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296)
고유스킬 「아바타」.
자신과 동일한 분신체를 생성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능.
그것은 지금의 나를 만든, 한성현의 시작이자 끝이나 다름없는 능력이었다.
‘만약 내 고유스킬이 다른 것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하네.’
그랬다면 당연히 초반의 폭발적인 카르마 포인트 획득도 없었을 테고, 트라우마에 정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무방비하게 이세계로 내동댕이쳐졌을 것이다.
아마 흑마법사들의 소굴이었던 마을에 도착하기는커녕 숲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혼자 벌벌 떨다가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을까.
‘그랬던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그리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 바깥을 두려워하던 겁쟁이가 이제는 마음대로 외출할 수 있게 된 건 물론, 아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폭풍의 핵이 되다니.
아니, 생각해 보니 그것조차 겸손한 표현이었다.
다른 차원인 아우테리카에서는 아예 그 세상을 내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청난 거물이 되지 않았던가?
‘그것도 나는 안전한 곳에 틀어박힌 채로 말이지.’
나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음료를 시원하게 들이켜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핵심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무슨 일을 벌였든, 앞으로 어떤 사고를 치든 한성현이란 본체만큼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리라는 확신.
그것이야말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내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마주한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이 됐고.’
그런 메리트가 있었기에 난 어떤 난관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들이박아 원하는 결과를 쟁취할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언제나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으니 무언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후우, 괜히 감상적이 됐네.”
그런 스킬이 지금 또다시 한 단계 성장을 앞두게 된 것이다.
그동안 과도한 성장을 거치며 한동안 강화가 막혀 버렸었는데, 하인즈 2세라는 개체의 성장이 어떤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어쨌든 곧 큰 싸움을 앞두고 있던 내게는 적절한 순간에 찾아온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디보자, 그럼···.”
그렇게 가볍게 마음을 다잡은 나는 여느 때의 루틴처럼 안마의자에 앉아 몸을 맡긴 채 시스템창을 열었다.
그러자 이젠 매일같이 보면서 익숙해진 항목들이 다시 눈앞에 촤르륵 펼쳐졌다.
『카르마 상점 Ver.2』
『고유스킬 강화 (1,500,000)』
『기타 스킬 강화 –상세 보기』
『스테이터스 강화 –상세 보기』
『물품 구매 –상세 보기』
『VIP 마켓 –상세 보기』
『차원 장벽 완화 (6,000,000)』
『보유 카르마 – 4,691,326』
그 많은 문구 중에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역시 ‘보유 카르마’였다.
어느새 벌써 400만을 훌쩍 넘어 500만에 가까워지는 막대한 수치.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주는 그 넉넉한 잔고에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지 않은 양이 주기적으로 계속 빠져나가는 중인데도 벌써 이 정도라니.’
VIP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성장의 비약(7일) (200,000)』의 효과를 확인한 이후, 그것을 구매하기 위한 비용은 이미 고정 지출이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이제는 헤스페론과 하워드, 호루스 등의 후발주자뿐만이 아니라 하인즈 2세와 하인리히를 비롯한 검증된 강자들도 종종 이용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거기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 소재들을 입수하는 것도 소소하게나마 지출에 한몫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아우테리카 전역에 열심히 빨대를 꽂아둔 보람이 있는지, 쉴 새 없이 빨려 들어오는 카르마는 보유 잔고를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었다.
타라크에서 혁명가 거인을 잡았을 땐 200만에 가까운 포인트가 한꺼번에 들어오기도 했고.
말 그대로 든든한 텃밭 그 자체였다.
‘···그래, 이런 노다지를 번천회주 그놈이 함부로 망치게 내버려 둘 순 없지.’
그 수치를 마주하자 다시 의욕이 들불처럼 솟구쳤다.
놈에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아우테리카의 힘을 총동원한다 해도 최후의 최후에는 이쪽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만큼,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 카르마 포인트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군자금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것도 없지. 우선 기다리던 고유스킬 강화부터.’
거기에 필요한 포인트는 150만.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사소할 뿐이었다.
찌잉—
주저 없이 항목을 선택하자, 익숙한 두통과 함께 신경이 예리하게 곤두서며 인지의 영역이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 「마인드 허브」로도 거를 수 없는 고통이 한차례 지나간 후.
나는 심호흡과 함께 전과는 또 달라진 감각을 추스르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고유스킬에서 파생된 능력의 효과가 더욱 증가하며, 아바타를 소환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됩니다.》
《고유스킬이 성장하여 가능성을 개화합니다. 특수스킬「개체 집결」을 획득합니다.》
첫 번째는 기존 능력들의 강화였다.
「마인드 허브」부터 시작해서 「영혼 방화벽」까지, 그간 고유스킬을 강화하며 얻었던 모든 부가 스킬들의 효율이 개선되며 성능이 상승했다.
거기다 얼마 전에 얻었던 원격 소환의 범위는 약 반경 30킬로미터에서 60킬로미터 정도로 두 배가량 증가하기까지.
‘···나쁘지 않아. 이제 서울 한복판에서도 인천 국제공항까지는 물론 경기도 대부분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겠는데.’
하지만 그 정도는 소소한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는 강화와 함께 새로 생겨난 스킬인 「개체 집결」이었으니.
역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답게, 그것은 내심 품었던 기대를 훌륭하게 충족시킬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어셈블(Assemble)이라니!’
특정 개체를 중심으로 다른 분신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스킬.
내게 있어 그것은 단순하지만 더없이 효율적인 능력이었다.
이 스킬이 있다면 이제 번거롭게 온갖 수단을 총동원하며 아바타들을 이동시킨다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단 한 개체만 현장에 있어도 1대1이었던 상황이 눈 깜짝할 새에 1대 다수가 되는 마법이 펼쳐지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군. 이걸로 아바타를 더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 됐어. 아직 쿨타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거야 숙련도만 쌓인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시간을 아끼고 싶다면야 다른 방법도 있었고.
이내 「개체 집결」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던 내 시선이 슬쩍 『기타 스킬 강화』 쪽으로 향했다.
‘저걸로 다른 스킬들도 강화할 수 있으니까.’
「마인드 허브」부터 시작해 방금 얻은 「개체 집결」까지의 아바타 계열 파생 스킬을 비롯해, 「초회복」과 「제노글로시」 등 일반 스킬들도 강화할 수 있었다.
‘개체들 각자가 가진 스킬들은 해당되지 않아서 지금까진 조금씩 맛만 보고 말았었는데···.’
지금은 카르마를 아낄 때가 아니었다.
승산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라면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
아직 포인트는 320만이나 남았으니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스테이터스 쪽을 더 강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응?’
하지만 그렇게 시스템창을 쭉 훑어보던 도중.
순간적으로 그냥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변화를 마주한 눈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고유스킬 강화 (2,000,000)』
그동안 꾸준히 10만 단위로 올라가던 그 항목의 수치가 갑자기 50만이나 인상해 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50만이었던 게 한 번에 200만으로 뛰어오른다고?
‘잘 팔린다고 배짱 장사 하는 건가?’
갑자기 이런 인플레이션이라니, 이 무슨 폭거란 말인가!
어차피 또 강화 제한이 걸리는 바람에 당장 사용할 수도 없었으나, 저렇게 가격이 급격히 뛴 모습을 보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쯧,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잠깐 그것을 노려보던 나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잔여 포인트를 사용할 수단으론 아직도 여러 가지가 남아 있었다.
스테이터스 강화, 기타 스킬 강화, 초고가 물품 구매, 그것도 아니면···.
『무작위 기타 스킬 습득 (500,000)』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 보는 방법도 있겠지.
“···쓰읍, 이번에도 한 번 해볼까.”
저것을 통해 얻은 「제노글로시」는 입수 직후에 후회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 이상으로 유용한 능력이었다.
그 스킬이 없었으면 활동하면서 여러모로 적지 않은 제약과 마주했을 터.
역시 그날 저 뽑기를 했던 것은 선견지명이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한 번 더!’
그에 나는 믿음과 신뢰를 담아 망설임 없이 항목을 선택했고—.
《무작위의 가능성을 강제로 개화합니다. 스킬「튼튼함」을 획득합니다.》
곧이어 떠오르는 창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으며 침몰했다.
‘그러고 보니···.’
카르마 상점이 Ver.2로 업그레이드된 이후.
저 무작위 뽑기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전에 떠올린 게 있었다.
여러 아바타가 스킬을 공유하는 만큼 그 실질적인 가격은 5만 이하이며, 만약 「튼튼함」 같은 스킬이 나오더라도 가지고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테니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그 직후에 「제노글로시」를 뽑은 후에 다시는 도박에 손을 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지.
‘···이건 복선 회수인가.’
나는 「튼튼함」을 공유받은 몇몇 아바타들이 그것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눈을 떴다.
이미 육체의 내구성을 증가시키는 상위 능력이 있는 아바타들에게도 양분이 되어준 것이니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뭔가 미묘한 기분이네.’
남은 포인트는 약 270만.
역시 이건 스테이터스와 기타 스킬 강화에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뭔가 날이 안 맞는 것 같군. 이건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보자. 다음에···.’
슬프지만, 차마 빈말로도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일단 시작한 이상 본전은 회수해야 하니까.
***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원래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을, 하지만 지금은 고작 며칠 만에 온갖 잡동사니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한 개인실.
“흐음흐음~ 역시 이번에도 그 짐승을 죽이지 않고 고모라를 흡수했나 보군요. 전의 폭군 때와 마찬가지로. 이거 굉장히 흥미롭네요!”
그곳에서 막 보고서를 끝까지 읽어 내린 닥터가 자신의 지저분한 수염을 쓱쓱 쓸어내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작은 상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으나, 연구자로서 사소한 변수에도 민감한 그는 팬텀이 유럽에서 모습을 보인 후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보며 분석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생각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참, 예상을 벗어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기껏 유럽까지 건너와선 차린 만찬을 즐기지도 않고 세력 놀이나 하고 있다니, 거기다 그 둘은 무슨 생각으로 팬텀을 따르는 건지 모르겠군요.”
원래라면 지금쯤 실컷 포식을 즐기며 이곳까지 제 발로 들어와야 했을 텐데.
하인즈 2세의 「정제혈정」과 「혼혈진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로선 그가 보인 행동들과 그 결과를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으잉? 아하! 하긴, 애초에 실험 대상으로 낙점한 것도 그자의 특별함 때문이었죠! 오히려 생각대로만 됐으면 실험할 가치가 없었겠네요! 나도 참, 우햐햣—!”
그렇게 저 혼자 중얼거리다 이내 이마를 탁 치며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닥터.
그의 말대로 이건 팬텀··· 아니, 하인즈라는 흡혈귀가 동족 포식을 하고도 멀쩡하다는 정보를 입수한 직후에 계획된 작전이었다.
변수를 최소화하고자 사사건건 방해가 되었던 하회탈의 손이 닿지 않는 유럽으로 목표물을 유인하는 수고까지 들이면서.
“그래도 그때 공작에게 피를 더 얻어냈으면 보다 확실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에잉, 쫌생이 같으니라고.”
그때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친 닥터가 이번엔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였다.
피가 힘 그 자체인 공작이 조금이나마 양보해 준 덕분에 이렇게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욕심이 그득한 이기주의의 화신인 그에게 그런 사정 따윈 알 바 아니었다.
“아~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깜짝 놀랄 선물들을 잔뜩 준비해 놨는데! 언제 오려나~ 얼른 와라~!”
이제는 숫제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한 회갈색 머리의 중년인.
놀랍게도 이 지저분하고 정신 나간 사내가 지구 최대의 비밀 조직인 번천회의 최고 지휘부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그의 염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때마침 루마니아의 영공에 막 들어선 비행기 내부.
그 안에 누구도 모르게 밀항하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이탈리아의 뱀파이어 클랜인 고모라를 접수한 바로 다음 날.
하인즈 2세— 팬텀이 루마니아에 입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