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79)
#279
기술 혁명 (1)
자오닉의 애장품 곡괭이 ‘엘린느’를 매개체로 탄생한 아바타, 하워드.
그 이종족의 육체로 제작 쪽에 매진하면서 새삼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과연. 이 정도면 다른 종족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도 힘들겠군.’
바로 ‘드워프’라는 존재의 사기성이었다.
애초에 기술이란 오랜 세대를 거쳐 수많은 장인, 기능공, 공학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경험과 이론의 총체이자, 그들의 끝없는 고뇌와 연구로 쌓아 올린 지식의 금자탑이었다.
그런 만큼 단기간에 습득하는 것도, 발전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한 노릇.
‘그게 상식이지.’
하지만 그런 체계를 깡그리 무시하는 존재가 바로 드워프라는 종족이었다.
그들은 사고방식부터 감각 기능까지 모든 것이 다른 종족들과는 달랐다.
창의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독창적인 창작 논리는 기본에, 정밀 기계를 능가하는 미세 공정을 본능적으로 행하고,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과정조차 오로지 느낌으로 이해한다.
그야말로 태생부터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에 특화된 종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 다른 면에서 결함이 없었다면 드워프야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종족이 되었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제작에 가진 불합리할 정도의 천재성과는 달리, 그 외의 여러 부문에서 절망적일 정도로 센스가 부족했다.
애초에 그런 재주라도 없었으면 진작 멸종하거나 노예로 전락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오오— 이것이··· 과연!”
그리고 그런 드워프의 압도적인 재능은 고스란히 아바타, 하워드에게까지 전해졌다.
대한민국 인천 인근에 마련한 비밀 안가.
그곳의 창고 안에서 원격 소환된 하워드의 눈이 번쩍거리며 빛났다.
보물이라도 마주한 듯 감격에 젖은 그의 앞에는 그간 하나둘 모아온 여러 세계의 마도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역시 직접 보는 건 또 다르군! 기능도 전부 제대로 살아있고!’
그간 간접적으로 느껴왔던 것과는 다른 생생함이 오감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감각 공유를 통해 전달받거나 아우테리카로 넘어와 그 개성을 상실한 이차원의 물건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허헛, 이건 또 신기하군. 대체 뭘로 만든 거지?”
그는 짐승 이빨 형상의 금속 장신구를 집어 들고는 유심히 바라보다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할짝—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혀로 날름 핥아보기까지.
“쩝쩝, 인산칼슘? 이빨보단 뼈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과연, 금속성이면서도 생물성이라. 여기에 주술을 담은 건가? 열처리는 도저히 못 봐줄 정도로 투박하지만, 재료의 특성을 살리는 쪽을 신경 쓴 건 썩 나쁘지 않아.”
그동안 줄곧 이어진 체계적인 교육으로 지구의 과학 지식에도 일가견이 있는 유학파 드워프 하워드.
그가 특수 제작한 안경을 한 손으로 치켜올리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짝이는 안경알과 함께 겉에 걸친 펑퍼짐한 순백의 실험실 가운이 그를 유독 이지적이게 보이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래 봬도 나는 이미 자오닉에게도 한 사람의 장인으로 인정받은 몸이란 말이지.’
그런 그에게 다른 세계에서 유래해 독특한 체계를 담고 있는 물품들은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한스가 다른 세상의 술법들을 접했을 때처럼.
또 그 끝에 마침내 「마도의 길」까지 깨우쳤을 때처럼.
그리고 그런 감상은 율령자에게서 수거한 강화 외골격을 넘어 의안을 접한 시점에서 절정에 달했다.
“허!”
그것을 보는 순간,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영감이라는 용암이 자신을 가두던 틀을 깨부수고 터져 나왔다.
파격이란 게 이런 것일까?
‘이거···.’
보고, 듣고, 만지고, 두들기고, 냄새 맡고, 깨무는 등.
정신없이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서야 정신을 차린 하워드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분명, 드워프가 만든 물건이다.’
그가 있던 곳이 아닌 다른 차원의 드워프.
물론 그 종족이 하워드가 속한 아우테리카의 드워프와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종족명은 물론이고 생김새나 그 외 세부 특성이 전혀 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근간이 되는 기본 틀만은 분명 동족의 그것이라고.
하워드에게 깊숙이 스며든 「드워프식 창작논리」가 그것을 맹렬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신기하네. 신들 사이에서 무슨 지성체 창조용 오픈 소스라도 공유되고 있나?’
이미 여러 차원 출신의 흡혈귀들을 겪으며 떠올린 적이 있던 의문이 재차 급부상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세상의 비밀 따위가 아니었다.
하워드는 콧김을 훅훅 뿜으며 미친 듯이 눈앞의 문명의 이기를 탐닉했다.
“오오— 훌륭하구나. 아주 훌륭해!”
기술이라는 것에 절대적인 이점을 가지는 종족, 드워프.
하지만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아우테리카의 과학 수준은 그리 뛰어나지 못한 편이었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결국 하나였다.
‘환경 때문이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명이라고 할 수 있겠군.’
단신으로 군대를 상대하는 괴물들이 즐비하고,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성을 날려버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세계다.
실제로 불사왕이란 움직이는 재앙이 대륙의 절반을 거덜 낸 전적도 있었고.
당연히 드워프들의 궁극적인 목표도 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베어내는 절세 신검, 움직이는 성채와도 같은 난공불락의 갑옷, 기적과도 같은 이능을 담은 마도구 등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이 자격을 갖춘 자의 손에 들어가 거악(巨惡)을 처단하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말이다.
‘토대가 되는 기초 과학의 차이도 있을 테고. 어쩌면 거기에 차원이 가진 ‘세계관’이 은연중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여기, 온갖 차원의 문명이 교차하는 지구에 있는 하워드는 달랐다.
백의에 안경을 쓴 연구자 차림의 난쟁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흡족하게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그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없고, 세계조차 창작의 방향성을 제한할 수 없었다.
“푸헐헐헐! 이거 손이 근질근질하구만!”
하워드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한스가 인천 안가에 공들여 설치한 시간 가속의 결계, ‘시간과 공간의 방’이 발동하길 기다렸다.
시공계 마법이 워낙 난해한 데다 은밀히 펼쳐야 한다는 제약도 있었던지라, 그것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한스조차 한 번에 하루 남짓이 고작이었지만···.
‘시간 배속 열 배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아. 적어도 이세계에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미 헤테로시스를 시켜 안가를 준비하면서 필요한 사전 준비까지 전부 마친 뒤였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그저 전력으로 연구에 매진하는 것뿐.
더불어 지금의 그는 ‘성장의 비약’의 효과도 적용받는 상태이지 않던가?
[흐— 그럼 시작해 볼까.]곧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안가 바깥에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한스가 결계를 가동하자, 내부의 시간이 세상과는 다른 흐름 속에서 흘러가기 시작했다.
“오호라! 이 의안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구만!”
“흐음, 그러고 보니 이 강화 외골격도 그 닥터라는 놈이 율령자에게 준 것이었지. 확실히 다른 것들과는 좀 다르군. 이세계산 재료를 이용한 핸드 메이드인가?”
“남이 할 수 있는데 내가 못 할 이유가 없지!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하워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계의 시침이 대충 한 바퀴 가까이 돌았을 즈음.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마도 공학」을 획득합니다.》
그간 꾸준히 성장의 비약을 섭취하며 수련에 매진한 결실이 싹을 틔운 것인지, 하워드는 폐관 수련에 들어간 지 5일도 되지 않아 마도 공학에 대해 더 자세히 깨우칠 수 있었으며.
바깥 시간으로 고작 만 하루, 내부 시간으로 10일째가 지나 결계가 힘을 잃기 직전이 되었을 땐—.
‘···그렇구나. 뭔가 알 것 같은데?’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기술 혁명」을 획득합니다.》
마침내 처음 목표로 잡았던 소정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른 시일에.
-개체명 : 하워드
-종족 : 드워프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괴력」, 「신경과민」, 「혜안」, 「제노글로시」
-개체 특성 : 「장인정신」, 「드워프식 창작논리」, 「불과 금속의 노래」, 「장인의 혼」, 「기술 혁명」, 「야금술」, 「정밀 세공」, 「마도 공학」
-특이 사항 : ‘성장의 비약’의 영향으로 모든 행위에 추가적인 성장 보정이 주어지고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마도 공학을 탐구하여 그 요체를 깨달았다. 「기술 혁명」을 이용해 다른 세계의 기술로 제작된 물품에 개입하여 일부를 수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이거 잘만 이용하면···.’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일지도.
***
아제리온 제국 황궁 한편에 자리한 황실 병원.
암흑기사가 된 스타브를 비롯한 복면인들의 습격 이후, 헤스페론은 이번에도 병실에 장기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 정말로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아직 절대 안정을 취하시며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걱정 마시지요. 신경 안정을 위한 교단의 신성진은 물론 아로마 테라피와 마사지, 황궁 바드들까지 수배해 뒀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서책은 물론 수련을 도와드릴 마법사님도 언제든 모셔 올 수 있으니 이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그때의 부작용에 대한 치료가 끝나고도 시간이 제법 흘렀건만, 그가 아무리 이제 괜찮다고 항변해도 황녀의 직접적인 명령을 하달받은 의료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애초에 그들이 잘 보여야 할 상대는 그가 아니지 않던가?
-라일리, 나 이제 진짜 괜찮은데.
-···미안해요. 이제 이쪽 일도 거의 끝났으니까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가 돌아가면 금방 전부 정리할 테니까.
「맹약의 사슬」을 통해 연결된 라일리가 미안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워하는지 이유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병원에만 있는데도 느껴질 정도로 황궁 전체의 분위기가 굉장히 흉흉했으니.
지난 라일리 황녀 습격 사건 이후.
황실 수호대장까지 개입한 그 소란이 일단락되고서, 수도 전체의 방비가 한층 더 삼엄해진 지 아직 몇 개월이 채 지나지도 않았다.
당연히 이번 헤스페론 납치 미수 또한 원래였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명색이 대륙 최강국인 제국이고, 누가 뭐래도 그 중심인 수도가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일이 터져 버렸단 말이지.’
아무리 치안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최외곽 빈민가에 함정을 파고, 마부로 위장한 이가 그쪽으로 유도했다 해도··· 그건 변명거리가 될 수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과는 이미 명백했으니까.
치안에 개입한 고위층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방비에 빈틈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판이 깔린 범죄 현장에서 흉수가 사로잡혔다.
무려 사살되었다고 알려진 전(前) 황실 수호대장이 흑마력에 타락한 채로.
‘황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어.’
그 작전의 목표가 황실의 일원이 아니라 일개 식객에 불과하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번 일로 입은 자존심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지금까지 한 걸음 물러선 채 황녀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걸 지지하기만 하던 황제가 직접 나섰겠나.
그간 처가이기에 어느 정도 눈감아 주던 선을 넘어버렸다는 뜻이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자충수를 둔 셈이죠. 그래도 궁지에 몰린 마당에 무슨 미친 짓을 하려 들지 모르니 지금은 거기가 가장 안전해요. 병원장은 완전한 중립이지만, 자신의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좌시하지 않거든요. 사실 근위 기사단장을 빼면 황궁 내에서 제일 강하기도 하고요.
-어, 그 정도였어?
-마탑주인 로렌스 후작의 선배라고 하더라고요. 개인사 때문에 진로를 틀었다고 들었어요.
-그랬군···.
일단 그렇게 수긍하긴 했으나 헤스페론은 내심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은 위험하니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었으니까.
‘걱정해 주는 건 고맙긴 한데.’
잠깐 짬을 내서 재빨리 지구에 다녀올 생각이었던 그로서는 지금 상황이 영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소환 해제를 이용해 언제든 슬쩍 갔다 올 순 있었지만, 진짜 그렇게 하는 순간 지금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황궁 내의 생명 반응 같은 건 실시간으로 체크되고 있을 테니.’
거기다 병원장도 마탑주 이상 가는 대마법사라 하지 않았던가.
아마 자신이 사라지는 즉시 이상을 파악해 비상사태가 발령될 테고, 그 이후에 다시 황궁 내에 나타난다면··· 아마 머쓱한 상황으로 끝나진 않겠지.
‘쯧, 곧바로 해 보고 싶었는데 그냥 다음으로 미뤄야 하나.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지구까지 갔다 올 필요는 없잖아?’
잠시 고민하다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헤스페론.
그대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한 손에는 어느새 유백색 원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매끈한 장식품 같은 구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