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71)
#271
외출 (3)
나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 반응을 살폈다.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만. 이거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군.”
이번에 있었던 빌런의 대형 병원 테러 사건은 내가 직접적으로 얽힌 일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할 생각이었는데···.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지금 소란의 정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생각 이상의 큰일로 번질 모양이었다.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여론을 살피고 있을 때.
“음? 일어났나. 생각보다 빠르네.”
내 예민한 감각에 조용하던 건넛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바로 그쪽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잠에 취한 얼굴로 막 상체를 일으킨 강태산에게 툭 말을 던졌다.
“일어났냐.”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효율적인 회복을 위해 일부러 푹 자게 조치를 취해뒀는데, 기본적으로 튼튼한 녀석이다 보니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 듯했다.
“어어··· 뭐야? 나 잤냐? 그보다 여긴···?”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다가 슬쩍 주변을 살피면서 눈을 끔벅이던 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장소에,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생각이라도 하듯이.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내가 이사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이었으니까.
딱히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팔지 않고 서울 거점으로 내버려 뒀던 건데, 그 덕분에 때마침 유용하게 사용하는 중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하지만 그런 강태산의 반응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인상을 찌푸리고 뭐라도 생각난 듯 조용히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며 누워 있던 자리에서 펄쩍 뛰며 일어났다.
“잠깐! 뭐야? 그때 그 폭발은? 아니, 그보다 우리 할머니는?!”
“저기.”
그 반응에 나는 슬쩍 몸을 비켜서며 방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의 이부자리엔 이 소란 속에서도 깨지 않은 할머니가 조용히 주무시고 있었다.
“후우—.”
허겁지겁 그 옆으로 다가가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강태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는 의사가 아니었지만, 퇴원 직전보다 오히려 더 좋아진 혈색으로 평온하게 숨을 내쉬는 할머니의 모습에 치밀어 오르던 불안감조차 절로 녹아내렸던 것이다.
그렇게 평정을 찾은 강태산과의 대화는 조용히 방을 나선 후에 계속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넌 괜찮냐···? 그 폭발 직전에 네가 우릴 감쌌던 것 같은데···.”
“나야 멀쩡하지. 매일같이 운동해서 그런지 튼튼한 건 알아주거든. 너도 운동 좀 해라.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앉아만 있지 말고.”
“뭐 임마? 야, 우리 부서는 사무실에 있는 날보다 밖에 있는 날이 더 많거든? 거기다 난 막내라서 온갖 심부름까지 도맡아 해야 한다고! 말단 공무원의 고충을 네가 알아?”
친구와 투덕거리듯 몇 마디 오간 것도 잠시, 이야기 주제는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고에 휘말린 것 치곤 푹 자다 일어난 것처럼 너무 상쾌한데?”
“글쎄, 무슨 테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뉴스로 봐. 지금 엄청 떠들어 대고 있으니까.”
“···하! 테러란 말이지? 하긴, 요즘 좀 잠잠하다 했다. 테러범 놈들이 언제까지 몸을 사리고 있을 리가 없는데. 휴가 때 테러에 휘말린 것도 모자라 복귀하면 업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니···.”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는 현직 이능관리국 범죄수사과 막내.
상황을 파악하겠다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던 녀석은 그것이 EMP를 직격으로 맞아 망가진 것을 깨닫고 낙담하다가, 이내 거실의 TV를 켜고 뉴스를 틀었다.
-오늘 오후 1시경. 서울 흑상동의 한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을 노린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가장 먼저 근방의 모든 전자기기를 무력화하기 위해···.
TV에서 이미 몇 차례나 보도되었던 뉴스가 다시 흘러나왔다.
사실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는 그렇게 대서특필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그런 사건은 잊을만하면 일어나는 정기 행사였고, 그건 하회탈로 인해 범죄율이 감소한 지금도 변하지 않은 인식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이번 테러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다른 때와는 차별화되는, 여러모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때 갑자기 환한 빛이 제 주변을 감싸면서 화악! 타오르는데! 와, 진짜 그런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그건 진짜 평생 못 잊을 장관이었습니다. 무심코 창밖을 보다가 갑자기 한쪽이 환해져서 고개를 돌렸는데, 무슨 빛이 불꽃처럼 타오르면서···.
이어서 송출된 자료 화면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다.
병원 인근의 전자기기들은 빌런의 EMP에 전부 파괴되었지만, 그 범위 밖에서 찍힌 영상들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뭐야, 저게. 저 한가운데에 우리가 있었다고?”
“음.”
그에 조용히 TV를 바라보던 강태산이 저도 모르게 멍하니 중얼거렸다.
물론 그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니 확실히 자신이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장관이었던 것이다.
고오오오—
금빛과 은빛이 뒤섞인 듯한 찬란한 광휘.
위가 뾰족한 깔때기 모양으로 일정 영역을 감싼 빛의 토네이도가 거세게 휘돌면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꽃처럼 역동적으로 일렁거리니—.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될 것 같은 진풍경이었다.
그리고 뉴스의 화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러 자료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EMP의 범위 밖에 있던 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영역 내부를 찍은 영상, 사건 소식을 전해 듣고 막 내부로 진입하려던 가디언의 인터뷰, 그리고···.
-병원 입원 환자 :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온 충격에 피까지 토했는데, 이대로 끝이구나 하는 순간에···.
-병원 로비 방문객 : 전 처음 테러가 났을 때 벽에 처박혀서 기절했었죠. 그때 고막이 찢어졌는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도 아무 소리가 안 났었는데, 그때 갑자기···.
-병원 경비 요원 : ···그렇게 죽는구나 싶었던 순간, 그분이 나타나셨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까지.
이어진 그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대동소이했다.
그 불꽃 같은 찬란한 신성력이 몸을 불사르자, 죽음의 목전까지 다다랐던 신체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바닥을 치던 체력이 차오르고, 심각한 부상이 재생되었으며, 몸을 갉아먹던 병마가 힘을 잃었다.
거기다 그 현상을 직접 겪은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지 않나.
그건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성직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이적이었으며.
죽음을 앞두고 절망 속에 빠져있던 이들에게 내려온 신의 구원이었다.
“···말도 안 돼. 그만한 수준의 신성력은 지금껏 보고된 적이···. 아니, 하지만 증거도 있고. 무엇보다 나랑 할머니가 직접 겪은 건데···. 나한텐 은인이잖아?”
직업 특성상 관련 내용에도 지식이 있는 강태산이 혼란에 빠지건 말건, 뉴스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그 기적을 일으킨 ‘백색 갑옷의 성기사’에게로 흘러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해 빌런을 쓰러트리고 죽어가는 많은 이들을 살린 영웅.
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고.
그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며.
갑자기 사라진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물론 테러가 남긴 피해는 그리 작지 않았다.
아무리 신성력이 대단해도 이미 죽은 이까지 살릴 수는 없었으니.
하지만 더 큰 피해로 번질 수 있었던 재앙을 막고, 환자들을 비롯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 흩뿌린 어마어마한 신성력은 시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뉴스는 판테온 한국 지부의 관련자라는 사람이 신을 찬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으나, 그 화제는 시들지 않고 고스란히 인터넷까지 이어졌다.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들어 한창 떠들썩한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냄새가 난다···. 존나 거물이 지구로 귀환한 냄새가! 그것도 한국에!
-와; 지구인이 신성력으로도 저 정도 수준이 될 수 있구나. 그쪽은 진짜 성장하는 게 극악이라고 들었는데.
-현직 성직자입니다. 지구에서 저 정도면 원래 세상에서는 교황급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신앙이네요. 저도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께 타라크민 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그 흐름의 주류는 이번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성기사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세상엔 차원의 수만큼 다양한 성향을 지닌 신들이 있어, 신성력을 쓰는 성직자라고 모두 선한 성품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악신의 성직자가 빌런으로 활약하는 것도 드물지 않은 상황에, 가늠할 수 없는 신성력을 지닌 이가 테러로부터 많은 사람을 구하며 등장했으니 이런 열기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불안에 떨어야 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야 선하면서 강한 힘을 지닌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실제로 지금도 하회탈이라는 걸출한 귀환자 덕에 치안이 상당히 안정된 상황이 아닌가?
하물며 그 성기사는 하회탈처럼 꺼림칙한 흑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사람들이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으로 저 정도 수준이면 경지로만 따져도 국내 탑3 안에 드는 거 아님? 어쩌면 흑마법사인 하회탈도 잡을 수 있을지도?
└응 아니야. 대단한 건 인정하는데 그래봐야 한계가 있지. 출력 딸려서 얼마 쓰지도 못하고 퍼질 게 뻔함.
└넌 장님이냐? 저 영상 보고도 출력 ㅇㅈㄹ
└넌 외국에서 살다 옴? 하회탈 업적이 있는데 뭔 개소리; 어딜 막 돌아온 뉴비를 하회탈이랑 비비냐.
└그래, 그래서 느그 하회탈 지금 뭐함? 어디 사람 없는 데서 이미 뒤진 거 아님? ㅋㅋㅋ
└너 이 새끼 한국에서 안 살지? 어쩐지 이상하더라. ㅅㅂ 어그로였네.
└[삭제된 댓글입니다.]
그에 하회탈의 열성적인 팬과 그를 꺼림칙하게 여기던 이 사이에 다툼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거참, 별걸 가지고 다 싸우네.’
물론 둘 다 자신인 마당에서야 쓸데없이 힘 빼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커뮤니티를 살펴 대충 여론을 살피다 턱을 쓰다듬었다.
-목격자 증언으로 병원 성기사 몽타주 그렸다. 물론 갑옷만이지만.
└오 개멋있어. 추천합니다.
└이렇게 보니 느낌 있네. 그런데 이런 걸 입고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냐. 저것도 존나 비싼 마도구일듯.
-성기사님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가 많이 아프세요. 사례는 꼭 할 테니···.
-MBS 방송국 작가입니다. 혹시 그 외의 다른 곳에서 목격하신 분이 있다면 꼭 좀 연락을···.
워낙 화려한 데뷔여서인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는데 이렇게 인기가 치솟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여론에만 국한되지 않을 터.
아마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서도 이미 하인리히를 찾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봐야 날 찾을 순 없겠지만. 일부러 최대한 넓은 범위를 모조리 신성력으로 지져놓기도 했으니.’
아무리 세상에 다양한 이능이 있다고 해도, 그만한 고순도의 영적 에너지 파동 속에서 뭘 읽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화장실과 현장을 오갈 때는 「축복 : 도약」을 사용했으니 물리적인 연관성을 찾기도 힘들 테고.
‘하인리히를 소환하는 게 가장 확실했겠지만···. 그 상황이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혁명가와의 전투가 불과 조금 전이었다.
당연히 「이계전송진 소환」은 심연의 경계에 있던 한스를 다시 아우테리카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사용한 상태여서, 그때 그를 소환했다면 며칠간의 공백이 생겨버렸을 터였다.
‘막 교황의 장례 기간이 끝나 마무리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 말이지.’
또 저쪽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가끔씩 소환해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 정도야 쉬운 일이었으니 큰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보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닫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부서 팀원들 우리 할머니 거기 입원해 있었다는 거 아는데. 오늘 휴가 이유도 이미 알고 있고.”
그때 강태산이 사망한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게 살아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뻔히 보인다는 듯.
사건 당일 그 현장에 있었던 막내.
아무리 처음부터 기절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도, 작은 단서라도 잡기 위한 선배들에게 들들 볶일 미래가 훤했다.
“···폰 새로 개통하는 건 휴가 끝나기 직전까지 미루자.”
물론 부서 특성상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급히 새 스마트폰을 개통한 녀석은 익히 예상하던 메시지 및 전화 폭탄을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할머니를 간병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준 팀원들 덕분에 휴가가 잘리지 않았다는 것일까.
“아아악—! 설마 이분도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제발 귀환 신고해 주세요, 정의로우신 성기사님!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잖아요···! 당신까지 하회탈 루트를 타시면···!”
불길한 앞날을 예감하고 몸서리치는 강태산.
‘미안.’
나는 그런 친구를 뒤로하고 유독 길게 느껴졌던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이왕 데뷔한 거, 앞으로 종종 하인리히를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