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53)
#253
닫힌 차원 (2)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집무실.
그곳에 놓인 업무용 모니터에서 온갖 정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지간한 동체시력으로는 단 한 줄도 읽지 못할 속도였지만···.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군.’
그 앞에 앉은 사내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태연하게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이잉—
한쪽 안구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과 함께, 눈에 비친 막대한 정보의 홍수가 고스란히 그의 머릿속에 투사되었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겪었다면 미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일이었으나, 초월적인 정신 능력을 가진 그에게는 그저 가벼운 두뇌 트레이닝에 불과했다.
‘이게 전부인가.’
과연 마도 공학의 정수가 담긴 궁극의 의안.
그 압도적인 성능에 힘입어 순식간에 방대한 양의 보고서를 모조리 뇌리에 입력한 사내, 율령자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순식간에 머릿속의 정보를 반추했다.
‘···어디냐, 하회탈.’
그날 일본에서의 싸움 직후에 모습을 감춘 하회탈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놈의 뒤를 잇듯 하인즈라는 흡혈귀가 서울의 밤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지만, 그쪽은 닥터가 직접 관심을 두고 수를 쓰고 있었으니 그가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역시 그때의 싸움으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거겠지.’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애초에 놈을 무력화하기 위해 작정하고 벌인 정신 테러였다.
그걸 맞고도 멀쩡했다면 오히려 억울하기만 할 터.
다시 눈을 뜬 율령자가 슬쩍 시선을 돌려 축 늘어진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하회탈에게 당한 여파로 한쪽 눈과 양다리에 이어 기능을 잃은 신체를 마주하자 가슴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회탈···.’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곱씹으며 원한을 되새기던 중—.
-삐비빅!
집무실 스피커에서 갑자기 통신 요청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이내 그 대상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왼손을 뻗어 상대와 연결을 승인했다.
-아, 아— 여기는 닥터. 귀하는 율령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닥터. 무슨 일이십니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경박한 목소리.
그는 그것에 슬쩍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차분하게 응답했다.
-우햐햣~ 아, 회주가 다시 떠났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연락했습니다! 최대한 기다려 보려고 했는데 더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본에서 하회탈과의 충돌이 있고 나서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회주는 놈이 다시 나타날 걸 대비하며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었는데, 그렇게나마 보낼 수 있었던 시간도 이제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스마일 마스크와 싸우며 생각 이상으로 ‘지구’의 이목을 끌어 버려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이왕 그렇게 된 거 조금 무리하더라도 놈을 확실히 잡아들이려 했건만···. 에잉~ 이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송구스럽군요. 제가 확실히 하지 못한 탓에, 회주께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괜히 헛되이 낭비한 것 같아서.”
솔직히 자신의 탓이 크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사안이 워낙 크다 보니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없었다.
철저하게 짜여있던 계획이 어긋난 만큼 번천회의 대계도 전반적으로 더 미뤄질 수밖에 없었으니.
-아아~ 세상에 뜻한 대로만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선이 안 된다면 차선을 택하면 되지요. 회주야 어디서든 알아서 잘할 테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그에 닥터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아는지 그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일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불만을 토해낼 뿐.
-쯧, 그런데 역시 이 상황···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대체 언제까지 신들의 뜻대로 놀아나야 하는지!
그것은 일을 방해한 하회탈을 탓하는 것이 아닌, 회주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이유이자— 번천회의 존재의의에 대한 것이었다.
“이 정도 오차는 예상 범위이지 않습니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후— 그랬죠, 맞습니다! 아아, 그때가 기다려지는군요! 신이라는 불합리한 존재가 있으면 과학의 진보도, 새로운 발견과 발명도 무의미해지는 법! 인간 세상에서의 일은 인간끼리 해결해야 마땅한데, 어딜 감히 신 같은 게 끼어든단 말입니까아—!
웬일로 비교적 얌전하다 싶었건만.
아니나 다를까, 혼잣말하듯 빠르게 말하던 닥터의 목소리에 서서히 광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군.’
역시 이래야 번천회의 대표 광인이라 할 수 있겠지.
그에 율령자는 포기한 듯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곤 적당히 그의 말에 맞장구 쳐 주었다.
그렇게 닥터의 흥분 가득한 열변이 한참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열심히 떠들던 그는 자신의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 씩씩거리더니, 이내 그 에너지를 연구에 쏟아붓겠다며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 버렸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속.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쉰 율령자가 눈을 감고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문득 하회탈과 처음 조우했을 때, 그 정신세계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귀환자들의 자유. 우리가 주도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우리는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유를 위해 투쟁해 왔지.
‘자유라···.’
그때 그가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다만, 그 상대가 인간 권력자가 아닌 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뿐.
물론 끝에는 결국 세계의 패권도 손에 들어올 테니 딱히 다르지 않기도 했다.
‘대의를 위해선 희생은 불가피하다.’
테러 또한 그 대업의 일환으로 의식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계획대로 된다면 최종적으로 지구의 인구 절반 정도가 희생될 터.
하회탈은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했으나, 어차피 한 명이 할 수 있는 방해엔 한계가 있었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계획은 지금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으니까.
***
‘번천회주, 설마 그놈인가?’
구체적인 근거도 맥락도 없는 추론이었지만, 어떤 특이점을 넘어선 예리한 직감이 선명하게 경고해 왔다.
지금 벌어진 사태의 원인이 바로 그자일 것이라고.
그에 좀 더 상세한 정보의 필요성을 느낀 해리스는 진덕만의 기억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파지직—!
“으그그극—! 진짜 몰라! 모른다고!”
“음? 반말입니까?”
“아, 아니! 내 이 이상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온갖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했음에도 그에게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순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은 그저 ‘제국 붕괴의 뒷면에 그런 비사가 있다더라’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이 전부일 뿐.
“그럼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크윽, 내 의형···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의 총채주에게 들었소! 그 양반도 어디서 들었다면서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라 출처는 모르지만!”
“장강수로채라···.”
장강수로채.
그들은 동정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정십팔채와 같은 수적 연합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상위호환인 거대 조직이었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물류의 중심은 수운(水運)일 수밖에 없었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장강을 기반으로 삼는 그들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수로의 중요성을 아는 관에서도 엄격히 규제하고 나섰지만, 애초에 도적이라는 존재는 그런 통제를 피하는 데 도가 튼 이들이 아니던가?
‘거기다 여긴 소수의 강자가 다수의 군대를 압도할 수도 있는 세계니까.’
넓은 장강을 이리저리 누비며 밀무역과 통행세 등으로 부를 축적해 관의 골칫거리가 되었던 수적들.
나라가 무너져 내리며 고삐가 풀린 지금, 그들은 수로를 독점하며 오히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 전보다 더한 세를 떨치고 있었다.
“으음, 이거 곤란하군요.”
그런 정보를 떠올린 해리스가 침음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문제는 그 장강의 물줄기가 어마어마하게 장대하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7일 남짓.
그 사이 장강 어딘가를 싸돌아다니고 있을 목표물을 잡아다 정보를 캐내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니,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서두르지 말자. 어차피 처음 목표는 정보를 수집한 다음 성장하기 적합한 환경을 마련하려는 것이었으니까.’
어쩌다 보니 그게 수적들을 모조리 때려잡는 깽판기가 되어버렸지만.
당장 거기에 전력투구할 필요는 없었다.
“끄응···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소만. 뭔가 알고 싶은 게 있다면 고작 수적 나부랭이인 우리에게 이러지 말고, 보다 잘 알만한 이들을 찾아가 보는 게 어떻소? 저기 장강 너머 호북성 융중의 제갈세가라던가.”
그때 진덕만이 앓는 소리를 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자신에게 붙은 액운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듯한 모습이긴 했으나, 확실히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제갈세가?”
“크흠,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더 많다는 이들이지. 황실 관리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고 말이오. 또 기의 쇠퇴와 용맥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도 제갈세가에서 가장 먼저 알아냈다는 말이 있소.”
확실히 그런 곳이라면 이 사태에 대한 내막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휘하의 여러 수채를 전전한다는 장강수로채주와는 달리 거점이 명확해 찾아가기 쉽기도 하고.
‘흐음, 거기다 이름난 명문이란 말이지.’
이런 혼란 속에서는 사실상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장소 따윈 없을 터.
그런 상황이었으니 원활한 생활을 위해서는 현지 협력 업체의 도움이 필수였다.
하지만 그것도 아무 곳이나 선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럼, 일단 한번 가서 확인해 볼까?’
물론, 수적들이 모아둔 재물들은 모두 수거하고 나서.
***
동정호 인근의 허름한 어촌.
엊그제만 해도 죽지 못해 산다는 듯 암울한 분위기만이 감돌던 곳이었으나, 지금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찾아온 작은 희망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들을 수탈하던 수적들이 천벌을 받은 건 물론, 그로 인해 텅 비었던 곳간이 채워지며 마음이 넉넉해졌던 것이다.
또 어떤 풍파에 사그라질지 모를 미약한 희망이었지만, 그것은 힘들게 살아온 이들이 당장 오늘을 버틸 힘이 되어 주었다.
“허어, 이건···.”
그리고 그 작은 마을 어귀에.
낡고 헤진 도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들어서며 탄성을 토했다.
“뉘시오?”
그에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한 등이 굽은 노인이 그를 보며 경계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환란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렇다 할 내객이 없었던 이런 작은 어촌에 갑자기 찾아온 외지인이라니.
어떻게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지 않은가?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어르신. 빈도(貧道)는 청관이라 합니다.”
“···도사셨소? 여기엔 무슨 일로···?”
그러나 중년의 사내가 보인 공손한 인사에 노인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물론 이런 시대엔 도사건 스님이건 위험한 건 매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예를 차릴 정도면 당장 악심을 내보이진 않을 테니까.
“그것과 관련해서 어르신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그리고 노인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 도사, 청관이 이내 고개를 돌려 호수 저편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바다 같은 넓이를 자랑하는 동정호 안의 작은 섬.
얼마 전까지 이 일대를 지배하던 어룡채의 수채가 있던 장소였다.
“오호! 역시 도사님이라 한 번에 알아보시는 모양이구려. 허헛, 동정호의 용왕께서 수적 놈들에게 천벌을 내리셨다오!”
“용왕··· 말입니까?”
노인이 언제 경계심을 내보였냐는 듯 반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청관에게 그날 보았던 그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웠던 광경에 대해 늘어놓았다.
하늘을 뒤덮은 소용돌이 모양의 짙은 구름과 일대를 감싸며 휘몰아치던 어마어마한 폭풍.
거기에 뇌신이 강림한 듯 연신 지상에서 터져 나오던 천둥번개까지.
그 허풍 같은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한 청관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어떠한 흔적이 짙게 남은 섬 쪽으로 향했다.
지금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도 노인의 말을 그저 허풍으로 치부했을 터였다.
그 정도로 그 이상 현상에 대한 이야기는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으니.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곳에 남아있는 어마어마한, 그리고 이 세상의 기운과는 명백히 이질적인 흔적들을.
‘···역시,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노인은 동정호의 용왕이 천벌이 내렸다고 하지만 아마 그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용왕이건 신선이건 요괴건, 그들은 어쨌든 이 세계에 속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을 테니까.
청관은 자신의 질문에 답해준 노인에게 공손히 감사를 표하고는 서둘러 마을을 떠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등짐에서 제구(祭具)들을 꺼내 간이 사당(祠堂)을 구축한 후, 그 중심에 앉아 부적 한 장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며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화르륵—
갑자기 부적에서 피어오른 푸른 불꽃이 주변에 은은한 빛을 흩뿌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적은 타들어 가기는커녕 조금의 그을음도 없이 처음 그대로 빳빳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빈도 청관이 아뢰옵니다.”
그리고 그 도사, 모산파(茅山派)의 술사 청관이 경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호남성 동정호에서 이계의 힘을 지닌 이세계인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곳과는 한참 떨어진 강소성의 본산으로 보내는 전언을.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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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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