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9)
하인리히 (2)
신성력은 대자연의 기운인 마나(Mana)를 기반으로 한 다른 힘들과 그 성질이 달랐다.
전사들은 마나를 흡수해 체내에서 오러(Aura)로 정제하고, 흑마법사는 부정한 의식으로 오염시켜 흑마력으로 만든다.
뱀파이어의 혈마력 또한 흡혈이라는 행위를 통해, 피에 담긴 마나와 생명력을 흡혈인자로 변질시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신성력은 온전히 신에게 내려받는 힘.
그 기원이 다르기에 한번 신성력을 받아들이면 다시는 다른 마력을 다룰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세례의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고, 복잡한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오로지 주신을 따를 것을 맹세하고 신의 힘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생성하는 과정.
그리고 그 통로가 가느다란 빨대가 될지, 굵은 송유관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이···.
‘신에 대한 믿음이지.’
하인리히는 몸에서 흘러넘치는 신성력을 느끼며 기도를 계속했다.
내가 하인리히의 길로 신성력을 택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동안 「마인드 허브」는 감정과 자극을 제한하는 데만 사용해 왔지만, 그 반대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를 시험해본 결과, 나는 확신을 가지고 주신교단에 투신할 수 있었다.
「마인드 허브」와 「명경지수」를 통해 하인리히의 사고를 비우고 백지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단 한 가지의 감정, ‘믿음’만을 「페르소나」로 주입하면서 「마인드 허브」로 증폭했다.
‘즉, 지금의 하인리히는 그야말로 광신(狂信)의 화신이라는 거지.’
나는 다른 모든 아바타를 멈추고 그 리소스를 하인리히에게 쏟아 부었다.
본체와 한스, 하인즈 2세, 그리고 얼마 전 다시 소환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아바타까지.
세례 의식을 이용하니 믿음의 방향성을 주신에게로 집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정신력을 쏟아 부어 신과의 통로를 견고하게 다졌다.
《고유스킬이 성장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아바타의 잠재력이 상승하고, 각 개체의 정신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바타」 스킬이 성장한 것은 예상치 못한 소득.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세상에, 첫 세례에서 이 정도의 신성력이라니.”
“누구지? 성전사 후보야? 수십 년은 수도사로 수행했다고 해도 믿겠군.”
“어···, 저 친구 성기사가 되고 싶다며 들어온 지 몇 달도 안 됐는데···.”
주변의 사제들과 세례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세례를 주관하던 대사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의식을 진행했다.
‘거의 다 됐다.’
나는 전력을 다해 신성력을 끌어와 육체에 담았다.
믿음이 통로의 굵기를 결정한다면, 그곳을 통해 신성력을 끌어오는 것은 정신력이다.
어느 한쪽만 부족해도 안 되는 것이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신성한 세례」를 획득합니다.》
‘아직은 이 정도가 한계인가···.’
이론상 신성력은 신에게 받는 힘이기에 한계가 없었다.
정신력만 충분하다면 얼마든 끌어와 사용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힘을 주는 것은 신이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미천한 필멸자이니만큼, 무리해서 사용할수록 육체와 정신에 큰 부담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능력에 맞지 않은 힘을 과하게 사용하면 앓아눕게 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믿음과 정신력은 충분하지만, 아직 육체는 이 이상의 신성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온갖 꼼수를 부렸다지만 처음 접하는 힘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보다 더 강한 신성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육체가 새로운 힘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서히 신성력을 갈무리하며 정신을 되돌렸다.
자연히 믿음의 통로 또한 줄어들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되돌릴 수 있으리라.
‘한번 늘어난 고무줄처럼 다음에는 좀 더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겠지.’
“자네 이름이 하인리히라고 했던가?”
주변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서자, 의식을 진행했던 대사제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
“흐음, 내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군. 어쨌든 신앙심이 투철하니 아주 훌륭하네. 자네는 좋은 사제가 될 수 있을 거야. 앞으로도 정진하도록 하게나.”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덕담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사제가 아니라 성기사 지망이었지만, 굳이 첨언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감사를 표하고 자리를 옮겼다.
예배당에서는 계속해서 의식이 진행 중이었지만, 간혹 나를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한쪽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이 모든 꼼수는 아우테리카의 주신이 인격신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인즈 2세가 처음 주신교단에 대해 알게 되고, 하인리히가 교단에 들어와 신학을 배우면서 깨달았으며···.
이번 세례 의식을 통해 확신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처럼 사사로운 감정을 지닌 존재가 아니야. 이 정도면 거대한 개념이나 하나의 시스템에 가까워.’
일종의 자연법칙처럼 세계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
그것이 아우테리카의 주신이었다.
‘아니, 의지 자체는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인간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겠지.’
세례를 통해 하인리히가 주신과 연결되었을 때, 그 초월적인 존재의 편린을 느낄 수 있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인지 사전 교육 때는 듣지 못한 현상이었다.
그때 어렴풋이 느껴진 무언가를 굳이 인간의 감정으로 표현하자면···.
그래, 그것은 ‘흥미’였다.
‘불경하다 여기지 않아서 다행인가···.’
단지 신에게는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아 개입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선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미 자신의 시도는 성공했으니까.
***
의식이 끝난 지 며칠.
세례를 받아 새로 탄생한 신입 성전사들과 수습 사제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기도와 교리 공부를 통해 믿음을 키우는 것을 기본으로, 사제들은 정신 수양을 위주로 정신력을 키웠고···.
“딱 하나만 더!”
“끄흐읍~!”
“좀 더! 더더더더!
“끄하악!”
훈련장의 곳곳에서 다 죽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배 성전사들의 지도 아래 자신을 단련하는 신입들의 곡소리였다.
“후우, 흡! 훗!”
‘나도 나름 하드하게 운동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이 인간들은 정말···.’
나는 양손에 들린 아령을 번갈아 가며 움직이며 속으로 조소했다.
차르륵, 차르르륵—
그에 맞춰 아령과 연결된 쇠사슬들이 몸 전체를 압박해온다.
훈련장 곳곳에는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좀 더 커다랗고 흉악한 외관을 하고 있으며, 안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 정도?
오로지 육체를 좀 더 효율적으로 혹사시키기 위해 고안된 물건들이었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근육이 찢어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서서히 뼈를 부수며 인대가 파열된다.
‘몸에 과부하를 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런 변태 같은 발상은 도대체···.’
그야말로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훈련법이었다.
물론 그런 오버트레이닝에 문제가 없을 리 없었다.
“아아악!”
훈련장의 한쪽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하는 신입 성전사.
한쪽 팔을 움켜쥐고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모습이 훈련 중에 어디가 잘못된 듯했다.
일반적이라면 당장이라도 치료실로 이송해야 했지만, 그의 앞에 선 선임은 그저 호통만 칠 따름이었다.
“집중이 흐트러졌구나! 훈련할 땐 한시도 기도를 멈춰선 안 된다! 자, 다시 신성력을 운용해라!”
“끄흐흡! 주신이시여—!”
기도와 함께 은은한 빛이 일어 쓰러진 이를 감싸 안았다.
서서히 잦아드는 신음 소리.
잠시 후 그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한참 부족하구나! 단련과 동시에 기도를 계속해라! 육체가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수복시켜라! 이를 반복하면 고중량의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옙! 죄송합니다—!”
“너는 팔이 완전히 나을 때까진 하체를 조지도록 해라! 물론 기도를 멈춰선 안 된다!”
“옙! 알겠습니닷!”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는 광경.
하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교단에서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며, 효율적인 수련법이었다.
기도는 신성력의 운용을 보조한다.
전투의 일선에 서는 성전사들에게 그것은 목숨 줄이나 다름없었다.
인위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고 기도를 계속하는 것 또한,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고 신성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수련의 일환인 것이다.
‘거기다 극한의 상황에서 반복된 기도는 자기암시를 통해 신앙을 굳건하게 하고, 그건 또 신성력의 강화로 이어지겠지.’
신성력 운용 훈련과 육체의 단련, 신앙심 고취로 인한 신성력 증가, 고행을 통한 정신력 강화까지.
빌어먹을 정도로 효율적이기 그지없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변태들의 집단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인재였다.
“호오···. 과연 이번 기수의 기대주라 할 만하군. 벌써부터 이 정도 중량을 칠 수 있을 줄이야.”
“신성력을 사용하는 데에도 능숙하고, 그걸 감안해도 육체의 회복 속도가 장난 아니야. 이미 회복력만큼은 어지간한 성기사 이상이군.”
한쪽에 모여 나를 보고 품평하는 선임 성전사들.
처음부터 나는 그동안 해온 단련과 「무골」, 「초회복」 덕분에 수월하게 그들의 지도를 따라갔다.
거기에 카르마 상점의 스테이터스 강화 효과도 있었고.
그리고 체내의 마나를 신성력으로 바꾸고 그를 보정해 주는 「신성한 세례」에도 익숙해지자, 더욱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훈련은 여기까지! 기구를 정리하고 순서대로 샤워실로 입장하도록! 두 시간 후에 강연실에서 집합한다. 해산!”
““해산!””
선임의 외침에 기구를 정리한 성전사들은 순차적으로 몸을 씻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샤워실로 이동한 나는 뜨겁게 달궈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몸에 찬물을 부어 식혔다.
촤악—
기계적으로 씻으며 꾹꾹 누르자, 한계까지 내몰렸던 근육이 꿈틀거리며 자신을 과시했다.
‘확실히 효과는 좋은 것 같은데.’
세례가 끝난 지 며칠, 변태 같은 훈련법이었지만 그 효과는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혹사당한 육신과 이를 회복하기 위해 몸 구석구석까지 퍼진 신성력.
이것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신성력에 적응하는 게 느껴졌다.
“으그그극···.”
“으어어···. 나, 나 죽는다.”
샤워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앓는 소리.
나는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과하긴 하지. 나는 「마인드 허브」 덕분에 고통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저들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이겨내야 했을 테니.’
그 고통 또한 신앙과 정신력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내게는 필요 없는 만큼 사양하고 싶었다.
그저 그들의 신념을 응원해 줄 뿐.
“우리는 주신을 따르는 종으로써, 그분의 어린 양들을 이끄는 목자가 되어 항상 밝은 길로 인도하고······.”
훈련 이후에 강연실에서 행해지는 정신 교육을 겸한 교리 강의.
성전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졸음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 성기사가 되기 위해선 무(武)는 물론 문(文)까지 겸비해야만 했으니.
그렇게 약 두 달.
하인리히가 성기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불사왕 토벌대는 큰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
“후우···, 답답할 노릇이군.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불사왕 토벌대의 책임자인 라티우스 대주교는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주물렀다.
벌써 여러 차례 수색대를 운용하며 ‘한스’의 종적을 쫓았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첫 조우로부터 몇 개월 동안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으니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동안 성녀 또한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몇 차례의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추적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그때 파악한 장소에서도 놈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으니···.
똑똑—
“라티우스 대주교님, 투스킨입니다.”
“아, 투스킨 경. 어서 들어오시오.”
라티우스의 허락에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팔라딘 투스킨이 들어와 묵례했다.
대주교와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에도 피로가 가득 묻어있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뱀파이어 놈들이 손을 쓴 것이겠지요.”
“하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탈리아 왕국으로부터 오는 정치적 압박도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불사왕의 후예를 잡기 위해 조직된 토벌대가 지지부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빌미가 되어 명분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수색을 했는데도 없다는 것은, 이미 탈리아 왕국을 벗어났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말하는 투스킨의 모습에 라티우스는 재차 한숨을 내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들은 ‘한스’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뱀파이어 클랜은 물론 어둠에 숨어있던 ‘역천의 서약’과도 마찰이 일어날 정도로 과하게.
그 과정에서 역천의 서약은 교단과 클랜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어 꼬리를 자르고 숨어들었으나, ‘브로코슬락 클랜’과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다른 곳에 숨었다고 봐도 되겠지. 그만 탈리아 신전의 토벌대를 해산하고 본단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소.”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해 두겠습니다.”
투스킨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섰다.
불사왕 토벌대는 고위직을 제외하고는 탈리아 신전에서 지원받은 인력이 대다수였으므로, 해산하기까지 할 일이 많았다.
본단에서 파견된 이들이 귀환하게 되면, 그들은 왕국 곳곳에 배치되어 통상 업무로 돌아간다.
그리고 전 대륙에 퍼진 교단의 감시망에 목표의 행적이 포착된 순간, 그 지역에서 다시 토벌대가 소집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눈에 띄는 성전사가 한 명 있었는데.’
발걸음을 옮기던 투스킨은 문득 한 명을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세례 의식에서부터 사제장급 신성력을 각성한 성기사 지망생.
이후 훈련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만한 인재를 이런 변방에 두고 가기에는 아까운데···.’
다른 신입 성전사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우월한 신체 능력과 성기사 급에 달하는 회복력.
가르침을 빠르게 흡수하는 재능과 꾸준히 성장하는 잠재력까지.
신성력을 별개로 두더라도 놓치기 아까운 인재였다.
탈리아 교구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정도 재능의 전사가 재능을 꽃피우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본단에서 직접 받는 지원만 하겠는가?
‘흐음···, 이름이 하인리히라고 했던가. 할 수 있으면 데려가서 직접 키워보고 싶은데. 한번 말이나 해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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