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ereign of the Infinite Clones RAW novel - Chapter (321)
그날은 평소와도 같은 하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화창한 하늘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바닷가에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평범한 한때.
그러나—.
[호루스.]변화는 그를 부르는 한 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녜?”
[이리로 오너라.]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보호자, 엘더 드래곤 슈리하트겐의 진중한 목소리에 평소처럼 마법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기 단련에 힘쓰던 호루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요즘 들어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이쪽을 지켜보기만 하더니.
하지만 그런 의아한 마음도 잠시, 몇 차례 눈을 깜박이던 호루스는 곧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가 보면 알겠지.’
직후, 가볍게 마력이 일어나며 땅딸막한 금발 꼬마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후웅—
그리고 그 몸은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며 레어 안쪽으로 쏘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처를 가로질러 자신을 부른 이가 있는 곳에 도착한 호루스.
그런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과장 하나 없이 동산만 한 크기의 덩치를 가진 금빛 생명체였다.
‘···역시 저건 언제 봐도 대단하단 말이야.’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위압감과 넋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거대한 동체.
수십 미터에 달하는 덩치를 빼곡하게 뒤덮은 금빛 비늘이 주변 빛을 산란시키며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한 가지 옥에 티라면, 한때는 찬란하게 빛났을 그 비늘의 광택이 지금은 다소 탁하게 흐려져 있다는 것일까.
호루스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곤 총총걸음으로 슈리하트겐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저 왔는데, 무슨 일이셰요?”
혀가 짧은 탓인지 의식하지 않을 때마다 말끝의 발음이 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러 번 고쳐보려 했는데도 여전히 이런 걸 보니, 육체가 성장할 때까진 그냥 호루스의 개성이라 여기고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
[나는 곧 죽을 거다.]“읙?”
하지만 그 아무래도 좋은 상념을 흩어버리듯, 눈앞의 거대한 노룡이 무심하게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그 담담한 어투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에 잠시 멈칫했던 호루스의 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어···.”
농담은··· 아니겠지.
물론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짐작하곤 있었다.
애초에 그가 자신을 처음 만나러 왔던 날에도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 수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지만 그날을 저리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리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통보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간 꽤 오래 함께하면서도 별다른 내색이 없기에 역시 수명이 긴 드래곤이라 시간관념이 달랐던 거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곧 이라는 건, 정확히 언제요?”
그래서 호루스는 한심한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지 않나?
그 ‘곧’이라는 것이 년 단위인 건지도.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그러나 그의 조심스러운 의문은 슈리하트겐의 단호한 말에 곧바로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시원시원한 대답에 차마 뭐라 뒷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야 죽을 준비가 제대로 끝났다고 해야겠지.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만이라면 앞으로도 몇 년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리 연명해 봐야 무의미할 뿐이니.]그쯤 되니 어떻게 그리 당당하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즉, 그는 더 이상 생을 붙잡는 것을 포기하고 지금 여기서 스스로 삶을 끝마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과연 이미 수천 년을 살아온 노룡답다고 해야 할까.
“아니, 암만 그래도 최대한 살려고 노력케 봐야죠!”
그에 호루스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능적인 거부감에 인상을 찌푸리며 반발하듯 항변했다.
아무리 그의 사후에 물려받을 일족의 유산이 탐나도 그렇지, 1년 이상을 함께하며 인연을 맺은 이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려 하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는가?
[호루스, 네가 없었다면 그랬겠지.]“···녜?”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슈리하트겐은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얼핏 대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며 침착하게 말문을 열 뿐이었다.
[여기서 억지로 더 버틴다는 것은, 인과의 힘을 비틀어 내 모든 것을 깎아내고 불살라 연료로 쓴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몸속에 깃든 마력과 생명력은 물론 그간 쌓아 올린 격과 업, 그리고 내게 주어진 운명까지 전부.]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조곤조곤한 설명.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호루스가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허나, 그렇게 무리하게 수명을 얻어봤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무(無)가 될 뿐이니. 물론 일족의 멸망이 확정된 상황이라면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오래 버텼겠으나···.]그리고 말을 멈춘 그가 거대한 황금빛 동공을 아래로 내려 바로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년을 눈에 담았다.
[이제 다른 방법이 생겼으니, 지금 상황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해야겠지.]이왕 끝낼 거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정도는 남겨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잠시 그렇게 호루스를 내려다보던 그의 눈이 부드럽게 휘며 눈동자 안에 웃음기가 맺혔다.
“······.”
그 일방적인 호의에 호루스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여기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당신의 그런 기대를 받을 만한 ‘진짜’ 드래곤이 아니라고?
이렇게 뭔가를 떠맡겨 봤자 나는 언제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아니, 그건 마음을 결정하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룡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이 또한 기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 또한 이제 와선 새삼스러울 뿐.
‘애초에 난 존재 자체가 사기꾼이나 다름없으니까···.’
처음 유산에 관한 내용을 들었을 땐 마냥 기대되고 좋기만 했는데, 생각 외로 오래 함께하게 되며 나름대로 정이라도 들었던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감상에 빠질 정도로 유대감이 깊었던 것도 아닌데 이리 심란한 것을 보면.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한 호루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불평을 토로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럼 졔가, 제가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솔직히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아무것도. 지금 상황은 이제 와서 해츨링 하나에게 맡겨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 때가 올 때까지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그 결과 호루스 너를 마지막으로 우리 일족이 멸족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지금까지 자신에게 보낸 기대감에 비하면 굉장히 무책임한 말이었다.
확실히 그게 현실적이긴 하겠지만.
[일단 대를 이어 시간을 버는 데는 성공했으니 뒷일은 드라카리온 님의 뜻에 따라야겠지. 넌 똑똑한 아이니, 때가 왔을 때 기회를 잡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그렇게 태평한 말을 끝으로 슈리하트겐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할 말은 그게 전부라는 듯.
“저···!”
그에 머뭇거리던 호루스가 재차 입을 열려던 순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기어코 변화가 시작되었다.
화아악—
넓은 공동의 모든 면을 가득 채우듯 모습을 드러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법진과 그에 반응하며 실내를 환하게 비추는 눈부신 황금빛.
그 중심에는 거대한 덩치를 바닥에 누이고 있는 노룡이 있었다.
커다란 몸을 뒤덮고 있는 탁한 금색의 비늘 하나하나가 발광하기 시작하고, 이내 그의 몸 전체가 빛에 휩싸여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댔다.
[그동안 즐거웠다, 호루스. 이별 선물을 주마. 아마 마음에 들 거다. 지금의 너에게 무엇보다 도움이 될 테니.]때를 맞춰 다시 머릿속에 슈리하트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호루스는 그가 지금의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가 그 ‘선물’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대체 뭐기에 이렇게까지!’
그는 휘몰아치는 에너지의 폭풍 속에서 애써 몸을 가누며 속으로 그리 외쳤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으니.
레어의 마법진과 공명한 슈리하트겐의 육체가 생명체의 틀을 넘어서 빛의 형상을 한 마나 덩어리로 화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아— 드라카리온이시여.]서서히 형체가 무너지는 동산만 한 덩치의 에너지 응집체.
찬란한 빛과 함께 대기 중에 산화되는 것과 동시에 그 일부가 한 점으로 뭉치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을 가득 채웠던 부피에서 작은 언덕만 한 크기로, 그리고 커다란 바위 크기까지 줄어든 그 빛 덩어리는 마침내—.
[호루스, 그럼 이···.]“슈리하트겡 님!”
그렇게 채 끝마치지 못하고 흩어진 목소리를 끝으로.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금색 결정이 텅 빈 공동 한가운데의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은은하게 발광하는 공동의 마법진을 배경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매개체가 되었던 해츨링의 드래곤 하트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랗고 아름답게 빛나는 결정.
···아니, 그것은 단순한 용의 심장이 아닌,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한 엘더 드래곤이 자신의 영육을 가공해 만들어 낸 힘의 집약체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상당한 손실이 발생하긴 했지만.
‘저건···.’
마치 유혹이라도 하듯 빛을 흘리는 자태에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호루스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어째서인지 저것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두쿵!
그러던 와중, 잠잠히 허공에 부유하던 그것이 이내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유동과 함께 거세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엇? 쟈, 잠깐···!”
한순간에 호루스에게로 날아든 결정이 그대로 그의 가슴에 파고들며 스며들듯 흡수되었다.
여전히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맥동하는 채로.
‘윽! 이건···!’
비틀거리던 호루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자기 머리통만 한 결정이 몸속에 파고들었음에도 겉으론 그 어떤 티도 나지 않았으나, 그런 물리적인 현상 따위는 지금 아무래도 좋았다.
가슴을 움켜쥔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이것의 힘을 온전히 다루기엔 아직 한참 준비가 부족하다고.
온갖 보정으로 떡칠 된 그의 육신은 이미 해츨링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그 상태로도 이것에 담긴 힘의 극히 일부를 끌어오는 데에 상당한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당장 전부 흡수하는 건 절대 무리야. 일단 이걸 어떻게든 잠재워야···.’
그런 호루스의 당황에 반응한 것일까?
체내에 들어와서도 사방에 에너지를 뿜어대며 맹렬한 존재감을 뽐내던 그것이 서서히 잠잠해지더니, 이내 줄줄 흘리던 에너지를 수습하며 얌전히 통제에 따르기 시작했다.
역시 공들여 준비한 선물이라더니 이 정도 배려는 이미 생각해 둔 모양.
‘후우, 깜짝 놀랐네. 그래도 이런 선물을 줄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주지.’
그렇게 잠깐 툴툴거리긴 했으나 그건 잠깐의 투정에 불과했다.
어쩌면 슈리하트겐도 나름대로 더 정을 붙이지 않기 위해 서두른 걸지도 모르지.
호루스는 시종일관 자신을 딱딱하게 대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다, 어쩐지 아련한 느낌이 들어 묵직한 힘이 느껴지는 자신의 가슴팍을 몇 차례 살살 쓰다듬었다.
‘설마 이렇게 갑자기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이게 가슴 속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간다는 것일까.
비록 그의 혼은 의식이 끝남과 동시에 떠나가 이것에 따로 자아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지만,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들어 가슴을 통통 두들기며 씩 웃고는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개체의 가능성이 강제로 개화합니다. 한계가 확장하며 성장이 가속화됩니다.》
《개체가 조건을 달성하여 성장합니다. 특수스킬「엘더 드래곤의 심장」을 획득합니다.》
《최후의 골드 드래곤이 되어 권한이 주어집니다. 특수스킬「황금의 보고」를 획득합니다.》
그의 눈앞에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슈리하트겐이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로 인한 변화와 미리 예정되어있던 일족의 유산으로 향할 수 있는 권한.
그래도 여기까진 어느 정도 예상했었는데···.
《업적 달성!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골드 드래곤’이 되었습니다.》
《아우테리카 차원의 단 하나뿐인 골드 드래곤이 되었습니다. 보상으로 특전 「드래곤 레어」를 부여합니다.》
《업적을 달성해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카르마가 추가로 상승합니다.》
그 다음 메시지의 내용은 그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