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02)
다양한 차원이 있는 만큼 각지에서 초월의 경지에 오른 이들을 부르는 명칭도 제각각이었다.
현경, 그랜드 마스터, 선각자, 오버로드, 그랑 마기아, 이모탈 등등.
그런 만큼 세세한 부분에선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으나, 그들 모두에겐 어떤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격을 다시 세운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랜 수련을 거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든, 그만한 격이 담긴 특별한 힘을 사역하든, 긴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혈통의 업을 계승하든.
각자의 방법으로 초월에 이른 이들은 어느 세계에서나 정점에 군림했고, 그것은 수많은 차원의 교차점인 지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고로 압도적인 힘이란 곧 권력이나 다름없는 법.’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렇게 벽을 넘어선 이들끼리도 수준 차이는 있기 마련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전교 일 등이 명문대에선 꼴등이 되는 것처럼, 원래 서열이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않던가?
‘그리고 지구의 각성자들은 대체로 다른 세계의 강자들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손색이 있지.’
아무래도 시스템의 도움으로 비교적 쉽게 얻은 힘이니 숙련도 등에서 살짝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양산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터.
‘물론 내 아바타들도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건 마찬가지긴 한데.’
그러나 진화를 거듭하며 생명체로서의 한계를 넘고 ‘광기’까지 품게 된 할리와, 세계수의 원조로 자연과 합일하고 강환계의 무공을 배워 한 단계 더 성장한 해리스는···.
그런 식으로 한데 묶기에는 내면에 품은 힘의 크기가 너무 컸다.
그 둘만으로도 이 자리의 남은 놈들을 모조리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또한 그 둘과 마찬가지로 초월이란 경지 내에서도 상위권이었던 하인즈 2세는.
지금 또 다른 격변을 맞이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호흡이 가빠진다.
내뱉는 숨에 섞여 나온 자욱한 피 안개가 대기 중에 흩어졌다.
그는 서서히 재가 되어 부스러지는 ‘공작’이었던 이의 잔해 앞에서 깊게 심호흡하며 체내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애써 다스렸다.
당연하지만 그와 자웅을 겨룰 수준의 강자였던 공작은 휘하로 들일 수 없었다.
하인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로지 피를 모조리 갈취하는 것뿐.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기에 그는 일을 진행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거, 짐작하긴 했는데···.’
그리고 그 직후.
그는 생각 이상으로 거센 반동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애써 기운을 수습하고 있었다.
할리와 해리스가 순조롭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진짜 그랬으면 별수 없이 소환 해제라도 해야 됐겠··· 윽!’
몸속을 흐르는 피가 별개의 생명체가 된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의 근간이나 다름없는 「피의 종주」가 격렬하게 활성화되며 그와 연관된 모든 스킬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혼혈진화」, 「피의 신비」, 「정제혈정」 등···.
모든 스킬들이 서로에게 가지를 뻗으며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각자의 단점을 보완하며 한층 더 성장했다.
그쯤 되니 거기에 육체의 변화가 따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뿌드득— 뚜둑! 우드득!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이 지나고.
끝내 다른 곳에서 진행되던 싸움들도 슬슬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새로운 흡혈인자를 수집합니다. 특수스킬「혼혈진화」의 영향으로 개체의 존재가 한층 뚜렷해집니다.》
《개체가 보유한 업(業)이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 몇 줄이 나타났다.
아니, 알림창은 단순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처음 떠오른 문구 아래쪽에서 몇 줄이 더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개체의 모든 능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혈통의 갈망」이 「원류회귀」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그에 이어.
하인즈의 내면에 깃든 뭔가가 터질 듯이 팽창하는 것과 동시에—.
《개체가 각성하며 종족값이 ‘뱀파이어 (신혈)’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
“끄으으···.”
“거참, 진짜 도망가려 하다니. 결계가 없었으면 하마터면 놓칠 뻔했잖아?”
빼곡히 자리 잡은 나무들의 틈바구니에서 죽어가는 이의 신음소리와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뚜두둑!
이내 뭔가가 으스러지는 살벌한 소리가 울린 직후, 곧 한 손에 뭔가를 쥔 거대한 체구의 야만인이 어슬렁어슬렁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사내,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할리는 손에 들린 이를 포함한 희생자들의 시신을 꼼꼼하게 챙기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덕분에 한스를 위한 재료들을 잔뜩 확보할 수 있었군. 그것도 죄다 최상품으로.’
거기다 이번 기회에 번천회의 전력을 대폭 깎을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설마 자기들이 설치한 결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고 사냥당하는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바로 이런 걸 두고 인과응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어디 보자, 그럼 이젠···.”
할리는 여전히 마수 탈을 머리 깊숙이 눌러 쓴 채 턱을 벅벅 긁었다.
예전이었다면 싸움이 끝나기 무섭게 에너지를 충당한답시고 쉴 새 없이 고기를 목구멍에 처넣었겠지만, 이제는 광기를 대신 소모할 수 있게 된 만큼 당장 느껴지는 허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는 소리.
“···뒤처리나 해야겠군.”
하지만 파괴가 수반된 전면전이 전문인 할리는 그 외의 일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지금 상황에서 유용한 능력을 가진 이는 그가 아닌 다른 쪽이었다.
그가 있는 중심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외곽 지역.
‘흠.’
높게 솟은 나무 위에 늘어지듯 기댄 해리스가 「은하수의 관찰자」로 일대를 다시 쭉 훑어보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네.’
그는 자신의 주위에 현신한 형형색색의 정령들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다 이번엔 아직도 숲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결계를 돌아보았다.
‘역시 저것도 보통이 아니군. 내부에서 이만한 싸움이 있었는데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라···.’
비록 지금은 피로가 누적되어 거의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너덜너덜한 상태라지만, 그만한 여파 속에서 아직도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하물며 저건 발동까지의 시간도 엄청나게 짧았던 특제품 아닌가?
‘···역시 닥터의 작품인가. 그럼 저걸 통해 지금 내부를 관측하고 있는 것도···.’
나른한 표정의 해리스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싸움이 지속되면서 그 여파로 결계가 흔들린 순간,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그것을 통해 안쪽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조만간 나설 생각이기도 했으니 정체가 드러나는 거야 상관없긴 한데,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관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가만, 그런데 지금 결계 상태를 보니 정령 하나 정도는 몰래 빼낼 수 있겠는데.’
초월자를 상정해 준비된 것인 만큼, 결계가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다면 그것조차 힘들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정령은 실체를 가지지 않은 영체이기도 했으니 더 쉽기도 했고.
‘마침 잘 됐군. 거기다 저걸 잘만 이용하면···.’
후우웅—
부드럽게 휘몰아치는 돌개바람.
해리스는 바람의 정령 파스칼을 결계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기운을 운용했다.
도중에 잠깐 결계가 반응하려던 순간이 있었으나, 그는 「무유팔괘비공(改)」의 조화 구결까지 응용해서 결국 모든 정령을 은밀하게 밖으로 빼내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자— 부탁해, 파스칼. 도시를 샅샅이 뒤져서 수상한 장소를 찾아. 그중에 분명 이 결계와 연결된 곳이 있을 거야.’
자신들이 일부러 유럽까지 찾아온 것은 전적으로 하인즈의 성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방금 막 완전히 달성된 상황.
그런데 때마침 닥터라는 존재가 표적 안으로 들어왔으니···.
‘최상급 정령인 파스칼이라면 도시 하나를 훑는 것 정돈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
이윽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하인즈가 원래 가려고 했던 곳,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가 있는 방향으로 휘몰아쳤다.
***
한쪽 벽면에서 계속해서 재생되는 홀로그램 영상.
숲속에서의 싸움이 시작되고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제자리에서 선 채 「진리의 눈」을 사용한 닥터는 정말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그것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물론 그 또한 평범한 이는 아니었던 만큼 겨우 그걸로 눈이 크게 상하진 않았지만, 잔뜩 충혈되어 새빨개진 두 눈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저 덩치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고? 근밀도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기본적인 무게도 상당해 보이는데···. 주변 기운을 움직여서 조절하고 있는 건가? 유동하는 에너지양과 땅이 파인 정도로 보면 1톤은 가볍게 넘겠군. 그럼 내장 구조는 대체···.”
후욱— 후욱—
거기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광경은 그의 기괴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니.
광인처럼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한 사람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분석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위험한 범죄자 그 자체였다.
물론 그는 실제로도 범죄자가 맞았지만.
“···응? 뭐야, 벌써 끝났습니까? 다른 곳도··· 쯧, 어찌 이리 한심할 수가!”
그런 그에게 결국 번천회의 패배로 돌아간 전황은 불만 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그에게 유럽 지부의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실험체 관찰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내가 공작을 잘못 봐도 단단히 잘못 봤군요! 그래도 조금은 쓸모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 응? 저건? 호오···.”
그렇게 영상을 보는 내내 할리의 몸뚱이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가 다른 곳의 상황을 살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막 공작을 포식한 직후에 커다란 변화에 직면해 있던 하인즈였다.
“저건···.”
거대한 규모의 붉고 짙은 혈마력에 휩싸인 팬텀의 모습.
한창 분통을 터트리던 닥터의 눈에서 다시 섬광이 번뜩였다.
흡혈귀가 동족 포식을 한 직후의 상황이라니!
심지어 포식자와 피식자 모두 9레벨의 끄트머리라 평가받던 괴물들이지 않던가?
이건 정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오오··· 오오옷?!”
과연 범상치 않았다.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순도의 어마어마한 혈마력이 한 흡혈귀를 중심으로 꿈틀거리며 거칠게 유동했다.
다만, 정말로 아쉬운 점은···.
“아아아—! 안 돼! 부족합니다! 부족해요오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저걸 직접 볼 수 있었다면!!”
그 에너지가 너무 짙은 나머지 변화가 일어나는 체내를 관측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이 영상 마도구의 효과가 뛰어나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하더라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의 신비를 이런 방식으로 관측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아악! 이런 기회를 이렇게 놓치다니!”
그는 속이 터지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노성을 터트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시선은 줄곧 화면에서 떼지 않은 채였다.
“저렇게 탐스러운 실험체가 둘이나 있는데···! 저걸 손에 넣을 수 없다니? 그 멍청한 공작 놈이 일을 그르치는 바람에 되는 게 없군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러지 같으니! 차라리 피를 몽땅 뽑아버릴 걸 그랬습니다아악—!”
그렇게 한동안 씩씩거리던 그의 사고가 문득 다른 곳으로 뻗쳤다.
앞서 관찰한 둘 모두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과연 어떨까?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곧바로 결계 내부의 또 다른 장소를 확인했고···.
“오? 오오오!”
「진리의 눈」을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듯 동화된 한 존재를 발견하고 재차 감탄사를 토해냈다.
“저건··· 진짜군요! 설마 했는데 진짜였어! 정말 이계의 존재가 지구에!”
진리를 꿰뚫어 보는 그의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건 변신 능력 따위가 개입하지 않은, 그 존재를 이루는 근간부터 오롯이 이차원에서 비롯된 존재라고.
상대의 수준이 높아 자세한 건 파악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말로만 듣던 요정족이라니! 제가 있던 세상에는 없어서 얼마나 아쉬웠는데, 이렇게 나타날 줄이야! 이 무슨 하늘의 선물이란 말입니까!”
감격에 겨운 탄성을 토하는 닥터.
하지만 한껏 격앙되었던 그는 곧 저것들을 지금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소중한 선물을 빼앗긴 아이처럼 다시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정말 가지고 싶은 보물이 세 개나 한꺼번에 나타났는데 그걸 가질 수 없다니, 그에겐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었다.
오르락내리락 감정이 널뛰기하다가 결국 원통함과 억울함에 사무친 그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끄으으으!”
그의 입가에서 핏줄기 하나가 흘러내리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는 그의 두 눈에서 집착과 소유욕이 거세게 일렁였다.
그렇게 닥터가 한창 화면에 정신이 팔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그 화면 속의 한 존재, 해리스의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살짝 올라갔다.
‘찾았다.’
사실 목적지를 찾는 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번천회 유럽 지부의 본거지인 부쿠레슈티에는 결계가 쳐진 곳을 비롯해 수상쩍은 장소가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해리스는 파스칼 하나에게만 여력을 집중한 끝에 마침내 이곳의 결계와 희미하게 연결된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지금도 이곳을 보고 있는 건지 실시간으로 신호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아마 그도 이리 빠르게 찾진 못했으리라.
‘자, 그럼···.’
이제부턴 속도가 생명이었으니.
막 각성한 신혈의 뱀파이어.
지구의 유일무이한 10레벨 흡혈귀가 나설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