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26)
#226
불사왕 vs 용사 파티 (1)
전신에 검푸른 핏발이 곤두선 오염된 전사, 마인들이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끄에엑!”
“꺼거걱! 커억!”
그들의 참상을 본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마인들은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건 물론이고 육체는 이미 절반쯤 언데드에 가까웠으나, 그 대가로 무력만큼은 이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화된 상태였다.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습니다. 전력으로 가지요.”
선두에 선 하인리히의 말이 끝난 직후, 「축복 : 성검」이 발동하며 그의 손에서 솟아난 아름다운 성검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동시에 그의 몸에 미증유의 힘이 깃들고 한순간에 모든 능력이 극한까지 치달았다.
화아악—
단순히 경지로만 따지자면 아직 초월에도 이르지 못한 그를 강제로 인류의 정점까지 끌어올리는 신의 위광(威光).
그것은 「대축복 : 빛의 기사」와 「축복 : 강체」 등 여러 스킬에도 영향을 끼쳤고.
그의 몸을 휘감은 채 잔잔하게 일렁이던 아우라가 거세게 타오르며 뒤따르던 이들에게까지 옮겨붙었다.
“오오··· 이것은?”
“우오옷—! 용사님을 따라라!”
“가엾은 형제들에게 평온한 안식을!”
딱히 대규모 성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건만, 성검의 사용에 익숙해진 그는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전장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 버프를 흩뿌렸다.
두려움을 없애고 사기를 진작하는 정신적인 보조는 물론, 신체 능력 상승을 비롯한 실질적인 전투력까지 증가까지.
이것 또한 용사란 존재가 추앙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신의 선택을 받은 자.
인류의 희망이자 등불.
결사대는 덤벼드는 마인들을 몰아내며, 용사 하인리히의 뒤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어둠에 휩싸인 도심 속을 파고들었다.
“미스티 님. 정말 괜찮으신가요?”
“···다른 이들을 이런 사지에 몰아넣으면서 이제 와서 저만 빠져있을 순 없죠. 그래도 방해는 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형의 중심, 성녀의 물음에 힘겹게 대답한 미스티가 다시 뼈와 깃털 등을 엮은 제구(祭具)를 쥐고 주술을 시전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실시간으로 수명이 깎여나갈 지경이었으나, 아직 전사들에게 새겨진 각인의 활성화를 보조하는 것 정돈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
리에스타는 그녀가 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걱정만 할 시간에 자신도 최선을 다하는 게 모두를 위한 것일 터.
“주신이시여. 당신의 피조물인 어린 양들에게 지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불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내려주소서.”
그렇게 성녀의 기도문과 함께 발동한 성법이 모두를 감싸고.
그들은 몇 겹이나 중첩된 버프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목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짙은 심연을 줄기줄기 뿜어 내는 도시 중심부의 커다란 건물.
발테온의 거처이자 불사왕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거점이었다.
***
용사 파티가 전력을 다한다면 목표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마인뿐만 아니라 불사성에서 소환된 듯한 언데드들까지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상황이라 하나.
거기에 더해 도시 전체에 퍼진 사악한 기운이 놈들에게 끊임없이 힘을 불어넣는 중이라 하더라도.
고작 이 정도 수준으로는 그들의 발걸음을 막아설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최대한 힘을 아끼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다른 이들에 비하면 압도적인 모습이었지만.
“호리아, 에퀴스틴.”
하이 엘프 리디아 그랜우드의 작은 속삭임과 함께 불과 바람의 정령이 깃든 화살이 쏘아져 전면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썬더 버스터!”
영창 끝에 나온 이세아의 주문에 하늘을 뒤덮은 어둠을 꿰뚫고 뇌격의 창이 대지에 내리꽂혔으며.
“흐읍!”
기합과 함께 내질러진 지오스의 창이 덤벼들던 적들의 머리를 일제히 터트렸고.
“크하하핫!”
불도저처럼 질주하는 할리의 몸에 부딪힌 놈들이 볼링공에 맞은 볼링 핀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렇게 용사 파티가 전면을 뚫으면, 그 공간을 파고들어 적의 증원을 막고 길을 여는 것은 남부 전사들의 몫이었다.
곧 불사왕과 마주할 이 싸움의 주역들이 최대한 힘을 온전한 채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밀어내! 이제 고지가 머지않았다!”
“크에엑!”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방해가 될 순 없지. 이곳은 우리의 땅이니, 목숨으로 길을 열어라!”
몬스터 이상으로 단단해진 마인들의 몸에 전사들의 병기들이 일제히 틀어박혔다.
그러나 마지막 생명력 한 방울까지 불사르는 마인들은 설사 머리가 쪼개지더라도 쉽게 죽지 않아, 그 과정에서 전사들의 피해도 꾸준히 누적되고 있었다.
“까가각! 크헥!”
“아아— 이제 편히 잠들어라, 형제여. 나도 곧 따라가도록 하마.”
[캬아악—!]거기에 마찬가지로 심연으로 강화된 언데드의 군세까지 끝없이 이어졌으니.
남부 전사들은 말 그대로 자신들의 피로서 중앙까지 이어지는 길을 열고 있었다.
‘···정말 단단히 작정했구나, 한스. 인간을 이렇게 소모품으로 만들다니. 대체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냐.’
그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던 하인리히가 마침내 목표지를 눈앞에 두고 이를 악물었다.
꽉 움켜쥐어 분노를 가득 담은 성검을 휘두르면서.
대족장 발테온은 전쟁을 위해서 전사들에게 강제로 광기를 주입해 그들을 ‘광전사’로 만들었다.
처음 할리가 광기를 흡수했을 때처럼, 아마 그것만으로도 육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을 터.
그와의 차이점이라면 그들은 육체의 통제를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발테온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도록 개조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만이라면 어떻게든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후 추가로 주입된 한스의 ‘죽음’은 회생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마저 앗아갔다.
이미 육체를 잠식한 광기 덕에 완전히 언데드가 되지만 않았을 뿐, 저 마인들은 사실상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거기다 공기 중에 퍼진 심연도 문제다. 아직은 그 농도가 낮아 리에스타의 축복을 받은 전사들이 어렵지 않게 버티고 있다지만, 그것도 더 시간이 지난다면 어떻게 될지 몰라.’
지금 퍼져나가고 있는 심연의 기운과 언데드 군세의 주체는 한스였다.
놈을 물리친다면··· 아니, 물리치지 못하더라도 방해를 할 수 있다면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터.
역시 최대한 빨리 그에게 도달하는 것만이 피해를 줄일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대로 곧바로···!’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그들이 목표로 삼았던 중앙 건물.
이제는 시커먼 기운에 완전히 뒤덮여, 이계로 향하는 입구로까지 보이는 정문 통로 앞에서.
“파하! 그래,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보라색과 검은색으로 울긋불긋한 오염에 뒤덮인, 할리보다 약간 작은 체구의 마인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 옆엔 지금까지 그들을 습격했던 놈들 이상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다수의 마인들까지 대동하고.
“발테온···.”
그를 본 미스티가 과한 주술 남발로 창백해진 얼굴을 굳히며 낮게 읊조렸다.
“흐흐흐, 미스티. 도망가서 쥐새끼처럼 사나 했더니, 겁도 없이 제 발로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구나.”
“···이게 당신이 원하던 건가요? 본인은 물론 따르던 이들까지 모조리 불사왕에게 바치는 것? 하, 칼코스의 영광을 위해서라더니. 역시 말만 번지르르한 개소리였군요.”
그것이 전대 대족장인 발테온의 명분이었다.
남부의 힘을 하나로 모아 북진해, 이 척박한 대지를 벗어나 풍요로운 땅을 차지하자는 것.
그 과정에서 평화를 원하는 부족을 탄압하고, 전쟁 중시의 강압적인 정책을 과하게 밀어붙이다 결국 축출되긴 했지만 말이다.
“아아,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다. 원래라면 대륙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제국의 남부를 집어삼키고 다시 협상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따지고 드는 듯한 그녀의 말에도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인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심연에 잠식된 마인 전사들과 뒤쪽의 통로에서 계속해서 충원되는 언데드 군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것도 썩 나쁘지 않군.”
이어서 그의 얼굴에 어딘가 뒤틀린 미소가 어렸다.
“제국 남부? 아니, 불사왕과 이 최강의 군대가 함께한다면 고작 남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국 전체를 도모할 수 있다! 아제리온 제국을 멸망시키고, 칼코스 제국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거지!”
검은 눈자위 중앙의 핏빛 눈동자에서 광기에 물든 안광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미 일말의 인간성조차 남아 있지 않은, 뒤틀린 신념과 아집을 연료로 불사르면서.
“···미쳤군요. 세상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려는 불사왕과 손잡아봤자 남는 건 파멸뿐이에요.”
“아니, 그는 전대의 불사왕과는 다르다. 그건 거기 있는 성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애초에 그 어이없는 내기를 제안했던 것도 그걸 알았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 때문에 그는 옥쇄를 각오하고 끝까지 맞설 수 있었음에도, 결국 불사왕과 공조하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수십 년 동안 원했던 비원이자, 역천의 서약에 들어가 심연을 열면서까지 바라왔던 염원이었으니.
“크흐흣— 그 빌어먹을 제국 종자들을 쓸어버리고 나면. 이 발테온이, 바로 이 몸께서 칼코스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하지만 자아도취에 빠져 열변을 토하던 그의 말은.
“거참, 말 많네.”
“뭣?”
갑작스럽게 끼어든 이의 말과 함께 끊긴 것도 모자라—.
콰앙—!
“컥!”
그 자신 또한, 충격과 함께 미사일처럼 날아가 중간에 가로막은 담벼락과 건물 등을 꿰뚫고 저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쿠웅— 쾅! 콰아앙—!
저 멀리서 연달아 들려오는 요란한 폭음만을 남긴 채.
그 예상치 못한 사태에 인간들은 물론 옆에서 폼 잡고 서 있던 마인들의 당황한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쏠렸다.
조금 전까지 발테온이 서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곳.
지금은 뚱한 표정으로 주먹을 뻗고 있는 할리가 있는 곳으로.
“아, 거! 제국이고 뭐고 관심 없으니까, 그냥 한 판 붙자고!”
이어서 그는 어딘가 신난 듯한 기색으로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돌발행동에 긴장한 듯 일제히 전투를 준비하는 마인들을 향해.
‘좋아, 좋아.’
심연을 받아들이고 초월에 이른 대족장 발테온 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지경인데, 마찬가지로 이전보다 더욱 강해진 극의급 대전사 세 명과 거기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의 마인 전사 십여 명까지 덤으로 딸려 있다니.
이 무슨 진수성찬이란 말인가!
“프흐흐··· 이 정도면 제법 재미 볼 수 있겠는데?”
할리의 입가에 흉악한 미소가 어렸다.
「궁극의 진화 생명체」를 완성하고 초월에 이른 후, 그는 그간 단 한 차례도 만족스러운 싸움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용사 파티와 함께 약해빠진 한스 부하들을 괴롭히고, 가끔 나오는 백색 거인을 두들겨 패는 것뿐.
애초에 할리가 이곳에 오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좀 더 처절한, 피와 살이 튀는 살벌한 투쟁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냥감들은 제법 그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 보였지만.
역시 진짜 만족스러운 싸움을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어이, 여긴 나한테 맡기고 얼른 가 보라고. 서둘러야 하잖아?”
뿌드득— 끼기익!
푸쉬익—
한껏 달아오른 할리의 몸에서 금속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한 번에 연소하며 발생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발테온이 가로막고 있던 통로 앞을 막아서며, 슬쩍 고개를 돌려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용사 파티를 바라보았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듯이.
물론 그 시선에 담긴 의미는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놈들은 내 꺼다! 이미 침 발라뒀으니까! 한 놈도 양보 못 하니까 얼른 꺼져!’
그에 하인리히조차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네, 네 노오오옴—! 감히이—!”
저 멀리서 분노에 찬 발테온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변에 퍼진 심연과 동조해 사방을 파괴하는 끔찍한 파동과 함께.
“아, 얼른 가라니까! 아참, 거기 아가씨도 친구들이랑 같이 여기서 좀 떨어지는 게 좋을 거야. 뒷일은 책임 못 지니까.”
그러나 눈치 빠른 미스티는 이미 전사들을 추슬러 서둘러 뒤로 물러나던 중이었다.
그에 하인리히 또한 한숨을 내쉬며 용사 파티와 함께 한스가 있는 건물 내부로 진입했고···.
“죽여주마—!”
쿠와아앙—!
그와 동시에, 할리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발테온과 주먹을 마주했다.
“오! 그거 좋지! 하는 김에 거기 있는 친구들도 같이 덤벼 보라고! 카하하핫—!”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
끼익— 끽—
“어휴, 할리 쟨 또 어떻게 하냐. 한스와는 다른 의미로 문제 덩어리가 될 것 같은데.”
휴고는 불평을 토하면서도 평소 루틴대로 집안 체육관에서 육체를 단련했다.
아우테리카에서야 연일 파란만장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지구 시간으로는 본체가 잠든 지 겨우 이틀째가 된 시점이었다.
당연히 이곳에선 이렇다 할 사건도 없었으니 그는 본체의 상태를 살필 때 말고는 평소처럼 움직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차라리 잠만 퍼질러 자느라 뇌 내 회의에 끼지도 않는 해리스가 양반이지. 할리는 도대체 뭔 사고를 칠 지 알 수가 없으니.’
사고가 공유되면 뭐 하는가.
애초에 뭔가를 하면서도 생각은커녕 어떤 전조도 없이 몸부터 움직이고 보는데.
그야말로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할리였다.
‘아, 그나저나 상황이 슬슬 위험해지는 것 같은데. 본체는 언제 깨어나지? 어떻게 하루 정도만이라도 무탈하게 보냈으면···.’
그렇게 휴고가 운동하면서도 근심 어린 한숨만 푹푹 내쉬던 그 시각.
온갖 보안으로 뒤덮인 저택 내에서도 가장 철저한 방비를 자랑하는 한 침실에서.
꿈틀—
침대 위에 죽은 듯이 잠들어있던 이의 손가락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곧 일어날 무언가를 예고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