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01)
대기가 진동하고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치는 전장 속.
“크하하핫!”
콰아앙!
할리의 사나운 광소와 함께 재차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와 대적하는 이들은 연신 고함을 지르며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 보려 했으나, 그들이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사태는 계속해서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그나마 믿는 것이라고는 이쪽이 최대한 버티는 동안 다른 곳에서 추가 지원이 오는 것이었는데···.
쿠구구궁—
아까부터 숲의 외곽에서 계속되는 폭음에 그들은 그런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중앙의 싸움과는 달리 넓은 영역에서 진행되는 그 화력전의 여파는 아무리 봐도 불청객 쪽이 우세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전부 한 사람이 처음부터 노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순조롭군.’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 할리와 해리스 둘 모두를 이곳에 부른 것이었으니.
상대의 전력 또한 결코 만만치는 않았지만 이쪽이 동원한 전력은 명백히 그 이상이었다.
‘아무리 같은 초월이라도 급에 따른 차이는 있기 마련이지.’
그리고 그것은 현장에 있는 마지막 아바타, 피의 완성을 갈망하는 흡혈왕 하인즈 2세 또한 마찬가지였다.
스카칵— 차앙!
할리와 번천회 일당의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
날카로운 충돌음과 함께 그 후폭풍에 주변의 초목들이 뒤집어졌다.
“크윽! 감히···!”
공간이 찢어지는 일격을 기다란 피의 창으로 힘겹게 막아낸 공작이 이를 갈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하지만 상대의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하인즈는 그저 묵묵히 하던 공격을 계속하며 차근차근 상대를 분석해 나갔다.
‘감각이 좋군. 역시 격이 높은 상대에게 인과를 이용한 공격은 잘 먹히지 않는단 말이지.’
그의 옆구리를 뚫었던 첫 공격은 기습의 이점을 살려 통한 것이었을 뿐.
공작이 제대로 경계하기 시작하자 그것은 큰 효용을 보이지 못하고 번번이 막히고 있었다.
‘뭐,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공작과 다시 일대일 대결을 시작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해리스와 할리가 잘해 주고 있으니 더 이상 방해도 없을 테지.
물론 밖에서 결계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추가 원군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해.’
어느새 양손에 생겨난 두 자루 피의 대검을 그러쥔 하인즈가 몸을 낮추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스스슥—
한순간 기척이 사라진 그의 몸이 급속도로 가속해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상대의 뒤로 이동한 그가 양손의 대검을 휘둘렀지만.
“어림없다!”
어느새 공작의 등 뒤 허공에 나타난 새로운 거창이 공격을 막아내고, 그는 처음보다 두꺼워진 무기를 휘둘러 곧바로 반격을 가해왔다.
첫 교전에서 느꼈던 것처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담고서.
콰앙—!
‘역시.’
하인즈는 그 충격에 자신이 만들어 낸 피의 검 한 자루가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가늘게 눈을 떴다.
아무리 액체로 만든 무기라 내구력이 다소 부족하다 한들 명색이 「정제혈정」까지 사용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충돌 한 번에 부스러진 것도 그렇고, 그러고도 상대의 무기가 멀쩡한 것 또한 말이 안 되는 일.
‘피 자체에 개입하는 능력이로군.’
그것도 제법 높은 수준까지 강화가 된 고유스킬인 것 같았다.
원래부터 혈액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을 매개로 특별한 이능을 발휘하는 쪽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피가 곧 힘인 흡혈귀에겐 사기와도 같은 능력이라 할 수 있을 터.
역시 저것이 바로 공작을 지금의 자리로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리라.
쉬익—
그때, 하인즈의 면전으로 새빨간 점이 날아들었다.
피로 빚은 거창의 첨단 부분.
눈 깜짝할 새에 쏘아진 그것은 거리를 무시하며 단번에 공간을 꿰뚫었다.
그리고 빠르게 이동하며 회피하는 하인즈를 따라 자아를 가진 것처럼 따라붙으며 뱀처럼 변칙적으로 그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런 것이 둘, 셋··· 계속해서 늘어나며 그를 사방에서 조여 왔다.
‘안 되겠네.’
결국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그는 허공에서 허리를 비틀며 피의 대검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가속하는 사고 속에서 「통찰」로 관측되는 창들의 사선(射線).
이내 그 모든 것들이 한 선 안에 들어왔을 때.
스아아악——
그는 「급가속」을 사용해 반월을 그리듯 검을 크게 베어냈다.
파가가각! 콰아앙—!
극초음속을 넘어서 채찍처럼 늘어진 칼끝과 창이었던 것들의 충돌에 양쪽의 무기들이 모두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어차피 그런 것쯤이야 언제든 만들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으니 하인즈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공작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네놈은 대체···.”
알 수 없는 위화감.
제대로 싸움이 시작된 직후부터 공작이 느끼는 기묘한 감각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상대를 이길 수 없으리란 불길한 직감과 함께, 실질적으로도 평소 이상으로 힘의 소모가 커지고 효과는 오히려 감소했다.
아무리 그가 가진 고유스킬 덕분에 에너지 측면에서 자유롭다 한들, 이건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무슨 능력이지? 고유스킬?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디버프 같은 능력에 의한 힘의 감소가 아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일어난 어떤 개념의 작용.
이미 수십 년간 이 힘을 다뤄온 그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위험하다.’
그리고 그것은 공작에게 더는 뒤가 없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했다.
그의 감지 범위도 보통은 아닌 만큼 이미 돌아가는 사태는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난입자들에 의해 하나둘 줄어가는 아군의 기척에도 느끼는 게 없는 얼간이였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겠지.
그런데 저들에 의해 아군이 전멸하고 나면 그다음 자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사실상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이곳을 곧장 빠져나가든, 살아남은 아군을 다시 규합하든.
모든 것은 눈앞의 적을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사실 정말 상대를 쓰러뜨릴 수는 있을지부터 고민하는 게 맞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런 나약한 생각은 일부러 떠올리지도 않았다.
오랜 경험상 그런 사고방식 따윈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설령 그저 발악에 불과하게 될지라도.
‘이렇게 된 이상 멀쩡히 돌아가는 건 포기해야겠지. 다소의 손실 정도는 감수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에는 그만한 위험이 따르는 법.
십수 개의 피의 창을 뽑아내 일대에 폭격을 가하던 공작이 마침내 적절한 기회가 포착되자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겼다.
고오오오—
한순간에 그의 몸속을 흐르는 혈액이 급격히 폭주하며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앙—!
“큭?”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그 막대한 혈마력에 급하게 방어했음에도 멀리 튕겨 나간 하인즈가 다시 자세를 다잡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크으— 이거 짜릿하군—!”
뿌드득— 빠득!
뭔가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현상.
잘생긴 미중년이었던 공작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한순간에 피골이 상접했고, 그와는 반대로 터질 듯이 부푼 근육 때문에 입고 있던 정장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우우우웅—
우웅— 우웅—
무엇보다 큰 변화는 그의 주변에 늘어선 피로 만들어진 창의 숫자였다.
뾰족한 첨단을 하늘로 향한 채 장엄하게 늘어선 수십 개의 붉은 가시들.
피에 담긴 잠재력이 한꺼번에 개방되며 발생한 폭발적인 에너지에 그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며 숲을 감싼 결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군.”
그 척 봐도 정상적이진 않은 상황에 하인즈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현상은 둘째 치고 그에게 풍겨 나오는 기세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전에도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그렇군. 역시 알파 때도 네가 관여한 건가?”
그리고 그는 곧 그 원인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납득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오래전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피웠던 혈맹 강경파의 리더, 알파의 몸에서 새어 나오던 것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당시엔 놈이 모종의 연구로 그런 꼴이 되었다는 것밖에 파악할 수 없었는데, 거기에 공작이 개입했다면 확실히 납득할 수···.
‘잠깐.’
그때, 생각을 멈춘 하인즈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머릿속으로 알파의 서울 테러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과 그간 수집한 정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구나.’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닥터, 닥터가 이곳에 있구나.’
지금 이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번천회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닥터가 있으리라는 것을.
그 강렬한 직감이 그의 뇌리에 경종을 울렸다.
‘날 잡기 위해서였나? 어쨌든 이건 기회다.’
율령자의 기억을 얻었음에도 닥터의 거처는 어딘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기본적으로 유럽에 머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든 필요한 연구실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그조차도 딱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놈은 율령자나 공작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겠지.
번천회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그 번천회주에 대해서도.
“빨리 끝내주마!”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있을 때, 거친 고함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핏빛 거창이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아까보다 확연히 더 빨라진 속도로.
그에 따라 거친 에너지의 격류가 발생하며 공격 궤적을 따라서 공간이 이리저리 비틀렸다.
“의견이 통했군. 나도 동감이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도 위압적이기 그지없는 공격이었으나, 지금의 하인즈에게 있어서는 그저 번거로운 훼방에 불과했다.
‘최대한 빨리 이놈을 처치하고 나서···.’
유럽에 온 목적의 달성을 코앞에 두었을 때 나타난 새로운 목표.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일단 지금 눈앞에 닥친 일부터 확실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한껏 기세를 끌어올린 하인즈의 사고가 가속하며 다시 한번 「통찰」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에너지의 규모가 범상치 않다. 피에 깃든 힘을 한 번 더 증폭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라···, 어쩌면 저자도 자신의 세계에서는 동족 포식으로 힘을 불렸을지도 모르겠군.’
그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였다.
가진 고유스킬도 피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니 영 불가능한 가설도 아니었다.
지구에 와서 완전히 다른 계통의 흡혈귀를 포식하는 것의 리스크에 비해서, 같은 계통에 속해 있을 때 그걸 이겨내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그런 걸로 따지자면 자신이야말로 전 차원 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아우테리카의 모든 혈맥을 잇고, 지구에 와서도 쉬지 않고 다양한 흡혈인자를 수집하며 동족 포식을 지속해 온 몸이지 않던가?
‘후우, 이렇게까지 힘을 끌어오는 건 익숙하지 않은데. 그래도 이참에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상대에 대한 변수 파악도 어느 정도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제대로 결판 짓는 것뿐.
넘쳐나는 에너지를 대가로 한계까지 가속한 시간 속에서 인과의 흐름을 탄 하인즈가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저벅—
심장은 물론이고 몸속에 심어 두었던 성혈의 정수들에서 흘러들어온 혈마력이 사지 전체로 뻗어나갔다.
정지한 것처럼도 보이는 세상 속에서 하인즈와 공작의 타오르는 시선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두 걸음째.
양손에 피의 대검을 뽑아내고 지척까지 다가온 붉은 창날을 쳐냈다.
그러다 무기가 부서지면 다시 만들어 내어 작업을 반복하길 여러 차례.
파편처럼 흩어지는 피 안개 속에서, 확실히 아직 ‘시간’의 우위는 이쪽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세 걸음째.
창을 쳐내는 과정에서 생긴 자욱한 피 안개를 그냥 내버려 두기도 아까운 일이었다.
그에 하인즈는 「피의 신비」를 이용해 허공에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다수의 혈검을 만들어 냈다.
그것들은 이내 제공권을 다투는 전투기들처럼 창들과 서로 부딪치며 다시 파괴와 재생성을 반복했다.
상대적인 교환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어차피 덤일 뿐이었으니 잠깐 시간을 버는 것 정도로는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네 걸음째.
공작의 영역에 완전히 발을 디뎠다.
이쯤 되니 틈틈이 사용했던 「존재부정」도 영 힘을 쓰지 못했다.
요동치는 기운 속 공간 전체가 자신을 적대하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지만, 어차피 이 정도야 이미 각고했던 일.
하인즈는 양손에 무기를 뽑아 든 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다섯 걸음째.
상대의 영역에 깊게 들어갈수록 이쪽이 우위였던 ‘시간’도 점차 평형을 되찾았다.
당연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계속해서 힘들어졌고, 몸에 남는 상처도 계속해서 늘어갔다.
물론 그리 오래되지 않아 전부 재생되었으니 딱히 의미는 없었지만.
저벅—
그리고 마침내.
“네, 네놈···! 어떻게···!”
“오래 기다렸다.”
마지막 걸음을 내디딘 하인즈는 피골이 상접해 볼품없이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잃어버린 반쪽이라도 마주하듯이.
‘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어차피 이제 곧 하나가 될 몸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손을 뻗은 그가 상대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피의 완성을 갈망하던 하인즈 2세의 손이 마침내 그 마지막 조각을 움켜쥐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