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0)
하인리히 (3)
검이 날아든다.
나는 검을 흘리기 위해 왼손에 든 방패를 뻗었지만···.
카가각!
‘얕아!’
방패를 가볍게 긁고 지나간 검이 꺾여 하체를 베어 들어온다.
급히 오른손의 장검을 휘둘러 공격을 쳐냈지만, 상대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챙! 채챙! 촤앙—
계속되는 연격을 양손에 든 검과 방패로 막아낸다.
날카롭게 벼려진 직감과 무수한 훈련, 극한으로 단련된 육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반응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기회다!’
검을 휘두르는 상대에게 순간적으로 드러난 빈틈.
온전한 빈틈은 아니었다. 저곳을 노린다면 이쪽은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뼈를 내줄 각오를 한다면 살을 베어낼 수 있는 기회!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고···.
퍼억—
방패에서 밀려오는 충격에 밀려 뒤로 나뒹굴었다.
“크윽···.”
“헉, 헉, 후아···. 깜짝 놀랐네. 미친놈인가?”
비틀거리며 물러난 상대가 한쪽 다리를 털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지막 순간에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내 방패를 걷어차 거리를 벌린 것이리라.
그 과정에서 상당히 무리했는지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연신 몸을 털었다.
“야, 여기까지 하자. 무슨 대련에서 그렇게 죽자고 달려드냐? 아무리 우리가 상처를 겁내지 않아도 그렇지.”
대련 상대가 되었던 교관 역의 선임 성전사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다가와 전투를 복기하며 토론하듯 떠들었다.
“하인리히가 회복력 하나는 끝내주잖습니까. 그 점을 생각하면 괜찮은 전투 방식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잘못 맞아서 한 방에 죽어버리면 회복력이 무슨 소용이야?”
“그 점만 잘 조절할 수 있다면 꽤 괜찮아 보이는데?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하고 빠르게 적을 처치한 후 회복한다···.”
“뭐, 신성력만 충분하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저 녀석 신성력이야 뭐···, 누구나 인정하는 바니까. 나중엔 우리가 얼굴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올라가겠지.”
그 말대로, 세례 이후 두어 달이 지난 지금 내 신성력은 대사제급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대사제는 작은 도시에 위치한 사원의 책임자인 만큼, 결코 낮은 위치가 아니었다.
‘대사제의 바로 위가 이 탈리아 신전을 책임지고 있는 주교니까. 물론 그 간극이 크긴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니까.
그보다 요즘 신성력의 성장세가 주춤하는 것 같아 고민이었다.
‘무언가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야. 여기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한계를 넘어서야 할 텐데. 아직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그것이 성전사와 성기사를 가르는 기준이겠지.
지금으로써는 더욱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개체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성전사 전투술」을 획득합니다.》
마침 성과가 있기도 했으니까.
-개체명 : 하인리히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개체 특성 : 「신성한 세례」, 「무골」, 「성전사 전투술」
-특이 사항 : 아우테리카의 주신과 영맥이 연결되어, 체내의 마나가 신성력으로 대체되었다. 신성력을 운용해 여러 이로운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계를 넘어선 단련으로 신체 능력이 큰 폭으로 성장 중이다.
나는 대련 상대가 되어 주었던 선임 성전사에게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대련 감사합니다!”
“어,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정말 많이 늘었더라. 처음에는 신체 능력만 믿고 날뛰는 녀석이었는데, 그때부터 몇 달이나 지났다고 이렇게까지 느는지 원. 이게 재능이란 건가···.”
“그러게 말입니다. 거참, 안 그래도 신체 능력이 월등했던 녀석이 전투 기술마저 숙달되니, 이제 어지간한 이들은 상대도 안 돼서 교관들이랑 수련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무수한 칭찬의 세례.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기사 지망이라고 했었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훈련장에 가끔 오시는 성기사분들이 너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 같더라. 지금처럼만 계속하면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하하하,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성기사들의 훈련장은 따로 있었지만, 실전을 대비해 손발을 맞추기 위함인지 가끔 합동 훈련할 때가 있었다.
세례 의식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던 나는 훈련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고,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에게도 제법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성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전사 중에서도 특출난 모습을 보여야 했으므로 나에게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선임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네? 로셀리아 대신전으로요?”
로셀리아 대신전.
지금 우리가 있는 ‘이온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주신교단의 성지, 그중에서도 한가운데에 있는 대신전.
아우테리카에 몇 없는 대신전 중에서도 가장 큰 곳이며, 교황과 성녀가 기거하는 교단의 심장부였다.
나는 그런 곳에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 본단으로 데려가려고 할 정도면 정말 윗선에서 너를 좋게 봤나 보다. 확실하게 키워줄 생각인가 본데?”
말을 전해주러 온 성전사장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말대로 이건 큰 기회였다.
변방의 탈리아 왕국에서 벗어나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
“일단 본인 의사를 물어보라고 하셔서 말이지. 아무래도 출신지를 벗어나는 거니까. 본단과 이곳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고, 어지간해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힘들 거야.”
애초에 이곳이 고향도 아닌 나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론 출신지를 속인 입장에서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곳에 남은 가족도 없는 몸이니까요. 거기다 성지라니! 주신을 모시는 입장에서 꿈만 같은 일이 아닙니까.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이건 진짜 좋은 기회니까. 그럼 그렇게 보고하지. 너도 준비해 두도록 해.”
이어서 성전사장은 성지에 가게 돼서 부럽다느니, 자신도 언젠가 꼭 한번 가 봐야하는데 가족 때문에 힘들다느니 하소연하고는 보고를 위해 사라졌다.
‘성지, 그리고 로셀리아 대신전이라···.’
대륙의 서쪽 변방인 이곳과 멀리 떨어진 장소.
아우테리카의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불사왕 토벌대가 해산되었다.
정작 불사왕의 후예보다는 뱀파이어나 흑마법사들과 더 많이 싸웠지만, 몇 개월간 이어진 그들의 노고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간단한 송별회를 가진 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총책임자인 라티우스 대주교와 보좌인 팔라딘 투스킨.
주교 한 명이 통솔하는 대사제급 전투 사제 일곱 명.
투스킨 휘하의 은빛날개 성기사단 열댓 명.
거기에 낀 성전사 하나.
탈리아 왕국을 떠나게 된 인원이었다.
“호오···, 자네가 그 하인리히라는 성전사인가? 과연, 신실한 청년이로다.”
“성기사 지망이라고? 혹시 사제의 길을 걸을 생각은 없는가?”
“무슨 소릴! 신성력도 신성력이지만 근골이 아주 훌륭하군. 조금만 더 정진하면 훌륭한 성기사가 될 수 있겠어.”
“훈련장에서 듣자니 끈기도 있고 재능도 뛰어나다고 하더군. 어쩌면 팔라딘의 재목일지도.”
나는 스물이 넘는 인원들과 함께 신전의 심처에서 대기하며,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공손히 응대했다.
이곳에 있는 사제와 성기사들은 하나같이 고위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신에 대한 믿음에 따라 신성력이 주어지고, 그것이 강해야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고위직은 믿음이 강할 수밖에 없으니 부패는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교단은 스파이 같은 걸 걱정하지도 않는다.
하인리히가 수월하게 교단 소속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거나 타락이라도 해서 믿음이 약해지면, 그만큼 신성력에도 티가 날 테니까.
주신교단이 실질적 단일 종교가 된 이유였다.
‘나는 지극히 예외인 상황이고. 뭐, 주신도 알면서 방치한 것 같으니 허락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래서 성기사나 전투 사제 중에 원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유가 주어진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신의 뜻을 널리 알리라는 의미에서.
이 또한 내가 성기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한쪽의 문이 열리며 라티우스 대주교와 투스킨 경이 들어왔다.
“모두 채비는 갖췄나? 전송 준비도 다 됐다고 하니 이만 이동하도록 하지.”
투스킨의 말과 함께 우리는 신전의 더욱 안쪽으로 이동했다.
사전에 전달받은 대로 가벼운 짐만을 꾸린 나는 그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 정도 예상하던 장소였다.
‘대륙의 서쪽 끝에서 중심부까지···. 이곳의 교통 사정을 생각하면 육로로 가다간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르지. 소수의 인원만 급파되었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거대한 공간 안에 자리한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아치형 석문.
그 하얀 석문은 아름다운 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문에서 시작된 금빛의 물결은 그 바닥 주변까지 퍼져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리하여 목자가 가로되, 주를 믿는 종들이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데 힘이 되라 하시며 은총을 내리니. 한 걸음에 산을 넘고 두 걸음에 바다를 건너······.
-······그 뜻을 만방에 펼치라 전하시니, 이에 대지가 접혀 뜻하는 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눈은 만 리를 내다보고 발은 천 리를 내디디니······.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금박을 입혀 빼곡히 새겨진 기도문이었다.
하나같이 거리와 공간의 제약을 무시하는 기적에 대한 내용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며 그곳을 지키던 사제들과 눈인사를 한 직후, 그들은 곧 문을 둘러싸고 기도를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사제들이 있는 바깥쪽부터 빛나기 시작한 금빛 기도문은 중심의 석문까지 흐르듯이 이어졌다.
‘장관이군···.’
석문의 주변을 감싸며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의 서광, 그 중심부터 휘몰아치며 생겨난 푸른 소용돌이.
아직 성법에 일천한 하인리히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한스의 「흑마법」 지식으로도, 하인즈의 「혈마법」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힘.
우우웅—
작은 진동음과 함께 중심의 푸른 소용돌이가 서서히 커지며 석문의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주변을 밝히던 금빛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조용히 진동하는 푸른 게이트.
“그럼 이동하지.”
대주교의 말과 함께 다들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문으로 이동했다.
‘하긴, 올 때도 이런 식으로 왔을 테니. 처음 보는 건 나뿐인가.’
탈리아 신전의 책임자인 크롬빌 주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일행은 한 명씩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이윽고 내 차례가 다가오고···.
나는 망설임 없이 푸른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잘 있어라. 탈리아 왕국아! 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다!’
이 문을 넘으면 대륙의 중심인 성지가 나를 기다리리라!
***
포부도 당당하게 문을 넘었지만 나를 기다리는 곳은 성지가 아니었다.
탈리아 왕국의 북동쪽에 위치한 샤로티 왕국의 신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번에 대륙의 절반을 건너는 것은 상당히 무리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지금은 딱히 빨리 돌아가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안정적으로 나눠서 이동할 예정이야.”
“아하, 그렇군요.”
덕분에 하루씩 쉬어가며 경유지를 둘러볼 여유도 생겨서, 나는 일행 중 막내 성기사와 함께 도시를 관광하고 있었다.
탈리아 밖으로는 처음 나와 본다는 나를 배려했는지, 그는 자청해서 내 가이드를 맡아주었다.
그렇게 며칠.
“이번이 마지막이다. 모두 성지로 들어서기 전에 몸가짐을 바로 하도록.”
““네!””
우우웅—
푸른 소용돌이를 넘고.
드디어 성지의 로셀리아 대신전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다른 신전들과 다를 바 없는 전송 공간.
그리고 한쪽에 모여 있는 일단의 사제들이었다.
“어서 오세요. 다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제들의 중간에 서 있던 한 소녀가 앞으로 나서며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주변의 빛을 산란시키는 밝은 은발과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
등장만으로도 주변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닌데?! 저거 후광이야?’
주신교단의 성녀, ‘리에스타 세인트 하티아누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
“하인리히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기반을 다졌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야.”
다시 생각해 봐도 성지에 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덕분에 중간에 경유한 도시에 이동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포교를 핑계로 대륙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두에게 존중받는 성기사로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는 한스와 전전긍긍하며 숨어 다녀야 하는 하인즈 2세가 그동안 얼마나 서러웠던가.
이제 그런 생활은 안녕이었다.
“거긴 됐으니 슬슬 이것들을 처분해야지.”
나는 창고 방 안쪽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구석에 한가득 쌓여 있는 금괴를 비롯한 귀금속들.
그동안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노력해온 대가였다.
스르륵—
어느새 기척 없이 나타난 하인즈가 팔찌형 아공간 마도구 안에 귀금속 일부를 챙겼다.
팔찌는 뱀파이어 저택에서 챙긴 보물 중에서 발견한 것으로, 용량은 가방 하나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 편리성 때문에 애용하게 되었다.
‘아공간 마도구는 귀하니까.’
귀금속을 챙긴 하인즈가 창가로 향했다.
때는 밤 10시가 넘은 저녁. 한창 활동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창문을 연 하인즈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처분할지는 이미 결정한 후였다.
하인리히가 고생하는 동안 이쪽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