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55)
#255
제갈세가 (1)
호북성 융중산.
이곳은 일대를 지배하는 강호인 제갈세가가 터를 잡은 곳이자 용맥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 땅이기도 했다.
사실 애초에 용맥이라는 것도 풍수지리에 포함된 것이다 보니, 이름난 세력의 본거지는 대부분 그런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이 강성한 세력을 바탕으로 좋은 땅을 차지했든, 좋은 땅에 있었기에 세력이 커졌든 선후야 제각각이겠지만.
덕분에 그들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추가로 용맥을 확보하는 전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본거지를 지키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거기다 제갈세가는 진법과 술법 쪽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이름 높은 명문가였으니.
그들이 자리한 융중산 주변의 방비는 그야말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랬었는데···.’
금일 제갈세가의 외곽 경비를 총괄하는 천기수호대 2대주가 검을 그러쥐고 눈앞의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융중산에 펼쳐진 일곱 개의 진법 중 여섯 번째인 대라금쇄진(大羅禁碎陳) 내부.
이미 세가 내부로 침투한 적을 상정한 마지막 진법을 제외하면 사실상 최후 저지선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융중산 전체에 펼쳐진 가문이 자랑하는 진법이···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여겨왔던 방비가 한순간에 여기까지 뚫려버린 것이다.
일견 명성에 걸맞지 않은 추태라 할 수 있었으나, 당연히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미친, 하늘을 통해서 진법을 파훼하고 곧바로 여기까지 왔다고?’
애초에 진법이라는 것 자체가 특정한 기물이나 자연 지형을 이용하는 것이다 보니 지상의 적을 상대하는 것에 특화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갈세가는 거기에 술법까지 섞어 공중에 대한 대책도 어느 정도 세워뒀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자유롭게 하늘을 노닐며 아예 산 하나를 통째로 넘어오는 상대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여기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해도 그렇지···!’
처음 산 초입에서 침입이 감지되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순식간에 그곳을 돌파한 침입자가 두 번째 진법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비상 소집령이 내려졌는데···.
상대의 진입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세가의 다른 이들이 전투 준비를 모두 마칠 때까지 그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
이를 악문 2대주가 손에 쥔 검병을 꽉 움켜쥐며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경고요. 본 가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한 이유를 밝히시오.”
아무리 대라금쇄진이 그들을 보조해 준다 해도 저런 정체불명의 고수를 상대로 경거망동은 금물이었다.
되도록 대화로 시간을 끌면서 상대에 대해 파악하는 게 최선.
그런데 뜻밖에도 그 침입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답해왔다.
“아, 이거 실례했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해리수, 귀가에 잠깐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방문했습니다.”
“···세간에선 보통 허가받지 않은 방문을 침입이라 부르오만.”
“오! 그렇습니까? 척 봐도 아시겠지만, 제가 이곳 사람이 아닌지라. 하하하!”
그 뻔뻔한 대답에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한눈에 봐도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외양이긴 한데, 그래도 그런 기본적인 걸 문화의 차이라고 우기려 드는 건 좀···.
‘아니, 아닌가? 외지인은커녕 아예 인간도 아닌 거 같고. ···요괴라서 인간의 문화를 진짜 모르는 건가?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들자 2대주의 표정에 혼란이 어렸다.
상대가 무작정 침입해 들어왔을 땐 확실한 적이라고 생각했건만, 정작 그 침입자의 태도가 저렇게 태평하다 보니 그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녕 그렇다면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손님맞이에는 응당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 그 정도는 따라 주시겠지요?”
그의 판단은 일단 적당히 상대의 말을 받아주며 실리를 취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판단은 상부가 할 테고 그의 임무는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었으니까.
“이거 제가 너무 실례한 것 같군요. 그럼 그렇게 할까요?”
무사들이 한껏 긴장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시원한 수긍.
금발 녹안에 긴 귀를 가진 불청객, 해리스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영향력을 키우는 게 목적인데 굳이 모든 세력과 날을 세울 필요는 없지. 수적들이야 내 기준에서 자격 미달이었지만, 제갈세가는 주변을 그리 수탈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
물론 원활한 관계 구축을 위해 이쪽의 힘을 살짝 보여준다고 지금의 소란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이 정도야 어디에나 있는 흔한 자기 PR이지 않은가?
그리고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해리스는 곧장 세가로 난입하려던 자신을 강제로 지상으로 내려오게 만든 진법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과연, 이게 진짜 제대로 된 진법인가. 대단한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 일대와 자신은 물론 무사들 하나하나에 연결된 기운의 흐름에 한껏 매료된 상태였다.
톱니바퀴처럼 철저하게 계산대로 흐르는 그 자연의 기운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질 정도.
그리고 그런 감상을 느낀 것은 전혀 다른 차원—.
아우테리카의 불사성에 있는 불사왕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이거 흥미롭구나. 해리스만 한 강자를 강제로 억압할 정도라···. 이제 보니 앞서 지나온 다섯 개의 진법도 이곳과 연계되어 그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군. 진법이란 게 이 정도였나?]골방에서 홀로 연구를 진행하던 한스가 슬쩍 고개를 기울이며 낮게 읊조렸다.
지구에서 접한 후 「마도의 길」에 편입된 ‘진법’은 여러모로 범용성이 좋아서 그도 자주 애용하는 수법이었다.
마법진을 그리거나 제단을 꾸리면서 살짝 가미하기만 해도 효과가 극적으로 증폭되었으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역시 그가 가진 지식수준으로는 강환계 제일인 제갈세가의 절진을 완전히 돌파하는 건 무리였다.
그나마 저기까지 파훼하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해리스라는 능력자가 공중이라는 취약점을 노렸기에 가능했던 것일 뿐.
[하긴, 저만한 세력이라면 그런 비전 몇 개 정돈 있겠지. 크흐흐··· 이거 참, 굉장히 탐나는구나.]일단 뭐든지 배워두면 쓸모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술법에 대한 욕심이 그득한 한스가 개인적인 욕망을 불태우고 있을 때.
여전히 해리스는 진법 내에 흐르는 기운의 운행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이 진법, 무유팔괘비공의 팔괘(八卦)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기운에 민감했던 해리스는 무공을 접하면서 이 세상의 기운에 더욱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세상에 흐르는 기운을 이용해 온갖 자연의 조화를 부리는 이 진법의 극치는 매우 훌륭한 교보재나 다름없었다.
‘기의 성질과 그 운행, 거기에 포함된 이 세상의 법칙,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기공···.’
뭔가 머리가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에 해리스가 다시 무유팔괘비공의 요결을 떠올리며 기를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감각을 통해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받는 휴버트 또한 자연스럽게 분석 방향을 선회하며 그를 보조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가진 조건이 서로 다른데 굳이 정석대로 따를 필요가 없었어.’
이 세상에서 무공이란 힘을 추구하게 된 인간들이 태생부터 특출난 존재들을 흉내 내면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던 맹수부터 시작해 약하더라도 생존력만큼은 뛰어난 초식동물의 움직임까지.
그리고 그것은 동물을 넘어 폭포와 벼락 등의 자연 현상을 담기 시작했고, 마침내 달과 태양 같은 우상은 물론 죽음과 풍요 등의 추상적인 개념마저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유팔괘비공이 추구하는 것은 천지 만물··· 즉, 자연과의 조화. 내가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 부분은 필요 없으니 과감하게 버린다.
그는 불완전했던 무유팔괘비공을 다시 운용하며, 자연과의 조화에 관한 요결을 「자연 동화」와 「자연의 부름」 등에서 비롯된 압도적인 친화력으로 대체했다.
고오오오—
사방에서 막대한 자연기가 몰려오며 진법을 구성하던 흐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에 선 무인 대표가 뭐라 외치는 것이 느껴졌으나, 지금 그에게 그런 것 따윈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필요 없는 단계를 건너뛰고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만 취했다.
이미 휴버트가 전체적인 분석은 전부 끝내놓은 상태였던지라 그대로 진행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조화. 과한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함께 성장한다.’
몰려온 기운이 해리스의 몸으로 밀려들며 단전 부위에 자그마한 내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과부하가 걸린 육체가 삐거덕거렸지만, 이미 초월에 올라 정기신(精氣身)을 완성한 해리스는 그 모든 것을 빠르게 수용하며 순식간에 적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자연지체」를 획득합니다.》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무유팔괘비공(改)」을 획득합니다.》
뭔가를 얻는 건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야 가능하리라 생각했거늘, 뜻하지 않은 기회에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일에 소득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해리스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지체」를 습득한 것과 동시에 자신에게 더 다양한 종류의 정령들과 연을 맺을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을.
‘···이거 참, 아우테리카로 돌아간 뒤가 기대되는데.’
요동치는 기운을 갈무리한 해리스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어쩌면 정말, 머지않아 준신격이나 다름없는 정령왕까지 소환할 수 있게 될지도.
“아!”
그리고 그제서야 주위에 신경이 미친 해리스는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다가, 식은땀이 가득한 굳은 얼굴로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무사들을 보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크윽,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아— 하아—.”
그야 그럴 수밖에.
자신만의 세계에 심취하는 동안 그 기운의 유동을 버티지 못한 결계··· 아니, 진법이 기어코 무너져 버렸으니 오죽하랴.
‘곤란하군. 고의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순순히 기다리는 척하다가 난데없이 난동을 부리며 진법을 부순 괴한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이쯤 되면 대놓고 선전포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아예 무력으로 점거하고 말을 듣게 하는 것도···.’
그렇게 과격해진 해리스의 사고가 점점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무렵.
“···무유팔괘비공. 설마 천기문의 후예이시오?”
묵직하고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미 사방을 둘러싸기 시작한 인파를 감지하고 있던 해리스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건 이를 바라보았다.
뒤쪽에 몇몇 무사들을 거느린 채, 눈을 감고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 나오는 노인을.
“헛! 태상가주님?”
그에 여태 해리스를 상대하던 무인 대표가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노인은 그에 답하지 않고 침중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자연지기를 다루며 현상을 이끄는 비의···. 기문진법과 상극인 무공이었지. 진법 구성의 기본인 기운의 흐름을 마음대로 뒤바꿔 버리는 공부였으니.”
그 말에 해리스가 멈칫했다.
과연 명성 높은 제갈세가라 해야 할까.
무공의 이름과 효능까지 정확하게 아는 것을 보니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허허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자에게 무량선자와 제자가 목숨을 잃으며 맥이 완전히 끊긴 줄 알았건만. 거기다 이 정도 수준이면··· 능히 현경(玄境)이라 할 만하구려.”
그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공기가 한순간에 경직되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의 유동을 느끼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는 했으나, 가문의 큰어른이 공언하고 나서니 느껴지는 무게감이 또 달랐던 것이다.
아무리 현경이 상대라도 세가에 남은 마지막 절진을 이용하면 이기진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는데, 하필 상대는 그들의 장기인 진법과 상극의 능력을 가진 자.
즉, 이대로 부딪치면 무조건 필패라는 소리였다.
“이거 참, 귀빈이 오셨는데 노인네가 쓸데없이 말이 많았구려. 그래, 대협께선 본 가엔 무슨 용건으로 방문하셨소?”
그리고 한순간에 그런 주변의 반응을 파악한 해리스가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태상가주라 함은 전대 가주를 뜻하는 것이었으니 그 권한도 막강할 터인데, 그런 이가 ‘귀빈’ 등을 운운하며 먼저 숙이고 손을 내미는 상황이었다.
이러면 처음 생각했던 관계보다 더한 우위에 서게 되는 셈.
아주 좋은 시작이었다.
“아핫— 몇 가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또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 말이죠. 참, 그래서 말인데···.”
이 상황에선 말만 부탁이지 사실상 강요나 다름없었다.
물론 앞으로의 원활한 인연을 위해선 과하게 선을 넘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안 되겠지만.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이거 너무 오래 밖에 세워두는 것 같은데. 손님 대접이 영···.”
기회가 오자마자 곧바로 거만하게 돌변한 성격 나빠진 해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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