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1)
서울의 그림자 (1)
“어이, 한잔 더 하지~? 콜?”
“대리 부르신 분!”
“거기 오빠, 너무 잘생겼다~. 여기서 같이 한잔 어때? 응?”
치안이 엉망이 되었다지만 밤의 거리는 여전히 나름의 활기를 띠고 있었다.
술에 취한 이들의 목청 큰 소리와 호객하는 이들, 취객들의 주머니를 터는 놈들까지.
한스의 사역 마법을 이용한 감지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범위와 정밀성이 향상되었다.
범위가 넓어지니 구역 내에서 사건도 자주 생겼고, 자연스레 한스는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초기에는 온갖 잡범들까지 상대했다면 요즘은 우선순위를 설정해 강력범들을 위주로 처벌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바닥에 한스에 대한 소문이 좀 퍼졌는지, 최근에는 범죄자들이 좀 사리는 느낌이란 말이지.’
한스는 치안 유지 활동을 하며 수많은 범죄자와 마찰을 빚었으며, 그중에는 나름의 세력을 갖춘 뒷골목의 조직들도 있었다.
물론 범죄 조직이라고 무작정 쳐부수지는 않고, 현장에서 적발된 현행범들이나 선을 넘었다 싶은 놈들만 먼저 처분했다.
일개 개인이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기껏 치워도 새로운 놈들이 빈자리를 차지할 뿐이었으니까.
과하게 선을 넘지 않은 나머지는 일단 소재만 파악한 뒤 주시하고 있었다.
-심해 게임 랜드
그리고 지금 하인즈가 있는 곳이 바로 그때 파악한 조직 중 하나였다.
외진 골목에 위치한 성인 오락실.
시트지가 덕지덕지 붙어 내부가 보이지 않는 매장 문을 열자 자욱한 담배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하인즈에게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거 젊은 형씨가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소? 한판 하러 오셨나?”
입에 문 담배를 끄고 다가오는 털보 한 명.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으나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쪽의 패거리 중에는 무기를 찾아 슬그머니 손을 움직이는 이도 있었다.
‘음··· 그 마음 이해 가기는 하지만.’
어지간하면 찾아오는 이가 없을 비밀스러운 공간에 갑작스레 방문한 불청객.
심지어 올백으로 넘긴 머리와 검은 양복, 눈 아래를 가리는 검은 마스크라는 수상쩍기 그지없는 복장이다.
경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겠지.
‘선글라스까지 쓸까 하다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아서 포기한 건데···.’
뱀파이어가 되면서 창백해진 피부와 미형으로 변한 이목구비는 본래의 내 모습을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하지만 불법적인 일을 하러 온 마당에 아무 데나 얼굴을 내놓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완전히 꽁꽁 싸매는 것도 하책이지.’
그럴 바에야 변한 외모를 이용하는 것이 정체를 숨기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상이 변한 가장 큰 요소인 날카로운 눈매를 일부러 노출해서, 한성현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
그런 생각까지 하고 맞춘 코디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한밤중에 선글라스 끼고 돌아다니는 것이 더 시선을 끌 것 같기도 했고.
“물건을 좀 팔고 싶은데.”
“물건? 여긴 오락실인데 게임기라도 팔려고? 우린 잡상인은 안 받는데.”
나는 팔찌를 낀 손을 품에 넣고 금붙이 하나를 꺼내 털보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잠시 응시하고는 이쪽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양반인데···. 누구 소개로 오셨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그럼. 이 바닥 장사는 모름지기 신뢰가 가장 중요한 법. 누군지도 모르고 거래할 수는 없지”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이곳은 장물이나 온갖 불법 밀매를 중계하는 조직이었다.
한스가 직접 손쓰기에는 애매해서 남겨둔 조직.
나는 다시 품에 손을 넣어 금속 배지 하나를 꺼내 놈에게 던졌다.
가볍게 물건을 받아 든 그는 그것을 한참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웬 가면 쓴 미친놈한테 몰살당했다고 들었는데.”
그 배지는 한스에게 몰살당한 조직의 간부들에게 주어지는 물건이었다.
인신매매와 장기밀매를 주력으로 삼던 놈들.
당연하게도 모조리 잡아다 언데드로 만들어 주었다.
“대다수가 죽고 와해되기는 했지. 나는 운 좋게 피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남은 물건들을 좀 처분하고 싶은데.”
물론 흑마법으로 뇌까지 뒤져가며 수뇌부와 실행범 등 죄질이 나쁜 놈들을 찾아 박멸했으니, 정말 운 좋게 벗어난 말단이 아니고서야 남은 놈들은 없을 터.
그는 내 말에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배지를 돌려주었다.
“뭐, 그런 일이라면 잘 찾아오셨소. 박 사장이 그렇게 간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한결 가벼워진 어투로 말을 잇는 털보.
“어쨌든 예까지 찾아오느라 고생했수다. 대란동에서부터 오기엔 좀 멀었을 텐데.”
“둘.”
“응? 뭐가 말이오?”
나는 의뭉을 떠는 털보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선을 마주치길 잠시.
“흠흠···, 이 정도면 되겠지. 따라오시오.”
헛기침을 한 털보는 그제야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하나둘 시선을 돌리더니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저 인간, 겉보기와는 다르게 능청스럽단 말이야.’
조금 전에 있었던 대화는 일종의 암구호 확인 작업이었다.
조직의 보스는 박 씨가 아니라 조 씨였고, 근거지 또한 대란동이 아니라 가래동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아는 척 나서서 정정하려 들어선 안 된다.
사실 이 정도 정보야 어떻게든 알 방법이 많고, 애초에 그런 이들을 걸러내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숨겨진 문제에 대한 답을 하는 것.
쉽게 말하면 ‘다음 대화 중 틀린 것의 수는?’이었다.
‘간부들의 뇌를 뒤져 기억을 읽어둬서 망정이지. 사실 그걸 알고 이곳으로 온 거지만.’
거래하는 단체마다 미리 이야기된 문답이 다르고, 그것도 주기적으로 변경된다.
그것들을 전부 기억해서 상대에 맞게 시험하는 것을 보면, 저 털보도 보기보다 인텔리한 인재이리라.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오. 그럼 나갈 때 다시 보지.”
복잡한 복도를 지나 한 방문 앞에 도착한 털보는 그리 말하며 사라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쪽의 벽에는 상체만 한 구멍이 뚫려 은행 창구처럼 테이블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 무엇을 거래하길 원하지?”
벽 건너편에 앉은 가면 쓴 남성이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이어서 좋군.”
인사도 없이 본론이라니.
나는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손에 들고 있던 금붙이를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도 별말 없이 물건을 받아 자신의 옆쪽으로 내밀었다.
벽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기척으로 건너편 방 안에 제법 여럿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아마 감정사한테 물건을 넘긴 것이겠지.
스윽—
잠시 후, 그는 옆쪽에서 건넨 종이 한 장을 받고 흘끔 보고는 이쪽으로 내밀었다.
간단하게 숫자만 적혀있는 종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과하게 후려치는 거 아닌가?”
“원래 이런 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이 다 그런 거지. 알고 온 거 아니었나?”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도 현금 자체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굳이 이런 방법을 취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범죄 조직들을 깡그리 털어먹었으니까.’
놈들의 금고에 쌓여있던 금괴와 각종 부동산 서류를 비롯한 현금 무더기.
한스는 그것들을 알뜰살뜰하게 자신의 아공간에 챙겨 넣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런 귀찮은 과정을 감수하는 이유는···.
“좋아, 대신 현금 말고 다른 걸로 받을 수 있나?”
“단가만 맞으면 뭐든 가능하지. 뭘 원하지?”
“로또 1등.”
현금이 아무리 많아 봐야 쓸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현금 결제에도 정도가 있지, 요즘 시대에 모든 경제 활동을 그렇게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한성현으로서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자금’이었다.
그리고 로또 1등 당첨자라는 기록은, 이후 현금을 쓰고 다닐 때도 어느 정도 연막이 되어 줄 것이다.
“···그건 수수료가 꽤 많이 붙을 텐데. 상관없나?”
“물론. 얼마까지 가능하지?”
“흐음.”
건너편 방에서 타닥타닥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저쪽 창구 구멍 옆쪽에는 모니터라도 달려있는지, 그는 시선을 살짝 돌려 뭔가를 읽어 내려갔다.
“당장 구해줄 수 있는 것 중 최고액은 61억이군. 수령 기간은 4개월 남았고.”
“그다음은?
“44억. 10개월.”
이 자식들, 생각보다 유능했다.
“그런데 그만한 물건들은 가지고 있나? 이 정도 금붙이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하긴 지금의 나는 빈손이니 미심쩍어할 만했다.
나는 아공간 마도구를 사용해 그 자리에서 금괴들을 꺼내어 테이블에 차곡차곡 쌓았다.
“···제법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군.”
순간 남자의 기색이 일변했다.
가면 너머로도 알아볼 수 있는 탐욕 어린 눈빛.
애당초 마도구 자체가 귀한데 공간을 다루는 물건은 말해 무엇하랴.
아무리 돈이 많은 조직이라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니, 욕심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나는 그를 마주 보았다.
하인즈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며, 주변으로 혈향이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
가면을 쓴 남자는 물론, 그와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까지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적당한 금액이면 모를까 거래 규모가 규모인 데다가, 그 상대는 자칭 몰락한 조직의 잔당.
호구가 무방비하게 아가리 속으로 기어들어 왔는데 그걸 홀랑 삼키지 않으면 범죄 조직이 아니다.
‘제대로 거래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다.’
이들은 내가 힘을 보이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잡아먹으려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력이든 무엇이든 간에 수를 썼겠지.
그래서 이쪽의 힘을 어느 정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쿨하게 거래할 거 하고 좋게 끝내지. 앞으로도 자주 볼 텐데.”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적당히 압박했다는 생각이 들자 힘을 풀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크흠, 그쪽이었나? 내가 실수했군.”
다행히 내 경고를 알아들었는지, 그는 헛기침하며 앞쪽에 쌓인 금괴를 가져다 자신의 옆으로 내밀었다.
옆에 자리한 감정사는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잠시 버벅거리는 기색이었으나, 곧 금괴를 감정하고 금액을 제시했다.
‘역시 무력이야말로 최고의 대화 수단이라니까?’
이전보다 확실히 좋아진 감정 금액.
여러모로 신경 써서 수수료에 혜택을 준 것이리라.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우린 액면가로만 거래한다. 세금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
환전 수수료에다 로또로 받는데도 추가 수수료가 나가고, 당첨금을 수령할 때 내는 세금까지.
정상적으로 금을 판매했을 때 얻을 수익의 반의반 토막도 되지 않았다.
‘이 정도 양의 금괴, 그것도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물건들이니 어쩔 수 없지만. 배가 아프네···.’
“총 감정가가 78억이 좀 넘는군. 로또 61억짜리로 하면 수수료 떼고 남은 금액이···, 나머진 현금으로 가져갈 텐가?”
“흐음, 잠깐만.”
하인즈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동안 집에 있는 본체가 얼른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했다.
‘역대 로또 당첨금, 그중에 8개월 전 61억이면···. 겨우 3명? 최근엔 그 비슷한 액수도 없었어. 이거 안 되겠는데?’
합법적으로 쓸 돈이야 마련할 수 있겠지만, 작정하고 찾으려는 놈들에게 추적당할 여지가 생긴다.
놈들의 정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괜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61억짜리 말고. 정산 금액을 전부 로또로 받으려면 얼마까지 가능하지?”
“전부? 흠, 그럼 수수료 떼고 65억 정도가 되겠군.”
“그럼 반··· 아니, 적당히 셋으로 나누지. 30억, 20억, 15억으로. 가능한가?”
“비슷하게라면 가능하기야 한데···.”
가면남은 상당히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쪽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상당히 조심성이 많군? 사실 이쪽에서야 자금 세탁할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는지라. 그렇게까지 강박적으로 정체를 숨기려는 이는 별로 없는데 말이지.”
최근 로또 당첨금의 평균액이 20억 정도.
또 매주 십여 명의 당첨자가 생기니 추적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도 중계하는 입장인지라, 정확하게 맞춰줄 수는 없어. 금액 내에서 대충 비슷하게 나눠주지.”
“상관없다. 그런데 준비가 상당히 잘 되어있군. 이용하는 이들이 많은가보지?”
“그렇게 많진 않아. 아무래도 세금으로 나가는 게 크니까. 자금 세탁도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들이 많고.”
그는 그래도 제법 찾는 사람이 있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나도 생각했듯 양지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하기엔 이만한 게 없었다.
세금까지 내고 수령한 이상 자금을 추적당할 근거도 없고, 운이 좋다고 우기면 따질 사람도 없었다.
“그런가. 그럼 물건이 준비되는 데 얼마나 걸리지?”
“흠··· 여기까지 가져오는 것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군.”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끼리 업무협약이라도 맺은 것 같았다.
그 정도 금액을 맞추는 데 겨우 한 시간이라니.
‘나도 이런 쪽으로 부려 먹을 수족이 있으면 편할 것 같은데. 사소한 문제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면서, 심부름도 시킬 수 있는···.’
···그래.
아예 뒷골목 조직 하나를 먹어 치워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고, 여러모로 쓸모도 많아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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