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14)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무작위 기타 스킬 습득』이야말로 진짜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번 이용하는 데에 무려 50만이나 되는 포인트가 소모되긴 하지만, 그렇게 뽑은 스킬의 효과가 본체를 비롯한 모든 아바타들에게 동시에 적용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효율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 새로운 스킬 하나가 5만도 안 되는데 이걸 어떻게 참아? 이건 오히려 안 하는 게 손해지!’
실제로 그것을 통해 얻은 「제노글로시」도 상당히 유용하게 이용해 먹지 않았던가?
물론 직전에 뽑았던 「튼튼함」은 습득과 동시에 할리의 「궁극의 진화 생명체」와 하인즈 2세의 「피의 종주」, 그리고 호루스의 「골드 드래곤」 같은 상위 스킬에 흡수되어 사라지긴 했으나···.
그것도 해당 능력을 더욱 성장시키는 양분이 되었으니 아예 무의미한 손실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 상위 스킬들과의 격차가 너무나도 컸던지라 딱히 이렇다 할 만한 변화가 없었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차오르고 있는 카르마 포인트의 양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말하자면···.’
일종의 사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자기암시를 마친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다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작위의 가능성을 강제로 개화합니다. 스킬「수중 호흡」을 획득합니다.》
「수중 호흡」.
물이라는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익사 당하지 않게 해 주는 생존 계열 스킬.
머릿속에 각인되는 지식을 통해 좀 더 정확한 메커니즘을 분석하자면, 피부 호흡을 이용해 물에서 강제로 산소를 추출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아···.”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지그시 감고는 천장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분명 효용성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익사 당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물론,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수(水) 속성 친화력은 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테니.
그러나 그게 당첨이라 할 정도로 유용한 능력이냐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언데드인 한스는 애초에 논외고.’
아니, 그 외의 초월급 아바타들도 이미 그런 제약에 얽매일 수준은 한참 지났다.
덤으로 마나를 에너지원으로 삼고 살아가는 드래곤 호루스도 마찬가지.
‘그럼 본체인 나하고 상인 휴버트, 드워프 하워드, 황궁의 헤스페론, 마지막으로 강환계의 휴고 다섯만 남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스킬에 대한 기대치가 5만 이하에서 10만으로 뻥튀기된 셈이었다.
거기다 그 다른 아바타들도 딱히 「수중 호흡」이 필요한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초거대 상단의 주인에다가 공방에 틀어박혀 작업 삼매경에 빠진 장인, 안전하기론 대륙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황궁의 손님이 익사라···. 뭐, 앞으로 욕조에서 미끄러져서 빠져 죽을 걱정은 없겠군.’
그나마 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강환계에 홀로 남아있는 휴고가 아닐까?
강과 호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수적들을 상대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이었다.
‘거기도 이미 해리스가 한바탕 엎어놓긴 했지만.’
그렇게 태풍이 지나간 후 수적들이 지배하고 있던 영역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이젠 흐릿하게까지 느껴지는 동정십팔채와 장강수로채의 우두머리들을 떠올리다가 이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기억 한구석에 묻힌 수적 두목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지막. 정말로 딱 한 번만 더.’
지난 전적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에서 마이너스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젠 정말 물러설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 어차피 포인트는 아직도 5백만 이상이나 남았으니까. ···한두 번 쓰는 것 정도야 금방 다시 복구될 거야.’
거기다 아직 번천회주를 쫓아낸 것에 대한 정산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사건의 여파에 대한 영향력도 따로 계산돼서 추가 카르마가 꾸준히 적립될 터.
그러니까 지금은—.
‘쓸 만한 거 딱 하나만 얻고 나서 깨끗하게 손 떼자.’
자신을 위해 이 정도 ‘투자’는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기묘한 열기가 어린 눈으로 『무작위 기타 스킬 습득』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이미 눈에 뵈는 게 없었다.
***
그로부터 얼마 후.
“으음. 하마터면 자제심을 잃을 뻔했군.”
천만다행히도 한성현은 포인트를 죄다 탕진하기 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그 자신은 이 정도면 상당히 이르게 빠져나온 편이라고 자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수중 호흡」을 얻었던 첫 번째를 포함하면 결국 총 뽑기 횟수가 고작 네 번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암,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지.’
당연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진짜 마지막’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기억은 이미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그건 그저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직하게 중얼거린 혼잣말과 함께 손을 살짝 앞으로 뻗자, 그의 손끝이 CG 처리라도 된 것처럼 허공에서 사라졌다.
스으으—
어느새 손목까지 사라진 곳을 중심으로 허공에서 일렁이는 아지랑이.
그리고 팔을 다시 뒤로 뺐을 때, 사라졌던 그의 신체 부위는 다시 멀쩡하게 되돌아 와 있었다.
그 손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볼펜 하나를 쥔 채.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아공간의 간섭에 의한 이상 현상이었다.
‘거참, 설마 진짜로 인벤토리까지 생기게 될 줄이야.’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볼펜을 테이블 위에 휙 내던진 그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2차 시도에서 얻은 이 스킬의 정식 명칭은 「아공간 수납」, 편의상 부르는 애칭으론 ‘인벤토리’였다.
말 그대로 아공간을 다루는 능력을 스킬로써 구현해 낼 수 있게 된 것.
그러나 이 매우 유용하고 대단해 보이는 능력을 얻었음에도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인벤토리가 없어도 별다른 불편을 못 느끼기도 했고.’
아바타끼리 서로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아바타 클라우드」와 풍족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마도구의 조합, 그것은 이미 아공간을 훌륭하게 대체하고 있었다.
이번에 얻은 이 대단한 스킬조차 그저 있으면 좋은 정도로 받아들이게 할 정도로.
‘그래도 덕분에 제법 편해질 것 같은데. 이걸로 아바타들 각자가 직접적으로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앞으로 더 여유가 생기겠지.’
결국 「아공간 수납」에 대해 내린 총평은 약간 플러스.
그러나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하기에는 그의 욕심이 너무 컸다.
‘거기서 포기하지 않길 잘했어. 그다음에 뽑은 게 진짜였으니까.’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한성현이 불과 조금 전에 있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이전 결과에 대한 미묘한 심정에 재차 뽑기를 시도했다가, ‘진짜 찐찐막’으로 나왔던 무작위 뽑기의 결과를.
《무작위의 가능성을 강제로 개화합니다. 스킬「한계돌파」을 획득합니다.》
「수중 호흡」과 「아공간 수납」에 이은 세 번째 스킬, 「한계돌파」.
그것은 사용자를 가리지 않아 모든 아바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기 강화계 버프이자 각성기의 일종이었다.
그 경지가 높든 낮든— 스스로의 한계를 일시적으로나마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비장의 수단.
비록 그 후유증이 극심해 함부로 남용할 순 없다 하나, 꼭 필요한 상황에선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 줄 구명줄과 같은 능력이었다.
“좋군, 좋아. 아주 훌륭해.”
그렇게 모든 게 마무리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손익의 저울이 흑자로 돌아가 충분히 만족한 그가 ‘진짜 찐찐찐막’에까지 손을 뻗은 건··· 그리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상승세인데? 왠지 오늘 느낌이 좋아? 이번에야말로 진짜 막판?’
그저 끓어오르는 욕심을 주체할 수 없었을 뿐.
그리고 한탕주의 도박사에 빙의해 호기롭게 상승장에 올라탄 그는···.
“크흠, 역시 여기까지 하는 걸로.”
마치 균형을 맞추려는 듯 다음 스킬로 다시 애매한 스킬을 받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이 그가 네 번째 스킬을 뽑은 직후 ‘무작위 뽑기’의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리고 새로 얻은 다수의 능력들을 어느 정도 수습한 그는 재차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 보유 카르마 수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보유 카르마 – 3,641,965』
앞자리가 확 주저앉아 버린 카르마 수치.
여전히 어지간한 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방대한 양이기는 하지만, 500만을 훌쩍 넘었던 조금 전에 비하면 부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다행히 완전히 탕진해 버린 것보다는 나았으나, 되새겨 보니 역시 너무 심취해서 생각 이상으로 카르마를 태워버린 것 같았다.
한 번 이용하는 데 50만이더라도 그게 네 번이나 반복되면 무려 200만인 것인데!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 남은 카르마는 360만가량···. 그래도 이 정도 남겼으면 그리 나쁘지 않아.’
그가 이쪽 일에 집중하는 잠깐 사이에도 이세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보유 카르마가 불어났다.
이 정도 속도라면 다시 5백만을 넘어 6백만에 도달하는 것도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지.
‘하지만.’
만약 그 시간을 단축할 방법이 있다면 그걸 최대한 이용하는 게 지당한 일이었다.
지금쯤 지구 곳곳에 스며들어서 암약하고 있을 번천회와, 강제로 아우테리카에서 쫓겨나 한창 독이 올라 있을 그 수장을 생각하면 더욱더.
“역시 카르마를 더 벌어야 해. 이거 아무리 벌어도 벌어도 부족하군.”
푹 내쉬는 한숨에 한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전통의 텃밭인 아우테리카에선 이미 지금도 한계치에 가깝게 카르마를 뽑아내고 있었다.
한창 ‘외신의 사도 침략 사건’에 관한 뒤처리가 진행 중인지라 여기서 뭘 더 일을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고.
‘일단 어느 정도 숨 고르기가 필요하겠지. 그럼 그동안 다른 곳도 좀 살펴 볼까? 이제 슬슬 씨를 뿌릴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런 생각과 함께 그의 의식이 대부분의 개체가 몰려있는 아우테리카가 아닌, 홀로 동떨어져 있는 어느 한 개체에게로 향했다.
새로운 텃밭을 일구기 위해 외지로 파견 나간 개척자 휴고.
하승훈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그가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환계로.
***
호북성 융중산의 제갈세가.
그들이 터를 잡고 있는 산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세월이 깃든 전각을 비롯한 건물들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알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일대를 지배하는 세력의 본거지라는 상징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권위이기도 했고, 기초 설계 단계에서부터 진법과 술법이 가미되면서 밀집된 기운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한때 갑자기 등장한 신분을 알 수 없는 절세고수가 세가 인근의 진법들을 모조리 파괴한 적도 있었으나, 그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지난 지금은 이미 그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때 무너진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전보다 더한 요새로 탈바꿈한 것이 지금의 제갈세가 본가였다.
“오호, 이거. 잘만 하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
그리고 그 철옹성과도 같은 요새 안쪽에 마련된 한 개인 연무장.
그 중앙에서 검을 쥐고 있던 청년, 휴고가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 또한 아바타인 만큼 당연히 이번에 새로 추가된 스킬들을 실시간으로 공유받고 있었다.
물가에서 싸울 때 도움이 될 것 같은 「수중 호흡」과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아공간 수납」,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 구명절초(救命絶招)가 될 수 있는 「한계돌파」.
그리고 네 번째로 얻은 스킬인···.
‘「흉내내기」라. 이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아우테리카에서라면 모를까, 이곳 강환계에서는 오히려 다른 스킬들보다 효용성이 클 것 같아.’
「흉내내기」는 눈으로 본 상대의 기술을 따라 할 수 있게 해 주는 스킬이었다.
거기까지만 들으면 당연히 사기적인 능력처럼 들리겠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온갖 조건이 달려있어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남의 마법을 흉내 내려면 본인도 마법사여야 하는 건 물론, 그 마법을 이해하고 발동할 수 있는 경지까지 요구된다니.’
스킬이란 하나같이 이능의 영역에 닿아있는 특별한 능력이었으나, 이 「흉내내기」는 사용자가 가진 한계까지 극복하게 해 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신체 구조가 다른 이종족들의 기술은 엄두도 못 내고, 수행이 기반 되지 않고선 다른 신비를 따라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이의 기술만 흉내 낼 수 있다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이곳 강환계는 다양한 종족들과 신비가 어우러진 아우테리카와는 사정이 달랐다.
인외의 종족은 애초에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감감무소식이었고, 이 세상의 신비는 ‘무공’이라는 카테고리가 절대적인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진법이나 술법 등의 분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힌다는 제갈세가조차 무공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고 있었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을 터.
‘즉···.’
그의 무공에 관한 이해가 갖춰졌다는 전제 하에.
‘이 세상의 모든 무공을···’
그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훔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