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4)
하회탈 (2)
하인즈 2세는 남매와 함께 순조롭게 이동 중이었다.
기운을 감추고 어지간해서는 나서지 않았고, 넘쳐나는 돈으로 용병을 고용하여 길 안내와 호위를 맡겼다.
“끄으윽··· 괴, 괴물···.”
물론 그중에는 중간에 도적으로 변모하는 놈들도 있었다.
이런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쯧, 입맛만 버렸군.”
나는 마지막 용병의 목덜미에서 입을 떼고, 비쩍 마른 시체를 한쪽에 던졌다.
그곳엔 이미 같은 몰골을 한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나는 입가의 피를 닦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몸을 돌려 수풀 밖으로 나갔다.
“앗! 아저씨! 끝나셨나요?”
“그래, 이제 출발하자.”
마차 옆에서 기다리던 남매를 안에 태우고 마부석에 앉아 말을 몰았다.
처음 마부로 고용했던 발터에게 배운 이후, 지금은 혼자서도 어느 정도 말을 몰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한 성과였다.
‘이번에 고용한 용병들은 꽝이었군. 치안이 개판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멀쩡해 보이는 용병들도 도시를 벗어나면 언제 도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오히려 그동안 별일 없었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이리라.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흡혈할 수 있었네. 더 버틸 수야 있지만, 힘에 제약이 생기니 기회가 될 때마다 흡혈해 두는 게 좋겠지.’
특히 이번 놈들처럼 상습적으로 의뢰인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빼앗는 놈들은 사정 봐줄 필요도 없었다.
‘일단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기는 한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슬슬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는데.’
지금은 대륙 서쪽 끝의 변방이라 그런지 들키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고민하며 말을 몰다가 슬쩍 뒤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수풀 속.
일순 검은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
[흐음, 흡혈 당한 시체는 질이 많이 떨어지는군.]언데드가 되며 변이될 에너지마저 갈취당했기 때문이겠지.
한스는 앞에 서 있는 네 구의 스켈레톤을 바라보다가 아공간에 수납하고 몸을 돌렸다.
하급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이 세계로 오며 시간을 벌었으니, 어디 조용한 곳에서 마법의 비의를 탐구해야겠군.]먹을 필요도 없고 잘 필요도 없다.
어떤 물질대사도 필요로 하지 않으니, 모든 시간을 오롯이 마법을 연구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몸을 띄워 숲속 깊은 곳으로 향했다.
사실 인적이 없는 곳을 따지면 처음 흑마법사들과 마주했던 마물의 숲이 더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은···.
‘뱀파이어나 흑마법사들하고 충돌할 것 같단 말이지. 차라리 멀리 떨어진 이름 없는 산속에서 은둔하는 게 더 조용히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깊은 곳에 위치한 동굴을 하나 골라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입주해 있던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 봤지만, 배 째라며 주저앉기에 어쩔 수 없이 전부 언데드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언데드로 다시 태어난 고블린들에게 자신들이 주저앉으며 지린 오줌을 포함해 동굴 내부를 청소시켰다.
후각이야 없지만 그래도 깨끗한 게 기분상으로도 좋았으니까.
[결계를 설치해야겠군. 항시 은폐장을 두르고는 있지만, 더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겠지.]흑마력을 숨기는 은폐 결계를 비롯해서 새로 익힌 지식을 총동원해 은신처를 숨겼다.
오래 있지는 않겠지만 한스에게 크게 덴 뱀파이어들이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진혈 정도 되면 내가 모르는 수단을 이용해 쫓아올 가능성도 있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외부인 감지, 흑마력 은폐, 환상, 인지 저해, 인식 왜곡, 방향감각 상실 등등 꼼꼼하게 결계를 둘렀다.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근처에도 오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동굴 한가운데 앉아 집중했다.
‘우선 마법의 분석부터 해 볼까.’
그렇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
아잔투.
얼마 전까지 뱀파이어 클랜 브로코슬락의 세력에 속해있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주신교단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단에서 타 왕국의 영토를 직접적으로 점거할 수는 없는 노릇.
탈리아 왕국에 요청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들의 협조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뱀파이어에게 홀려있던 도시의 지도층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물론 뒷골목의 조직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철컥, 철컥
순백의 갑주를 입은 성기사가 통로를 지나 지하실로 향했다.
곳곳에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였다.
“라티우스 대주교님.”
지하실에 도착한 성기사는 내부에 가만히 서 있던 중년의 남자를 나직이 불렀다.
“오셨소, 투스킨 경.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예, 뱀파이어의 잔당을 색출하는 것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왕국 병사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뱀파이어 클랜과의 충돌.
포위를 통해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을 사살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이쪽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진혈을 비롯한 일부는 놓치고 말았다.
이후 흔적을 조사하다가 그들이 불사왕의 후예와 한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뱀파이어 또한 명백한 악이었으므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들의 목적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불사왕의 부활을 저지하는 것. 눈앞에서 악을 마주하고도 못 본 척할 수 없어 나섰지만, 다시 움직여야 할 때요. 놈은 지금 이 순간에도 힘을 기르고 있을 터.”
애초 그들은 불사왕을 막기 위해 조직된 부대.
그의 행적을 쫓아 아잔투 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뱀파이어들의 흔적을 발견해 왕국군과 함께 색출을 진행 중이었지만, 언제까지 이쪽에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행적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성녀님께서 다시 연락을 주실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갑작스레 모든 흔적이 끊긴 상황.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뱀파이어의 잔당만 족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동안 나름의 소득이 있었소. 서쪽 마물의 숲에 있는 작은 마을부터 시작된 놈의 행적. 그리고 이 도시에서 벌인 일들까지.”
라티우스는 그간 놈의 흔적이 짙은 곳에서 주신의 성법을 통해 대지에 남은 기억을 읽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시간이 흐르고 마력의 영향도 받아, 파편화되고 흐릿해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분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이름은 한스다.’
‘기억해 둬라. 나는 역천의 서약의 한스!’
기괴한 탈을 쓰고 전신에서 불길한 기운을 흘리는 존재.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음산한 목소리.
언데드를 다루고 흑마법을 흩뿌리는 위용.
불사왕의 후예, 한스.
‘네놈의 뜻대로는 안 될 거다. 한스! 이 한 몸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막아주마!’
라티우스 대주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결의를 다졌다.
우우웅—
그때 그의 목에 걸려있던 교단의 성표가 진동했다.
“이건···. 투스킨 경, 잠시 실례하겠소.”
“걱정 마십시오, 대주교님.”
투스킨이 검 자루를 쥐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하자,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성표를 양손에 쥐며 눈을 감아 기도를 올렸다.
[라티우스 대주교님. 들리시나요?] [예, 성녀님.]본단에 있을 성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성표를 매개로 한 초장거리 통신 성법이었다.
[불사왕의 기운이 다시 포착되었습니다. 흐릿하지만··· 방향은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다행입니다! 저도 이곳을 조사하며 나름의 수확이 있었습니다.]성녀와 대주교는 통신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그렇군요. 한스. 예상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어요. 출현을 확인하자마자 토벌대를 꾸렸는데, 벌써 그렇게까지···.] [시간을 더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다시 추적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대주교님. 다시 사라질 수 있으니, 저도 예의 주시하고 있을게요.]우웅—
서로의 인사를 끝으로 통신이 종료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서 호위하고 있던 투스킨을 바라보았다.
“투스킨 경, 출정을 준비하시오. 성녀님께서 놈의 소재를 파악하셨소.”
“···! 정말 다행이군요! 역시 성녀님이십니다.”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적인 위치나마 알게 되었으니 그 주변을 조사해보면 될 터. 나머지는 우리에게 달렸소.”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성기사, 팔라딘 투스킨은 서둘러 부대를 정비하러 자리를 떠났다.
라티우스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놈의 흔적이 남은 곳.
꽈악—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는 다시 한번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
한스가 틀어박힌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예 없는 마법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분해해서 조립하는 과정에 가까워서 그런지 나름의 성과가 보이고 있었다.
중간중간 산짐승들을 잡아 직접 테스트를 하기도 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열흘째.
드디어 완성했다며 희희낙락했지만, 동물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은밀성이 너무 떨어졌다.
흑마력이 새는 건 물론 눈동자가 새빨개져서, 누가 봐도 이상이 있어 보일 정도라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이 주일째.
개선 과정에서 발동 마력량을 줄인 게 문제였는지 안정성이 너무 떨어졌다.
그렇다고 안정성을 잡으면 전염성이 사라지니, 한동안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삼 주일째.
[빠드드득— 빠득! 빠가각!]나는 열심히 이빨을 갈고 있었다.
전신에서는 검은 오라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미리 결계를 쳐두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수준까지 기운을 뿜어대다가 억지로 진정해 겨우 가라앉혔다.
‘왜 프로그래머들이 디버깅에 이를 가는지 알겠군.’
이쪽을 고치면 저쪽에 문제가 생기길 반복하고, 손대지도 않았는데 문제가 해결돼서 기뻐하다가 마무리 작업 때 한꺼번에 터져 나오질 않나.
정말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하인즈는 여러 마을과 도시를 지나 왕국의 중심부에 다다랐는데, 한스에게 정신력을 쏟아부을 때마다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남매가 너무 걱정해서 하인즈의 몫은 적당히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제 정말로 끝이다···! 진짜로 마지막이야!’
통칭 ‘전염성 사역마법 최종본_수정_2차_FINAL(3)_진짜마지막’의 수식을 테스트하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섰다.
동물을 잡아서 직접 사용해 보기 위해서였다.
날아가는 새들 몇 마리에게 매혹 마법을 걸어 이쪽으로 유도한 후, 테스트할 마법을 걸고 풀어주었다.
‘지금까지는 이상도 없고 괜찮아. 이제 기다려서 결과만 보면 되는데···.’
기다리다 보니 전염 효과로 인해 링크가 하나둘 연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결 개체의 수는 이쪽에서 적절히 조절할 수 있었다.
같은 장소에 여러 마리가 몰려있어 봤자 쓸모도 없고, 쓸데없이 마력만 소모하니까.
그렇게 적당히 간격을 두고 마법을 유지하는 실험을 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지? 탐지 마법에는 딱히 이상이 느껴지진 않는데?’
사역 마법에 걸린 동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나에게 정보를 보낼 때 말고는 평소처럼 움직일 텐데, 지금의 움직임은 마치···.
‘겁먹었어? 사방으로 보낸 동물들이 전부? 뭐에?’
실험을 위해 동물들에게 마법을 걸며, 정보를 보내는 트리거를 ‘몬스터를 만났을 때’로 설정해 두었다.
그런데 정보는 오지 않고 동물들이 겁을 먹었다는 것은···.
‘설마?’
서둘러 트리거를 변경했다.
‘인간을 마주했을 때’로.
지지지징—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정보가 전달되었다.
‘어떻게? 탐지 마법에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는데!’
동물들이 전해온 정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일단의 무리가 주변을 포위하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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