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45)
#245
뱀파이어 라이즈 (5)
한국에 갑자기 등장한 정체불명의 괴인, 하회탈.
그는 오직 자신만의 기준으로 범죄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심판하기 시작했고, 그 잔혹한 손속은 혼란스러웠던 치안을 안정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무리 그것이 법도 질서도 무시하고 무력만을 앞세운 폭거였다고 하나, 그가 가져온 가시적인 성과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으니.
그에 대중들은 그의 행보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이전까지 국내의 치안을 책임져 오던 이들을 저평가하게 되었다.
거대 기관이라는 이들이 고작 한 사람만 못하다고.
콰아앙—!
‘변명거리는 많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긴 하지.’
알파와 공세를 주고받던 윤지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이능관리국과 한국 귀환자 협회는 무능과는 거리가 먼 집단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조금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였을 뿐, 한 국가의 치안을 책임지며 지금까지 사회를 유지해 온 이들이 무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곳, 분명 헤테로시스의 주요 거점이었지?’
일례로 그녀는 이미 서울의 밤거리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혈맹의 주류 세력, 헤테로시스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온건한 행보를 보이며 치안 확보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지라 일단은 암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지켜보고만 있었으나, 당연히 협회가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경계 지역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갑자기 강대한 에너지 반응이 관측된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수준의 적대적 혈마력이.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피해가 너무 커.’
다시 입술을 깨문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본부에서 이상을 감지하고, 그 소식이 휴가를 나갔던 그녀에게 전달되고, 이어 직접 이곳까지 달려오는 데까지 고작 5분 남짓.
그런데 그렇게 급하게 움직였음에도 발생한 사상자 수가 벌써 수백이었다.
그나마도 헤테로시스 소속으로 보이는 흡혈귀 하나가 마지막까지 놈의 관심을 끌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피해가 더 늘어났으리라.
‘헤테로시스의 거점에 나타난 9레벨 수준의 광혈귀(狂血鬼). 그러고 보니 강경파가 몰락하기 전에 그 수장이었던 알파가 모습을 감췄다고 했었지.’
파지지직—!
그렇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와중에도.
윤지윤의 몸속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에너지, 뇌전의 차크라는 계속해서 휘돌며 세상과 공명했다.
쿠르릉—
그것을 매개로 그녀의 의념이 현상을 강제하기 시작하고—.
콰아앙—!
이내 또다시 하늘에서 지상으로 한 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정확히 알파의 머리 위로.
“끄아악! 죽인다죽인다죽인다! 네년도! 하인즈도! 아아— 모든 인간들을!”
“아, 더럽게 튼튼하네! 그만 너나 이제 좀 죽어!”
그러나 그 역시 평범한 괴물이 아니었다.
1초를 수십 등분으로 나눈 찰나의 순간.
차크라가 듬뿍 담긴 번개에 재차 노릇하게 구워진 알파가 대기를 찢으며 그녀의 앞으로 짓쳐들었다.
“키하학!”
그의 외피는 이미 수차례의 뇌격으로 너덜너덜해져 있었으나, 질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생명력은 그 순간에도 육체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있었다.
마치 정말 불사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론 정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령 진짜 불사신이라 해도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광혈귀는 생사불문. 최대 화력으로 통째로 날려버리는 게 가장 편할 텐데··· 어쩔 수 없지. 방법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니.’
하필 장소가 좋지 않아 전력을 내기도 힘들었다.
이런 시가지에서 함부로 최대 화력을 퍼부었다간, 그녀가 싸우는 동안 가디언 측에서 주변에 펼친 결계와 함께 일대가 통째로 날아가 버릴 터.
자칫하다간 저 광혈귀로 인해 발생한 피해보다 자신이 만든 피해가 더 커질지도 몰랐다.
파직—!
체내의 전기가 거칠게 휘돌며 사고가 한계를 넘어 가속한다.
호흡이 멈추고, 신체 대사가 멈추고, 생체 전기의 교류도 멈춘 영원의 시간 속에서—.
오로지 그녀의 체내에 깃든 차크라만이 끝을 모르고 회전했다.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태워주마!’
이윽고 바퀴처럼 회전하던 차크라의 중심에서 내면의 소우주가 열리고.
그녀, 윤지윤은.
—번개가 되었다.
***
“빨리빨리 움직여! 시민들을 안전한 영역으로 옮기는 게 우선이다!”
“치료사가 부족해? 정부 이름으로 근방의 성직자들에게 싹 다 연락 돌려! 그래도 안 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든 협박을 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데려와!”
“큭, 결계 쪽에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이젠 여파를 막는 것도 한계예요! 만약 직격이라도 맞으면 한 방에 터질 겁니다!”
윤지윤이 알파를 막아선 전장의 외곽.
난장판이 된 현장 속을 긴급 출동한 귀환자 협회의 가디언들과 이능관리국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최근에야 하회탈 덕분에 비교적 평안한 시간을 보냈을 뿐, 이런 일 자체는 그들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집단도 아니고 빌런 하나가 이만한 규모의 피해를 입히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긴 했으나,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문제가 되는 그 빌런은 직접 나선 지부장이 처리해 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분주한 사이.
한 인영이 모두의 인식 바깥에서 그 현장을 유유히 지나쳐 결계로 다가가고 있었다.
‘일이 터지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대응이라. 훌륭하군. ···그만큼 이런 일이 잦았다는 거겠지만.’
「존재부정」을 사용해 자신의 존재감을 감춘 하인즈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알기에도 하루가 멀다고 테러 관련 소식이 터져 나왔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소식이 퍼지면 또 잠잠하던 빌런들이 하나둘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겠지.’
원래 아무 일 없이 조용할 땐 모두가 눈치를 보지만, 누군가가 먼저 돌출 행동을 하는 순간부터 따라서 난장을 피우는 것이 인간의 심리였다.
그간 튀어나오는 족족 잡아 족쳐서 얌전하게 만들어놨는데, 아마 다시 그렇게 바로잡기 위해선 한동안 제법 고생 좀 해야 하리라.
‘쯧, 어쩔 수 없지. 일단 진소란은 무사히 몸을 빼낸 것 같으니 나중에 찾아가 봐도 될 테고. 일단 저 안에 있는 놈부터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이만큼 가까운 거리에선 굳이 「군주의 권세」를 쓰지 않아도 권속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비롯해 살아남은 몇몇 헤테로시스의 흡혈귀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걸.
‘이 기세··· 역시 성혈급은 되겠군. 그런데도 진소란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저쪽이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뜻일 터.’
결계 너머에서 맞부딪치는 두 존재의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 수준으로 저만한 상대에게서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아마 저쪽에서 일부러 죽이지 않은 사이에 협회의 강자가 개입한 틈을 타 몸을 피한 모양이었다.
‘상당히 운이 좋았군. 어디, 놈에 대해선 지금부터 직접 알아보면 되겠지.’
그렇게 결계의 앞에 다다른 하인즈는 잠시 그것을 「통찰」로 살펴보다가.
이내 「존재부정」을 사용해 가볍게 무시하고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 직후, 그가 마주한 것은.
“크기게겍! 하인즈으으!”
콰르릉—! 콰앙!
“아니, 아까부터 숙녀를 앞에 두고 계속 딴 사람만 찾는 거 봐? 생긴 것처럼 매너가 아주 빵점이구나!”
파지지직—!
애타게 자신을 찾아 부르짖는 반쯤 숯이 되어버린 괴물과.
빛··· 아니, 전기로 이루어진 어떤 존재가 놈을 붙잡고 연신 번개를 내리쳐 구워버리고 있는 장면이었다.
‘···내 이름? 그런가. 그럼 저놈이 알파겠군.’
작은 단서를 토대로 순식간에 상대의 정체에 대한 결론에 도착한 하인즈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알파는 낭패당한 모습으로도 끊임없이 재생하면서 날뛰어 주변을 파괴하고 있었으나, 이성을 상실하고 본능만 남은 지금 상태로는 말 그대로 번개처럼 움직이는 상대에게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번개의 정령···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연력보단 좀 더 본질적인 개념에 가까운 힘, 차크라 사용자인가.’
내면의 소우주를 완성해 특정 개념과 현상에 개입하는 이능, 차크라(Chakra).
그간 지구에서 그 사용자를 본 것도 적지 않았건만, 저렇게 전신을 ‘뇌전’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치환할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하군. 지금 저것도 전력은 아닌 것 같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생소한 체계였던지라 그 수준을 정확하게 가늠하긴 힘들었으나, 그래도 상대가 초월 중에서도 다소 격이 높은 위치에 올랐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 난, 나는 하인즈를 죽여야 하는데요! 방해하면 너도 죽인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일단 너부터 죽으렴!”
재차 내리치는 벼락에 전신이 숯이 되어 가면서도 거칠게 절규하는 알파.
역시 저놈 상태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광혈귀··· 즉, 동족 포식으로 정신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그가 보이는 하인즈에 대한 집착은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머릿속에 그것을 각인해 둔 것처럼.
‘뭐, 미친놈의 사고방식을 따지고 드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지. 그보다 이대로 놔두면 저 녀석 곧 죽을 것 같은데.’
아직은 그 우월한 재생력으로 버티고는 있었으나, 그것도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는지 더뎌지는 추세였다.
그럼 이 사태의 원흉이 순조로이 제거된 걸로 만족하고 순순히 물러나야 하는가?
‘···그럴 수야 없지!’
이번 일로 이쪽이 입은 피해도 적지 않았다.
사무실을 비롯한 헤테로시스의 재산이 날아간 건 사소한 부분일 뿐.
사무실에 있던 흡혈귀들 중 절반 이상이 알파의 난동에 휩쓸려 사망했으며, 하인즈의 업무를 대리하던 진소란 또한 당분간은 요양해야 할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냥 뒤에만 물러나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엄연히 이쪽도 정당한 복수를 할 권리가 있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이건.
절대 스틸이 아니었다.
푸욱—
“커헉! 네놈···? 하인즈—!”
그저 아주 약간의 은원 청산 절차일 뿐.
***
중국 모처.
휠체어에 앉은 이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조금 꺼림칙한 기분으로 달갑지 않은 상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여보세요? 율령자입니까~?
“예, 닥터. 원하시는 곳에 물건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려 연락드렸습니다.”
-우호홋! 그런가요? 잘 됐군요, 잘 됐어!
언제나처럼 호들갑 떠는 경박한 목소리.
하지만 율령자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으며 필요한 말만을 차분하게 늘어놓았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개략적인 경과를.
“한국의 뇌제 윤지윤이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현장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일부러 그녀가 자리를 비운 순간을 노렸습니다만. 그다지 의미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흐음, 그건 조금 아쉽군요! 아무리 버림패라곤 해도 좀 더 화끈하게 일을 벌여줬으면 했는데!
통신 너머로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이후 몇 가지 사안을 끝으로 큰 이상 없이 중간보고가 완료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율령자! 제정신이 아닌 친구라 다루기 까다로웠을 텐데 말이죠!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요.”
율령자의 그 말에는 ‘아무리 까다롭고 다루기 힘들어도 당신만 하진 않다’는 뜻이 담겨있었으나, 당연히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제 마음이 담긴 선물이 하인즈라는 친구에게 무사히 전달되었으면 좋겠군요! 물론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차선책도 마련되어있습니다만, 그래도 쉽고 빠른 게 좋으니 말이지요! 우햐햐햣!
“흠, 그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물론 동족 포식을 하고도 멀쩡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기껏 고생해서 만든 9레벨 흡혈귀까지 소모할 필요가 있었는지.”
번천회 동아시아 지부장인 율령자에게는 알파 또한 훌륭한 전력 중 일부였기에, 이 의미 없는 작전에 불만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회탈과 싸우면서 상당한 전력의 누수가 있었는데 이런 낭비라니.
-율령자, 수확을 위해선 씨를 뿌리는 게 당연한 겁니다! 도축 전엔 가축을 살찌우는 게 당연한 거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알파라는 불량품을 투자한 건 아주 효율적인 판단입니다! 그건 말만 9레벨이지 지능이 퇴화되어 짐승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크흠, 그자의 행적을 좀처럼 파악할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말이지요.”
-그러니 이번 작전이 필요한 겁니다! 미끼를 살살 흘려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오게 만드는 거지요. 그리고 그 몸뚱이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드디어 그 ‘완전 진화 생물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햐햐햣!
통신 너머로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한 닥터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가 초안을 작성하고,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에게 소량의 용혈과 함께 연구 용역을 맡겼던 대형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니.
비록 도중에 한국의 연구소가 박살 나긴 했으나, 그 연구는 꾸준히 진전을 보이고 있었고.
마침내 이번에 발견한 하인즈라는 돌연변이 뱀파이어의 존재로 인해 그 완성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 참이었다.
-우히햐하하!
그렇게 닥터는 자신의 위대한 연구에 대한 만족감에 연신 흡족한 웃음을 터트리다 통신을 종료했다.
그의 비원이나 다름없는 그것이 이미 다른 이에게 유출되어, 그자의 손에서 만들어진 지 한참이 지났다는 것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