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70)
#270
외출 (2)
온몸이 욱신거린다.
삐이이—
동시에 귓가에 이명이 울려 퍼졌다.
갑자기 강한 충격을 받은 머리가 웅웅거리며 어지럽게 울렁거렸다.
-카하핫!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서!
-꺄아악—!
-성현아! 도망···!
-안 돼!
그간 깊이 묻어뒀던 지난 기억이 파편처럼 튀어 오르며 뇌리를 자극했다.
‘젠장, 이게 무슨!’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폭발에 휩쓸리며 저릿해졌던 몸이 순식간에 회복되고 흔들리던 정신이 명료해졌다.
산발적으로 떠오르던 기억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눈 깜짝할 새에 모든 충격을 털어버리고 완벽한 상태로 돌아온 신체.
압도적인 스테이터스와 「초회복」, 그리고 「개체 투영」의 부가 효과인 상시 강화까지 적용된 결과였다.
‘후우, 어떤 미친놈이 병원에서···!’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내 개인의 안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살벌하게 이를 갈며 병원 앞 정원 구석에 처박힌 몸을 일으키고, 서둘러 품에 안긴 두 조손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에너지의 유동을 파악한 찰나의 순간.
나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였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항시 착용하고 다니던 보호 마도구의 힘을 최대한 넓게 적용하면서, 몸으로는 두 사람을 품 안에 끌어안아 직접적인 여파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덕분에 병원 입구에서 정원까지 튕겨 나온 것치고는 둘 다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갑작스러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고 기절하기는 했지만.
‘아니, 태산이는 괜찮을지 몰라도 할머니는 아직 위험하다. 이제 막 퇴원하신 몸인데 까딱 잘못됐다간···.’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 반사적으로 반응하긴 했지만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으아으, 아파···. 살려주···.”
“아악! 아아아—!”
“테러다! 빠, 빨리! 빨리 도망가!”
그 잠깐 사이.
주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과 혼란에 빠진 시민들.
테러의 중심지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편이었으나, 이능이 담긴 폭발은 생각보다 더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치며 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다.
바깥이 이 정도인데 놈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시, 신고부터 해야··· 어, 이거 왜 이래?!”
“제 폰도 안 돼요!”
“이, 일단 여기서 벗어난 다음 다시···!”
크게 다치지 않은 이들 중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상황을 알리려던 용감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당황하며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놈, 처음부터 작정하고 터트렸어.’
그것은 일반적인 폭발이 아니었다.
적대적인 마력이 깃들어 유해한 것도 있었으나, 그 외에도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모종의 파장까지 섞여있었던 것이다.
마치 핵폭탄이 터질 때 같이 뿜어져 나오는 전자기 펄스(EMP)처럼.
‘···여긴 민감한 의료기기들이 가득한 병원인데!’
이를 악문 나는 최대한 진정하려 애쓰며 두 사람을 부축해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안전이었으니.
하지만 그게 다른 이들은 어찌 돼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감히 내 영역에서.’
아까 그 자리에서, 방금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대체 몇이나 되는 사람이 희생되었을까?
직접적인 폭발도 그렇고 그게 아니더라도 의료기기에 의존해 버티던 이들은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겠지.
또 첫 공격만큼은 아니어도 작은 폭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걸 듣자니, 병원 경비 업무를 맡은 각성자와 전투라도 시작된 모양이었다.
어쩐지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일단 확실하게 사태를 수습하는 것부터. 한스···는 안 돼. 그 기운 때문에 오히려 병자들을 확인 사살하는 꼴이 될 거야. 그럼 하인즈 2세는···.’
원래 이런 세상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회탈 한스와 팬텀 하인즈 2세가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며 대대적으로 쓰레기들을 소각하고, 암흑가를 집어삼킨 혈맹을 이용해 음지의 질서를 수립한다고 해도.
세계의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란 걸.
‘놈을 처리하는 건 별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그러던 와중, 자연스럽게 시선이 기절한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역시 약해진 몸으론 그 충격을 버티기 쉽지 않았는지 퇴원 절차를 받을 때보다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후우, 그래.”
그것을 보는 순간 복잡하던 마음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나는 즉시 발걸음을 돌려 이미 대피해 사람 한 명 없는 인근의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어차피 최대한 빨리 할머니를 치료할 생각이기도 했으니.’
CCTV 같은 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이 인근의 전자기기 중에 멀쩡한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곧바로 상가의 화장실로 직행한 나는 적당한 칸에 두 사람을 앉혀 놓았다.
그리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망설임 없이 「개체 투영」을 사용했다.
그러자.
필터를 바꿔 끼듯 한순간에 육체가 변화한다.
눈높이가 바뀌었고.
몸속의 기운이 달라졌다.
외부를 인지하는 감각이 변했으며.
내 몸과 세상을 잇는 무언가가 뒤틀렸다.
“으음.”
나는 고개를 돌려 화장실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투구 밖으로 삐져나온 은발이 주변의 빛을 산란시켰으며, 황금을 빚은 듯한 금빛 눈동자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건장하던 체구는 한층 부풀어 올라 극한으로 단련된 전사의 육신으로 탈바꿈했고, 그 탄탄한 몸을 유려한 순백의 갑옷이 감싸고 있었다.
사아아아—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며 주변을 감싸는 은은한 아우라.
철컥—
나는 손을 들어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내렸다.
“자, 그럼···.”
그렇게 나는 아우테리카 주신교단의 성자, 하인리히가 되었다.
***
그 사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났다.
화창한 나날.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던 대형 병원의 로비에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콰아아앙—!
그것은 한순간에 주변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비산하는 피와 처절한 비명, 흩어지는 신음.
그 전력을 다한 기습은 방심하던 각성자들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그 과정에서 생긴 여파는 병원 일대를 혼란으로 몰고 갔다.
지직— 지지직!
그 사태를 일으킨 범인, 빌런의 손끝에서 미세한 전류가 튀었다.
“푸··· 푸흐흐. 꼴좋다···. 이 돼지 놈들.”
첫 기습에서 이어진 여러 차례의 공격으로 끈질기게 버티던 경비까지 기어코 쓰러뜨린 빌런, 50대의 중년 사내가 일그러진 얼굴로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초점이 사라진 시선으로 엉망이 된 로비를 둘러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벼, 병원이 아주 좋아··· 응? 아주 훌륭해! 귀환자 경비도 있고 말이야. 역시 비쌀 만도 해··· 하핫.”
정신이 나간 것처럼 더듬거리며 중얼거리는 사내.
물론 그 경비들은 그리 수준이 높지 않은 용병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런 건 지금 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자신의 한을 푸는 게 먼저였으니까.
“음, 알고 있어···. 나도 와봤으니까. 우리 세연이도··· 응? 치료만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오랜 세월 고여서 썩어가던, 자식을 잃은 원한을.
“내가··· 내가 돈 가져온다고 했잖아···. 그거 조금 기다려 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그렇게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방황하다가 이세계로 넘어갔던 이방인.
이후 일그러진 복수를 꿈꾸며 힘만을 추구하다가 돌아온 귀환자가 바로 그였다.
“응··· 그래. 아빠도 곧 갈게, 세연아. 그,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줄래···?”
혼자 중얼거리던 그의 눈빛이 점점 또렷해졌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왜곡된 신념을 품은 학살자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우리 세연이 심심하지? 아빠가 친구들 잔뜩 데려갈 테니까.”
지직지직—!
잠시 가라앉았던 마력이 다시 끓어오르며 튀어 오르는 스파크가 점차 커졌다.
첫 공격에 사용했던 기술.
다만 이젠 은밀하게 시전할 필요도 없었기에, 그것은 처음보다 더욱 빠르고 강하게 완성되었다.
“으으으··· 사, 살려···.”
“끅, 끄으윽···.”
그에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숨이 붙어있던 이들이 연신 꿈틀거렸으나, 그는 그쪽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을 뿐.
“그래, 여기 있는 돈 많은 돼지들이면 충분할 것 같아. 그러니까···.”
마침내 고조되던 기운이 절정에 달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딸의 웃음을 따라 미소 지은 빌런의 눈에서 짙은 광기가 흘러 나왔다.
“···죽어라, 돼지 놈들아.”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폭사 되는 다수의 에너지 다발.
스파크가 섞인 그것은 건물 전체를 집어삼킬 듯 자비 없이 뻗어 나가다가—.
[“주신이시여. 이 땅에 당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천상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경건한 목소리와 함께.
화아아악—!
어디선가 밀려온 찬란한 빛의 물결에 휩쓸려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하?”
하지만 당황스러운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옷?”
언제 나타났는지, 빛의 물결이 지나간 자리에 한 명의 갑옷 괴인이 서 있었다.
그에 긴장한 빌런이 재차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사아아—
갑옷을 입은 자에게서 흘러나온 막대한 에너지가 한순간에 공간 전체를 집어삼켰다.
바닥, 벽, 천장, 허공을 가리지 않고.
“주신이시여. 가엾은 이들이 한 줄기 미소 지을 수 있는 힘을.”
지금껏 본 적 없는 그 어마어마한 순도의 기운은 로비에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이들은 물론, 건물 전체와 주변 일대까지 뻗어나가 영역의 모든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깃들었다.
그것은 한 개인이 펼쳤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의 행사였으며.
또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질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마치, 지상에 강림한 신이 직접 행사한 기적처럼.
“···신성력.”
그 이상 상황에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빌런의 시선이 다시 갑옷 괴인에게로 향했다.
그는 분명 따뜻하고 자애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는데, 그 시선을 마주하자 폐가 짜부라질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에 이세계에서 온갖 위기를 헤치고 살아남은 빌런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격의 차이.
지금 앞에 있는 저 존재는 자신이 절대 넘볼 수 없는 괴물이라는 것을.
“그래, 너희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는 그 위압감에 반발하듯 억지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비틀린 채 씰룩거리던 입꼬리가 어느새 아래로 내려가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불사르듯 분노를 끌어올리며 갑옷 괴인을 노려보았다.
당연하지만 그도 성직자들의 도움을 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쪽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랐고, 결국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차례에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푸··· 푸흐흐··· 그래. 신성력, 이만한 신성력이 그때 있었다면···!”
“그 입 다물라, 범죄자.”
하지만 애써 떠들던 빌런의 입은 천상의 심판자와도 같은 엄숙한 한마디에 곧바로 꾹 닫혀 버렸다.
그 갑옷 괴인, 하인리히는 놈의 사정이 어떻든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 또한 자신만의 기준대로 판결을 내릴 뿐이었으니까.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어떤 핑계를 대건 이만한 인명피해를 냈으면 무조건 사형이다.
거기다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긴 하나, 그래봐야 극의에도 이르지 못한 수준이었다.
초월의 성기사인 그가 검을 뽑을 가치도 없는 잔챙이.
스윽—
하지만 하인리히는 굳이 성검을 뽑아 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빌런을 상대하는 것보단 그저 성검의 부가 효과인 신성력 증폭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죽은 이들은 어쩔 수 없어도, 살아만 있다면···.’
치유와 보호 쪽에 특화된 성녀와 달리, 악(惡)을 멸하고 마(魔)를 심판하는 데에 치중된 그의 힘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사용하는 게 좋았으니.
‘나한텐 『차원 장벽 완화』도 있으니 그럭저럭 쓸 만하겠지.’
이미 자신의 앞에서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바들대는 놈에겐 관심도 없었다.
“죄인이여, 저승에서 참회하라.”
그리고.
그 ‘그럭저럭 쓸 만한’ 신성력의 폭풍이.
화아아악—
병원과 그 주변 일대를 휘감고 타올랐다.
***
한국 귀환자 협회 서울 남부 지부.
“뭐, 뭐야! 이건!”
콰당탕—!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던 지부장 윤지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거친 움직임 탓에 튕겨 나간 의자가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신성력? 지구에서··· 이 정도 신성력이라고? 이게 가능해?”
그리고 재차 기감을 끌어올린 그녀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구에서 신성력의 위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감안하고도 이만한 기운이라는 것은··· 원래 가진 힘은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하, 하하···. 성자? 성녀? 아니, 무슨 신의 피라도 계승한 건가?”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신성력에 민감한 강자와 성직자들은 물론이고···.
그간 제각각의 교리 탓에 유명무실했던 이세계 종교 연합, 판테온 한국 지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