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12)
어두운 동굴 속.
[대충 일단락된 것 같군.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겠어.]그 안쪽에서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한 쌍의 금빛 눈동자에서 기묘한 정광이 어렸다.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진 날카로운 파충류의 동공.
이 세상에서 가장 강대하며 거대한 생명체인 드래곤의 눈동자였다.
본체로 현신한 채 대륙 전체에 흐르는 기운의 흐름을 관측하던 골드 드래곤 슈리하트겐이 다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호루스의 부탁도 있어서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든 개입하려 했는데, 다행히 그가 직접 나설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지만.]아무래도 먼 거리에서 살피다 보니 정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외신의 사도의 기운은 확실히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나, 그 직후 불사왕의 기운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건가? 그를 제물로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그게 사실이라면 결국 외신의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사왕에게 이용만 당한 셈이었다.
한 차례의 위협은 물러갔으나 정작 대륙의 가장 큰 우환이라 할 수 있는 불사왕이 여전히 건재했으니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교단의 피해가 그리 크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군.]물론 아무리 만반의 대비를 했다 해도 싸움의 규모가 워낙 컸던 데다 상대가 가진 힘이 힘이었던 만큼 아예 피해가 없을 순 없었다.
신성 결계를 구성하던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자신의 수명을 불사르며 전면에 나섰던 팔라딘들도 앞으로 상당 기간 요양을 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상대가 가지고 있었던 압도적인 힘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정도의 피해는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맞이했다면 정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뻔하지 않았나!
‘이 정도면··· 최악의 상황은 충분히 피할 수 있겠어. 지금의 저들이라면 불사왕을 상대로도 충분히···.’
특히 주신교단의 용사를 비롯한 영웅들의 활약이 감명 깊었다.
대륙의 저력이 언제 이 정도까지 성장했는지 경탄했을 정도로.
이번 대의 불사왕의 침공엔 드래곤들이 도움이 되지 못해 심히 걱정스러웠는데, 전대에 있었던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슈리하트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그럼··· 크흡! 쿨럭—! 픕—!]그의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역류한 핏물이 황금빛의 거대한 주둥이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후드득— 촤르륵—
검붉은색으로 변색된 죽은피가 바닥에 낭자하며 비릿한 피 냄새가 동굴 속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군. 슬슬 끝을 준비할 때인가.]그에 잠시 바닥의 피 웅덩이를 바라보던 그는 가볍게 마법을 사용해 그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래도 최후는 후계의 곁에서 보낼 수 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 여차하면 남은 생을 모조리 불사를 각오까지 했었는데, 만약 정말 그렇게 되었다면 호루스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겨줄 수도 없었겠지.
‘부디 그 아이가 일족의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듯 눈매를 찡그리던 노룡(老龍)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 최대한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했으니.
***
성자가 직접 나서서 ‘외신의 사도’가 이 세상에서 추방되었음을 공언한 이후.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던 성지의 혼란도 빠르게 수습되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를 운송해 치유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교단의 일원들.
로셀리아 대신전에 성녀를 비롯한 용사 파티의 일행들이 도착한 것은 딱 그때쯤이었다.
“후우, 역시 늦은 것 같네요. 공간 이동 마법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아서···.”
“무슨 말씀을. 저희가 이렇게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도 다 이세아 님 덕분이지요. 그보다 피곤하셨을 텐데 잠시 쉬고 계세요.”
연이은 초장거리 이동과 전투의 피로에 한숨을 내쉬는 이세아를 뒤로한 리에스타 성녀가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의 부상자 치료에 동참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미 한 차례 응급조치가 끝난 뒤였기에 목숨이 경각에 달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으음, 생각보다 부상자가 많군요.”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입니다, 성녀님. 성자님과 함께 오신 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피해가 더 컸을 겁니다.”
“아, 확실히··· 그렇겠네요. 오죽하면 그 불사왕보다 더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성자님의 선견지명으로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뱀파이어 군주에 대한 건도 그렇지요. 앞서 성자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이번에 그가 저희를 돕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인리히의 혜안이 다시금 칭송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교단에게 미리 준비하도록 지시한 것도 그렇고, 이번 일에서 가장 앞에 나서서 주도한 것이 그였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이곳 성지에 나타난 외신의 사도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해 쫓아낸 것 또한 그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오오! 주신의 은혜가 함께하길!”
“허허허, 두 번째 대축복이라니! 이거 참 경사가 아닙니까!”
“아아— 그 빛의 날개가 펼쳐지던 아름다운 순간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설마 그런 장면을 제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줄이야! 오, 주신이시여!”
수만의 열성 신도 앞에서 펼쳐진 하인리히의 ‘광휘의 날개’가 많은 이들을 감격에 빠뜨렸다.
그 끔찍한 힘을 자랑하던 외신의 사도의 가슴에 성검을 박아 넣는 순간 내려진 주신의 대축복, 그리고 활짝 펼쳐져 찬연하게 빛을 내뿜던 아름다운 날개라니!
그야말로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아닌가?
‘평생의 자랑거리가 생겼군!’
‘이 또한 주신의 인도하심이라.’
‘이런 일은 상세하게 기록해 둬야 해. 일기는 물론이고 가능하면 그림으로도···!’
실제로 교단에 소속되어 예술 활동을 하는 화가들은 이미 그때의 그 장면을 화폭에 담기 위해 칩거에 들어간 상태였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다면 이번 일은 벽화 등으로도 제작되어 교단의 역사와 함께 대대로 전해져 내려갈 터.
그런 전설적인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으니, 교단의 광신도들에게는 그야말로 영광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성자님은 어디 계신가요? 혹시 어디 다치신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닙니다, 성녀님. 성자님께선 급한 환자들을 살피신 후 새로운 축복을 수습하기 위해 예배실에 드셨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필요하신 것 같더군요.”
전투 중에야 급한 대로 대충 힘을 쏟아부었으나, 능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선 제대로 된 한계 파악과 세세한 조율이 필수였다.
하물며 그냥 일반적인 축복도 아니고 격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정도의 대축복 아닌가!
‘좋아, 아주 훌륭해. 그야말로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군.’
로셀리아 대신전의 개인 예배실.
새로 얻은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하인리히가 속으로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축복 : 광휘의 날개」는 굉장히 다양한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다.
고속 비행과 신성력 증폭, 신성 스킬 강화는 기본이고 공격과 방어와 버프까지 모든 분야에서 두루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견이 굉장히 멋있단 말이지! 세상에, 빛의 날개를 단 성기사라니!’
어쩌면 은근히 번천회주의 날개를 부러워하던 그의 은밀한 속내를 눈치채고 이런 능력을 내려주신 게 아닐까?
하인리히는 아름답게 일렁이는 광휘의 날개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렇게 나름의 성과를 얻은 것은 비단 하인리히뿐만이 아니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피한 하인즈 2세는 번천회주의 피를 통해 신성력에 대한 저항력을 얻었고, 날개의 일부를 뜯어먹은 할리도 제법 쓸 만한 유전자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빅 이벤트에서 모두가 이득을 챙긴 것은 아니었는데—.
“해리스 님? 어떻게 여기에··· 분명 에나멜 대륙에 계시지 않았나요?”
“아하하··· 이게 다 세계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이번 일에 한 손 거들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요.”
용사 파티에 파견 나온 하이 엘프 리디아가 의문을 표하자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불려 온 해리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저 무조건 세계수를 찬양하는 것밖에 없었다.
“음, 그렇긴 하죠. 그만큼 이번 일은 큰일이었으니까요. 세계 바깥에서 온 악신의 추종자라니.”
당연히 그런 대답으로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딱히 그가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녀도 대충 수긍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현 하이 엘프 중 초월급에 이른 존재는 그밖에 없었기에 어떤 능력을 보이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기도 했고.
“하하··· 그럼요. 그나저나 이번 일 때문에 주변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는데, 저희가 복구에 조금 도움을 주는 게 어떨까요?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은데.”
“아, 좋은 말씀이군요! 이참에 아예 숲을 조금 더 넓히는 것도 괜찮겠네요. 사실 이곳에 올 때마다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해리스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며 리디아를 이끌고 자리를 옮겼다.
주변 일대가 워낙 난장판이었기에 제대로 손을 보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성지에 모인 이들이 이번 일과 관련해 저마다의 이유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빨리빨리 움직여라! 어이, 거기 화로 온도 더 높여! 그 미지근한 불로 뭘 하겠다는 거냐!”
“주··· 주방장님! 고기 더 가져왔습니다!”
“가져왔으면 얼른 썰어! 이건 전쟁이다! 우린 가장 중요한 보급 담당이고! 얼 빼고 있는 놈은 나중에 기합이다!”
““예! 주방장님!””
로셀리아 대신전의 제3 중앙 식당은 다른 이유로 분주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카~ 바로 이거지! 역시 대신전, 좋은 고기를 쓰는구만. 이 맛이 또 은근히 자주 생각나더란 말이지! 파하핫!”
제집 드나들듯 자연스럽게 대신전의 식당으로 향한 할리가 당당하게 고기를 주문하며 자리를 꿰차고 앉은 것이 원인이었다.
전후 처리건 혼란 수습이건 터프한 상남자인 그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거하게 운동하며 땀을 쭉 뺐으니 영양 많고 맛도 좋은 고기를 섭취하는 건 당연한 루틴일 뿐.
이번에 제법 열심히 일하기도 했으니 이 정도 자격은 있다고 자신한 그는 거의 마시듯 고기를 집어삼키며, 이번 번천회주 사건에 대해 대충 결론을 내렸다.
‘결국 쳐들어왔던 놈도 쫓아냈고. 이걸로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고 봐도 되겠지.’
아우테리카에서 사라진 번천회주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이후의 일을 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그 마지막이 워낙 화려했던 만큼 놈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닐 터.
아마 지금쯤 지구에서 괜한 화풀이나 하고 있지 않을까?
그것이 적잖게 통쾌하긴 했으나 이 한 번의 승리로 만족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고작 한 방 먹인 거다. 아직 시작일 뿐이야.’
이번 전초전은 홈그라운드라는 이점과 정보의 우위, 그리고 제약이 걸린 상대의 약점을 후벼 판 덕분에 가능했던 기습이었다.
진짜 승부처라고 할 수 있는 지구에서는 쓸 수 없는 방법.
‘아니, 지구는 오히려 놈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으니 더 불리하지.’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놈을 거꾸러트리기 위해서는 더욱더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어떤 불합리한 조건도, 불리한 여건도, 발목을 잡는 페널티도 무시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
‘···괜찮아. 나는 잘하고 있어.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만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들은 성장하고 반대로 적의 힘을 깎아내는 데 성공한 이번 일은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장담할 순 없었으나, 그게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치솟았다.
‘그래,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상념에 잠긴 할리가 테이블 위의 고기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흡족함에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주방에서 막 조리된 고기를 서빙 카트에 한가득 실은 종업원이 다가왔다.
“···저기, 할리 님?”
그리곤 어딘지 곤혹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엉?”
“그, 아무리 맛있으셔도 접시는 드시면 안 되는데···.”
그 난처함이 가득 담긴 말에 할리가 멍하니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고기는 물론 접시 하나 없는 깨끗한 테이블을.
“아.”
어쩐지 중간부터 고기가 좀 딱딱하더라니.
아무래도 생각에 너무 심취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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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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