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36)
#236
타라크에서 (1)
어쩌다 보니 여러 아바타가 모이게 된 툴크 왕국의 북부 대도시 타라크.
더 북쪽에 있는 강철의 성채 너머엔 희귀 몬스터 소체와 광물, 약초 등의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북부 산맥이 있고.
동남쪽으로는 대륙 중부를 지배하는 아제리온 제국과 통하는 교역로가 이어져 있었으며.
남서쪽엔 아오니아 백작령의 자랑인 양질의 철광석 산지가 있어, 뛰어난 장인들을 다수 보유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이곳을 휴버트 상회의 시작점으로 택했지.’
용병 산업과 무기 산업이 발달한 도시이자, 교역에서도 훌륭한 입지를 자랑하는 축복받은 위치.
휴버트 상회는 어느새 그런 곳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거대 상단으로 발전해 있었다.
‘물론 순전히 공정한 경쟁만으로 이룬 성과는 아니지만.’
만들어진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상회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렇게 빨리 클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흐음.”
휴버트는 상회 본부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시작은 한스의 지원으로 마련할 수 있었던 막대한 초기 자본이었다.
그것을 통한 인재 영입과 공격적인 인수합병은 그의 상회를 빠르게 궤도 위에 올려놓았으며, 이후 커지기 시작한 공동 대표 할리의 위상은 대외적인 방패가 되어주었다.
‘이 땅의 영주인 백작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것과 하인리히를 통해 교단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도 컸지.’
하인즈 2세 휘하의 뱀파이어들 덕분에 물밑에서의 암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뒤에서 수작을 부리던 놈들을 철저하게 응징해 본보기로 삼은 것도 있었고.
‘거기다 지구에서 가져온 극상의 향신료와 희귀한 물건들, 「감정」으로 품질을 관리해 공급한 양질의 상품들까지.’
또한 불사왕의 습격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면서 진행한 파격적인 투자와 사업 행보는 매번 성공을 거듭했으며.
사사건건 그를 견제하던 툴크 왕국 상인 연합 세력은 우연찮게 이어진 불사의 군대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그 영향력이 쪼그라들어 버렸다.
마치 하늘이 돕는 것처럼 연일 계속되는 성공가도.
그에 타라크 상계에선 휴버트를 일컬어 ‘재신(財神)의 사랑을 받는 사나이’라고까지 부를 정도였으니.
그가 툴크 왕국 북부 제일이자, 타국에서도 상당한 입지를 갖춘 대형 상단의 주인이 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
아직, 휴버트 상회의 전성기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아! 상회주님, 여기 계셨네요!”
그렇게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던 그의 귓가에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버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가 있는 옥상의 난간으로 다가오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디아나.”
잘 먹지 못해 작고 깡말랐던 첫 만남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젠 오히려 원래 나이보다 더 성숙해 보일 정도의 건강미를 뿜어내는 여자아이.
낙하산으로 들어간 자리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한 끝에, 지금은 그의 개인 비서 일을 하고 있는 디아나였다.
“오늘 내로 결재해 주셔야 할 사안이 있어서요! 상회주님께서 발안하신 식당 ‘오크와 함께 춤을’의 타 지점 확장에 대한 안건인데, 이게···.”
그의 옆에 다가온 그녀는 유능한 커리어우먼처럼 한 손에 서류철을 들고 능숙하게 브리핑을 이어갔다.
안경이 있다면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은 전문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여기 오기 전부터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더니··· 아니, 이건 공부한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재능에 더해진 노력인가.’
처음엔 그저 그 초월적인 후각을 이용할 생각으로 업무를 맡긴 것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이쪽 방면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였다.
아마 최근까지 이어지는 휴버트 상회의 약진에는 그녀의 분투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리라.
‘휴버트 자체의 성장이 멈춘 것 같아 조금 아쉬운 참이었는데, 이 정도 순조로운 세력 확장이면 썩 나쁘지 않네. 사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만 하면 되니까.’
대륙의 상계를 호령하는 거상이 목표인 아바타, 휴버트.
그는 할리 다음 순번으로 만들어진 아바타였으나, 세력이 아닌 그 개체만의 발전 상황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다.
전투 쪽으론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쯤 되면 ‘흥정’이나 ‘언변’ 따위의 상인 관련 스킬이라도 몇 개 생길 줄 알았는데···.
‘설마 상회가 이렇게 클 때까지 하나도 생기지 않을 줄이야.’
하긴, 잘 생각해 보니 그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킬이라는 것은 곧 이능 그 자체.
그리고 상인의 기술이라는 건 대체로 특별한 이능보단, 개인의 통찰력과 판단력을 비롯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주가 되는 법이었다.
처음부터 이능과 맞닿아있는 무술이나 마법을 수련해 관련 스킬을 얻는 것과는 그 결이 다른 것이다.
‘「흥정」이란 스킬이 있어서 가격을 더 깎을 수 있으면, 그건 상인의 능력이 아니라 정신계 마법이나 다름없을 테지.’
물론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고 어쩌면 정말 상인의 길을 택한 이들을 위한 스킬이 있을지도 몰랐으나, 이제 와서 그런 가정은 전부 무의미할 뿐이었다.
지금의 그는 일선에서 뛰기보단 휴버트 상회라는 커다란 배의 진로를 결정하는 선장이었으니까.
‘그래도 아예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니.’
불과 조금 전, 상인 전용 스킬은 아니지만 휴버트도 드디어 새로운 스킬을 하나 얻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줄곧 사용해왔던 「감정」의 숙련도가 어느 선을 넘으면서, 스테이터스 강화로 추가된 「혜안」과 합쳐지며 새로운 스킬로 진화한 것이었다.
“이번에 ‘오크와 함께 춤을’의 식료품 담당자인 숙부님과··· 아니, 볼트 씨와 대화해 봤는데요. 납품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진화한 스킬, 「분석」은 「감정」의 상위호환으로서 전에는 불가능했던 것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들뜬 기색으로 연신 조잘대는 디아나를 바라보며 곧바로 그녀에게 「분석」을 사용했다.
-휴버트 상회 소속.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상재에 매우 뛰어난 면모를 보인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더욱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한다. 자신을 구원해준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 있다. 오늘 점심으로는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었다.
-주요 특성 : 불가사의한 후각, 맹목적인 충성심, 헌신적인 가족애, 천재적인 상재, 비범한 정신 능력, 평범한 육체 능력, 절망적인 불행함
-신뢰도 : 98%
가장 큰 차이점.
사물에만 가능했던 「감정」과 달리, 진화한 「분석」은 사람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대상이 되는 상대를 얼마나 잘 아느냐에 따라 나오는 정보의 상세함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해.’
방금까지 그가 옥상에 올라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도 그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는 고작해야 ‘물품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초조해하고 있다.’ 라던가 ‘바람피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따위가 전부고, 보이는 주요 특성도 두세 개밖에 없었지만.
‘거기다 면식 없는 이의 신뢰도는 아예 표기되지도 않는 데다, 우리 상회 소속 직원이더라도 60퍼센트를 넘는 경우가 별로 없을 정도였지.’
그렇게 보니 디아나의 신뢰도 98%라는 수치가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주요 특성에 포함된 ‘맹목적인 충성심’이란 항목도 그걸 뜻하는 걸 테지.
‘그런데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절망적인 불행함이라.’
휴버트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디아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물론 그녀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표현이긴 했다.
아론이 납치당하기 전부터도 그녀가 가진 후각과 필사적인 노력으로 간신히 회피했을 뿐, 위험한 상황이 끊이질 않았다고 들었으니까.
아마 그날 자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국 그녀는 동생을 잃고 혼자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불행해 보이진 않는데, 왜 아직도 주요 특성에 남아있는 거지? ···음? 잠깐.’
그러다 문득 그녀의 가족이 이곳 타라크까지 오게 된 사연이 떠올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디아나를 가르치던 탐욕스러운 교육 강사의 음모로 그들 가족이 곤경에 처했던 사건.
만약 그때 하인즈 2세가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쌍한 남매를 반가이 맞아주었던 선량한 숙부 내외는 가게와 살 곳을 잃는 건 물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외동딸 라피도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이 정말 그렇게까지 흘러갔다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볼트 일가가 디아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 디아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그 화목한 가족이 완전히 파탄 났겠군.’
역시 변수는 자기 자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행’이라는 세상의 정해진 흐름마저 뒤흔드는 타 차원 출신 각성자의 개입이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럼, 결재 부탁드립니다!”
그때, 마침 설명을 끝낸 그녀가 들고 있던 서류철과 펜을 내밀며 활기차게 외쳤다.
휴버트는 잠시 그 밝은 미소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에게 사고를 분할하는 것 정도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딴생각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말 또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어쨌든 「분석」 이거 제법 쓸 만한 능력이군. 아랫사람들 다루는 덴 최고라 할 수 있겠어.’
이걸로 충성심 높고 유능한 부하들을 쉽게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이것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나중엔 디아나의 후각과 불행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테지.
그전까지는 그녀가 괜한 불행에 휩쓸리지 않도록 계속해서 자신의 옆에 두는 게 최선일 것 같았다.
“그럼 이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상회주님!”
“음, 그래.”
이 세계에 와서 만난 첫 인연인, 이 말 잘 듣고 열심히 하는 소녀는 그에게도 제법 의미가 깊은 아이였으니까.
***
땅값이 비싼 타라크 중심 구역에 있는 유일한 공방.
공업 지구에 자리한 다른 공방들과는 달리, 이곳은 영주의 명령으로 오직 ‘자오닉 스틸스톤’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개인 공방이었다.
까앙—! 까앙—!
당연히 시설은 물론 여기저기 널린 장비들 또한 최상급이 아닌 것이 없었고, 준비된 재료들 또한 질이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물며 그 자오닉은 무려 장인의 종족이라 일컬어지는 그 드워프가 아니던가.
“허 참, 볼 때마다 놀랍군. 무슨 이런 괴물 같은···.”
그러나 그 공방의 주인은 지금 손을 놓은 채 어딘가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토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초부터 가르쳐야 했던 녀석이 보인, 그 말도 안 되는 성장 때문에.
‘놈이 천재인 거야 진작부터 알고 있긴 했다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고 해야 할까.
망치를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화로의 축복까지 받을 정도니 그 재능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심지어 그 구하기 힘들다는 세계수의 가지까지 흔한 장작처럼 펑펑 쓰고 있지 않은가?
거기다 체력은 또 어찌나 좋은지 그 페이스를 맞추다가 그가 먼저 나가떨어지기도 부지기수였다.
‘에잉, 나도 한창 젊었을 적에는 저렇게 팔팔했는데.’
자오닉이 미화된 과거를 회상하다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미화된 기준으로 비교해 봐도 저건 좀 심했다 싶어서.
‘의지도 말할 것도 없고.’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모든 잡념을 없애고 오로지 작품의 완성만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그 모습은, 마치 같은 생명체가 아닌 골렘으로 보일 정도로 기계적이었다.
물론 식음을 전폐하고 작업에만 몰두하는 거야 장인들 사이에선 흔하디흔한 일이었으나, 하워드의 모습은 그것이 익숙한 자오닉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안 그래도 그렇게 괴물 같은 성장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며칠 전을 기점으로 마침내 이해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 버렸다.
한 번의 망치질에 이어지는 두 번째 망치질이 마치 스무 번째로 내리치는 망치 같고, 세 번째 망치질은 거기서 또 십수 번은 교정한 듯 한층 더 발전한다.
마치, 혼자서만 수십 배의 시간 속에서 사는 것처럼.
그래, 그것은 성장이라기보단 차라리 진화라고 해야 옳았다.
그렇게 불가해한 현상이 이어진 지 며칠, 어느 순간부턴가 자오닉은 그를 가르치는 걸 멈추고 그저 뒤에서 지켜보다 간간이 조언만 하는 정도로 참견을 줄여나갔다.
마침내 하워드가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수습 단계에서, 그 길을 존중받을 수 있는 어엿한 장인의 단계에 오른 것이다.
실력 자체야 아직 자오닉이 월등하다지만, 이 단계까지 오면 서로 간에 방식의 차이가 ‘틀린’ 게 아닌 ‘다른’ 것일 뿐이기에 지도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후우—!”
그리고 또 한 차례의 작업이 끝나고.
마침내 몰입에서 빠져나온 하워드가 깊은 한숨과 함께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남은 팔 한 짝의 갑옷 파츠가, 일렁거리는 화로의 불빛을 그 매끈한 곡선으로 반사하며 요사한 금속광을 흘리고 있었다.
“거 이젠 뭘 만드는지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냐? 평범한 갑옷이라기엔 내부 구조가 복잡해 보이고. 허 참, 대체 어디서 저런 요상한 설계를 배워온 건지.”
그렇게 그의 작업이 끝난 듯하자,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자오닉이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이미 몇 번 물어봤음에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해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으허헛! 이거 말입니까?”
그에 하워드는 아직도 남은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매끈한 부품을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은 반신반의했으나 방금 팔 한 짝이나마 완성하며 그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안 될지도 몰라서 말하지 않았던 건데.’
아직 단순한 프로토타입인 건 물론, 완성한 이후에도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잦은 업그레이드를 거쳐야 할 테지만···.
완성할 수만 있다면 그런 고난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이 바로—.
“아이언··· 크흠.”
그가 장인의 길을 다짐한 순간부터 반드시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 로망의 집결체.
“만능 전투용 전신 슈트입니다.”
바로 그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