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21)
#221
초월 (1)
부지런히 달음박질치던 티메르는 쫓아오던 적이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에서 멈춰, 양 옆구리에 끼고 있던 동료들을 내려놓고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아! 죽겠다!”
기진맥진한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
다른 두 명도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채 내상으로 요동치는 기운을 다스렸다.
“방금 그 저격, 분명 해리스 님이었지? 그동안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과연 명불허전이네!”
“···응, 기운 동일.”
단 두 번 만에 라이칸스로프 장군의 상반신을 통째로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장거리 저격.
그들 수준으로는 공격이 적중해 터지기 전까지 작은 낌새조차 인지할 수 없었던 필살의 일격이었다.
굳이 그들뿐 아니라, 어지간한 이라면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세상을 하직하게 되리라.
“벌써 그 정도 수준이라니···. 하긴, 생각해 보면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으시긴 했어! 특히 그때 그 노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말이야. 앞으론 같이 음악 할 기회도 없겠지?”
“이젠 하이 엘프시잖아···.”
티메르는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븐 킹덤에서 ‘밴드 음악’이 한창 유행하기 시작하며 그도 드럼 세션으로 이곳저곳에 참여했지만, 해리스와 처음 합을 맞췄을 때와 같은 짜릿함을 다시 맛보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샤피론 양도 대단하던데? 그 위험한 순간에 상급 정령이라니! 생각지도 못 했··· 응? 잠깐,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요, 조금··· 무리했을 뿐이니.”
“아니,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사실 그의 말대로 전혀 괜찮지 않았다.
위험한 도전이 성공한 덕분에 적을 해치우고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순 있었으나, 그 후유증이 물밀듯이 몰려와 이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으니, 조금만 요양하면 금방 회복될··· 읍, 우웨엑.”
재차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피 한 바가지.
그녀의 하얀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일단 후방 병동으로 이동하자. 기껏 기사회생했는데 이러다 정말 죽겠어.”
“내상이 심각해··· 내 치유 마법으론 무리.”
진지한 표정이 된 티메르와 큐리가 샤피론을 후방으로 이송하기 위해 서둘러 채비를 갖췄다.
그렇게 그들이 막 이동하려던 그 순간.
솨아아아—
그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세계수의 가지에서.
이상할 정도로 큰,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어라?”
“···?”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엘프들에겐 분명 익숙한 소리일 텐데, 그 안에 담긴 기묘한 울림 때문인지 평소와는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니, 잘 생각해 보니 마냥 생소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은 물론, 드라샤 출신의 몇 엘프들에게는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다는 기시감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떠올리기도 전.
~♪
세계수의 가지가 드리운 하늘에서부터.
드라샤를 넘어 엘븐 킹덤 전역을··· 어쩌면 그 이상까지 닿을지 모를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가사는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멜로디뿐.
당연히 악기도 없었고, 보조하는 것은 오직 자연적으로 나는 소리뿐이었다.
~♪
하지만 하늘에서 시작된 그 아름다운 천상의 선율은.
스치는 바람 소리와 나부끼는 나뭇잎, 흔들리는 가지의 마찰음 등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한 자락의 ‘자연의 노래’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건, 설마.”
“···응.”
이 현상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새삼 따질 필요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와 관련된 주제로 실컷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해리스.”
연신 피를 게워 내던 샤피론이 나직이 그 이름을 읊었다.
계속해서 뒤틀리던 내부가 저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때도 뭔가 있다고 느끼긴 했는데.’
세계수와 공명하며 그녀의 내면을 다독이는 순수한 자연력.
그 현상을 이끄는 저 노래는 이미 예전의 그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효과를 체감하는 것은 샤피론 혼자만이 아니었다.
“크윽, 뒤로 빠지는 놈들을 잡아! 놈들을 내부로 들여보내선 안 된··· 어엇?”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아, 천국의 소리가 들린다···. 살아 돌아간다면 그녀에게 고백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죽는··· 어라?”
그 소리가 닿는 전역.
전방에 있든 후방에 있든, 한창 전투 중이든 부상을 입고 뒤로 빠진 상태든, 엘븐 킹덤의 모든 엘프와··· 하이 엘프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니.
전장의 흐름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
세계수를 매개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조화의 선율」.
~♪
그 과정에서 세계수의 힘을 빌린 덕분인지, 오히려 그냥 사용했을 때보다 월등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유지하는 게 버겁긴 하지만.’
두 눈을 감고 양손을 거대한 줄기에 얹은 해리스가 「세계수의 적자」와 「자연 동화」를 사용해 입 밖으로 나오는 음을 세계수와 공명시켰다.
세계수와의 연결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그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뭔가 제한이 있는지 세계수는 주체적으로 나서서 돕지는 않았으나, 그가 의도하는 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슬쩍 편의를 봐주고 있어 작업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마 내가 세계수의 가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 ···자연과의 동화가 다른 이들보다 유독 심했던 것도 그 때문일 테고.’
물론 덕분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으니 나쁜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기도 했고.
해리스에게서 시작된 음의 진동은 세계수를 타고 흐르며 한없이 증폭되어 무수한 가지를 통해 발산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스피커는 아닌 만큼 온전한 가사를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어, 오직 멜로디로만 이루어진 허밍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깎이는 효과보다 증폭되는 정도가 훨씬 더 크니 상관없지.’
사방으로 발산되는 에너지를 통해 지상의 상황이 느껴졌다.
「조화의 선율」은 라이칸스로프들과 거인에게 맞서 싸우던 엘프들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부상당한 이들을 회복시키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전황을 뒤바꾼 해리스의 그 압도적인 영향력에, 세계수는 그에 합당한 업으로 보답해 주었으니.
화아악—
발밑의 가지에서부터 시작된 무언가가 체내를 치달아 정수리로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곳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산산이 깨져 나가며 머릿속으로 바깥의 기운이 빨려 들어왔다.
정수리와 발바닥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감각.
···이어서 자연과, 우주와, 이 세계 자체와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이 그의 몸을 가득 채웠다.
“하아—.”
휘잉—
그의 숨결 한 줄기에 돌풍이 몰아친다.
어떤 마력적인 작용도 없는 순수한 자연 현상이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깃들었다.
한스는 심연에 가라앉은 죽음 그 자체이자 오랜 세월 악업이 누적된 ‘불사왕의 심장’을 계승해 죽음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고.
하인즈 2세는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뱀파이어들의 피를 한 몸에 받아들여 그들의 힘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혈맥을 초월했으며.
할리는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끝없이 탐하고 진화를 추구한 끝에 마침내 생명체의 한계를 초월하게 되었다.
그리고 해리스는 그간 자연과의 일체화를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현상을 초월해 반쯤 자연과 동화된 상태가 되어 버렸는데···.
‘아, 큰일···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어···.’
동시에 이전까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나른함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가 억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신력의 임계점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 버린 것.
본체가 건재했다면 적당한 정신력 분배와 추가 지원으로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오직 해리스란 개체 하나에 할당된 리소스로 버티는 수밖에 없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인즈 2세 : 따지고 보면 자연과의 동화도 정신 오염이나 다를 바가 없지. 그런데 그걸 중심 삼아 초월에 이를 정도로 키워버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휴버트 : 그 특성을 이용해 빠르게 강해지는 대가로 생긴 부작용인가. 하긴, 모든 하이 엘프들이 저런 식으로 성장할 수는 없겠지.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세계수가 모두를 초월시키고도 남았을 테니.
하워드 : 잠깐! 장작 공급은?! 이젠 그게 없으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단 말이다! 어이, 정신 차려! 내 장작 내놔!
할리 : 크하핫! 간다! 사막으로! 쳐부순다! 대족장!
하인리히 : 잠깐···!
한니발 스트라우스 : 쯧, 그럼 내가···.
갑자기 뇌 내 회의장에서 시끄러운 소란이 오갔으나, 만사가 귀찮아진 해리스는 그저 당면한 현실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래도.’
자연은 한없이 정적(靜的)이며, 동시에 동적(動的)이다.
풀과 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서 자라날 뿐이고, 물과 바람도 그저 섭리대로 흐를 뿐.
그저 항상 그 자리에서 정해진 법칙대로 존재하는 것이 본질이자 섭리였으나···.
‘일단 저것들은 처리해야겠지.’
해리스는 몸을 가득 채운 나른함 속에서 광포함이 번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활 테미스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입으로는 잠시 끊겼던 허밍을 다시 이어가면서.
쿠르르릉—
세계수 주변에 퍼진 자연력이 거칠게 유동하며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최대한 이성을 다잡으며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을 다해 그 적만을 배제하기 위해 기운을 조절했다.
자연은 항상 자애롭고 온화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한 번 분노하면 하나의 문명조차 지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재앙.
그것이 바로 자연재해였으니까.
이윽고.
해리스의 손에서 빚어진 자연재해가 형체를 갖춰, 빗살처럼 한 곳으로 쏘아졌다.
***
“크힉힉! 아아, 이거 곤란한데! 아주 곤란해! 킥킥킥!”
라이칸스로프 킹, 바우칼라카스가 얼굴을 뒤틀며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 퍼진 부하들과의 연결이 하나둘씩 끊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이 작전의 핵심이었던 ‘추방’ 부대가 세계수에 접근하기도 전에 모조리 몰살당했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공을 들여 엘프들의 감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주술적인 처치를 해 둔 것은 물론, 오로지 이번 임무만을 위해 장기간의 성격 개조까지 거친 사냥개들이었거늘.
‘만약을 위해 딸려 보냈던 수펠리아는 가장 먼저 뒈져버렸고 말이지! 크핫!’
백색 거인이 소환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는데, 그와 혁명가가 수년 동안 파악했던 것보다 엘프들의 대비 상태가 더 뛰어났다.
“키히히히힉!”
하지만 오랜 세월, 이 에나멜 대륙을 멸망시키기 위해 노력한 모든 것이 수포가 되었음에도.
그는 그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동족들이 죽어갈 때도, 추가로 도착한 엘프 지원군들이 자신을 둘러싸기 시작한 순간도, 그리고···.
하반신이 통째로 사라진 탓에 두 팔로 땅을 딛고 서 있는 지금도.
쿠르르릉—
세계수 쪽에서 또다시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지간한 신체 결손은 몇 초 만에 복구할 수 있는 그였으나, 어째선지 저 저격에 당한 부분은 재생이 극도로 느려져 회복이 쉽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저하된 속도만으로도 1분이면 완전히 재생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크힉힉! 아주 떼로 몰려왔구만그래!”
지금 그를 둘러싼 놈들이 그런 여유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이 엘프 하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이송된 데다 나머지 놈들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으나, 새로 추가된 전력은 그 이상이었다.
아마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저기 세계수에 있는 정체불명의 저격수가 쏘아낸 광선이 또다시 자신의 몸을 꿰뚫을 터.
자신과 대등한 격을 지닌 적의 공격이 말이다.
‘하여간 혁명가 그 양반, 꼭 중요한 부분마다 헛다리를 짚는다니까! 최소한 몇 년간은 엘프 쪽에 초월자가 나타날 리 없다고 그리 확신하더니.’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번 일만 성공했다면 계약을 통해 라이칸스로프가 ‘보다 완전한 종(種)’이 되는 건 물론, 이 평화로운 땅에서 살만 뒤룩뒤룩 찐 돼지들에게 그들이 겪은 절망도 체험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아깝군, 아까워.’
그래도 보잘것없던 병사급에서 아득바득 기사까지 올랐다가, 죽음 직전에 조우한 혁명가 덕에 왕이 되기도 했으니 썩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크히햐하핫! 자, 돼지들아! 좀 더 놀아보자!”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죽어주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콰앙!
그는 양손으로 바닥을 쳐 자신을 둘러싼 적들에게 덤벼들었다.
~♪
하지만 하반신이 없는 상태로, 지금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노래로 강화된 엘프들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당연한 일.
콰르르릉—
“키히하햣하!”
결국 자연재해에 집어삼켜진 늑대 인간의 마지막 왕은.
죽어서 이름도, 가죽도 아닌 결정 하나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