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00)
쿠구구궁!
한창 싸움을 이어가던 할리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오싹한데. 설마 다른 함정이 더 있나?’
하지만 그의 감각에 걸리는 것은 딱히 없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번천회와 드라쿨의 일당들만이 하루살이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
‘그래도 할리의 직감을 무시할 순 없으니 일단은 좀 더 주의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다른 곳을 살펴보는 와중에도 멀티태스킹이 일상인 그의 육체는 자연스럽게 싸움을 이어 나갔다.
쿠웅— 스카칵!
진각을 밟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통나무처럼 굵은 팔뚝이 휘둘러지며 그 끝에 매달린 다섯 개의 칼날 같은 손톱이 무자비하게 허공을 찢어발겼다.
본능을 기반으로 한 야성적인 움직임에 접목된 지성체의 기술.
그냥 적당히 움직이더라도 충분히 강한 몸뚱이였는데 무의 이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하니, 이젠 가히 움직이는 재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푸화악—!
“끄으으— 이 괴물 놈이···!”
“큭! 경거망동하지 마! 살먼! 아직 멀었나?”
“미친!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몸뚱이야! 저항력이 얼마나 되기에···!”
그래도 싸움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급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한들 상대 역시 자신의 한계를 탈피하고 초월에 이른 강자들.
그런 이들이 다수의 고위 흡혈귀의 도움을 받는 건 물론, 전원이 제각각 특별한 고유스킬을 비롯한 이능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쪽도 제법 상위권의 인재들을 데려왔나 보군. 이번 일에 엄청나게 신경 쓴 모양이야.’
할리는 엉망이 된 몰골로 이쪽을 노려보는 놈들과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모로 비틀었다.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제법 많은 흡혈귀들을 처치하긴 했지만, 역시 그 정도론 성에 차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기 있는 번천회의 하수인들을 먼저 없애야 할 것 같은데, 경지에 오른 놈들이 작정하고 몸을 사리고 있으니 쉽게 결판이 나지 않고 있었다.
‘이거 괜히 정보 유출을 막는다고 뭘 아낄 때는 아닌 것 같네.’
어쩌면 저들을 너무 무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여기서 놓치는 놈이 하나라도 생기면 그게 더 손해일 텐데.
강자의 수야말로 세력의 영향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척도였으니, 번천회에 소속된 강자는 줄일 수 있을 때 최대한 줄여놓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크흐— 이거 어쩔 수 없군.”
어차피 판이 이렇게까지 깔린 마당에 더 이상 사리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여기서 굳이 뭘 더 숨기는 것도 조금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경계하라! 괜히 먼저 나서지 말고···!”
그런 할리의 반응에 뭔가를 느꼈을까.
마주한 적들이 한껏 긴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을 때.
두근—
그의 몸속에 깃든 「광기의 씨앗」이 맥동하며 전신에 흐르는 광기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에너지 삼아 발동한 「투왕의 각인」이 검붉은 비늘 아래에서 발광하고, 이글거리는 「생체 오러」가 숫제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의 몸을 휘감았다.
“잠깐, 이 에너지 반응은···!”
“팔콘! 어서 방어부터···!”
그 직후.
웅크린 몸으로 열 손가락을 바닥에 박은 그는.
콰득— 콰아앙!
“크흐하하핫!”
그대로 한순간에 땅을 박차며 로켓처럼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빠르···!”
“······!”
누군가가 사용한 미지의 힘이 전신을 옥죄어 왔으나 소용없었다.
용의 비늘을 타고 흐르는 광기의 오러가 외부 에너지에 저항하고, 체내 기운을 북돋는 각인의 신비가 적대적 이상 현상을 무시했다.
푸화악!
황급히 근처까지 다가와 뭔가를 하려던 흡혈귀 하나의 몸이 가벼운 손짓에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아무리 재생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저 지경이 되어선 어림도 없을 터.
꽈아앙—!
그리고 어느덧 처음의 두 배는 더 커진 할리의 갈퀴손이 허공에 가로막혔다.
번천회 일당이 지금까지 버티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망치 전사의 방어 계통 이능.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접촉면부터 시작한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지긴 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은 경지에 오른 이들이 후속 조치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마음먹은 이상 이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한껏 발달한 할리의 턱이 크게 쩍 벌어졌다.
그에 톱니처럼 돋아난 날카로운 이빨들이 사납게 번뜩이고는—.
콰지직!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장벽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무슨 짓을?!”
뭔가를 먹는다는 행위에 강한 보정을 부여하는 「폭식」.
‘광기’가 깃든 에너지까지 더해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가지게 된 그것에, 앞을 가로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장막이 뜯겨나가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일이 그쯤 되자 나머진 일사천리였다.
콰드드득! 콰득!
단숨에 파괴된 장벽과 그것을 넘어 이빨이 돋아난 입을 쩍 벌린 채 빠르게 다가오는 근육질 거체.
그것은 마주하는 이에게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기괴한 장면이었으나, 그 와중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은 노련하게 반응했다.
커다란 망치를 휘두르며 정면에서 대응해 오는 망치 전사, 기이한 기운이 어린 장검을 들고 배후를 노리는 여검사, 하늘에서부터 강하하듯 떨어져 내리는 무투가와 그들을 보조하는 흡혈귀 잔당까지.
방금 전까지였다면 할리도 몸을 사리며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했겠지만, 이제 제대로 나서기로 한 이상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기이잉—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왼쪽 눈의 녹광과 함께 「보석안 : 강압」이 발동되었으니.
광기가 치환된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연소하며 막대한 물리력이 발생해 주변인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했다.
“큭?!”
“이건···?”
물론 그들 또한 이룬 격이 있는 만큼 그 강제력이 작용한 것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할리에게 있어서 그 잠깐의 순간은 하고자 하는 일을 끝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쿠우웅—
“커헉!”
빈틈을 노린 거친 공격에 망치 전사가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직전에 망치를 움직여 직격을 막긴 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이놈부터 최대한 빨리 끝낸다.’
이후, 찰나의 순간을 잘게 쪼갠 시간 속에서.
할리의 양손과 전사의 망치가 현란하게 뒤엉켰다.
망치와 주먹이 맞부딪쳐 충격을 남기고 긴 손잡이와 손톱이 마찰하며 불똥이 튀었다.
쿠구구구궁—
뒤늦게 합류한 전사의 동료들도 곧바로 끼어들어 지원을 시작했다.
기이한 힘이 서린 장검이 용린을 베고 들어오며 몸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무투가는 연달아 충격파를 터트려 대며 그를 밀어내기 위해 애썼으나···.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을 지닌 할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오직 망치 전사 하나만을 죽어라 노리며 달려들 뿐.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 버렸으니 그 결과도 당연히 정해져 있었다.
“안 돼!”
“팔콘!”
결국 동료들의 조력 속에서도 무기를 잃고 목줄이 틀어 잡혀 버린 망치 전사.
“이제 하나.”
“끄헉!”
뿌드득!
할리는 주변의 방해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제 손아귀에 들어온 전리품의 목을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이어지는 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궁극의 진화 생명체 할리.
그 탄생의 계기는 하회탈 한스와 흡혈귀 하인즈 2세가 혈맹의 강경파를 정리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사로잡은 번천회 간부의 정신세계에서 처음 율령자와 조우했던 시점으로.
그때 한스는 읽어 들인 기억으로 한국에서 암약하던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냈고, 그곳을 습격한 끝에 다양한 자료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그 안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바로 ‘완전 진화 생물 프로젝트’와 ‘포식룡의 용혈’ 샘플이었다.
당시 다양한 연구들을 한꺼번에 진행하느라 한창 바빴던 닥터가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일부러 여러 지부에 퍼뜨리고 경쟁시켰던 주제.
평소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교류에서 온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던 닥터는 그 과정에서 생길 연구 자료의 유출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가 최고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이 세상 누구를 아무리 한데 모아 놓더라도 자기 한 사람만 못하리라는 강한 확신.
누군가가 반짝이는 창의력으로 연구를 조금이라도 진척시켜 준다면 오히려 좋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의 자양분이 될 뿐이고, 끝내 이것을 완성하는 것은 자신이 될 거라고···.
생각, 했는데.
까득 까득 까드득—
핏발 선 눈으로 홀로그램 영상을 바라보던 닥터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그 때문에 손끝에서 피가 새어 나오건 말건 그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아니, 이미 한껏 「진리의 눈」에 집중한 그에게 더는 다른 곳에다 할애할 정신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추가된 부분은 흑마법이 베이스인가? 그중에서도 하데시아 계통과 굉장히 유사하군. 복합 술식이 적용된 건지 여기에도 이것저것 섞인 것 같긴 한데···. 거기에다 상당히 수준 높은 키메라 공학까지. 현대의 생명 공학도 제법 섞인 것 같···.”
미친 사람처럼 쉬지 않고 중얼거리는 닥터.
실제로 직접 대면하는 것만큼은 못하지만, 이 홀로그램 영상도 상당히 신경 쓴 마도구였기에 제법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틀림없군요.”
세세한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것에는 분명 그의 고뇌가 담긴 가설과 논증, 이론과 증명 등이 바탕 되었다는 것이었다.
“흐으— 하아— 후우, 후우.”
잠깐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던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여전히 선명하게 송출되고 있는 3미터가 넘는 근육질의 괴생명체를 눈에 담았다.
한창 번천회의 강자들을 상대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그 아름다운 ‘예술품’을.
“대체 누가···.”
자신이 설계만 해 두고 구현하지 못했던 효율성의 정점.
생명체의 진화라는 개념을 형상화한 것 같은 미의 극치.
인공적으로 탄생했으면서도 신이 빚은 피조물마저 넘어선, 그 한계를 초월해 아득한 경지까지 다다른 전무후무한 창조물.
“어떻게···? 어떻게어떻게어떻게어떻게···!”
그것을 마주한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는 어떤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닥터는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연신 거칠게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연구 결과를 도둑맞은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어떻게에에에—!!”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건지.
이렇게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푸흐히햐햑! 푸키킥—!”
자신이 정립한 복합 술식과 과학이 기반 된 기존 연구 자료, 그것에 더해진 흑마법, 키메라 시술, 연금술 공법과 약품 처리 등···.
하지만 그런 것 정도야 그도 이미 다 해 본 것이었다.
그 결과 자신은 실패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저런 역작을 내놓았다.
‘대체 누가? 어떻게···? 저 광기 에너지가 열쇠인가? 아니, 아무리 봐도 저건 나중에 추가된 기능이다. 그럼 도대체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 의문, 물음, 질문, 의구심.
정체 모를 누군가가 자신의 위에 있다는 열등감과 패배감, 질투심.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굴욕.
실험체인 할리가 가진 아바타로서의 특이성과 「적응」이라는 스킬, 그리고 불사왕 한스의 능력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로선 절대 깨달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아마 그걸 알았더라도 그가 느끼는 감정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보다 다른 이가 먼저 성공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겠군요.”
그렇게 한동안 억눌린 기성을 토하며 전신을 비틀던 닥터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곤 나직이 속삭였다.
끝없는 지식의 궁구야말로 지성체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
미지를 접했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족하다면 채워 넣으면 그만.’
좀 더 제대로 된 분석만 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원래 연구는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
저 예술품을 손에 넣어서 해부하고 확실하게 분석할 수만 있다면···!
“푸흐흐흐히힉—.”
어떤 열기에 젖은 닥터의 비틀린 눈빛이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실험체, 할리에게로 향했다.
< 흡혈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