에 흐르는 흑마력과 뒤섞인 광기가 생명력을 불태워 어마어마한 힘을 선사했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처음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숫자였으나, 이걸로 전력 자체는 오히려 처음보다 상승한 셈.
‘영구히 지속되진 않겠지만, 어차피 그 전에 모든 일이 끝날 테니 상관없지!’
부하들과 같이 붉게 타오르는 안광을 빛내며, 늑대 인간의 왕 바우칼라카스가 눈앞의 목표를 향해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크르르—
크워억! 컹—!
그렇게 초월에 도달한 왕 하나와 극의를 넘어선 장군 다섯.
그리고 그들을 받쳐줄 수백의 기사와 전사급 라이칸스로프들이.
마침내 엘븐 킹덤의 수도, 드라샤를 침공했다.
***
라이칸스로프들은 이번 침투를 위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준비를 해 왔다.
심연의 균열을 여는 의식과 가슴에 새겨진 계약 문장은 그 일부에 불과할 뿐.
혁명가의 도움을 받은 왕이 직접 오랜 시간 동안 세계수의 인과율을 뒤흔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몸을 숨기고 엘븐 킹덤 내부의 진입로를 짜기도 했다.
거기다 정령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추가 대책 마련은 물론, 먼저 정령의 잔향을 감지해 우회하는 훈련까지.
그야말로 시간과 자본, 노력··· 거기다 다수의 목숨까지 통째로 갈아 넣은 계획이었다.
“빨리빨리 움직이세요! 안쪽으로!”
“창고에서 화살 몽땅 꺼내와!”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위치로!”
그러나, 아무리 철저해도 준비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 수가 소수였다면 모를까, 수백에 달하는 침략자들이 수도까지 접근하는 동안 그걸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
드라샤의 엘프들은 라이칸스로프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전쟁 준비에 한창이었다.
[준비는 어떻게 됐나요?] [일단 수성 준비는 모두 마친 상황입니다. 파수꾼 부대장과 정원사장은 이미 준비를 마쳤고, 근방에 여유가 있는 숲지기들도 최대한 빨리 이곳으로 오는 중입니다.] [하아··· 실수네요. 놈들이 드라샤까지 오기 전에 미리 요격하는 게 최선이었는데. 접근하는 놈들의 수가 상정 이상이라는 걸 알아채는 게 너무 늦어졌어요.]도중에 발각됐지만, 침략자들의 노력이 완전히 헛수고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이 바라던 것도 딱 이 정도의 성과.
전장을 엘프들이 지켜야 하는 세계수가 있는 수도로 한정하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긴장 속에서 시간이 흐른 끝에.
인근에 모여든 라이칸스로프들이 드라샤로의 진격을 시작하면서, 마침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
제법 떨어진 곳에서 막 장군급의 적 하나를 처치하고 숨을 몰아쉬던 해리스는, 갑자기 느껴진 어떤 기묘한 감각에 퍼뜩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
“···이건?”
그것은 직감이었다.
다른 하이 엘프들과 비교해도 유별날 정도로 강한 세계수와의 유대를 통해 전해진, 어떤 강렬한 예감.
‘···따블? 아니, 세 배?’
어째선지 여전히 직접적인 의지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그 의미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슬그머니 한쪽 방향으로 돌아갔다.
수도인 드라샤가 있는 곳.
꿀꺽—
명백한 위기 상황이지만, 어째선지 대박의 향기가 풍기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