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2)
페르소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당황한 오보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흔적도 없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놈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 시간을 들여 결계를 구축해서 가두는 데 성공했다.
진혈인 자신이 중심핵이 되고 수십의 뱀파이어들이 뼈대를 이루었다.
그러고도 만약을 대비해 자신이 직접 놈을 견제까지 했는데···.
“그런데 공간이동으로 결계를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고?”
놈의 수준이 그만큼 높았단 말인가?
자신들 전원을 농락할 정도로?
“결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놈이 빠져나간 그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혈마법이 특기인 순혈이 다가와 재차 보고했다.
이미 몇 번이나 확인한 후였다.
사라진 척하고 숨어서 결계가 풀리길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결계를 끝까지 유지한 채 그가 직접 내부를 수차례나 확인했다.
또 정말 결계를 뚫고 나가는 데 성공했다면, 그 흔적이라도 잡기 위해 조사를 시켰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아지트를 습격하여 파편을 탈취하고, 이곳 지부의 뱀파이어들을 괴멸시켰다.
그러고도 그들이 올 때까지 도시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끝내 자신들을 조롱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콰지직—!
오보르의 근처 바닥이 폭발했다.
그의 주변이 부서지며 균열이 퍼져나갔다.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한스··· 한스으—!”
한동안 분노를 토하던 오보르는 이내 숨을 가다듬고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다섯 명의 순혈과 스물이 넘는 잔혈.
“도시와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작은 흔적이라도 놓치지 말고 철저하게 조사해!”
““예!””
그의 명에 뱀파이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오보르는 한스가 마지막에 있던 장소를 둘러보았다.
“으드득—”
이를 갈며 이 수모를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다짐한 순간.
“오···오보르님! 큰일 났습니다!”
막 자리를 떠났던 부하들이 급하게 다가왔다.
“뭐냐? 놈이 무슨 짓이라도 했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스가 사라지기 전에 무슨 수작을 부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심각했다.
“주신교단의 성기사단과 전투 사제를 비롯한 일단의 병력이 주변을 포위했습니다!”
“···놈들이 갑자기 왜? 아니, 어떻게 여기 올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지?”
불사왕의 부활을 막기 위해 파견된 주신교단의 특수 전투부대.
목표가 그들의 접근을 먼저 눈치채고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주교까지 참여해 대규모 성법으로 기운을 숨겼다.
그렇게 은밀히 접근해 오다가 어느 순간 불사왕의 기운을 추적할 수 없게 되자, 빠르게 주변을 봉쇄하고 중앙으로 포위해 들어온 것이다.
“···놈의 함정에 빠졌구나. 도시에 남아 우리를 유인한 것도,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어떻게 주신교단을 끌어들여 함정을 판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놈의 계략에 놀아났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두 모여 한쪽 방향을 돌파한다! 동이 트기 전에 빠져나가야 해. 서둘러라!”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해 오는 강한 신성력들이 느껴졌다.
교단 무력의 상징, 성기사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유독 강대한 기운이 하나.
‘젠장! 팔라딘까지 동원되었다니!’
마스터 급에 이른 성기사들의 정점.
자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자였다.
“네 이놈, 한스! 역천의 서약 놈들까지! 반드시 되갚아주마—!”
그렇게 주신교단의 불사왕 토벌대와 뱀파이어 클랜 브로코슬락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한성현이 이불을 걷어차고 있을 무렵이었다.
***
“후우···, 배고프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이불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들어 치킨을 주문했다.
한동안 이불을 걷어차며 심마(心魔)를 발산한 덕인지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빠르게 진정된 것에는 「명경지수」의 덕도 있겠지.
‘스킬 덕에 내성도 생긴 것 같고. 이제 더 뻔뻔하게 대사를 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다고 진짜 그러고 다닐 생각은 없지만.
“그나저나 한스는 또 역소환해 버렸네. 에휴.”
어차피 이세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되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었는데···.
‘설마 진혈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 그냥 바로 도시를 빠져나갈 걸 그랬나?’
또 하나의 파편을 흡수하며 ‘아크리치’로 진화해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그래서 적당히 따돌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생각 이상으로 강했지. 제대로 싸우면 이길 수야 있겠지만···.’
당장은 싸워봤자 딱히 메리트도 없으니 그냥 피하는 게 나았다.
한스는 「금단의 지식」을 얻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으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결판은 그때 내도 충분하리라.
‘「불사」의 근원 추출은 당장 써먹기엔 좀 애매하지만.’
두 번째 파편을 흡수함으로써 불완전한 데미리치에서 중간 단계인 리치(Lich)를 건너뛰고 아크리치로 진화했다.
그렇게 얻은 스킬이었지만 제대로 써먹기는 힘들어 보였다.
한스의 근원이라면 파편과 융합되어 만들어진 심장을 뜻하는 것일 터.
안전한 지구에 보관한 채로 써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다른 차원에 위치한 심장의 흑마력이 한스에게 제대로 전해질 지는 회의적이었다.
‘「아바타」 스킬로도 에너지를 직접 전달해 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심장의 흑마력 보조가 없는 한스는 단순한 깡통 해골이 되어버릴 것이다.
차라리 강대한 무력으로 쉽게 당하지도 않고, 언제든 역소환이 가능한 한스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지경.
그래도 영 쓸모없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심장만 지킨다면, 사지가 가루가 되더라도 무한에 가까운 흑마력으로 순식간에 수복될 테니까.
‘그 부분도 앞으로 연구해 보면 되겠지. 그런데 수련은 아우테리카에서 하는 것이 시간상으로 이득인데. 하인즈가 아잔투에서 더 멀어지면 다시 전송시켜야겠다.’
지금 하인즈 2세는 일행들과 함께 틸라크 시에 도착해서 보급과 정보 수집을 하고 있었다.
뱀파이어인 상태로 놈들의 세력권 가까이에 오래 머물러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더 멀리 이동할 계획이었다.
다행히 순혈이 되며 뱀파이어로써의 기척도 잘 숨길 수 있게 되었고, 직계혈족인 위라크를 처치함으로써 추적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한스가 워낙 깽판을 쳐놨어야지.’
그래도 눈에 띄면 좋을 게 없으니 최대한 피해 다녀야겠지만.
“그래도 얻은 게 많네. 하인즈 2세도 쓸 만한 무력을 얻었고, 한스는 파편을 하나 더 흡수했으니.”
거기다 온갖 재물과 마도구들도 얻었다.
매우 흡족한 결과였다.
“나름 활약했으니 카르마도 제법 쌓였겠지? 고유스킬의 다음 강화까지 얼마나 남았나 볼까··· 응?”
나는 카르마 상점을 열어서 수치를 확인하고 잠시 굳었다.
『고유스킬 강화 (700,000)』
『보유 카르마 – 731,002』
“···이게 원래 이렇게 후하게 주는 건가?”
얼마 전에 신체능력을 골고루 상승시키는 데 사용해서 남은 카르마가 별로 없었을 텐데.
어느새 보니 카르마가 가득 차 있었다.
브로코슬락 클랜이 뱀파이어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우테리카에서 소수 종족이고 아잔투도 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그만큼 불사왕의 파편의 가치가 크다는 건가? 어쩌면 뱀파이어들과 역천의 서약 사이를 이간질한 게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겠군.”
잠시 고민하다 대충 그렇게 결론지었다.
카르마야 많을수록 좋고, 지금 중요한 건 한 번 더 고유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딱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없는데, 어떻게 진화하려나? 아바타가 하나 더 늘어나나?’
설레는 마음으로 곧바로 강화를 선택하자, 지끈거리는 두통이 찾아왔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아바타를 하나 더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
《고유스킬이 성장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페르소나」를 획득합니다.》
내심 기대했던 관련 스킬까지 생겼다.
그동안 「마인드 허브」가 톡톡히 도움을 주고 있었기에, 희희낙락하며 서둘러 정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하···.”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지고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유스킬의 성장은 사용자가 필요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시스템은 「페르소나」가 나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말인데.
스킬의 효과는 간단했다.
아바타를 그릇으로 삼아 자신의 감정을 담는 스킬.
“······.”
적막 속에서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중, 나도 모르게 한쪽 다리를 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회복되었던, ‘그 날’의 흔적이 남았던 다리였다.
이제는 흉터도 남지 않고 매끈해진 다리.
나는 눈을 감고 고요함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 스킬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천천히 과거를 돌아보았다.
이세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넉살스레 어울리며 친분을 쌓았다.
언데드가 되고 흑마법사들을 처리했으며, 지구에서 빌런들을 제압했다.
자신을 희생해 어려움에 처한 남매를 도와주고, 도시의 뱀파이어들을 물리쳤다.
‘2년 동안 방구석에만 박혀있던 내가.’
바깥을 무서워하고 인간관계라고는 친구 한 명밖에 남지 않은 내가.
그래, 사실 「아바타」를 얻은 이후의 모든 행보는 게임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생동감이 넘치고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실감 나지만, 내게는 현실이 아니었다.
NPC에게 말을 걸며 부끄러워하지 않듯, 악인을 처단하고 약자를 돕는 것을 퀘스트 클리어하듯.
아바타로는 밝고 활기차게 이세계를 모험하고 있지만, 현실의 나는 여전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다.
육체에 남았던 흔적은 사라졌지만, 내 정신은 아직도 그 때에 머물러 있었다.
“후우—”
한번 한숨을 내쉬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고요한 집안.
작은 소음을 내는 냉장고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신경에 거슬렸다.
한때 시끌벅적하고 활기찼던 집안에 이제는 한 톨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안식처라고 생각했던 공간이, 적막 속에 먼지가 쌓여 나를 가둔 관처럼 느껴졌다.
애써 외면하던 현실을 직시하자 그 괴리감에 숨이 막혀왔다.
“한스.”
나직이 읊자 방바닥에 어둠이 깔리더니 한스가 천천히 올라왔다.
온갖 방법으로 기운을 억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를 두렵게 만드는 공포의 아우라.
데미리치일 때 봤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무시무시해졌다.
“고여서 썩어가던 감정을 그릇에 옮겨 담아라···.”
나는 한스에게 집중하며 「페르소나」를 사용했다.
외로움, 슬픔, 분노 등···,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한스는 원체 언데드라 궁합이 잘 맞아 그런지 스펀지처럼 받아들였다.
“후우···. 끝인가?”
쌓여있던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 보고 그것을 옮겨 담는 것을 마치자,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해졌다.
감정을 완전히 버리는 게 아니었다.
상자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정리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아바타 또한 나 자신이었으니까.
“나야 좋긴 한데, 한스는 괜찮은가?”
안 그래도 언데드라 부정적인 영향이 강한데 그게 더 심해지면···.
한스에게 의식을 집중하고 내면을 관조했다.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집어삼킨 영향인지 흑마력을 운용하는 것이 더 편해졌을 정도.
[···고통과 절망은 삶의 동반자. 이제 와선 딱히 아무렇지도 않군.]나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고도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다.
그냥 당연하게 여겨졌으니까.
“으응—?!”
그러다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몸을 펄쩍 뛰었다.
아니, 틀림없이 내가 한 말이긴 한데···.
[큭큭큭··· 그렇군. 감정을 담은 아바타는 그에 따른 개성을 가지게 되는 건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군.]한스가 냉소적인 웃음을 흘렸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소름이 돋았다.
‘내면의 인격 일부를 투영시킨 건가? 역시 이 녀석으로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겠네.’
제어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말투가 변해서 나왔다.
이걸 부작용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뭐, 됐다. 어차피 한스로 사람 상대할 일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 도움만 되면 그만이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쿵—!
먼 곳에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애애애앵—!
이어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제법 있는지 작게 들려오지만,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것 같았다.
‘빌런에 의한 테러인가.’
요즘 부쩍 빌런들이 기승을 부려 사건 사고가 늘었다.
뉴스나 인터넷에서도 온통 관련 이야기들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그렇고···.’
저번처럼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모를까, 일부러 찾아다니며 수고할 생각은 없었다.
나선다고 얻는 것도 없고, 내게 직접 피해가 온 것도 아니니까.
애써 외면하며 주문한 치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이잉~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진동음과 함께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배달의일족 님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매장인 ‘켈베로스 세마리치킨’이 사고로 인해 운영이 중지되었습니다.
-주문하신 내역은 환불 조치 되었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잠시 문자를 바라보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소란이 있었던 방향을 가늠하고 치킨을 주문한 매장 위치와 대조했다.
“···아.”
그곳은 여러 곳의 치킨집을 전전하다 발견한 최고의 맛집이었다.
신선한 고기를 사용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다양한 맛의 양념들과 푸짐한 양으로 언제나 내게 만족감을 주었었지.
근 1년간은 치킨을 먹을 땐 항상 거기를 이용했다.
요즘엔 단골이라고 서비스도 팍팍 넣어주던 맘씨 좋은 사장님이었는데···.
“···그래. 내버려 뒀더니 나에게 피해가 왔구나.”
사실 나는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을 내세우기 위한 근거.
[악을 멸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세상의 질서가 흔들려 혼돈이 도래하니, 도처에서 무법자들이 창궐하는구나. ···이제 내가 그들의 법이 되리라.]옆에 있던 한스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 이런저런 변명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빌런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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