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15)
‘「흉내내기」와 새로운 스킬들, 무(武)와 무공(武功)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두 눈을 감은 휴고가 깊게 심호흡했다.
그가 홀로 강환계에 머문 지도 어느덧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성장의 비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초회복」의 도움을 받으며 수련을 거듭한 그의 상태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개체명 : 휴고
-공통 특성 : 「마인드 허브」, 「페르소나」, 「초회복」, 「명경지수」, 「괴력」, 「신경과민」, 「혜안」, 「제노글로시」, 「수중 호흡」, 「아공간 수납」, 「한계돌파」, 「흉내내기」
-개체 특성 : 「다재다능」, 「강골」, 「운기조식」, 「기공 무술」, 「기초의학개론」
-특이 사항 : 체내에 쌓은 기(氣)를 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꾸준한 외공의 단련으로 「튼튼함」이 「강골」로 진화했다. 내공 수련 시 「운기조식」의 영향으로 성장이 더욱 가속된다. ‘성장의 비약’의 영향으로 모든 행위에 추가적인 성장 보정이 가해지고 있다.
지금의 그는 달랑 스킬 하나만을 가지고 강환계에 진입했던 초짜가 아니었다.
비약의 효과를 비롯한 온갖 보정의 중첩과 무얼 익히더라도 일정 수준까지 빠르게 숙달되도록 도와주는 「다재다능」의 조화.
그것은 단 몇 개월 만에 그를 한 명의 훌륭한 무림인으로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시너지였다.
‘의학을 병행했던 것이 최고의 한 수가 된 셈이군. 처음엔 무공의 작용 방식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익히기 시작한 거였는데.’
애초부터 무공과 신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니 그리 이상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다 「기초의학개론」이라는 스킬까지 생긴 건 예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였지만.
‘기분 좋은 오판이었지.’
아마 제갈세가가 제공한 의학 수준과 불사왕 한스가 지닌 해부학적 지식, 그리고 할리의 생명체에 대한 이해도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터.
결과적으로 상대가 무공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신체 변화를 더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흉내내기」를 사용할 때 적잖게 이득을 볼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아니, 사실 그 스킬을 사용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그런 게 아니지.’
거기까지 생각하던 휴고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제일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사실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비밀은 따로 있지 않던가?
‘나는 언제 어느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원래 무언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는 하나일 때보다 다수일 때, 그리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훨씬 쉬운 법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초월자가 무려 다섯이나 된다는 사실은···.
또 거기에 「무도의 길」과 「로지아 성투법」 같은 무투계 스킬을 가진 하인리히, 「무유팔괘비공(改)」이라는 절세 신공을 익힌 해리스, 육체에 통달한 건 물론 본능적으로 사냥감을 파악하는 할리 등의 전투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말하자면 대학교수들을 데리고 중고등학교 시험을 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전공과목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말이다.
‘거기다 휴버트의 「분석」도 간접적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휴고는 자신이 무공을 습득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상인 아바타를 떠올리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만 이미 초월에 오른 상태였던 하이 엘프 해리스와 그는 경우가 달랐다.
처음부터 절세 신공을 익힐 수 있었던 해리스와 달리 그는 기초부터 다지기 위해 성능이 썩 좋지 않은 기본공 위주로 수련해야 했으니.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면 이 또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아무리 그가 성장이 빠르다 해도 꼭 필요한 절차까지 전부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당장 수중에 있는 무공서 중엔 그리 성에 차는 게 없기도 하고. ···역시 「흉내내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특정 성향이 강한 것보단 안정성과 수용성을 중시한 내공심법이 주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 좋은 게 없을까?’
제갈세가를 통해 몇몇 무공서를 읽어보기도 했으나 손님의 요청에 선뜻 내줄만한 수준이 그의 마음에 찰 리 없었다.
어쩌면 세가의 비고에는 그를 만족시킬 만한 비급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은 손님의 신분인 그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흐음.”
그리 고민에 빠져 있자니 자연스럽게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그냥 강제로 저질러 버릴까?’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법이었으니.
예를 들어, 마기를 풀풀 흘리는 정체불명의 마교 고수가 다수의 강시를 이끌고 습격해 온다든지.
아니면 극악무도한 혈교의 주구가 몰래 세가로 잠입해 비고를 털어갈 확률도 결코 제로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유혹해 왔지만.
‘쯧, 역시 조금만 더 두고 보자.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결국 그의 판단은 일단 유보하자는 것이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까지 호감을 쌓아둔 세력이 망가져 버리면 오히려 손해니까. 여기에 머무는 나도 불편해질 테고, 정말 일을 벌일 거면 차라리 아예 딴 데를 터는 게 낫겠지.’
어차피 후보는 많았다.
바로 근방에는 무당파도 있었고, 조금만 멀리 나가면 소림사나 화산파, 남궁세가가 있지 않던가?
‘···미리 시나리오를 생각해 둘까.’
그렇게 상념에 빠졌다가 대충 생각을 정리한 휴고가 저도 모르게 검 손잡이를 꾸욱 움켜쥐었다.
꾸득—
그러자 「괴력」과 압도적인 스테이터스로 부풀어 오른 근육에서 강인한 힘이 전해졌다.
할리나 하인리히 같은 진짜 괴물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에서나 외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터.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만족감에 그의 입꼬리가 조금씩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러던 도중,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림자의 위치를 확인한 그가 서둘러 훈련용 검을 수습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신시(申時 ;오후 3~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으니,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얼른 땀을 씻고 준비해야 했다.
‘또 늦으면 뭔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어질러진 연무장을 정리하고 이제는 익숙해진 길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숙소로 향하는 휴고.
준비를 마친 그가 다음으로 향한 행선지도 물론 요 몇 개월간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었다.
***
파아앗—
방을 환하게 밝히던 부드러운 기운이 서서히 잦아들고.
그 한가운데의 의자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소녀가 슬그머니 눈을 뜨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끝나셨나요? 수고하셨어요, 하 공자.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와 함께 흘러나오는 맑은 목소리.
이후 소녀··· 아니, 제갈 세가의 금지옥엽 제갈혜미가 어둠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활기차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아, 먼저 이거 좀 드셔보실래요? 이번에 주방에서 새로 내온 간식인데, 고소하면서도 맛있답니다? 물론 이것보다 저번 게 더 마음에 드시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시···. 앗! 차를 벌써 다 드셨네요. 일단 마실 것부터 다시 따라드릴게요.”
평소처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그 수다에 휴고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이 장소도, 지금 상황도 익숙해졌지만 저 수다는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으니.
그리고 지금은 따로 생각해 봐야 할 것도 있었다.
‘역시 이상해. 저번에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최근엔 치료 직후에도 별반 차도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제갈혜미의 거처에 마련된 응접실이었다.
몇 차례의 치료 끝에 그녀가 스스로 거동할 수 있게 된 후부터 줄곧 치료실 대용으로 사용되었던 공간.
또 초기에 매일같이 진행되던 치료는 그녀의 증상이 호전됨에 따라 차츰 그 간격이 늘어나, 이제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기검진 하는 느낌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그녀가 마음대로 저택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나—.
‘설마 신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요 몇 개월간 제갈혜미의 주치의나 다름없었던 휴고로서는 완전한 완치가 아닌, ‘거의’ 완치된 채로 줄곧 머물러 있는 그녀의 상태에 못내 찝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그는 「기초의학개론」을 습득했을 정도로 의학에도 나름 조예가 있는 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상의 원인에 대해 여태껏 감도 못 잡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고민하던 순간, 「대축복 : 광휘의 날개」를 얻으며 한 단계 성장한 하인리히가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아니, 역시 느낌이 달라. 이건 질병 때문이 아니라···. 이쪽 세계의 신학(神學)과 관련된 문제 같은데? 물론 하인리히가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만.’
강환계 시간으로 22년 전에 있었던 번천회주의 용심(龍心) 탈취 사건.
그녀는 막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던 그 시기에 태어난 이였다.
그것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곧바로 어머니를 여읜.
그 때문에 그녀가 자신은 저주받은 아이라고 얼마나 자책했던가?
‘하지만 이 세가 안에서 하인리히를 부를 수는 없어. 자칫하다간 괜히 오해만 키우게 될 테고.’
제갈세가 측에서 본거지 안의 안전 영역에 갑자기 불쑥 나타난 이를 못 알아챌 리 없었다.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기운이 지금껏 손님이라는 신분으로 함께하던 ‘하승훈’이 제갈혜미를 치유하던 것과 같다는 것도 금방 알아채겠지.
그 후에 그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틀어질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제갈세가 사람들은 진법과 그것으로 구축된 안전한 영역에 대한 강박이 유독 강한 거 같으니까.’
하긴, 이들에겐 현경은커녕 화경의 고수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위세를 떨치면서 다른 세력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것 덕분일 터.
때문에 그들은 무언가를 지키고 방어하는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그대로 영역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났다.
자칫 보안이 뚫려서 구역을 잃었다간 다시는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컸으니.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 휴고가 잠시 갈등에 빠져있던 그때.
그의 밋밋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조잘거리던 제갈혜미가 또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엔 그조차 솔깃할 만한 새로운 정보를.
“아! 공자, 혹시 들으셨나요? 이번에 하남의 소림사에서 초청장이 왔대요.”
“···초청장 말입니까? 이렇게 어수선한 때에?”
“네에, 그동안 몇 년 주기로 줄곧 있던 일이에요. 저희뿐만 아니라 무림맹 주요 구성원이었던 이들도 전부 모여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지자는, 뭐 그런 거죠.”
“무림맹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라고 들었습니다만···.”
“서로 간의 교류는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더.”
하긴, 아무리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 지 오래라도 그나마 안면이 있던 이들끼리 뭉쳐 최소한의 울타리를 만드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주변에 적들이 득시글거리는 마당이었으니까.
“사실 저희 세가랑 무당파처럼 인근 세력끼리 하던 교류의 규모를 조금 키운 정도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딱히 구속력 같은 것도 없고, 말 그대로 가끔 얼굴이나 좀 보자···는 그런 느낌?”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던 제갈혜미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평생을 이 세가 안에서만 살아왔고, 아는 지인도 세가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전부인 그녀에게 어울리는 감성은 아니었다.
‘대륙 전체가 혼란스러운 양상이지만 크게는 세 부류로 나뉜다고 했지. 그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한 친목의 자리인가.’
이미 용맥을 차지하고 눌러앉은 이들과 어떻게든 그것을 빼앗으려는 이들, 더 많은 용맥을 손에 넣어 세력을 키우려는 진영과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세력들까지.
크겐 정파와 사파, 그리고 군벌로 나눌 수 있었지만 그들끼리도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거기다 단일 세력으론 가장 세력이 강하다는 마교와 어둠 속에 숨어들어 음모를 꾸미는 혈교, 그 외의 군소방파들까지 더해지면···.
‘음, 하긴. 오히려 이런 회합이 없다는 게 이상한 거였군.’
아마 사파나 군벌, 그리고 군소방파들끼리도 이미 비슷한 파벌 같은 게 형성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같은 때에 각 세력의 사절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인다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괜히 그렇게 이동하다가 길목에서 적대 세력의 습격에 당하기라도 하면···.”
“그거야 그렇죠.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세력이 전부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특히 개최지에서 거리가 먼 곳은 더 그렇고요.”
또 그런 상황에서 험로를 뚫고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으로 세력의 힘을 제대로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다가 괜히 전력만 잃고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적진 않겠지.
“저희 세가는 이번에 꼭 참여하겠죠. 이번 개최지인 하남의 소림사와 이곳은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 으음, 요녕의 모용세가나 청해의 곤륜파는 아마 힘들 테고요. 애초에 연락을 받기는 했으려나?”
휴고는 말을 잇다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갈혜미 앞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입가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접한 뜻밖의 소식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군.’
이렇게 좋은 이벤트가 때마침 일어나 주다니!
뭔가 일을 벌이기 전에 정보부터 수집하는 건 필수사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많은 사람들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기회.
거기다 이번에 참석하는 이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힘깨나 쓴다는 이들이지 않겠는가?
거기다 도중에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는 습격까지 생각하면···.
‘뷔페···! 뷔페로구나!’
자신에게 그건 곧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