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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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카르마 쇼핑 (2)
혼돈과 공허가 뒤섞인 심연의 경계 지역.
“이상하군.”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혁명가가 내뱉은 짤막한 감상이었다.
제국의 분열을 위한 황녀 암살, 세계수의 배제를 통한 에나멜 대륙 침몰, 부족 연맹의 북진으로 인한 인류의 분열, 거기다 이미 성공했다 생각했던 불사왕의 자각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작전이 이상할 정도로 꼬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방해하는 것처럼, 인위적이고 악의적인 개입이 느껴질 정도로.
‘하긴, 오히려 지금까지가 너무 쉬웠던 거겠지.’
자신이 추구하는 과업은 이 세상의 창조주인 주신의 의도에 반하는 일.
처음부터 일이 수월하게 풀릴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 세상의 어둠에 숨어서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정도 준비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으니.’
그 오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건 속이 쓰리긴 했지만, 적어도 시작도 못 해보고 좌초된 이전 계획들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막대한 인명 피해를 발생시켜 혼란을 초래하는 동시에 세상의 힘을 갉아먹는다는, 그 최소한의 쓸모는 충족할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근래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얻은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허! 혹시나 했건만. 더는 부정할 수 없겠군.”
그것은 어떠한 확신.
사실 꽤 오래전부터 반신반의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심연의 첨병으로서 세상을 죽음으로 뒤덮는 데 가장 앞장서야 할 그 불사왕이—.
천적이나 다름없는 주신교단의 성자와 뭔가 알 수 없는 밀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푸흐흐, 무슨 이런 황당한 일이.”
대륙의 다른 이들은 의심은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만, 불사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주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불사왕을 이용하는 건 천 년 전에도, 삼백 년 전에도 별 탈 없이 진행된 계획이었다.
덕분에 대계의 가장 큰 방해거리였던 드래곤들을 배제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하필 최종 단계에 들어선 지금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근래의 가장 큰 변수라 할 만한 것은···. 역시,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이계인들인가?’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던 혁명가가 금세 결론을 내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빠른 성장 속도와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타 차원에서 넘어온 이 세상의 불순물.
그 존재를 파악한 이후로 그들을 잡아다 여러모로 이용한 건 물론이고 산 채로 실험해 보기도 했던 그였다.
그러다 그들이 그저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간일 뿐인 데다, 금방 떠나갈 이방인인 것을 파악한 후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거늘.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잠재력을 너무 얕잡아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개 필멸자가 심연의 죽음을 이겨내고 그것에 개입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아니, 이것도 가설일 뿐이니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할 건 앞으로의 대처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선책이었던 불사왕이 예상을 벗어나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지금 그 방법의 진행 상황 또한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광기의 포화 진행도가 생각보다 더디다. 그간 지상에 올려보낸 거인이 몇인데 아직도 고작 이 정도라니.’
혁명가가 자신의 옆쪽에 있는 웅크린 인간 형상의 무언가에게로 시선을 향했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차선책의 필수 조건은 세상에 퍼진 광기의 농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는 것이었는데, 지금 상태에서 목표치까지 도달하는 덴 아직도 제법 시간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그 야만인··· 대체 정체가 뭐지?’
이게 다 원래대로라면 세상으로 퍼져나가야 했을 막대한 광기를 성자와 함께하는 웬 야만인이 죄다 먹어 치워버렸기에 생긴 일이었다.
심지어 최근엔 대기 중에 흩어져있던 광기마저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는 흐름이 포착되지 않았던가?
이 또한 불사왕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기사(奇事)였다.
‘그래도 전체적인 포화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만, 그 한 놈 때문에 허비한 시간이 너무 크군. 마음 같아선 일단 그놈부터 처리하고 싶지만···.’
때마침 결사대와 떨어져 혼자 남부에 남아있어 시기도 적절하다.
그러나 문제는 거느리던 세력들이 대부분 와해된 지금, 그만한 강자를 상대할 만한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거인 몇 보낸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고, 자신은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으니.
“···쯧, 역시 시간을 좀 더 벌 필요가 있겠어.”
아직 계획이 다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대륙이 너무 빨리 안정되는 건 곤란했다.
몬스터들의 난동과 백색 거인의 습격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불사왕이 남부에서 물러난 것과 함께 대륙 곳곳에 가해지던 불사의 군대의 공습도 뜸해진 마당이었으니 더더욱.
‘그렇다면···.’
이윽고 기묘한 빛이 어린 혁명가의 시선이— 주변을 둘러싼 일그러진 공간 속의 수많은 균열 중 하나로 향했다.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작전들과 동 시기에 시작되었으나, 그 특유의 은밀함으로 대외적으로는 큰 소란 없이 고요히 진행되고 있는 곳.
이온 대륙 동부의 제피아 공화국으로.
***
“음.”
사실 조금 걱정했던 게 사실이었다.
기껏 드래곤 하트까지 사용했는데 혹여나 할리가 위장한 종족인 ‘용인’ 같은 거라도 만들어질 까봐.
물론 용인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진짜 드래곤과는 그 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괜한 노파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 들어간 포인트가 한두 푼도 아니고.
‘기우일 뿐이었지만 말이지.’
다행히 만들어진 종족은 확실히 드래곤이었다.
‘다만···.’
그리고 나는 지금.
마침내 탄생한 아바타를 팔짱 낀 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려서.
드래곤 아바타 또한 그런 본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선을 약간 위로 올려서.
‘혹시나 하긴 했는데.’
굳이 비교해볼 것도 없는 확연한 눈높이 차이.
나는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눈앞의 금빛 생명체, 대형견 크기의 드래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커스터마이징」으로 공들여 다듬었던 패기와 위엄이 넘치는 두상은 어디로 가고,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인상의 자그마한 아기 드래곤이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알까지 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가.’
인간보단 긴 수명을 가졌다지만 그래봐야 수백 년에 불과한 엘프나 드워프와는 달리 드래곤의 수명은 만 년에 육박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내 나이가 아직 스물이니, 아무리 「커스터마이징」이란 스킬이 일정 부분을 커버해준다 해도 처음부터 성룡으로 탄생시키기엔 무리가 있었겠지.
심지어 드래곤이란 종족은 원래 나이와 비례해 더 강해지는 종족이 아니던가.
생성 초기의 아바타가 가진 힘이야 한계가 있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카르릉!”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기엔 부적합한 구강 구조 탓에 아직 말을 할 순 없었으나, 이 또한 새 육체에 익숙해지고 나면 마력을 이용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터.
나는 새로운 드래곤 아바타, 호루스의 개체 정보를 살피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체명 : 호루스
-종족 : 드래곤 (해츨링)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제노글로시」
-개체 특성 : 「골드 드래곤」, 「만물의 군림자」, 「폴리모프」, 「용언 마법」
-특이 사항 : 한성현의 열한 번째 아바타. 매개체로 골드 드래곤 해츨링의 드래곤 하트가 사용되었다. 아직은 해츨링에 불과하나 그 성장 잠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시 비싼 매개체를 써서 그런가.’
무려 네 개나 되는 초기 스킬.
내가 추가로 선택한 스킬은 「용언 마법」 하나뿐, 나머지 세 개는 생성 단계부터 기본적으로 주어진 능력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아바타 생성과 동시에 「초회복」부터 「혜안」까지, 스테이터를 강화해 얻은 스킬들이 전부 「골드 드래곤」의 능력에 편입되었다는 점일까.
「골드 드래곤」은 뛰어난 육체 능력과 감지력, 항마력 등 드래곤이 가진 종족 특성을 더욱 강화해 주는 스킬이었고.
「만물의 군림자」는 마나를 비롯한 온갖 속성의 친화력, 저항력 등을 보조해 주는 스킬이었으며.
「폴리모프」는 드래곤이 다른 종족의 모습으로 그들과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변신 능력이었다.
‘이 정도면 투자한 보람이 있군. 거기다 원래라면 해츨링은 꿈도 못 꿀 「용언 마법」까지 건질 수 있었으니.’
용언(龍言)은 언어로서 현상을 구현하는 언령(言靈) 계통의 능력으로, 브레스와 더불어 드래곤을 대표하는 능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두 능력 모두 유아기인 해츨링에게 허락된 능력은 아니었는데, 나는 ‘세 개의 무작위 스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능으로 그중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지. 나중이 되더라도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또 설령 배울 수 있더라도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렸을 테니.’
스킬을 얻은 지금, 그것을 발동하기 위한 지식을 대강 훑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온전히 배움만으로 익혀야 했다면 온갖 보정을 중첩하고도 최소한 십 년은 걸렸을 거라는 걸.
그 자체의 학습 난이도와 구조의 난해함이 헤스페론이 익힌 「마법학개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해츨링이란 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활동 자체는 인간 모습으로 할 거니 당분간은 큰 상관없을 거다. 호루스에겐 「폴리모프」가 있으니까.’
이제 그걸 확인할 때였다.
내 시선이 작은 몸으로 거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몸 상태를 점검하던 호루스에게 향했다.
“끄아앙!”
그리고 그 입에서 앙증맞은 포효 소리가 내뱉어짐과 동시에.
파아앗—
금색 비늘이 뒤덮고 있던 몸이 은은한 빛에 휩싸이고, 서서히 그 형상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그는 두 발로 일어선 한 명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누구라도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매혹적인 모습으로.
윤기 나게 찰랑거리는 금발과 우수에 젖어 빛나는 금빛 눈동자.
부드럽고 매끄러운 백옥 같은 피부와 통통한 볼살이 매력적인, 아주 잘생기고 귀여운 미남이었다.
···그 나이가 대여섯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앙? 이고 왜 이래?”
찹! 소리와 함께 자신의 양 볼에 두 손을 올린 호루스가 손가락을 조몰락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 딴엔 못마땅한 마음을 표출하고자 한 행동이었는데, 그것조차 본체의 눈에는 그저 한없이 귀여운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 그렇군.’
「폴리모프」는 단순한 외형 변경 마법이 아닌, 흉내 내고자 하는 종족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는 권능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종족, 성별, 연령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었거늘···.
‘숙련도가 부족하구나.’
이제 막 아바타를 생성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
당연히 막 습득한 스킬을 벌써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을 리 없었다.
거기다 능력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 기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고.
‘아바타가 가진 개별 스킬은 ‘기타 스킬 강화’로 강화할 수도 없는데.’
그러므로 필요한 건 오직 스킬을 숙련시킬 수 있는 시간뿐이었지만.
원래 풍족한 자본은 꼭 필요한 시간마저 앞당길 수 있는 법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카르마 상점을 열어 ‘성장의 비약’을 구입했다.
아직 헤스페론과 하워드를 통한 실험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어차피 포인트는 아직도 2백만이나 남은 상태였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호루스에게도 한 번 먹여보긴 해야지. 스킬은 둘째 치고 혹시 더 빨리 자라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상품을 구한 직후, 나는 남은 포인트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가볍게 메뉴를 훑어보다가—.
어떠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워낙 인상적이어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그것.
『XX된 XXX의 XX 파편 (29,700,000)』
3천만 포인트였던 알 수 없는 상품에 가격의 변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