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07)
이제는 아우테리카 최고의 금지(禁地)가 된 북부 산맥 심처, 마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죽음의 요새인 불사성.
그곳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던 한 여성이 문득 저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냈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일이야.”
그녀는 본의 아니게 재차 불사의 군대 고위 간부가 되어버린 인재, 마계의 악마족 서큐버스 시아나였다.
제자리에서 멈춘 그녀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곤 또다시 깊은숨을 내쉬었다.
지금 불사성은 한창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들의 지배자인 불사왕이 직접 군단의 최정예 전투원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이 원인이었는데···.
그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관리의 공백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고위 간부들에게 과중한 업무로 돌아온 것이다.
‘아아— 올리비아는 또 무슨 임무를 받은 건지 얼굴 보기도 힘들고. 다른 녀석들이 자리를 비우니 뒤처리할 것들도 계속해서 쏟아지고!’
지금 고위 간부들 중에서 불사성에 남아있는 이는 그녀 자신과 밴시 퀸 올리비아, 그리고 하위 언데드들을 통제하는 아크리치 드웰 맥케인 정도가 전부였다.
평소와 비교하면 빈집이나 다름없어진 셈.
지금 상황에서 용사 파티라도 쳐들어온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확률이 높았으나, 시아나는 그것에 대해선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버림패로 쓸 만한 녀석들은 충분히 많으니까. 진짜 그런 상황이 오면 대충 중요한 것만 챙기고 튀어버리면 되겠지.’
어차피 불사성은 그저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한 구조물도 아니었다.
그 주체인 불사왕만 무사하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다시 쉽게 만들 수 있을 테니.
그래도 괜히 관리를 소홀히 했다간 나중에 돌아온 왕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었기에 일단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는 확실하게 끝내둘 필요가 있었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지.’
이번엔 한숨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그대로 삼키는 데 성공한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물론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상사를 모시게 된 건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최근 불사의 군대의 일에 집중하면서 개인적인 목표에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쪽 힘을 빌리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악마족 서큐버스인 그녀가 역천의 서약이라는 비밀 조직에 들어갔던 것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물론 그땐 혁명가가 먼저 접근한 것이었으나 그녀도 바라는 게 있었으니 그들에게 합류했던 것 아니겠는가?
당연히 정보를 담당하는 올리비아에게도 일단 도움을 구해놓긴 했는데, 매일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차마 뭐라고 재촉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휴식 시간도 거의 없이 오직 업무에만 매진하는 그 모습에 어떻게 더 뭐라 할 수 있을까.
“아—! 짜증 나! 일단 맡은 것들부터 빨리 끝내고 보자. 얼른 마무리 짓고 스트레스나 풀러 가야지.”
결국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를 지른 그녀가 다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스트레스를 풀어줄 장난감인 전 황태자 사이먼이 있었기에 참을 수 있던 거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인내심이 닳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럴 바에야 그냥 나도 같이 따라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시원하게 날뛰기라도 하게.’
아무리 전투 쪽은 전문과 거리가 멀다지만 시아나의 무력도 그리 처지는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어지간한 간부들보단 훨씬 도움이 될 거라 자부할 정도는 되었으니.
물론 불사왕 한스가 그런 그녀를 놓고 간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온 대륙 북동부의 북부 산맥 내부.
그 한편에서는 그야말로 언데드들의 삶과 죽음을 건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
콰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발생한 거센 폭풍이 주변 초목의 뿌리를 뽑을 듯 휘몰아쳤다.
상극의 두 힘이 연신 충돌하며 천둥벼락 같은 섬광과 뇌성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주변 대지는 이미 어떻게 손 쓸 수도 없이 황폐해진 지 오래였다.
장소가 깊은 산지였기에 망정이지,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면 이미 대도시 하나는 말아먹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한스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코앞의 대적, 번천회주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비록 진짜 눈은 없었지만.
“어쩐지 자신만만하더라니. 확실히 일본에서 봤을 때보다 늘긴 했구나.”
[크흐흣, 그러는 네놈은 그때만도 못한데? 좀 더 힘 써 보라고.]“···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사실 번천회주와 한스 둘 모두 일반적인 무투 타입은 아니었기에 그들 사이의 싸움은 묘하게 정적이면서도 더없이 화려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시시각각 주변을 잠식하는 기운의 영역과 서로의 공간을 놓고 다투는 땅따먹기와도 같은 형세.
쿠르릉—
번쩍!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는 오만한 천사의 노을빛 에너지가 검은 어둠을 살라 먹고, 빠르게 공간을 넘나드는 사악한 마왕의 새카만 심연이 그 불그스름한 빛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마치 창세 신화 속의 빛과 어둠이 혼재하는 혼돈과도 같았으며, 힘을 갈구하는 이들조차 막연한 감상만을 느낄 정도로 아득한 위치에 있는 공방이었다.
‘···역시 밀리는군. 간부들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버티기도 힘들었겠어.’
그리고 그 천재지변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한스의 지원을 위해 특별히 엄선해 온 최정예 언데드들은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갈려 나가고 있었다.
[크아아악!] [산개! 휩쓸리는 순간 끝이다! 집중해라!] [술식 구축, 좌표 분석, 마력 증폭 완료. 발동.]공간을 찢어발기는 폭풍이 휘몰아치고 치명적인 신성력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림에도 불구하고, 왕의 명령에 따라 아주 잠깐의 빈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몸뚱이를 내던지는 비장한 모습들.
과거 번천회주와 일본에서 한 번 부딪쳤을 때는 상대가 쳐놓은 함정에 빠진 채, 별개의 차원과도 같은 곳에 갇혀 사방에서 덮쳐오는 공간 붕괴의 힘과 맞서야만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이다.’
물론 거기엔 사전 준비 상태와 장소의 차이 등의 많은 원인이 있었지만, 지금 그를 지원하는 부하들의 존재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언데드들은 존재 자체가 극단적이었던지라 태생적인 약점이 명확했으나, 그와 반대로 장점 또한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사자(死者)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며, 특별한 영양 공급 없이도 지치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물론—.
두근—
일대에 퍼져 나간 죽음이 맥동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언데드 파편들과 공명했다.
스르륵—
스스—!
그러자 이미 죽음이 가득 담겨있던 잔해들이 제각각 모여들며 다시 원래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소생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산산조각 났던 언데드들이, 소실된 부위는 미리 준비된 매개체로 대체하며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죽음을 지배하는 불사왕이기에, 그리고 죽음을 거부하는 언데드 권속들이기에 할 수 있는 역천의 비술이었다.
‘이것도 신체 일부가 어느 정도 남아있어야 쓸 수 있는 방법이지만.’
그 때문에 전투 내내 꾸준히 부하들을 되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소멸되는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최대한 심연의 죽음을 이용해 완전 소실만은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후, 바퀴벌레처럼 질기기도 하구나.”
문제는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후방의 하늘을 찢고 튀어나온 빛의 기둥이 한순간에 리치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앙—!
제법 공들인 공격인지 어마어마한 면적을 가진 채 떨어진 빛의 기둥.
거기에 반응하지 못하고 휩쓸린 언데드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뻔했다.
그 안에 고위 간부 중 하나인 아크리치 켈리파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아쉬움은 잠깐이었다.
‘어차피 희생은 각오했다.’
지금은 목적을 이루는 게 우선.
한스는 상대가 다른 곳에 정신을 쏟는 틈에 재빨리 기운을 움직여 일순 그 움직임을 봉쇄했으며.
[쿠오오오——!] [캬아아아——!]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보복 같은 검은 광선 두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쿠구구궁—!
본 드래곤 엔트라시오와 헤라토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데스 브레스.
어마어마한 죽음의 기운이 밀집된 그 파괴의 정수가 한데 어우러지며 한스가 묶어놓은 번천회주를 휩쓸고 지면을 강타했다.
“···쯧, 더럽게.”
그러나 그 막대한 에너지를 품은 대단위 공격조차 상대에게 그리 큰 피해를 주진 못했다.
파아앙—
바람이 터져나가는 거센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자욱하던 흙먼지가 한순간에 흩어지고.
놈은 먼지를 털듯 몸을 감쌌던 새하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거기에 묻은 새카만 죽음의 찌꺼기를 몰아냈다.
이 정도야 자신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과연, 이 정도론 부족한가.’
아무리 힘에 제약이 있다 한들 상성 우위라는 건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외신의 힘이건 어쨌건 상대도 신성력 사용자이니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할 터.
‘하지만 지금 공격은 파괴력만이 전부가 아니지.’
데스 브레스 속에 농축되어 있던 어마어마한 죽음의 기운.
그것의 여파로 이미 주변 일대는 새카맣고 끈적거리는 에너지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한스에게 보다 유리한 전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군.”
그렇게 재차 시작된 싸움이 한층 더 무르익어 갈 무렵.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몸에 몇 차례의 일격을 주고받은 직후, 멀리 있는 산봉우리 하나를 터트려 산사태를 일으킨 번천회주가 그 기괴한 목소리로 의문을 입에 담았다.
“처음 이곳으로 찾아왔을 때부터 단단히 준비한 모양새던데, 어떻게 내가 올 거라는 걸 알았지? 아니면 마침 이곳에 네 근거지였나?”
확실히 그의 입장에서라면 의아할 만도 했다.
심연의 봉인을 찢고 나온 것 치곤 별다른 기척도 낌새도 없이 조용히 지상으로 침투한 그였다.
아마 그것도 여러 세상을 오가며 깨우친 노하우일 터.
그런데 그게 이 아우테리카에선 지상에 진입하자마자 들통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어찌 의문스럽지 않겠는가.
‘거기다 처음부터 아예 작정하고서 이만한 병력을 이끌고 맞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겠지.’
말하는 걸 봐서는 이런 일이 아예 처음인 것 같았다.
하긴··· 주신의 사랑을 받는 성녀가 그 침입을 감지한 것도 모자라, 진영을 막론한 모든 세력이 본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거라 어찌 예상할 수 있을까.
[푸흐— 글쎄? 마침 사냥 나가려던 중에 우연히 발견해서 말이지. 상당히 운이 좋았지 뭔가? 크흐흣!]물론 그 의문을 풀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한스는 빈정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쯧, 그래. 뭐, 별 상관없겠지. 이제 이 세계의 제약에도 익숙해지는데 슬슬 끝내도록 하자.”
그런 태도에 놈도 기분이 상했는지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이 더욱 상승하기 시작했다.
고오오—
한스야 크게 상관없었으나 그간 상당히 무리한 휘하의 언데드들에게는 적잖게 부담되는 존재감이었다.
이미 병력의 1/3가량은 부활할 수도 없게 완전히 소실되었고, 나머지 대부분도 몇 차례씩의 소생을 거치며 상당한 부하가 가해진 상태였다.
심지어 본 드래곤 헤라토스는 거동도 힘들 정도로 반파되어 급하게 그의 심장으로 역소환되었을 정도였으니.
그들 대부분이 대전쟁에서부터 살아남은 최정예라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 이상의 큰 피해를 본 셈이었다.
더 이상 손실이 발생한다면 ‘불사의 군대’라는 세력의 존속에도 적신호가 켜지는 그 상황에서—.
‘어디 보자. 이 정도면···.’
불사왕 한스가 「심연의 눈」을 통해 가만히 상대를 가늠했다.
놈의 격이 너무 높아 이걸로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으나, 대략적인 컨디션 등을 확인하기에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좋군, 확실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야. 에너지 회복량도 많이 떨어지고. 피로가 상당히 누적된 것 같은데.’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이쪽이 놈을 위해 들이부은 고급 전력이 얼마나 되는데 멀쩡할까.
거기다 그 과정에서 한스가 입은 피해도 이미 과거 하인리히의 성검에 가슴이 꿰뚫렸을 때를 넘어선 상태지 않은가?
물론 이 상태로 계속해서 붙는다면 결국 이쪽이 패하고 말겠지만, 이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보다 성격이 더 급하군. 우리 잠깐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떤가?]“하! 웃기지도 않는군. 이제 와서?”
[큭큭, 뭐 싫다면 굳이 강요하진 않겠다. 하긴, 내가 바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었군.]미묘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나오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을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번천회주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후우웅—
그리고 그때, 갑작스러운 강풍과 함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언데드와 그 잔해들이 검은 연기가 되어 한순간에 한스의 품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오직 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언데드 전용 긴급 회수 마법이었다.
“후, 또 도망칠 셈인가?”
[도망이라··· 글쎄?]“말했지. 이 자리에서 지구에서 할 일을 끝내겠다고. 내가 이번에도 놓칠 것 같으냐?”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이한 기운이 스멀스멀 주변 공간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아직 사방에 깔린 죽음의 기운 때문에 완성되진 못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간 저 안에 갇히는 건 시간문제.
거기다 저번의 ‘소환 해제’를 의식한 듯 그 밀폐도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크크큭— 뭔가 오해한 것 같구나.]다만 한 가지, 정정할 게 있었다.
이건 도망이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개체 집결」
뒤에 기다리는 손님들이 밀렸으니 잠깐 자리를 비켜주려던 것뿐.
바쁜 현대인을 위한 따뜻한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